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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코너에 소개된 모든 글의 저작권은 저자인 왕연중 선생님(한국발명문화교육연구소 소장, 영동대학교 발명특허공무원학과 겸임교수, wangyj39@dreamwiz.com)에게 있습니다.
저자의 허락없이 무단전재나 재배포를 금지합니다.

제목 : 오누이의 솜씨 자랑      

                        오누이의 솜씨 자랑

  “오빠, 글라이더를 다 만들면 나도 날려보게 해줄 거지?”
  “글라이더 대회가 끝난 다음에.”
  “첫, 나도 오빠랑 연습하고 싶은데?”
   빛이는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토라졌다는 표시였다. 지금 아름이와 빛이는 동네 문방구에서 글라이더 재료를 사가지고 오는 중이었다. 며칠 후에 학교에서 있을 글라이더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6학년 형들처럼 멋지게 날려봐야지.)
  올해 5학년인 한아름이는 푸른 하늘 높이 날아올라 부드럽게 원을 그리며 내려앉는 글라이더를 머릿속에 떠올리면서 눈을 반짝였다. 만들기를 유난히 좋아해서 과학에 관련된 대회라든가 방학 과제물 전시회 등에서 여러 번 상을 탄 적이 있는 아름이는 이번 대회에도 자신이 있었다.
  아름이는 아무런 말이 없는 동생 빛이를 힐끔 돌아봤다. 올해 3학년인 빛이는 아직도 뾰로통한 얼굴로 발끝만 내려다보면서 걷고 있었다. 아름이는 오빠답게 너그러운 웃음을 흘리면서 말했다.
  “좋아 ! 글라이더 날리는 연습할 때 함께 하기로 하자.”
  “정말이야, 오빠?”
  빛이는 금방 얼굴이 밝아지면서 아름이의 팔짱을 끼었다.
  “사실 연습할 때 네 도움이 필요할 거란 생각을 하고 있었어.”
  “그렇지, 오빠? 이 감초가 빠져서 되는 일은 없다니까.”
  ‘감초’는 콩과에 속하는 다년생 약용 식물로, 다른 약의 작용을 부드럽게 해주는 효과가 있어서 대부분의 한약 처방에 드러간다. 그래서 아무 일에나 끼어들기 좋아하는 사람을 ‘감초’, 혹은‘약방의 감초’라고 부르기도 한다.
  집이나 학교에서 빛이는 보통‘감초’로 불린다. 무슨 일에건 관심을 갖고 끼어들고, 조금만 궁금한 점이 있어도 때와 장소를 구분하지 않고 질문을 퍼부어대는 버릇 때문에 얻은 별명이었다. 이런 버릇 때문인지, 아니면 오빠를 닮은 탓인지 빛이는 손재주가 썩 좋았다. 오빠가 자기의 장기인 과학상자나 블록 등으로 만들기를 하는 옆에서 한번만 지켜보면 거뜬히 흉내를 내곤 했다.
  아름이는 유치원 때부터 꿈이 ‘로봇 박사’였지만, 빛이는 지난 해까지만 해도 꿈이 심령과학자였다. 상대방의 마음 속을 거울보듯 꿰뚫어보고 미래를 내다보며, 날아오는 유도탄도 되돌려보낼 수 있는 초능력을 갖춘 심령과학자가 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오빠의 영향을 받았는지 3학년이 되면서부터는 세계적인 여성 발명가로 꿈이 바뀌었다.
 집에는 그런 빛이가 만들 발명품 세 가지가 있었다. 그하나는 슬리퍼 메모꽂이였다. 엄마가 버리려는 낡은 실내화를 깨끗이 빨아서 떨어진 곳을 정성껏 기운 다음, 실내화 뒤꿈치에 구멍을 뚫고 끈을 달았다. 그리고는 그것을 부엌 옆 벽에 걸고는 잃어버리기 쉬운 각종 영수증과 메모지를 꽂아놓은 것이었다. 그러자 집안 식구 모두가 칭찬을 하면서 메모꽂이 주문을 했다. 그래서 지금은 할아버지, 할머니 방과 엄마, 아빠 방, 막내 삼촌 방과 막내 고모 방,그리고 아름이 방에까지 슬리퍼 메모꽂이가 한 개씩 걸려있다.
