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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전지를 이용한 좌판
“겨울철에는 노인 건강에 더욱 유의해야 합니다. 따뜻한 실내에 있다가 화장실등지에서 찬 기운을 갑자기 맞을 경우 뜻하지 않은 변을 당하기도 하기 때문이죠.”
텔레비전의 한 프로에서는 흰 가운을 단정히 입은 의사가 나와 가족건강을 두었다. 도움말을 해주고 있었다. 그 의사의 설명 가운데에는 어린아이 감기 예방법, 겨울철 피부 관리법등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 그중 나의 관심을 가장 끈 것은 바로 노인건강에 관한 것이었다.
우리 집은 꽤 많은 식구가 모여 산다. 할머니, 할아버지와 막내고모와 삼촌 그리고 엄마 아빠, 동생과 나. 학교에서 배운 대로라면 대가족인 셈이다.
나는 이런 우리 집이 너무 좋다. 고모나 삼촌은 퇴근해서 돌아올 때면 꼭 맛있는 것들을 사오고, 명절이 되면 멀리서 사는 친척들까지 전부 우리 집으로 모여 즐겁게 노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제일 좋은 것은 할머니와 할아버지께서 함께 놀아 주시는 것이다.
할아버지는 연이나 썰매를 근사하게 만들어 주시고, 할머니는 재미난 옛날이야기를 끊임없이 해주신다. 그리고 이따금 내가 아플 때면 내배를 쓸어 주시면서 ‘할머니 손은 약손, 동민이 배는 똥배’라고 노래를 불러 주시곤 하는데, 그럴 때면 신기하게도 아픈 것이 싸악 나아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세상에서 할머니 할아버지를 제일로 좋아한다.
그런데 요즈음 나는 할머니를 통 볼 수 없다. 왜냐하면 할머니께서 감기로 병원에 입원하셨기 때문이다. 면회를 가고 싶어도 나는 어린아이라서 갈 수 없다고 한다. 할머니가 안계시니 할아버지께서도 침울해 하신다. 그래서 나는 매일 매일을 재미없게 보내고 있는 것이다.
“화장실이라...”
의사의 말을 곱씹으며 나는 퍼뜩 정신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날씨가 추워지면서부터 할머니는 화장실 가기가 싫다고 하셨다.
“변기가 너무 차갑구나! 앉을 때마다 깜짝깜짝 놀란단다.”
할머니의 말씀이 갑자기 떠올랐다. 바깥출입을 잘 안하시던 할머니께서 감기에 걸린 이유를 이제 알 것 같았다. 바로 차가운 변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맞아! 나도 변기에 앉을 때마다 추워서 부르르 떨었는데, 할머니는 얼마나 추우셨을까.’
나는 힘없이 병원에 누어계실 할머니를 떠올리며 눈물을 흘렸다.
‘그래! 내가 이 문제를 해결해보자. 분명히 방법이 있을 거야.’
나는 결심을 하고 여러 가지로 방법을 알아보았다.
‘변기에 따뜻한 온기를 통하게 하려면... 전기장판의 원리를 이용하면 어떨까?’
변기의 직접 살갗이 닿는 부분인 좌판에 전기장판을 깔면 문제는 깨끗이 해결될 것 같았다. 그래서 좌판의 깔개에 니크롬선을 부착하고 이에 전원을 연결했다. 그러자 예상대로 좌판이 따뜻해졌다.
‘야호! 성공이다!’
나는 속으로 탄성을 내질렀다. 그리고 식구들 몰래 한밤중에 내가 만든 좌판 깔개를 변기의 좌판에다 부착시켰다. 식구들을 깜짝 놀래줄 생각이었던 것이다.
“으악 뜨거워!”
다음 날 이른 아침, 갑자기 비명소리가 들리더니 집안이 어수선 해졌다. 그 소리에 놀라 나는 부시 시 일어나서 밖을 내다보았다.
식구들이 죄다 나와서 화장실 앞에 모여 있었다. 밤에 늦게 잔 탓으로 그때까지 잠이 덜 깨 나는 멍한 눈으로 엄마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 이었다. 노여움이 섞인 아빠의 호통소리가 들려왔다.
“이 녀석! 이것 네 짓이지?”
그제 서야 나는 정신을 퍼뜩 차렸다. 난리의 원인은 다름 아닌 변기 좌판에 있었다. 밤새 열을 받아 잔뜩 뜨거워진 열판위에 삼촌이 아무 생각 없이 앉았다가 난리가 난 것이다.
삼촌의 엉덩이는 벌겋게 익었고, 나는 그날 내내 아빠한테 혼이 나야했다. 하지만 나는 그 좌판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좀 온도를 낮추면 될 거야. 맨살이 닿는 것이니까 아주 미지근하면 되겠지?’
나는 가정용 콘센트에 연결하던 전원을 없애고 대신에 건전지를 이용하기로 했다. 1.5볼트짜리 건전지를 사용한다면 과열의 위험은 없으리라 생각했다.
“으음. 정말 좋군. 아주 적당해!”
나는 건전지를 이용한 좌판에 앉아서 미소를 지었다. 이번에는 내가 직접 좌판에 앉아 보면서 온도를 조절했다. 저번 경험을 통해서 실험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따뜻한 변기 위에 앉아 있으려니 할머니의 웃는 얼굴이 떠올랐다.
“어이구 우리 손자가 장한 일을 했구나. 커서 꼭 과학자가 될 거여!”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여 나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글 : 왕 연 중
(한국발명문화교육연구소 소장, 영동대학교 발명특허공무원학과 겸임교수)
(이메일 : wangyj39@dreamwiz.com 전화 : 011-890-8578 )
그림 : 김 민 재(만화가, http : //www.coolmorning.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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