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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끄러지지 않는 자
나는 부끄러움에 목에까지 새빨간 물이 들고 말았다.
선생님 앞에 펼쳐놓은 내 공책이 너무 엉망으로 보여 고개를 똑바로 들 수가 없었다. 공책에 빼곡히 들어차있는 수직선들은 모두 삐뚤삐뚤 제멋대로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며 어지럽게 그어져 있었다.
“수연이는 선 긋는 연습을 좀 더 해야 되겠구나.”
선생님은 지나가는 말씀으로 주의를 주셨다.
“예.”
나는 기어드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휴우!”
나는 얼른 공책을 접어 도망치듯 내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어찌나 긴장을 했었는지 등이 축축할 정도였다.
‘어휴! 난 왜 이렇게 선을 못 그을까?’
나는 공책을 살짝 열어보고 한탄을 했다. 아무리 보고 또 봐도 정말 한심했다. 남들과 똑같이 자와 연필을 가지고 선을 긋는데 왜 나만 유독 못 긋는 걸까? 나는 화가 나서 공책을 책상깊이 쑤셔 박아 버렸다.
“어이구! 초등학교 6학년짜리 공책이 이게 뭐냐? 글씨도 엉망, 선도 삐뚤삐뚤...”
어디서 찾아냈는지, 엄마가 산수공책을 보며 흉을 보셨다.
“치! 자 때문이야. 내 탓이 아냐!”
나는 볼멘소리로 투덜거리며 엄마 손에서 공책을 뺏어 들었다.
“그래. 다 남 탓이지... 어디 창피해서 중학교에나 가겠냐? 쯧쯧.”
엄마가 혀를 차시는 소리를 듣고 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치... 자가 자꾸 밀리는 걸 난들 어떡하란 말이야.”
나는 공책을 손으로 잘 다독여서 깨끗한 면을 펼쳤다. 오늘도 수직선 숙제가 잔뜩 이었다.
‘이번에는 천천히 깨끗하게 해야지.’
나는 심호흡을 한번 깊게 하고는 공책위에 선을 죽 그었다. 하나 두개 세 개 까지 아주 깨끗한 선이 그어졌다.
“어 엇!”
아니나 다를까? 공책위의 자가 쭉 미끄러지면서 엉터리 선이 생기고 말았다.
‘잘돼가고 있는 중이었는데...’
나는 속이 상해서 두 손으로 책상을 꽝하고 내리쳤다. 그때 책상 끝에 아슬아슬하게 걸려있던 자가 밑으로 떨어졌다. 그리고는 하필이면 발등에 찍히었다.
“아얏.”
나는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발을 살펴보았다. 자가 떨어진 부분이 빨갛게 부어있었다.
아픈 발을 문지르며 나는 자를 주워들었다. 자의 모서리가 너무 날카로워 마치 송곳 같았다.
“이것 꽤 위험 하군... 안전하게 만들 수는 없을까?”
나는 자를 살펴보며 찬찬히 생각해보았다.
“맞아. 자의 모서리 부분을 고무 같은 것으로 싸면 더 이상 위험하지 않을 거야!”
나는 번개같이 방법을 생각해내고는 책상서랍을 뒤져 못쓰는 고무판을 찾아내었다. 그리고 잘 드는 칼로 고무판을 적당히 잘라내었다. 자의 양쪽 끝부분에 붙일 작정이었다.
고무를 자의 크기에 맞게 자르고 그것을 본드를 이용해서 자의 양끝에 붙여 두었다. 약 5분이 지난 후에 손으로 만져 보니 떨어지지 않고 딱 붙어있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었다.
“하하! 이제는 염려 없다.”
나는 스스로를 대견스러워하며 슬며시 웃음을 지었다.
“자아! 한번 해볼까?”
나는 크게 기지개를 한번 하고는 책상에 바싹 다가앉았다. 숙제를 마저 해야 했기 때문 이었다.
“어?”
선을 다섯 개쯤 그었을 때 나는 너무 놀라고 말았다. 줄을 그을 때마다 약간씩 밀려나곤 했던 자가 더 이상 밀려나지 않는 것이었다. 덕분에 선을 반듯반듯하게 그을 수 있었다.
나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자를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한참 후에야 그 이유를 겨우 알 수 있었다.
“이 고무가 미끄럼을 방지해주는 것이로구나.”
나는 자를 다시 한번 공책위에 대어 보았다. 그러자 자는 문어가 바위에 달라붙듯 종이위에 찰싹 붙었다.
“야호!”
나는 너무나 기뻐 두 손을 번쩍 들고 만세를 불렀다. 그 바람에 의자가 기우뚱하며 뒤로 넘어갔다. 머리와 엉덩이에 싸한 아픔이 몰려왔다. 그러나 나는 얼굴을 찌푸리지 않았다. 너무 기분이 좋아서 아픔까지 잊을 정도였다.
“하하하!”
나는 신이 나서 한참동안 웃었다.
“이자를 내 보물 1호로 정해야지.”
나는 자에다 수없이 뽀뽀를 하며 즐거워했다.
글 : 왕 연 중
(한국발명문화교육연구소 소장, 영동대학교 발명특허공무원학과 겸임교수)
(이메일 : wangyj39@dreamwiz.com 전화 : 011-890-8578 )
그림 : 김 민 재(만화가, http : //www.coolmorning.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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