  또 한 가지는 분유통으로 만든 화장지통이었다. 시집 간 고모네 집에 갔다가 얻어온 빈 분유통에 예쁜 색종이를 오려 붙이더니, 그 안에 두루말이 화장지를 집어 넣었다. 그리고는 가운데에서부터 화장지를 뽑아쓰게 하니까 훨씬 절약되고 보기에도 좋았다. 그걸 본 아빠가 껄껄 웃으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원래 두루말이 화장지는 화장실에서만 쓰는 것이어서, 거실이나 방 안에 있으면 별로 유쾌한 기분이 안 드는 법이지. 그런데 이렇게 멋진 화장지통 속에 넣어 놓으니까 엄마가 쓰는 티슈보다 더 보기가 좋구나.”
  그러고 보면 오빠 아름이는 무엇이든 만들고 뜯어보고 연구하고 그리는 것을 좋아하기는 했지만, 빛이처럼 집안에서 유용하게 쓸 수 있는 물건을 만들어 본 적은 없었다. 그래서 집안 식구들의 박수를 받는 빛이에게 은근히 시새움이 나기도 했었다. 그런 오빠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빛이는 또 하나의 발명품을 만들었다. 그것은 플라스틱 음료수병으로 만든 화분이었다.
1.5리터 들이 플라스틱 음료수병을 반으로 자른 다음, 윗부분은 버리고 밑부분 바닥에 지름 2센티미터 정도 구멍을 뚫었다. 빛이는 그 구멍을 돌과 화분 조각 등으로 막고 흙을 넣더니 예쁜 꽃을 심어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물론 몸통은 고운 색종이로 한껏 멋을 부렸다.
  엄마의 빛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칭찬을 하셨다.
  “우리 빛이는 이다음에 엄마보다 훨씬 알뜰한 가정주부가 되겠구나. 요즘은 옛날과는 달리 물자가 풍족해서 그런지 쉽게 버리고 쉽게 사는 습관들이 있지. 그런데 이렇게 버리는 물건들을 생활에 도움이 될 수 있게 활용을 하니까 얼마나 좋지?”
  “피이, 그까짓 것은 아무나 다 만들 수 있다구요.”
  칭찬을 받는 빛이를 샘 낸 아름이는 입술을 실룩거리면서 중얼거렸다. 그러자 아빠가 아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말씀하셨다.
  “사람은 누구나 많은 생각을 하지만, 그것을 실천에 옮기는 경우는 아주 드물지. 그러나 어떤 물건을 발명해 내는 일에 있어서는, 자신이 생각한 것을 실제로 만들어보는 일이 가장 중요하단다. 생각이야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직접 재료를 구하고 설계를 하여 만들어 보는 사람은 거의 없거든. 생각만으로는 아무것도 이룰 수가 없지 않겠니?”
  “.....”
  아빠는 빙그레 웃으시면서 다시 말을 이었다.
  “너희들 ‘콜룸부스의 달걀’이란 말을 알지?”
  “그게 뭔데요, 아빠?”
  빛이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그러자 아빠는 아름이를 돌아보면서 직접 동생에게 가르쳐주라고 하셨다. 아름이는 책에서 읽은 대로 들려주었다.
  “콜룸부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것은 알지?”
  “그까짓 거야 상식이지 뭐.”
  “뭐라구? 아니, 그러면서도 콜룸부스의 달걀은 모른단 말야?”
  “칫, 괜히 야단치구 그래.”
  “그러니까 덜렁대지 말고 잠자코 들어 봐. 콜룸부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고 나니까 그를 시샘하는 사람들이 그까짓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비아냥거렸어.”
