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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코너에 소개된 모든 글의 저작권은 저자인 왕연중 선생님(한국발명문화교육연구소 소장, 영동대학교 발명특허공무원학과 겸임교수, wangyj39@dreamwiz.com)에게 있습니다.
저자의 허락없이 무단전재나 재배포를 금지합니다.

제목 : 회전축과 파리똥      

                회전축과 파리똥

  “오빠, 파리도 좋아하는 색깔과 싫어하는 색깔이 있을까?”
   물이 끓고 있는 냄비에 라면 두 개를 넣고 뚜껑을 닫으면서 빛이가 물었다. 식탁에 앉아서 라면이 빨리 끓기를 기다리고 있던 아름이가 눈살을 찌푸렸다.
  “라면 끓이는 애가 느닷없이 지저분한 파리 얘기는 왜 하니?”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작은 삼촌댁에 다니러 가셨고, 엄마는 아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자 시장에 가셨다. 엄마는 아름이가 책가방을 내던지기가 무섭게 냉장고 문을 열고 기웃거리는 것을 보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출출하면 빛이랑 라면이나 끓여 먹으렴.”
  “우와, 신난다! 만두 넣어서 끓여 먹어도 되죠, 엄마?”
  “저녁밥 먹을 때 어쩌려고 만두까지 먹니? 꼭 먹어야겠다면 두 개만 넣어서 하나씩 나눠 먹어라.”
  “네 개 넣어서 두 개씩이요.”
  “안 돼!”
  “그럼 세 개 넣어서 한 개 반씩. 응, 엄마?”
  “글쎄, 안 된다니까!”
  “…알았어요. 시장에나 다녀오세요.”
   아름이네 식구는 모두들 만둣국을 좋아했다. 그래서 만두를 자주 만들어 놓고 끓여 먹었다. 특히 아름이와 빛이가 가끔 간식으로 먹는 라면 속에 만두를 몇 개씩 넣어서 먹는데 그건 유난히 맛이 있었다. 빛이는 다시 냄비 뚜껑을 열고 만두 두 개를 넣었다.
  (저녁밥만 아니라면 몇 개 더 먹었으면 좋겠는데…,)
  아름이는 침을 꼴깍 삼켰다. 김치와 젓가락을 식탁 위에 차려 놓은 빛이는 아름이 맞은편에 앉자마자 다시 파리 얘기를 꺼냈다.
 “어떻게 생각해, 오빠? 파리도 좋아하는 색깔이 있을까?”
 “글쎄…. ‘파브르 곤충기’에 그런 얘기는 없었는데?”
 “난 아무래도 파리가 색깔을 구분하는 것만 같애.”
 “느닷없이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거야?”
  빛이는 아까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해 주었다.
  체육 시간이었다. 학급 당번이어서 교실에 남아 정리를 하고 있는데, 쓰레기통에 파리가 몇 마리 붙어 있었다. 쓰레기통은 초록색과 주홍색 두 가지였다. 무심코 쓰레기통 옆을 지나던 빛이는 고개를 돌려 다세 바라봤다. 파리들은 초록색 쓰레기통에만 앉아 있었다.
  (초록색 쓰레기통에 음식 찌꺼기라도 들어 있나?)
  빛이는 초록색 쓰레기통을 열어봤다. 그러나 음식 찌꺼기나 과자 부스러기 등은 없었고, 휴지와 연필을 깎은 쓰레기뿐이었다. 주황색 쓰레기통도 열어봤지만 마찬가지였다.
  (이상하다. 왜 파리들이 초록색 쓰레기통에만 앉았을까? 우연이었을까?)
  조금이라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면 그냥 넘기지 못하는 빛이였다. 빛이의 별명이 감초에다가 아르키메데스가 아니던가?
  조금 떨어져서 지켜보고 있자니까 십여 분 뒤에 파리들이 다시 돌아왔다. 초록색 쓰레기통에는 다섯 마리의 파리가 앉았고, 주황색 쓰레기통에는 한 마리밖에 앉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일이었다.
  (파리도 좋아하는 색깔이 있나? 만약에 파리한테 색깔을 구분하는 능력이 있고, 좋아하는 색깔과 싫어하는 색깔이 있다면…. 그래, 본격적으로 실험을 해보자. 내 생각이 옳다면 대단한 일이 일어날 수가 있어!)
