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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팔계의 책상
“정말이지 무릎과 엉덩이에 쇠가죽을 붙여줘도 당해내지 못할 거야.”
엄마는 종잇장처럼 얇아진 준호 청바지의 엉덩이와 무릎부분에 헝겊을 대서 재봉틀로 촘촘하게 박으면서 혀를 끌끌 찼다. ‘짜장돼지’ 혹은 ‘저팔계’로 불리는 장준호는 뒤통수를 벅벅 긁으면서 발가락을 얼른 오므렸다. 놀이터에 한번밖에 나갔다오지 않았는데 벌써 양말에 구멍이 뚫어져 엄지발가락이 내다보면서 엄마의 말을 엿듣고 있었던 것이다.
“어찌된 애가 엉덩이랑 무릎이랑 발가락에 뿔이 난 것도 아닐 텐데, 바지는 산지 일 주일만 되면 이 모양이 되고 양말은 매일 꿰매야 하니...”
“너무 그러지 마세요, 엄마. 이 초대 독자 외아들 기죽겠어요.”
“아니, 내가 못 할 말이라도 했단 말이냐?”
“못 하실 말씀이야 아니지만, 전 엄마와 아빠가 시킨 대로만 했다구요.”
준호 엄마는 바느질하던 손을 멈추고 돌아봤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더니, 이게 무슨 소리냐는 표정이셨다.
“이게 무슨 소리냐, 준호야? 언제 엄마, 아빠가 너더러 바지와 양말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으라고 했단 말이니?”
“그게 아니에요, 엄마.”
“아니면?”
“엄마, 아빠가 늘 그러셨잖아요. ‘사람이란 무슨 일을 하든지 뚜렷하고 확실하고 철저하게 해야 된다. 물이면 물, 술이면 술이어야지 물에 술 탄 듯, 술에 물 탄 듯해서는 물도 술도 안 된다. 즉, 공부를 할 때는 온 신경을 집중해서 철저하게 하고, 놀 때는 그야말로 온 몸을 던져서 놀아야지, 공부하면서 노는 생각하고 놀면서 숙제 생각하면 공부도 노는 일도 똑같이 망친다. 그렇게 어정쩡하게 하려면 아예 시작을 안 하는 게 좋다. 시간 낭비에 노력 낭비일 뿐이다. 무슨 일이든지...”
“그만!”
엄마가 손을 들어 준호의 말을 막았다. 그리고는 마치 선서하는 사람처럼 손을 든 채로 말씀하셨다.
“그런 말을 한 것은 사실이다만 그게 이 옷하고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거냐?”
“상관이 있고말고요. 엄마와 아빠가 시킨 대로 열심히 뛰어놀다 보면 옷이랑 양말이 그렇게 되는 걸 어떡합니까?”
“으이그, 내가 말을 말아야지. 너하고 말씨름해서 무슨 이득을 본 적이 있다고...”
엄마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더니 다시 재봉틀을 돌리기 시작했다. 준호는 그때서야 엄지발가락을 펴면서 양말을 벗었다.
(이 안경만 아니었어도...)
사실 준호가 안경을 쓰기 전인 3학년 때까지만 해도 이런 일은 없었다. 양말이야 가끔 발가락이 답답하다는 듯이 얼굴을 내미는 일이 있었지만, 옷이 떨어져서 못 입는 적은 거의 없었다. 대개가 작아서 못 입는 경우였다.
그런데 4학년 때, 그러니까 작년에 신체검사를 할 때 놀라운 사실이 발견됐다. 준호의 시력이 0.3이었다. 평소에도 가끔 칠판 글씨나 만화책, 텔레비전을 볼 때 약간 흐릿해 보이는 경우가 있기는 했었지만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엄마와 아빠한테 얘기도 하지 않았었다.
“아니, 네 시력이 0.3이라구? 어마나, 세상에!”
