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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뚜껑의 비닐 막
산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의 표정이 한결 산뜻하고 맑아보였다. 도시의 거리에서 보던 얼굴들하곤 비교가 안 될 정도였다.
“정말 기분이 좋은 걸요. 사람들의 표정만 봐도 저절로 행복해져요.”
“그렇구나. 산이 부쩍 깨끗해진 때문인가, 마음이 무척 상쾌해서 웃음이 절로 나오는구나.”
아빠의 말씀을 듣고 보니 등산로가 전보다 훨씬 깨끗해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곳곳의 쓰레기통들도 깨끗하고 풀 섶에 아무렇게나 던져 버린 쓰레기 봉지도 눈에 띄게 줄어 있었다.
“이제 사람들도 환경보호에 적극 관심을 갖게 됐나 봐요.”
누나도 환하게 웃으면서 내손을 꼭 잡았다.
“그래. 이제 서야 환경보호의 참뜻이 이해되기 시작했나 보다. 사실 아직도 미흡한 점이 많이 있긴 하다만...”
“미흡한 점이요?”
“그래. 어쩌면 너희들도 아직 못 깨달은 부분일 게다.”
미흡한 점이라니⋯ 누나와 나는 서로 쳐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칭 환경박사인 우리도 모르는 부분이 있다니, 아빠의 말씀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누나, 무슨 말인지 알겠어?”
“글쎄... 나도 통...”
누나는 머리를 천천히 가로 저었다.
‘도대체 무슨 말일까? 우리가 못 깨달은 것이라니⋯ 나무에 새집을 더 달아주어야 한다는 말씀인가?’
어른들은 가끔 우리 어린이들이 모를 말만 툭 던져 놓고, 딴청을 부릴 때가 많다는데 지금 아빠의 경우가 꼭 그런 것만 같았다. 우리를 호기심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구제해줄 생각도 안하시다니...
“아빠. 전 도대체 무슨 말씀인지 이해를 못하겠어요.”
도저히 못 참겠는지 마침내 누나가 말문을 열었다.
“그래? 그럼 힌트를 줄까? 가서 쓰레기통을 보고 오너라.”
아빠의 말씀이 떨어지자마자 나는 쏜살같이 쓰레기통으로 달려갔다.
‘분리수거가 제대로 안되는 걸 말씀하시나? 하지만 그건 나도 잘 알고 있는 건데.’
음료수 캔이며 과자봉지들이 한데 뒤엉켜있는 쓰레기통을 보고 있자니, 내 머리속도 뒤죽박죽이 되는 것 같았다.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는커녕 오히려 혼란스럽기만 했다.
‘안 되겠다. 아빠의 수수께끼는 도저히 풀 수 없어. 이젠 기권하고 답을 알려달라고 해야지.’
나는 아빠를 향해서 고개를 으쓱 치켜보였다. 도저히 알 수 없다는 뜻이었다.
“전혀 모르겠니? 답은 음료수 캔이야. 거기 쓰레기통 안에 캔이 수도 없이 많지?”
“아하! 이제 알았다. 이제 알았어요.”
갑자기 누나가 벼락 치듯 소리를 질렀다.
“음료수 캔이 음료수 병보다 공해 물질이란 이야기죠. 캔은 재활용하는 데에도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니까 말이어요.”
아빠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래 맞았다. 캔 음료수 대신에 병 음료수를 마시면 그만큼 에너지가 절약되는 거란다.”
“아...아”
나도 그제 서야 아빠의 말씀을 깨닫고 고개를 끄덕였다. 음료수 선택이란 간단한 문제에도 그런 깊은 비밀이 숨겨 있었다니⋯ 나는 전혀 깨닫지 못한 일이었다.
“하지만 병으로 된 음료수는 너무 불편하잖아요. 일일이 병따개로 뚜껑을 따야하고⋯ 그러니 사람들이 전부 캔 음료수를 마시는 것이 아닐까요?”
“그렇지. 하지만 작은 불편은 때로 참아야 하는 거야.”
아빠의 말씀에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내 마음엔 왠지 껄끄러운 구석이 남아 있었다
.
‘불편은 고쳐지지 않으면 사람들에게 환영받지 못해. 환경을 생각한다면 병의 불편함을 고쳐서 사람들이 저절로 병 음료수를 찾도록 해야지.’
나는 주위를 다시 한번 둘러보았다. 아빠의 말씀대로 정말 많은 음료수 캔이 버려져 있었다.
‘휴우⋯ 병으로 된 음료수를 간편하게 마실 방법은 없을까? 병따개가 없이 간편하게 빨대만 꽂아서 음료수를 먹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혼자서 상상의 나래를 활짝 펼쳐 보았다. 병마개가 없는 간편한 음료수를 마시는 사람들의 웃는 얼굴이 눈앞에서 펼쳐지는 것 같았다.
‘그래 맞아! 음료수 병에 지금의 뚜껑대신에 얇은 막을 장치하는 거야. 그러면 병따개가 없어도 언제 어디서든 간편하게 음료수를 마실 수 있어!’
나는 너무나 기뻐서 팔짝팔짝 개구리처럼 뛰었다.
“아빠, 아빠! 제가 병 음료수의 불편한 점을 개선했어요. 제가 멋진 아이디어를 만들어
냈다고요!”
“새로운 아이디어?”
“네! 우유나 음료수 팩을 보니까 윗부분에 얇은 비닐 막을 만들어 놨더라고요. 그것처럼 음료수 병뚜껑도 만들면 돼요.”
“야! 그것 참 근사한 걸.”
내 설명이 채 끝나기도 전에 누나가 박수를 치며 기뻐했다. 누나의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저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 참 좋은 아이디어구나. 하지만 병의 단점은 더 많단다. 그것들도 모두 고쳐야지?”
“물론이에요 아빠. 깨지지 않는 튼튼하고 가벼운 유리병에 대해서도 연구해 보겠어요!”
아빠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셨다. 아빠의 입가에 번지는 미소. 나는 내 자신이 너무 자랑스러웠다.
‘노벨상아 기다려라. 내가 달려간다!’
글 : 왕 연 중
(한국발명문화교육연구소 소장, 영동대학교 발명특허공무원학과 겸임교수)
(이메일 : wangyj39@dreamwiz.com 전화 : 011-890-8578 )
그림 : 김 민 재(만화가, http : //www.coolmorning.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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