  빛이의 얘기를 듣던 아름이가 갑자기 입을 막고 킥킥거리기 시작했다. 빛이가 기분 나쁘다는 듯이 눈을 흘겼다.
 “내 생각을 비웃는 거야?”
 “그게 아니라 재미있는 이야기가 생각나서 웃은 거야.”
 “재미있는 이야기?”
 “그래, 들려줄까?”
  그러면서 아름이가 하는 얘기는 이랬다.
  전라도 쪽에서는 파리를 사투리로‘포리’라고도 부른다. 그런데 이곳에 사는 한 사람이 서울 친척집에 들르러왔다. 때는 여름인지라 마루에서 식사를 하는데 파리 몇 마리가 날아다녔다. 잠자코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참견하기 좋아하는 그 사람이 아는 척을 했다.
  “촌에만 포리가 있는 줄 알았더니 서울에도 포리가 있네 그려?”
  그러자 친척집 꼬마가 깔깔거리며 소리쳤다.
  “포리가 뭐예요, 파리지!”
  “응? 파, 파리?”
  ‘아뿔사, 내가 나도 모르는 새에 사투리를 말해뿌렀구나!’
 그러나 한번 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 전라도 사람은 헛기침을 한번 하고는 이렇게 적당히 둘러댔다.
 “아니, 너 여태 ‘파리’하고 ‘포리’가 어떻게 다른지도 모르냐?”
 “파리와 포리가 달라요?”
 “그럼! 자, 저 파리들을 찬찬히 봐라. 어뜬 놈들은 앞발로 머리를 싹싹 비비고, 또 어뜬 놈들은 뒷발로 날개를 싹싹비비쟈?”
 “정말 그러네? 근데 뒷발로 비비는 파리가 더 많은데요?”
 “그것 봐라. 비러 앞발로 비비는 놈을 ‘파리’라고 하고, 뒷발로 비비는 놈은 ‘포리’라고 하는 거여. 알겠냐?”
 “그런가…?”
 아름이의 이야기를 들은 빛이는 배를 움켜쥐고 웃었다. 그때 냄비 뚜ㄲ?ㅇ이 들먹거리더니 ‘치지직!’국물이 넘쳐흘렀다.
 “어머나, 내 정신 좀 봐!”
 빛이가 얼른 뚜껑을 열고 가스렌지의 스위치를 돌렸다. 라면냄새가 은은히 풍기고 있었다. 아름이는 다시 한번 침을 꼴깍 삼켰다. 빛이가 행주로 손잡이를 싸서 냄비를 식탁에 내려놓고 밥공기 두 개를 가져왔다. 두 사람은 후후 불어가면서 라면과 만두를 먹기 시작했다.
 “빛이야, 너 만두와 라면의 유래를 아니?”
 “중국에서 맨처음 먹기 시작했다는 정도만 아는데, 오빠는 알아?”
 “내가 누구냐?”
 아름이는 후루룩 후루룩 라면을 먹어가면서 라면과 만두의 유래에 관해서 들려주었다.
 “원래는 밀가루에 달걀이랑 소금을 넣고 반죽해서 국수 가락처럼 길게 뽑은 다음에 삶아가지고, 메밀국수 먹듯이 간장 같은 맛이 나는 국에 말아서 먹는 게 라면이었대. 그게 요즘처럼 인스턴트 라면으로 바뀐 거지.
 중국 사람들은 원래 분식이 주식이었는데, 화북지방(북부)과 화남지방(남부)이 약간씩 달랐어. 워낙 땅덩어리가 크다보니까 기후나 토질 등 여러 가지가 달라서 그랬겠지. 그 중에서 화북지방은 쌀 생산이 많지 않아서 메밀국수가 주식이었거든. 그래서 국숫발도 굵은 것을 즐겨서 먹었는데, 화남지방에서는 그 반대로 쌀 생산이 많았기 때문에 메밀국수는 간식용이었다는 거야. 그러다보니까 국숫발도 아주 가늘었지. 그런데 이게 바로 라면의 시초였어.