엄마, 아빠는 무척 놀라셨다. 다음날 당장 안과에 가서 정밀검사를 해봤다. 왼쪽 시력이 0.3, 오른쪽 시력이 0.1이었다. 의사도 이렇게 말했다.
“시력이 나빠지기 시작한 시기는 일 년도 더 됐겠는데요? 그때만 발견했어도 이 정도로 나빠지지는 않을 수가 있었을텐테... 그래서 아이들은 일 년에 두 번 이상 안과와 치과 검사를 해보는 게 좋습니다. 어쨌든 이제부터라도 안경을 끼도록 하십시오.”
“원인이 뭘까요, 선생님? 집안에는 안경 낀 사람이 하나도 없는데요.”
“원인이야 여러 가지가 있겠습니다만, 대개 어린이들은 고르지 못한 영양섭취와 자세불량 등에서 시력이 나빠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글씨를 쓸 때 얼굴을 노트에 바싹대고 쓴다든가, 조명이 어두운 곳에서 꾸부정한 자세로 공부를 한다든가, 텔레비전을 너무 가까이서 본다는가 하는 자세불량의 원인이 크다고 생각됩니다.”
의사는 그밖에도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줬다. 그러나 준호의 머릿속에 남아 있는 것은 자세불량이란 말뿐이었다. 의사가 말한 자세불량의 예를 준호는 모두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필기를 할 때는 책상에 엎드리다시피 공책을 들여다보면서 글씨를 썼고, 책을 읽을 때는 꾸부정한 자세로 앉는 버릇이 있었다. 그게 편했기 때문에 그렇게 하다보니 습관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또 엄마와 아빠 몰래 만화책을 보느라고 불도 켜지 않은 방에서 웅크려 앉아 있는 경우가 많았고, 텔레비전도 지나치게 좋아했다.
한편 엄마는 고르지 못한 영양섭취라는 말이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었다. 안경을 맞추던 그날부터 한약을 지어다가 정성껏 달여주셨다. 아빠도 먹어보지 못한 보약을 서너 달 먹었지만 시력은 더 나아지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그 이상 나빠지지도 않았다. 한번 떨어진 시력은 회복하기가 어려운 모양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겼다. 한약을 먹기 시작하면서부터 유난히 밥맛이 좋아지지 시작하더니, 안경 쓴 지 반년 도 안 되어서 준호는 뚱보가 되고 말았다.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팠고, 그렇게 먹는 것은 죄다 살이 되는지 호리호리하던 체격이 씨름선수처럼 되었고 키도 부쩍 자랐다. 키는 아빠보다 머리 하나쯤 작았지만, 체중은 엄마보다 더 나갔다.
그때부터 옷의 뭉툭한 팔꿈치와 무릎부분, 그리고 펑퍼짐한 엉덩이 부분이 마치 일부러 땅바닥에 문질러대는 것처럼 쉬 닳고 잘 찢어졌다. 항공모함처럼 커다란 운동화속의 발가락도 걸핏하면 양말을 뚫고 내다봤다. 참으로 고민스런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때 얻은 별명이 짜장돼지와 저팔계였다. 아이들이 돼지라고 부르게 된 일은 자연스럽게 시작됐다. 그러던 어느 날 누군가의 생일 파티에 가서 케이크와 음료수를 먹은 다음에 식사를 하게 됐는데, 준호는 중국 음식점에서 시켜온 짜장면을 곱빼기로 두 그릇이나 먹어치웠다. 그나마도 짜장면이 안 남았기에 망정이지 한 그릇이라도 더 있었더라면 그것마저 먹어 치웠을 것이다. 그날 이후 돼지는 자연스럽게 짜장돼지가 됐다. 한편 저팔계는 발명반 선생님이 지어주신 별명이었다. 그래서 반에서는 ‘짜장돼지’로 통했고, 발명반에서는 ‘저팔계’로 불리게 되었다.