  “오라, 조금 전에 오빠가 한 것처럼?”
  “으이그, 저걸 그냥! 아빠, 더 이상 얘기 못하겠어요.”
  아빠는 아름이와 빛이를 조용한 눈빛으로 바라보더니 천천히 말씀하셨다.
  “빛이는 오빠가 가르쳐주는 것을 잘 들어야지, 그래서야 되겠니? 자, 아름아. 빛이가 어려서 그러는 거니까 어서 계속해봐라.”
 “...네, 아빠. 한번만 더 까불면 안 해줄 거야.”
 “알았어, 오빠.”
 “사람들이 빈정거리니까 콜룸부스가 달걀을 내놓으면서 말했어. ‘자, 누가 이 달걀을 탁자 위에 세로로 세울 수가 있겠소?’ 그러자 사람들이 저마다 나서서 달걀을 세워보려 했지만 모두들 실패를 하고 말았지. 이때 이 광경을 잠자코 보고만 있던 콜룸부스가 일어서더니 달걀의 한쪽 끝을 깨뜨리면서 탁자에 세웠어. 그러니까 사람들이 소리쳤어. ‘아니, 달걀을 깨뜨리지 않고 세워야지, 그렇게 한쪽긑을 쳐서야 누군들 못 세우겠소?’ 그때 콜룸부스가 이렇게 말했지.   ‘누구에게나 가능한 일일지라도 처음에 해내기는 이처럼 무척 힘든 것이오.’ ”
  아빠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아름이를 쳐다보셨다. 아름이는 그때서야 아빠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바로 그것이 너희들이 좋아하는 발명의 비결이란다. 아무리 하찮은 일이라도 늘 관찰하는 버릇을 기르고, ‘왜 그럴까?’ 하는 의문을 가지면서 생각을 하고 또 자신이 생각한 것을 직접 만들어 보는 버릇을 기르면 장차 훌륭한 발명을 해낼 수 있을 거야.”
  아빠의 그 말씀을 곰곰이 생각하며 걷던 아름이는 글라이더 날리는 연습을 같이 하자니까 깡충깡충 뛰면서 좋아하는 빛이를 바라보며 글라이더 재료를 다른 손으로 옮겨쥐었다.
  “빛이야. 우리 집에까지 가는 동안에 발명 퀴즈 놀이나 할까?”
  “좋아, 오빠!”
  아름이와 빛이는 시간이 날 때마다 발명 퀴즈 놀이를 했다. 이것은 아름이가 개발한 것으로, 평소에 발명하려고 생각하고 있던 것이나 궁금한 것을 문제로 해서 한 사람이 퀴즈를 내면 다른 사람이 그에 알맞은 아이디어를 짜내는 놀이였다.
  “오빠가 먼저 문제를 내봐.”
  “알았어. 갓난애가 양말을 신고 장판 방에서 아장아장 걷다가 미끄러져서 엉덩방아를 찧었어. 몇번 미끄러지고난 갓난애는 양말을 안 신겠다고 떼를 쓰는 거야. 양말을 안 신으면 미끄러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거든. 자, 어떻게 하면 미끄러지지 않는 양말을 만들 수 있을까?”
  “미끄러지지 않는 양말이라? 힌트는 없어, 오빠?”
  “있지. 양말 바닥을 잘 생각해 봐.”
  “바닥이라구?”
   무슨 생각에 빠질 때면 늘 하는 버릇대로 빛이는 그 커다란 눈알을 마구 굴리면서 생각에 잠겼다. 어떤 때는 어찌나 열심히 눈동자를 굴리는지 ‘도르르 도르르’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한 순간에 눈동자가 딱 멎었다. 뭔가 생각이 났다는 표시였다.
  “시골 아이들이 고무신 신고 공을 찰 때, 신발이 벗겨지지 않도록 새끼로 묶듯이 폭이 넓은 생고무 밴드를 발에 끼면 어떨까?”
  “그거 좋은 아이디언데?”