 이 메밀국수가 한국을 거쳐서 일본 요코하마라는 곳으로 건너갔대. 일본에서는 이때부터 메밀국수뿐만 아니라 밀국수까지 유행이 되었고, 제2차 세계대전에 끝난 뒤부터는 밀국수 라면이 크게 유행되면서 세계 각국으로 퍼져나갔다는 거야. 그런데 이 일본 라면은 중국의 화북식과 화남식의 중간형이래.“
 빛이는 라면을 먹다말고 줄줄이 주워섬기는 오빠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존경스럽다, 오빠.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
 “너 서중유도(書中有道)라는 말 아니?”
 “그게 뭔데? 할아버지한테 배웠어?”
 “그래. 해석을 하자면 책 속에 길이 있다는 뜻이지.”
 “알았다! 그러니까 책에서 읽었다는 말이지?”
 아름이는 다시 라면을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만두 한 개는 아껴 두었다가 맨 나중에 먹었다. 아름이는 김치를 으적으적 씹으면서 물었다.
 “만두에 관해서는 할아버지가 얘기해 주셔서 너도 알고 있지?”
 “「삼국지」에 나오는 제갈양이 하인들을 시켜서 양고기나 돼지고기를 잘게 썰어 만두피에 싸가지고 만들었다는 전설?”
 “맞았어!”
   아름이는 먹고 난 그릇들을 설거지통에 넣고 씻기 시작했다. 끓이는 일은 빛이가 하고 설거지는 아름이가 하기로 했던 것이다. 행주로  식탁을 훔치고 있는 빛이를 돌아보면서 아름이가 물었다.
 “그럼 파리 문제는 어떻게 하기로 했니?”
 “당장 실험해 봐야지.”
 빛이는 자기 방에서 하얀 16절지 세 장을 가져왔다. 그리고는 밥 한 숟가락씩을 떠놓고는 밖으로 들고 나갔다.
  설거지를 마친 아름이는 빛이의 실험이 궁금하기는 했지만 우선 숙제부터 서둘러서 해치웠다. 그리고는 복습과 예습까지 마친 다음에야 홀가분한 마음으로 나가보았다.
  빛이는 마당의 양지쪽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그 앞에는 밥을 조금씩 떠놓은 빨강, 파랑, 노랑, 검정, 주황, 초록, 연두, 분홍, 흰색, 회색 등의 색종이가 한 줄로 놓여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하얀 색종이 위의 밥에 두 마리의 파리가 앉아 있고, 초록과 노란색의 색종이 위의 밥에 각각 한 마리씩이 앉아 있었다.
 “뭐하는 거니, 빛이야?”
 아름이는 계속 고개만 갸우뚱거리고 있는 빛이를 바라보면서 물었다.
 “이상해, 오빠.”
 “뭐가?”
 “왜 파리들이 많이 날아오지 않지?”
 “어떻게 했는데?”
  빛이는 아까 밥을 한 숟가락씩 떠놓은 하얀 종이 세 장 가운데서 하나는 햇빛이 잘 드는 곳에 놓고, 나머지는 그늘진 곳과 어두컴컴한 창고 안에 놔두었다. 그리고 30분 뒤에 돌아와서 살펴보니까 양지쪽 밥 위에는 여덟 마리의 파리가 앉아 있었고, 그늘진 곳에는 두 마리가 있었다. 그러나 창고 속에는 한 마리도 없었다.
 “난 이 실험에서 파리가 그늘진 곳이나 어두운 곳보다는 따뜻한 양지쪽을 더 좋아한다는 사실을 확인한 거야. 그래서 이번에는 좋아하는 색깔이 무엇인지 알아보려고 이렇게 색종이로 실험을 했는데….”
 아름이는 잠시 사방을 둘러보다가 하늘을 쳐다봤다. 해가 저물고 있었다. 아름이는 소리가 나도록 손가락을 튕겼다.
 “저녁 때가 되니까 파리가 활동을 안하는 거야, 빛이야!”
 “정말 그렇구나!”
  빛이는 색종이들을 한쪽으로 밀어놓고 안으로 들어갔다. 내일 학교에서 돌아오는 대로 다시 실험을 해 볼 생각이었다. 발명일지에 그날의 관찰 결과를 기록한 다음에 오빠 방으로 갔다. 아름이는 발명일지에 무언가 열심히 그리고 있었다.
 “새로운 발명 목표라도 생겼어, 오빠?”
 “응.”
 “뭔데?”