그렇지만 저팔계의 발명 솜씨만은 제법이었다. 작년 여름방학 때 발명반 선생님은 방학동안에 한 가지씩의 발명품을 만들어 오도록 했다. 방학이 끝나고 발명반원들의 작품을 심사한 선생님은 준호에게 최우수상을 주셨다. 그가 만들어 온 것은 사물함을 겸할 수 있는 다용도 책상이었다. 준호는 그걸 만들게 된 동기를 이렇게 설명했다.
준호는 학교에 오가는 일이 짜증스러운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학교에 가기 싫다거나 학교에 오가는 길에 누가 괴롭혀서가 아니라, 너무나 많은 짐 때문에 그랬다.
책가방, 도시락 가방, 신발주머니, 미술 도구, 음악 도구, 폐품 주머니...보통 준비물이 없는 날도 책가방을 등에 메고, 양손에는 도시락 가방과 신발주머니를 들었다. 비라도 오는 날이면 도시락 가방은 목에 걸고, 한 손에 신발주머니를 들고 다른 손에는 우산을 들어야 했다. 그러면 물건들이 부서지거나 잃어버릴 위험이 크거든요.“
“그렇긴 하다만 일단 문제는 한 단계 더 좁혀진 듯하구나?”
그랬다. 처음에는 그 준비물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로 고민을 했고, 거기에서 학교에 두고 다니는 것으로 문제의 핵심에 한 걸음 가까워졌다. 그러자 다시 학교의 어디에 어떻게 두고 다니느냐는 문제가 제기되었고, 이제는 책상에 두고 다닌다는 답이 나왔다. 다시 한 걸음 문제 해결에 다가선 셈이었다. 그런데 책상에 놓고 다니면 분실과 파손의 위험이 따른다는 문제가 나왔다. 그렇다면 이제 책상을 어떻게 개조해야 하느냐는 것으로 좁혀진 셈이었다.
“사물함을 겸한 책상을 만드는 것으로 발명 목표가 정해진 셈이 아니냐?”
“맞아요, 아빠! 발명 목표가 정해졌으니까 이제는 책상개조에 대한 아이디어를 짜내는 순서예요.”
손등으로 코에 걸쳐진 안경을 밀어올리고는 자기 방으로 돌아온 준호는 발명일지를 폈다. 그동안의 과정을 기록한 다음, 현재 학교에서 쓰고 있는 책상을 전후좌우, 위와 아래에서 바라본 모습으로 그렸다.
(자, 아이디어야 떠올라라.)
이때부터 준호는 참고가 될 만한 책도 뒤져보고, 여러 가지 모습으로 그림도 그려보면서 책상 개조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도록 그럴듯한 영감은 떠오르지를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저녁식사 후에 아빠가 퇴근하면서 사 오신 수박을 먹으면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그때 텔레비전에서는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한 역사극이 방영되고 있었는데, 화면에 어느 양반집 부인이 경대 앞에서 머리를 매만지는 모습이 나왔다. 천천히 머리 단장을 하고 옷매무시를 고친 부인은 거울이 달린 경대를 닫았다. 조그마한 상자처럼 생긴 그 경대는 뚜껑을 들어 올리면 화장품등이 든 상자가 열리면서 뚜껑 안쪽에 달린 거울이 비슴히 서게 되어 있었다. 그리고 화장을 마친 다음 뚜껑을 들어 닫으면 거울이 안으로 사라지면서 닫혔다.
‘와삭와삭 쩝쩝.’
짜장돼지답게 수박을 먹어치우던 준호는 눈을 번쩍 뜨고 입을 다물었다. 씹다 만 수박 덩어리 하나가 꾸울꺽 어렵사리 목구멍을 타고 넘어갔다.
“왜 그러니, 준호야?”
엄마가 밥 먹다 차돌멩이라도 씹은 표정으로 텔레비전을 노려보는 준호를 툭툭 쳤다. 그래도 준호는 여전히 그 자세였다. 엄마가 만들어준 화채를 훌훌 마시던 아빠도 의아해하며 준호를 쳐다보셨다. 그때였다.
“저거다!”