  “오빠 아이디어는?”
  “난 이런 생각이었어. 고무판을 동전처럼 동그랗게 여러개 오려서 양말 바닥에 단추처럼 붙이는 거야.”
  “양말 바닥에 동그란 고무판을 붙인다구? 그래, 그거다!”
 빛이는 갑자기 손뼉을 치더니 집을 향해 냅다 뛰기 시작했다. 무언가 기발한 착상이 떠오른 모양이었다.
  “어? 빛이야, 너 왜 그러는 거야?”
  “천천히 와, 오빠! 난 빨리 집에 가서 할 일이 있다구!”
  “아니, 뭐야?”
  빛이는 금방 골목을 돌아 집쪽으로 사라져버렸다. 아름이는 뻥한 표정으로 잠시 서 있다가 걸음을 서둘렀다.
  아름이가 집안에 들어와서 보니 빛이는 자기 방에서 무얼하는지 내다보지도 않았다. 아름이는 한번 가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한시 바뻐 글라이더를 만들어야겠다는 조급한 마음에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풀, 가위, 칼, 분부기 등을 준비한 아름이는 방바닥에 설명서를 펴놓고 글라이더 만들기에 들어갔다.
  가능한 한 공기의 저항을 덜 받도록 동체를 사포(보드라운 유리 가루를 바른 헝겊이나 종이로, 녹을 닦거나 반들 반들하게 문지르는 데 쓰임)로 매끄럽게 다듬었다. 그리고 날개 뼈대가 될 댓살을 동체에 끼우고 접착제로 붙인 다음, 양쪽을 고정시키기 위해 알루미늄 리브를 붙였다. 댓살 날개 폭보다 좁은 리브가 자꾸만 떨어질 땐 신경질이 조금 났지만 대나무의 휘는 성질을 직접 볼 수 있어서 기쁘기도 했다. 꼬리 날개와 방향 날개까지 조립을 마친 다음에 종이를 붙이고 분무기로 물을 뿜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글라이더를 날릴 때 실을 거는 후크와 그밖의 부속물도 조립했다. 촉촉이 젖은 날개는 물기가 마르면서 팽팽하게 펴졌다.
  글라이더 만들기를 마친 아름이는 빛이는 방으로 가봤다. 빛이는 방을 잔뜩 어질러놓은 채 엄마의 고무장갑에 무언가를 열심히 붙이고 있었다.
  “글라이더 날리러 안 갈래?”
  “벌써 다 만들었어? 미안하지만 잠깐만 기다려 줘, 오빠. 금방 다 되니까.”
  “뭘하는데 그래?”
  빛이는 눈도 돌리지 않고 하던 일을 계속하면서 설명했다.
  “며칠 전에 엄마가 설거지를 하시다가 접시를 깨뜨렸어. 고무장갑에 물과 세제가 묻으니까 미끄러워서 접시가 빠져 나간 거지. 엄마는 깨진 그릇을 치우시면서, 고무장갑을 끼니까 손이 트지 않고 피부가 보호되어서 좋기는 한데 자꾸만 그릇이 깨져서 조심이 된다는 거야. 그래서 어떻게 하면 그릇이 미끄러지지 않는 장갑을 만들까를 연구 중이었거든.”
  “그런데 생각이 난 거니?”
  “아까 오빠랑 발명 퀴즈 놀이를 할 때 번쩍 떠오른 아이디어가 있었어. 오빠가 갓난애 양말 바닥에 고무판을 붙인다는 말을 했을 때 힌트를 얻은 거야.”
  그러고 보니 빛이는 설거지할 때 쓰는 초록색 수세미를 동전만하게 오려서 고무장갑의 손가락과 손바닥 부분에 접착제로 붙이는 중이었다. 보기는 좀 흉했지만 썩 좋은 아이디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름이는 빛이의 기발한 생각에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이러다가는 로봇 박사를 꿈꾸는 오빠의 체면이 말이 아니겠는 걸? 분발해야 되겠어.)