 “연탄재 고무래.”
 “연탄재 고무래? 우리 집은 기름보일러잖아?”
 그때서야 아름이는 머리를 들었다.
 “너, 샌님 유성준이 알지?”
 “오빠네 반 회장?”
 “그래.”
 “그 오빠네 엄마가 시장에서 큰 자배기에다가 생선을 떼다 놓고 판다고 했던가?”
 “맞았어. 걔네 누나는 중학교 2학년인데 늘 일등만 하잖아.”
 “근데 그 오빠하고 연탄재 고무래가 무슨 상관이야? 아니, 그것보다도 연탄재 고무래가 도대체 뭐야, 오빠?”
  아름이는 고무래를 설명하기 위해 빛이에게 천천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늘 말이 없고 조용한 성격이어서 ‘샌님’이란 별명이 붙은 유성준은 아름이네 동네서 살았다. 방 하나, 부엌 하나인 셋방에서 세 식구가 어렵게 사는 것이었다.
 성준이네는 서울에서 가까운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살았었다. 그런데 성준이가 어려수부터 시름시름 앓고 계시던 아버지가 성준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해 돌아가셨다. 넉넉하지 않던 살림이었지만 그나마도 아버지의 병구완을 하느라고 거의 다 팔았고, 하루 아침에 아버지를 잃은 성준이네 식구는 살 길이 막막했다. 생각다 못한 성준이 엄마는 남매를 데리고 서울로 올라와서 행상을 시작하신 것이었다. 그때가 성준이가 2학년 때였고 아름이는 그때부터 성준이와 친하게 지냈다.
  며칠 전에 아름이는 성준이네 집에 놀러 갔었다. 아름이가 갖고 있는 공상과학에 관한 책과 성준이의 동화책을 바꿔보기 위해서였다. 성준이의 누나 성희도 집에 있었다.
  아름이와 성준이는 앉은뱅이 책상 앞에 앉아서 공부를 하는 성희 옆에서 서로 바꾼 책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던 성희가 깜짝 놀라서 벌떡 일어섰다.
 “어머, 내 정신 좀 봐! 연탄 갈아야 되는데.”
 성희는 서둘러서 부엌으로 나갔다. 잠시 후 솥을 내려놓고 두꺼비집을 걷어내는 등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갑자기 ‘퍽석!’하는 소리가 들렸다.
 “어머나!”
 성희의 비명에 두 사람은 얼른 부엌문을 열고 머리를 내밀었더니 연탄 냄새가 콧속으로 훅 밀려들었다. 아궁이에서는 뽀오얀 먼지가 피어오르고, 성희는 연탄집게를 든 채 낭패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성희의 발 옆에는 새 연탄과 불길이 벌겋게 솟아오르는 밑불이 놓여 있었다.
 “왜 그래, 누나?”
 “연탄재를 꺼내다가 깨뜨렸지 뭐니. 그래도 밑불이 안 깨진 게 다행이지, 뭐.”
  성희는 한쪽 구석에서 국자처럼 생긴 것을 찾아 들고는 아궁이에서 연탄재 부스러기를 떠내기 시작했다. 끝에 국자 같은 게 달린 그것의 자루는 60센티미터 정도 되었다.
 “그게 뭐야, 누나?”
 아름이가 물었다.
 “이거? 글쎄…. 그냥 연탄재 퍼내는 거지, 뭐.”
 “이름은 없어?”
 “있기야 있겠지만, 모르겠어. 나무를 때는 시골에서는 고무래라는 걸로 재를 긁어내는데, 이건 긁어내는 게 아니라 떠내는 거지만 일종의 고무래인 셈이야. 앗, 뜨거!”
  성희는 손잡이를 이리저리 젖히면서 아궁이 바닥에 깔린 연탄재 부스러기를 떠내느라고 손을 여러 차례 데었다. 연탄불에 달궈진 아궁이용 토관과 부뚜막에 손이 쉽게 닿기 때문이었다. 고개를 쑤욱 빼고 들여다보니 토관은 안지름이 약 16센티미터, 깊이는 약 35센티미터 정도가 되었다.
 성희는 연탄재를 다 긁어내고 연탄불을 간 다음에 방으로 들어왔다. 손을 자세히 보니 군데군데 화산 자국이 있었다. 그날처럼 연탄재를 긁어내다가 덴 자국이라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문제는 연탄재 고무래라는 것에 있는데….”
