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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세미가 있는 고무장갑
산비탈 꼭대기에 있는 낡은 집. 대문도 문패도 없이 낡은 판자로 지은 집. 나는 그만 너무 놀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자, 여기가 우리 집이야.”
지연이가 수줍게 얼굴을 붉히면서, 나를 돌아보았다.
어렵게 사는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었지만, 나는 그런 일을 실제로 본적은 없었다. 그저 남의 일로만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내가 제일로 좋아하는 착한 지연이가 이렇게 어렵게 살고 있었다니! 나는 잠깐 동안 정신이 멍해져 있었다.
“왜? 이상하니?”
지연이는 내 눈치를 살피며, 뒤로 한걸음 물러섰다.
“아니! 이상할 게 뭐가 있니?”
나는 얼른 정신을 차리고, 쾌활하게 웃는 척 했다. 그러나 속으로는 몹시 당황해 하고 있었다.
“자자, 들어가자.”
나는 호들갑스럽게 떠들면서 지연이의 손을 잡아끌었다. 그러자 굳어있던 지연이의 얼굴에 조금씩 화색이 돌았다.
집안도 바깥과 별 다를 게 없었다. 낡고 찢어진 벽지에 너덜거리는 문짝, 가구들은 색이 모두 바래있었고 좁은 방안에서는 퀘퀘한 냄새마저 풍겼다.
‘이런 곳에서 사는 사람들도 있구나.’
나는 그곳에서 얼른 빠져 나가고 싶었으나, 애써 참고 자리를 잡아 앉았다.
“잠깐만 앉아있어. 나 잠깐 나갔다 올께. 아침에 설거지를 안 했거든.”
지연이는 여전히 웃는 얼굴로 말했다.
“설거지를 네가 하니?”
“응. 엄마는 밤늦게나 돌아오셔. 이따가 저녁준비도 내가 해야 해.”
지연이는 별일이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는 방을 빠져 나갔다.
‘저녁도 지어야 하고, 설거지도 하고... 지연이는 정말 대단하구나.’
나는 거듭 놀라서 못 박힌 듯 그대로 앉아 있었다.
지연이는 참 밝고 착한 아이이다. 공부도 잘 하고 얼굴도 예뻐서, 반에서 제일 인기가 많다. 그래서 우리는 지연이가 이렇게 어렵게 살아가는 줄 모르고 있었다.
‘달그락 달그락.’
지연이가 나간 문 쪽에서 그릇 부딪히는 소리가 조용히 들려 왔다. 아마도 부엌이 가깝게 붙어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문을 살짝 열고, 지연이를 바라보았다. 지연이는 어둡고 낮은 부엌 바닥에 웅크리고 앉아 열심히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커다란 고무 대야에 숟가락이며 밥그릇이 담겨 있고, 지연이의 손이 그 가운데에서 열심히 움직이고 있었다.
“어머나, 지연아 고무장갑이라도 끼고 하지 그러니?”
나는 지연이가 맨손인 것을 눈치 채고 놀라 소리쳤다.
“괜찮아. 익숙한걸 뭐... 고무장갑은 오히려 불편해.”
지연이는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어 보였다.
“그래도 고무장갑을 껴야지.”
“고무장갑을 끼면 손이 둔해져. 수세미를 쥐기도 힘든 걸.”
“그렇더라도...”
나는 말을 하다말고 입을 다물었다. 힘든 일도 즐겁게 해내는 지연이의 모습이 갑자기 너무나 아름답게 보였기 때문이었다.
나는 한동안 물끄러미 지연이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작은 손에 거머쥔 파란색 수세미가 힘차게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고무장갑을 끼면 수세미를 쥐기 힘들다고 그랬던가?’
나는 지연이가 했던 말을 떠올려 보았다.
‘어떻게 하면 고무장갑이 편해질까?’
나는 지연이의 손에 고무장갑을 끼게 할 방법을 찾아보았다. 이렇게 맨손으로 설거지를 하다간 얼마 안가서 손이 거칠어 질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지연이가 설거지하는 모양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지연이는 한손에 그릇을 들고 한손에는 수세미를 들고 열심히 움직이고 있었다. 얼마나 빠르게 움직이는지 손과 수세미가 한 덩어리로 보일 정도였다.
“바로 저거야!”
나는 그 모습에서 힌트를 발견하고는 기뻐 소리쳤다.
“지연아! 이리 와봐. 내가 아주 근사한 생각을 해냈어.”
나는 다짜고짜 지연이의 팔을 이끌고 방안으로 들어왔다.
“자 이것 봐. 수세미를 네 손 모양대로 자르고... 그것을 이 고무장갑에 붙이는 거야.”
나는 수세미에 접착제를 정성스레 발라서 고무장갑에 붙였다.
“자, 그러면 멋진 장갑이 완성돼. 따로 수세미를 사용할 필요 없이 그냥 이 장갑으로 그릇을 문지르면 되는 거야.”
나는 제법 의젓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머, 그렇구나. 설거지하기에는 아주 안성맞춤인 장갑이네.”
지연이는 장갑을 이리저리 돌려보며 아주 좋아했다.
“이것으로 네 예쁜 손을 꼭 보호해라 알았지?”
나의 말에, 지연이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좁은 창문을 통해 한줄기 햇살이 뻗어 들어왔다. 그 빛에 태산같이 강한 지연이의 밝은 미소가 드러났다.
글 : 왕 연 중
(한국발명문화교육연구소 소장, 영동대학교 발명특허공무원학과 겸임교수)
(이메일 : wangyj39@dreamwiz.com 전화 : 011-890-8578 )
그림 : 김 민 재(만화가, http : //www.coolmorning.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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