  빛이는 작업을 마쳤는지 방안에 벌려놓은 것들을 치웠다. 그리고는 아름이를 쳐다보면서 생글 웃었다. 무척만족해 하는 빛이의 양복에 쏘옥 들어가는 불우물이 유난히 귀여워 보였다.
  “잠깐만 기다져 줘, 오빠. 이걸 부엌에 갖다 놓고 올게. 엄마가 시장에서 돌아오시면 깜짝 놀라게 해드려야지.”
  아름이와 빛이는 글라이더를 들고 동네 놀이터로 나갔다. 후크에 실을 건 아름이는 빛이가 날려올림과 동시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내달렸다. 그러면 글라이더가 높이 날줄 알았다. 그런데 한참 달리다보니 이상했다. 뒤를 돌아 보니 글라이더는 땅바닥에서 질질 끌려오고 있었고, 빛이는 팔짱을 낀 채 실망한 표정을 서 있었다.
  “이상하다? 설명서대로 만들었는데...”
  저녁에 아빠나 삼촌이 퇴근하시면 좀 도와달라고 하는 건데 그랬어.“
  “이까짓 걸 만드는데 어른들의 도움을 받는단 말야?”
  “안 나르니까 그렇지?”
  “다시 한번 해보자.”
  다시 한번 해봤지만 이번에는 조금 떠오르는가 싶더니 미사일 맞은 전투기처럼 거꾸로 땅바닥에 내려꽂혔다. 그때 옆집에 사는 해준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다가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남해준이는 아름이와 같은 반 친구인 해산이의 형으로 중학교 2학년이었다.
  학교에서 유명한 장난꾸러기인 남해산이와는 달리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는 해준이었다. 그래서 동네 개구쟁이들이 친형처럼 따르는 해준이는 아름이의 글라이더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으이구, 이 짱구야. 날개만 달면 다 하늘을 나는 줄 아니?”
  “어, 해준이 오빠?”
  빛이가 깜짝 반가워했다, 아름이 못지않게 글라이더가 날지 않는 것에 대해 걱정을 하고 있던 참이라 아빠난 삼촌을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해준이라면 뭔가 해결점을 찾아줄 것처럼 생각됐던 것이다. 해준이는 멈칫거리고 있는 아름이 곁으로 오더니 물었다.
  내가 좀 봐줄까, 아름아?“
  “그래, 형.”
  해준이는 글라이더를 요모조모 살펴보더니 몇 군데 잘못 만든 점을 지적해 주었다.
  “우선 양쪽 날개의 균형이 안 맞고 휘어올린 각도도 서로 틀리잖니? 그리고 리브도 한 개는 거꾸로 붙였고, 날개에 붙인 종이도 골고루 팽팽하지 않네. 또 후크는 무게중심에서 좀더 앞으로 가야 머리 부분이 무거워져서 추진력이 생기는 거야.”
  아름이는 고개를 크게 주억거렸다.
  “고마워, 형.”
  “고맙기는. 어쨌든 처음 만들어 본 작품치고는 성공작수준이다. 내가 한 말을 참고로 하고 더 좀 연구해서 다시한번 만들어 봐.”
  아름이는 용돈을 털어서 다시 재료를 사왔다. 빛이는 친절하게도 이번에도 아름이를 따라가주었다. 그리고는 오빠의 용기를 복돋아주기 위해서 계속 재잘댔다.
  “비행기는 라이트 형제가 맨 처음에 날렸다는 것은 아는데, 글라이더를 만든 사람은 누구야?”
  “19세기 말에 독일의 오토 릴리엔탈이라는 사람이 발명했는데, 처음에는 7미터나 되는 날개에 매달린 채 높은 언덕에서 뜅내려 300미터나 날았다는 거야. 그때부터 5년동안 2천번 이상이나 실험한 끝에 여러 가지 종류의 글라이더를 만들어냈대. 그러다가 어느 날 실험을 하던 도중에 부상을 입고 죽었는데, 죽기 전에 남긴 유명한 말이 있어.”