 아름이가 중얼거리자 성준이가 힐끔 쳐다봤다. 순간 두 사람의 눈길이 부딪치면서 반짝였다. 서로 마음이 통한 것이었다.
 “해 볼래?”
 “좋아!”
  느닷없이 두 사람이 부엌으로 나가자 성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내다봤다. 아름이가 부엌문을 닫으면서 말했다.
 “누나의 예쁜 손을 다시는 연탄아궁이에 데지 않도록 해 줄 테니까 기대해, 누나.”
 “뭘 어쩌려고?”
 “글쎄, 누나는 문 닫고 공부나 하라니까.”
  두 사람은 우선 그 문제의 연탄재 고무래를 살펴보았다. 우묵한 접시처럼 생긴 양철 그릇이 손잡이에 직각으로 붙어 있었는데 문제는 거기에 있었다. 그 우묵한 그릇으로 연탄재를 뜨려니까 옆으로 기울여야 하고, 그러다 보니까 손이 아궁이 주변에 닿게 되는 것이었다.
  두 사람은 국자처럼 생긴 연탄재 고무래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는 문 밖에 놓인 연탄 운반용 양철통에 조금 아까 펴낸 연탄재를 쓸어 담고 실험에 들어갔다.
  우선 국자 같은 양철 접시와 자루의 각도를 늘여서 밑으로 약간 처지게 벌렸다. 양철통의 연탄재를 떠보니 자루를 젖히지 않아도 가능했다. 그러나 들어 올릴 때 우르르 되 쏟아졌다.
 “일차 실험은 실패야. 성준아, 망치 좀 가져와 바.”
  성준이가 망치를 가져왔다. 이번에는 양철 접시를 전처럼 자루와 직각이 되게 한 다음, 자루의 반대쪽을 두들겨서 양철 접시의 가장자리를 폈다.
 “다시 한 번 해보자.”
  가장자리를 편 곳으로 연탄재를 뜨니까 자루를 젖히지 않아도 수월하게 되었다. 들어올릴 때도 별로 쏟아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좁은 아궁이를 생각할 때 그것도 실패나 다름없었다.
 “어? 이거 큰일 났는데?”
  연탄재를 몇 번 퍼올려 보던 성준이가 깜짝 놀랐다. 폈다 구부렸다 두들겼다 하는 바람에 양철 접시와 손잡이의 접촉부분에 금이 가면서 그만 부러지고 만 것이었다. 두 사람은 난처한 표정이 되어 서로 쳐다보았다.
 “누나한테 혼날 텐데….”
 "비쌀까?“
 “그렇진 않을 거야. 그렇지만….”
  아름이는 성준이를 데리고 동네 철물점에 가서 연탄재 고무래를 새 걸로 샀다. 마침 엄마한테 일주일치 용돈을 받은 게 있었던 것이다. 성준이는 샌님답게 어쩔줄을 몰라 하며 미안해했다.
 “너무 그럴 것 없어. 그 대신 멋진 연탄재 고무래를 발명해보자구. 지금까지의 실험 결과를 종합해보면, 좁고 깊은 아궁이 속에서 연탄재를 긁어담는 일이 힘들다는 데 문제가 있는거야. 일단 그것만 해결하면 될 것 같은데 말야.”
  두 사람은 서로가 연구해 보기로 하고 헤어졌다. 성준이는 망가진 고무래를 실험용으로 감춰놓고, 새것을 살짝 들여놓은 다음에 방으로 들어갔다.
  아름이의 이런 얘기를 들은 빛이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니까 손잡이를 전후좌우로 움직이지 않고 연탄재를 퍼올리면 되는 거네?”
 “그렇지.”
 “그럼, 그건 간단해.”
 “양철 접시를 회전시키면 되잖아? 그러면 자루를 전후좌우로 움직이지 않아도 되니까 말야.”
 “그래, 맞아!”
  아름이는 벌떡 일어서면서 빛이를 와락 끌어안았다. 빛이는 소스라칠 듯이 놀라면서 비명을 지르고는 방을 뛰쳐나갔다.
 “어머, 징그러!”