갑자기 고함치듯 소리치는 준호의 입에서 수박 덩어리와 씨가 쏟아졌다. 준호는, 마룻바닥을 쿵쿵 올리면서 승리한 씨름선수가 날뛰듯이 팔짝거렸다. 텔레비전 속의 부인이 열고 닫았던 경대를 보는 순간, 눈앞에서 불이 번쩍할 정도로 머리를 치는 영감, 즉 인스피레이션이 떠오른 것이었다.
“에그머니나!”
“어이쿠, 깜짝이야!”
엄마, 아빠는 준호가 냅다 지르는 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엄마는 다행히 아무것도 들고 있지 않았지만 아빠는 하마터면 들고 있던 화채 그릇을 내동댕이칠 뻔했다.
“됐다, 됐어! 바로 저거야!”
준호는 들고 있던 수박을 내던지고는 자기 방으로 뛰어가서 발명일지를 펼쳤다. 그리고는 얼른 경대 모습과 독서대의 모습을 그려 넣었다. 경대와 독서대의 원리를 이용해서 책상을 개조 할 아이디어가 떠오른 것이었다.
영문도 모른 채 놀라기만 했던 엄마, 아빠가 준호 방으로 따라 들어오셨다. 준호는 그림을 그려가면서 자세한 설명을 해드렸다. 엄마, 아빠는 그제야 환하게 웃으면서 준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셨다. 그날 밤을 꼬박 새우다시피 하면서 고안한 사물함을 겸한 책상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책상을 4등분하여 양쪽의 4분의 1면에 해당하는 부분은 보통 책상처럼 수평으로 고정한다. 그리고 가운데의 4분의 1면에 해당하는 부분은 보통 책상처럼 수평으로 고정한다. 그리고 가운데의 4분의 2면에 해당하는 부분을 독서대와 옛날 화장대의 원리를 이용하여 뚜껑처럼 만든다. 물론 책상 서랍의 앞부분은 막아버린다.
하나의 상자처럼 된 책상 서랍에는 준비물 등 각종 학습자료를 넣어둔다. 준비물을 넣거나 꺼낼 때는 책상 뚜껑의 앞을 들어올려서 여닫고, 닫았을 때에는 보통 책상처럼 된다. 그리고 책을 읽거나 글씨를 쓸 때, 또는 그림을 그릴 때는 책상 뚜껑의 뒤를 들어올려 독서대처럼 경사도를 조절하여 이용한다.
아빠의 도움을 받아가면서 사물함을 겸한 책상의 견본을 만들어 온 준호는 마치 개선장군처럼 으스대며 발명반원들앞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마치 독서대처럼 책상의 경사도를 조절하여 공부함으로써 바른 자세를 유지함은 물론 시력을 보호하고 피로를 줄일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우리들이 매일 골치를 앓고 있는 준비물을 안전하게 보관하고 다닐 수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간편하게 책가방과 도시락 가방만 들고 다니면 되는 것입니다. 또한 기존 책상에서 약간만 변형시킨 것이므로 제작도 쉬울뿐더러, 비용도 많이 들지 않는다는 이점이 있습니다.”
결국 이 발명품은 교장 선생님에게까지 소개가 되었다. 학교에서는 준호의 발명품을 면밀히 검토한 다음, 몇 가지 미비한 점을 보완하여 학교 예산이 확보되는 대로 한 학급에 실험적으로 사용해 보기로 했다. 이때부터 짜장돼지는 학교에서 손오공보다 더 유명한 저팔계가 되었다.
그 이후부터 준호의 발명에 대한 욕구는 점점 더 커져갔다.
언젠가 준호는 아름이가 사람과 똑같은 지혜와 재능은 물론 감정까지도 갖춘 로봇을 만드는 것이 꿈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때 준호는 안경 너머로 그 까만 눈을 깜박거리면서, 아름이가 만든 인간과 똑같은 로봇을 머릿속으로 그려보다가 이렇게 말했다.
“난, 안경 박사가 될 거야.”