  “뭐라고 했는데?”
  “모든 일에는 희생이 없으면 성공도 없다.”
  빛이는 감동한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는 빛이를 보며 아름이가 불쑥 물었다.
  “그런데 너 글라이더와 비행기의 다른 점을 아니?”
  “그 정도야 알지. 글라이더는 한마디로 엔진이 없는 항공기인데, 출발할 때는 밧줄로 걸어 자동차나 비행기로 끌어서 바람을 타고 나는 비행기 아냐?”
  “우와, 놀랐다. 너 아주 제법이로구나?”
  “히힛! 그 정도야 보통이지, 뭐.”
  집에 돌아온 아름이는 빛이의 도움을 받아가면서 다시 글라이더 만들기에 빠져들었다. ‘빛이의 도움’이라고는 했지만, 그 역할은 풀이나 가위나 칼 등을 챙겨주는 조수에 불과한 것이었다.
  아름이는 먼저 가볍고 바람을 잘 타도록 하기 위해 동체를 잘 깎고 사포로 깨끗하게 문질렀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날개용 댓살을 구부릴 때는 아빠의 라이터 불에 쬐어가면서 정확하게 각도를 맞췄다. 또 날개의 균형을 맞추기위해 길이를 똑같이 자르고, 리브의 방향도 정확히 해서 붙였다. 마지막으로 종이도 틈이 없이 골고루 팽팽하게 붙여서, 바람을 잘 타고 저항이 없도록 했다.
  이렇게 하고 나서야 삼척동자도 다 알 정도로 흔해진 ‘실패의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이 다시 한번 실감이 났다. 이웃집 해준이가 지적해준 사항들과 아름이 스스로 연구한 점들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천천히 확인해가며 정성껏 만들었다. 그리고 빛이와 함께 놀이터로 나가서 날려본 결과 글라이더는 근사하게 하늘로 향해 날아올랐다. 성공이었다.
  빛이가 날려올린 뒤에 처음에는 글라이더를 살피면서 천천히 달렸다. 아름이는 글라이더가 차츰 높이 나르기 시작하자 점점 빨리 달리다가 손가락으로 살짝 튕겨서 실을 뽑아주었다. 그랬더니 글라이더는 바람을 타고 공중을 선회하는 매처럼 시원스럽게 날더니 커다란 원을 그리면서 머리부터 사뿐히 내려앉았다.
  “야호, 성공이다 ! 30초야, 오빠!”
  시간을 재던 빛이가 소리를 질러대며 기뻐했다.
  “됐어 ! 몇 가지만 보완하면 우리 학교 글라이더 대회에서 1등도 바라볼 수 있겠어.”
  아름이와 빛이는 흡족한 마음으로 돌아왔다, 아름이는 한번의 실패를 딛고 어느 정도 성공적인 글라이더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마음이 흡족했고, 빛이는 그릇이 안 미끄러지는 고무장갑을 본 엄마가 칭찬해 줄 일이 생각나서 괜히 웃음이 비직비직 새어나오는 것이었다.
  그러나 집에 돌아온 빛이에게는 전혀 예상 밖의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시장에서 돌아오신 엄마가 그릇과 컵들을 닦고 있다가 두 남매가 돌아오자 고무장갑 낀 손을 들어보이셨다.
  “이거 누구 솜씨지?”
  “제 아이디어예요, 엄마. 잘 만들었죠? 써 보시니까 어때요? 그릇이 안 미끄러지죠?”
  엄마는 빙그레 웃더니 말없이 고무장갑을 벗어서 들고 식탁에 앉으셨다. 아름이와 빛이는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는 듯이 어깨를 한번 으쓱하고는 식탁에 마주 앉았다.
  “나도 처음에는 특허를 냄직한 아이디어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막상 써보니까 몇 가지 문제점이 드러나는구나.”