  며칠 동안 끙끙거리며 고민하던 문제의 열쇠가 빛이의 한 마디에 풀린 셈이었다. 손이 아궁이 주변에 닿는 문제는 해결되었다. 이제 그 회전운동에 맞춰 연탄재를 긁어낼 수 있는 연탄재 고무래의 기능만 갖추면 되었다.
 “회전운동이라구? 그럼 간단하지!”
  이튿날 학교에서 아름이의 이야기를 들은 성준이는 얼굴을 활짝 펴면서 좋아했다. 성준이는 우선 손잡이를 T자형으로 바꾸자고 했다. 그러면 양철 접시를 회전시키기가 훨씬 수월해진다는 것이었다.
 “그런 다 음에 양철 접시의 가장자리 가운데서 자루와 연결된 바로 옆부분을 펴서 바닥에 닿게 하는 거야. 손잡이를 잡고 비틀 듯이 돌려주면 그쪽으로 연탄재가 올라와서 양철 접시에 담기게 되도록 말야. 그러니까 양철 접시 가장자리의 펴진 부분이 마치 쟁기에 있는 삽 모양의 쇳조각인 보습처럼 연탄재를 퍼올리는 거지.”
 “맞았어! 바로 그거야!”
  아름이가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떠들고 장난하고 뛰어다니던 아이들이 일제히 돌아봤다. 고물장수와 짜장돼지, 맹스타, 쌕쌕이 등이 우루루 달려왔다.
 “뭐가 맞았다는 거니, 짱구야?”
 “퀴즈 놀이하는 거니?”
 “왜 그래, 샌님?”
  아름이는 성준이를 쳐다보면서 한쪽 눈을 찡긋해 보이고는 시치미를 뚝 떼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너희들은 왜 그러니? 어디 불이라도 났니?”
 “뭐라구?”
  모두가 어이없다는 듯이 눈만 멀뚱멀뚱 뜬 채 쳐다보았다. 학교 수업이 끝나자 아름이와 성준이는 곧장 성준이네 집으로 갔다. 성희는 아직 학교에서 돌아오지 않았다. 두 사람은 새로 사놓았던 연탄재 고무래를 찾아들고 작업에 들어갔다. 자루와 붙은 양철 접시의 오른쪽 가장자리를 망치로 두들겨 폈다.
 “연탄 갈려면 아직 멀었니?”
 “아냐, 얼추 됐어.”
 “그럼, 빨리 갈아 봐.”
  성준이는 솥을 들어내고 두꺼비집을 치운 다음에 아직도 푸른 불꽃이 올라오는 연탄을 꺼냈다. 독한 연탄가스 냄새가 코를 푹 찔렀다. 밑에 있는 연탄재에도 아직 불기운이 많이 남아 있었다.
 “조금만 깨뜨려!”
  아름이가 시키는 대로 성준이는 연탄집게로 연탄재를 들고 밑 부분을 조금 깨뜨렸다. 아름이는 고친 연탄재 고무래를 놓고 빙글빙글 돌려봤다. 그러나 회전이 생각한 대로 쉽게 되지는 않았다. 손잡이를 잡고 비틀 듯이 돌리면 양철접시는 멋대로 이리저리 미끄러지면서 헛돌기만 할 뿐, 연탄재를 긁어담을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이상한데?”
 “어디, 내가 한번 해볼게.”
  이번에는 성준이가 나섰지만 마찬가지였다. 연탄가스 냄새는 계속 코를 찔렀고, 아궁이에서는 뽀오얀 연탄재 먼지만 올라왔다.
 “에이, 신경질 나!”
 성준이는 몇 번 콜록거리더니 신경질을 버럭 내면서 연탄재 고무래를 팽개치고 얼른 연탄을 갈고 두꺼비집과 솥을 올려놓았다. 아름이는 성준이와 잠시 앉아 있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회전이 안 죄는 이유가 뭘까?)
 집에 돌아오자 빛이가 마당에서 서성거리는 게 보였다. 어제 저녁 때처럼 여러 가지 색종이 위에 밥을 올려놓고 파리들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것이었다.
 “잘 돼가니?”
 “이제 와, 오빠? 예상했던 대로야. 아까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시작해서 지금이 세 번째 실험인데, 아주 재미있는 결과가 나왔어.”
  빛이는 옆에 있던 발명일지를 보면서 관찰 결과를 들려주었다.