“안경 박사? 그런 것도 있니?”
“눈이 좋은 사람들의 색안경에서부터 나처럼 눈 나쁜 사람들이 쓰는 안경과 장님이나 귀머거리들이 쓸 수 있는 안경에 이르기까지, 안경에 대해서는 박사가 되는 거야.”
준호가 이런 꿈을 갖게 된 것은 자신이 안경을 쓰기 시작한 뒤부터였다. 안경을 쓰고 보니까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비가 오면 빗물이 튀었고, 추운 날에는 밖에 있다가 안에 들어오면 안경알에 성에(?)가 서렸다. 또 마음 놓고 뛰어놀 수도 없었다. 콧등이 아팠고 조금만 심하게 장난을 쳤다가는 여지없이 안경에 이상이 생겼다. 다리가 부러진다거나 안경알이 빠진다거나 심하면 깨지는 수도 있었다.
“으이그, 이 녀석아! 도대체 이번이 몇 번째로 안경을 망가뜨렸는지나 아니?”
“몇 번째죠?”
“하도 많아서 엄마도 모르겠다.”
준호는 이때부터 우선 웬만큼 내동댕이치고 밟아도 깨지거나 부서지지 않는 튼튼한 안경, 그리고 마음껏 뛰어놀수 있도록 잘 벗겨지지 않는 가벼운 안경을 만들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도 눈밭이나 바닷가나 운동 경기장 등 장소에 따라서 눈을 보호하는 색깔도 변하는 색안경을 발명하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날씨가 춥거나 더웁거나 변화가 없는 전천후 안경 유리를 개발할 계획이었다.
또 있었다. 이것은 장애자를 위한 안경의 발명 계획이었다.
우선 초고음파를 발사하여 그 반사음을 들으면서 장애물을 피해 날아다니는 박쥐의 기능을 이용한 안경을 만들 계획이었다. 이것은 앞을 못 보는 장님들을 위한 것으로 장님들이 이 안경을 쓰면 반사음을 들으면서 지팡이도 없이 자유자재로 돌아다닐 수가 있는 것이다.
다음엔 귀머거리를 위한 안경이었다. 초고음파를 발사하여 그 반사음으로 장애물을 알아내는 장님용 안경의 기능을 반대로 이용한 것이다. 그러니까 모든 소리의 음파를 탐지할 수 있는 기능을 갖춘 안경을 만들어서, 이것을 눈으로 읽어내게 한다는 것이다.
준호는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아름이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렇게만 되면 눈이 안 보이고 귀가 안 들리는 장애자들도 정상인들과 똑같이 생활할 수 있게 되고, 노벨상 정도야 따 놓은 당상 아니겠냐?”
“그것 기가 막히게 멋진 꿈이구나. ! 야, 저팔계! 어쩌면 너랑 나랑 동업자가 되어야 할지도 모르겠는 걸?”
“동업자라니?”
“네가 발명한 안경의 기능들을 내 로봇에 이용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야.”
“그렇지 ! 결국 로봇도 눈과 귀가 없는 상태에서 출발하니까 나의 이론이 절대 필요하게 될 거야.”
아름이는 침을 꿀꺽 삼키면서 준호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는 진지하게 말했다.
“안경 박사 ! 우리의 계획을 비밀리에 진행하되, 우리끼리는 그 진행 상황을 서로 알려주고, 때가 오면 두 사람의 합동 연구소를 세우기로 하는 게 어때?”
“좋아, 동의 했다 ! 우리는 다정한 친구니까.”
미래의 두 박사는 새끼손가락을 걸고 엄지손가락으로 도장까지 찍었다. 안경 박사와 로봇 박사의 계약이 이뤄진 셈이었다.
아름이와 약속하던 일을 생각하고 있던 준호는 바느질을 마친 엄마가 새 양말과 함께 청바지를 내주자 양말을 신고 바지를 꿰입었다. 그때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준호는 급하게 바지 단추를 채우고 지퍼를 올린 다음에 전화를 받았다. 다름 아닌 아름이었다.