 “맨처음 실험에서는 흰색 색종이에 여덟 마리가 앉았고, 초록색에 여섯 마리, 연두색과 파란색에 각각 세 마리, 노란색에 앉았어. 그런데 두 번째와 세 번째 실험에서도 흰색과 초록색, 연두색 색종이의 밥풀에 파리들이 가장 많이 모였고, 빨간색과 검정색에는 한 마리씩밖에 앉지 않았어. 증거를 더 찾아봐야겠지만, 이것만 봐도 파리는 흰색과 초록색, 연두색 따위를 좋아하는 것으로 생각돼.”
 “…그러니?”
  아름이는 심드렁하게 대답하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여느 때 같았으면 실험하는 당사자인 빛이보다 더 관심을 가졌을 것이었다. 그러나 어제부터 될 것이라고 기대를 걸었던 연탄재 고무래의 실험이 또 실패로 끝나고 보니 여간 실망스러운 게 아니었다.
  그런 아름이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하며 빛이는 색종이에 앉아 있는 파리들을 날려보냈다. 한 시간쯤 뒤에 다시 한번 관찰을 해 볼 생각이었다.
  (이제 다른 증거를 찾아봐야지.)
  집안으로 들어온 빛이는 발명일지를 들고 돌아다니면서 파리똥이 있는 곳들을 조사했다. 파리똥이 묻어 있는 곳은 파리가 앉아 있던 곳이 틀림없으니, 그것으로 파리가 좋아하는 색깔을 가려볼 생각이었다.
 “뭐하는데 그렇게 방마다 기웃거리냐, 빛이야?”
  바둑판 앞에서 바둑책을 들고 혼자서 바둑을 두시던 할아버지가 물으셨다. 그 옆에서 돋보기를 쓰고 뜨개질을 하시던 할머니도 쳐다봤다.
 “파리똥을 찾는 거예요, 할아버지.”
 “무슨 똥?”
 “영감두 참, 파리똥이라잖우. 아니, 뭐 뭐라구? 파, 파리똥이라구?”
 “네, 할머니.”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어이가 없어하며 잠시 마주 쳐다보았다. 별난 녀석 다 보겠다는 표정이셨다.
  “나중에 자세한 말씀드릴게요. 지금은 무척 바쁘거든요.”
 빛이는 거실로 나왔다. 모든 방과 거실과 부엌, 복도 등을 조사한 결과 색종이 실험과 비슷한 결론을 내릴 수가 있었다. 즉, 흰색 계통의 벽지를 바른 벽과 형광등, 초록색 그림의 액자 유리 등에는 파리똥이 많았다. 그러나 빨간색의 벽걸이와 온도계의 수은이 들어있는 부분, 검정색계통의 가구 등에는 파리똥이 거의 없었다.
  이렇듯 몇 가지 실험과 관찰을 한 결과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가 있었다. 파리는 흰색과 초록색과 연두색, 그리고 따뜻하고 햇볕이 쪼이는 곳을 좋아하는 반면 어두운 곳과 빨간색, 검정색, 분홍색 등은 싫어했다.
  저녁식사가 끝난 다음에 빛이는 식구들 앞에서 자랑삼아 파리에 관한 실험 결과를 발표했다. 그리고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그러니까 파리를 잡는 끈끈이 테이프 같은 것도 노랑색이나 주황색보다는 하얀색이나 초록색, 연두색 등으로 만드는 게 효과가 있을 거예요. 또 우리집 식탁보와 상보자기도 바꿔야겠어요. 식탁보는 흰색 계통이고 상보자기는 초록색 계통인데, 그건 파리들이 좋아하는 색깔이거든요.”
 “정말 그렇구나. 그렇다면 빨간색이나 검정색은 좀 그렇고, 분홍색 계통으로 바꿔야겠구나.”
  엄마가 빛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말씀하셨다 그러자 고모가 징그럽다는 표정부터 지어보이면서 중얼거렸다.
 “파브르가 곤충 관찰을 한다고 파리, 전갈, 거미에다 죽은 두더지까지 집안으로 끌어들였다더니 우리 집이 그 꼴이나 안 될지, 걱정이네.”
  빛이가 혀를 쑥 내밀어 보이면서 눈을 흘겼다.
 “우리 빛이가 세계적인 여성 발명가에다 파리 박사까지 될 모양이구나. 파리 박사라? 그것 참 별난 박사로구나. 막내 삼촌더러 신문에 내달라고 해보는 게 어떨까?”
  아빠의 말씀에 모두들 한바탕 웃었다. 그러나 아까부터 아름이는 내내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모습이었다. 그래서 식구들의 얘기는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모습이었다.
 “넌, 무슨 고민이라도 있냐?”
 “아녜요, 아빠….”
 “그럼, 무슨 문제가 잘 안 풀리는 모양이구나?”
 “맞아요, 아빠.”
 “말 해 봐라. 너희들 남매 덕분에 우리 식구 모두 발명에 일가견을 갖게 되었는데, 좋은 힌트라도 나올지 누가 아니?”
 ‘일가견’이란 어떤 문제에 대해서 어느 정도 전문적인 지식을 갖고 있음을 말한다. 아름이는 성준이와 함께 연구하고 있는 연탄재 고무래에 관한 것을 자세히 이야기 했다. 이야기를 들은 식구들이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는데, 막내 고모가 소리없이 빙그레 웃었다.
 “아름아, 고모가 힌트 하나 줄까?”
 “그래, 고모. 난 지금 머릿속이 터질 지경이라구.”
  고모는 방안을 휘둘러보다가 텔레비전 옆에 있는 장식용 지구의에서 시선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일어서서 그걸 가져다가 방바닥에 세워 놓고 아름이를 쳐다봤다.
 “아름아, 이 지구의를 한번 돌려 볼래?”
 “지구의를?”
  아름이는 식구들을 한번 둘러보고는 무릎걸음으로 지구의 앞으로 갔다. 그리고는 다시 한번 고모를 쳐다본 다음에 지구의를 돌렸다. 지구의는 빙그르르 잘도 돌았다. 아름이는 멀뚱한 눈으로 다시 고모를 돌아봤다.
 “아직 모르겠니?”
 “글세….”
  그러자 고모는 방구석에 있는 아빠의 테니스 가방에서 공을 한 개 꺼내왔다.
 “자, 이번에는 이걸 방바닥에 놓고 돌려 봐라.”
  아름이는 시키는 대로 했다. 테니스 공은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면서 빙글빙글 돌았다. 그 때 아름이의 눈이 샛별처럼 반짝 빛나더니 온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그 모습을 본 고모도 빙그레 웃으며 물었다.
 “이제 알겠니?”
 “우와, 고모! 역시 고모는 선생님이야! 야호!”
 그러나 다른 식구들은 아직도 뻥한 눈빛이었다. 그래서 할머니와 할아버지와 엄마와 아빠와 빛이는 눈만 떴다 감았다 하면서 고모와 아름이를 쳐다볼 뿐이었다.
 “축이에요, 축! 지구의가 움직임이 없이 회전운동을 할 수 있는 것은 축이 있기 때문일구요! 그걸 고모가 일깨워줬어요. 고마워, 고모!”
  아름이는 고모를 와락 껴안고 마구 뽀뽀를 했다. 그러자 저번에 회전운동이라는 힌트를 주었다가 똑같은 경우를 당했던 빛이처럼 질겁을 했다.
 “어머나! 징그럽다, 얘”
  아름이는 그러든 말든 고모의 이쁜 뺨에 열렬한 뽀뽀를 퍼부어주고는 곧장 자기방으로 갔다. 서둘러서 별명일지를 펴는데 식구들이 웃어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름이는 연탄재 고무래의 설계도를 그렸다.
  손잡이는 T자형이었고, 양철 접시의 오른쪽 가장자리를 쟁기의 보습처럼 펴서 바닥에 닿도록 했으며, 양철 접시에 붙은 자루끝을 약간 내려서 축을 만들었다. 그러니까 그 축은 양철 접시의 밑바닥보다 약간 더 길게 만들었고 양철접시는 그것을 축으로 빙그르르 돌면서 연탄재를 퍼담게 되는 것이었다.
 “오늘은 늦었으니까 내일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로 곧장 성준이네 집에 가서 만들어야지.”
  연탄재 고무래에 대해 대단한 힌트를 얻은 아름이는 그날 밤 편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 수가 있었다.

  =발명하는 어린이들, 1991년, 글수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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