“웬일이야, 동업자?”
“어이, 안경 박사. 짜장면 많이 먹었니?”
“중국집 짜장면은 구경도 못하고, 짜장라면만 실컷 먹었다.”
아름이는 낄낄낄 웃더니 목소리를 가다듬고는 용건을 말했다.
“발명반 숙제는 잘 되어 가니?”
봄방학 동안에 아이디어 한 가지씩을 생각해 오라는 것이 발명반 숙제였다. 준호는 삼장법사의 뒤를 따르는 저팔계처럼 꺼벙한 목소리로 말했다.
“글쎄, 손톱이 튀지 않는 손톱 깎기를 생각 중인데, 안경만 생각하다보니까 별다른 진전이 없는데? 넌 어떠니, 로봇?”
“난 풀 통 뚜껑을 개량해 볼 생각이야. 만들기를 할 때마다 발 달린 짐승처럼 달아나버리는 풀통 뚜껑 때문에 애를 먹는 수가 많잖아?”
“그렇지 ! 나도 그것 때문에 풀 한 통을 고스란히 버리고 엄마한테 꾸중 들은 게 한 두 번이 아니야. 우리 엄마는 내가 왜 그렇게 덜렁대고 정신을 놓고 다니는지 이해가 안 된다는 거야.”
그때 재봉틀을 치우면서 준호의 전화 받는 소리를 듣고 있던 엄마가 옆으로 지나가시면서 살짝 알밤 한 대를 먹였다.
“그럼 엄마가 없는 말을 했단 말이냐, 이 덜렁이 저팔계야?”
“야아!”
“왜 그러니, 저팔계?”
“지금까지 계속되는 우리 엄마의 구박 소리란다. 그래, 좋은 아이디어는 나왔냐?”
“엄마가 쓰는 식용유병과 간장병을 보고 생각한 건데, 원터치 식으로 풀 통 뚜껑을 만들면 어떻겠니? 그러면 뚜껑이 옆에 붙어 있으니까 잃어버릴 염려는 없는 거지.”
원터치 식 뚜껑이란 요즘 나오는 식용유나 간장병 뚜껑에 많이 사용하는 것인데, 병을 손으로 쥐고 엄지손가락으로 뚜껑을 톡 밀면 열리면서 그대로 병 꼭대기에 매달려 있는 것을 말한다.
“역시 너는 짱구다! 아주 멋진 생각이야. 근데 손톱 깎기에 대해서 도움이 될 만한 힌트는 없겠냐?”
아름이는 잠시 생각에 잠겨 있는 듯 하더니 이내 이렇게 말했다.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을 거야. 한 가지는 손톱 깎기의 구조 자체를 바꾸는 것이고, 나머지 한 가지는 현재의 모양을 그대로 두고 어떤 것을 이용하느냐는 거야. 예를 들면 안쪽에 대는 일회용 스펀지를 만들어서 손톱을 깎을 때 마다 갈아 끼운다든가...”
“됐어! 힌트는 그 정도로 충분해. 나머지는 내 힘으로 해볼게. 그건 그렇고 봄방학 동안 뭘 하고 지냈니?”
“바빴어. 시골에서 외사촌 형제들이 놀러왔거든. 그래서 같이 구경 다니고 놀려도 다니느라고 한번도 못 간 거야.”
“그랬었구나? 그럼 외사촌들은 갔니?”
“아니, 아직 안 갔어. 시간 있으면 한번 놀러와. 우리 외사촌 형제들을 소개해줄 테니까.”
“알았어, 동업자! 잘 있어!”
준호는 전화를 끊자마자 방으로 달려갔다. 조금 아까 아름이한테 들은 손톱 깎기에 대한 힌트를 기록하기 위해서였다. 역시 아름이와 동업자가 되기로 한 것은 잘한 일이라는 생각을 하며 준호는 연신 싱글거렸다.
=발명하는 어린이들(글수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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