  “그게 뭔데요, 엄마?”
  “우선 이 고무장갑으로는 설거지밖에 할 수가 없다는 거야. 김장을 담그거나 빨래를 할 때는 수세미가 거추장스러워서 곤란하지 않겠니? 그릇을 닦을 때는 미끄러지지도 않고 아주 좋더구나. 근데 그때도 문제는 있었어, 손가락을 자꾸 오무렸다 폈다 하니까 수세미 조각이 떨어지는 거 야. 이런 점만 보완이 되면 완벽하겠는데 말야.”
 빛이는 어깨를 추욱 늘어뜨렸다.
  “난 칭찬 받을 줄 알고 잔뜩 기대에 부풀어 있었는데...”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지 않니?”
  아름이가 아빠의 말투를 흉내내며 말했다. 그러자 빛이가 눈을 하얗게 치뜨며 아름이를 흘겨보았다. 두 남매의 하는 양을 바라보던 엄마가 실망하는 빛이를 격려하듯 말씀하셨다.
  “물론 빛이의 아이디어는 훌륭했어. 그건 엄마도 생각 못한 것이었거든. 그러나 조금 아까 말한 몇 가지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다면 더 훌륭한 발명품이 되겠다는 얘기지. 좀더 시간을 두고 잘 연구해 보렴. 넌 틀림없이 멋진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거야.”
  “알았어요, 엄마.”
  이때 아름이가 빛이의 어깨를 토닥여주면서 다정하게 말했다.
  “힘을 내라, 빛이야. 자동차의 왕 헨리 포드도 한 대의 자동차를 만들기 위해서 무려 871대나 되는 실험용 자동차를 만들었고, 발명의 왕 에디슨도 전구를 만들 때 수천 번이나 실험을 했다지 않니?”
  그러나 아름이의 말에는 아랑곳없이 빛이는 식탁에 팔꿈치를 고이고 턱을 받친 채 그 특유의 눈동자 굴리기를 시작했다. 빛이가 눈동자를 굴리면서 깊은 생각에 잠길 때는 누가 무슨 말을 해도 아무런 반응을 볼 수 없었다. 이런사실을 잘 알았기 때문에 엄마는 다시 저녁식사 준비를 계속했고, 아름이는 자기 방으로 돌아와 글라이더를 몇 군데 더 손봤다.
  그날 저녁에도 다른 날처럼 온 가족이 모여서 저녁식사를 마치고 텔레비전을 조금 보다가 각자 자기들 방으로 돌아갔다. 숙제와 예습 복습을 모두 마친 아름이와 빛이는 그날 일기를 쓴 다음에 책가방을 챙겼다. 그리고 나서 먼저 씻고 방으로 돌아온 아름이는 잠자리에 들기 전에 발명일지를 정리하고 있었다.
  발명일지는 발명반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아름이 나름대로 만든 것이었다. 여기에는 그날그날 떠오른 아이디어라든가, 발명하고 싶은 물건에 대한 구상을 자세한 그림과 함께 기록했다. 때로는 참고사항과 발명에 필요한 재료의 가격, 구입할 수 있는 곳 등도 적어 넣었다. 아무튼 발명에 관한 모든 것을 정리해 놓고 활용하는 기록장이었다.
  그런데 그때 욕실에 들어간 빛이가 느닷없이 날카로운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발명일지를 정리해 나가던 아름이는 깜짝 놀라서 밖으로 나왔다. 거실로 나와보니 모든 식구가 다 나와 있었다. 막 잠자리에 드셨던 할머니와 할아버지, 아직도 신문을 보시던 아빠와 가계부를 정리하시던 엄마, 그리고 2층에 있던 막내 삼촌과 고모...모두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욕실에서 뛰어나온 빛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됐어요, 됐어! 엄마, 이거에요! 이젠 됐다구요!”
  빛이는 세수를 하다 뛰어나왔는지 아직 얼굴에는 비누거품이 남아 있었고, 손에는 빨간 때미는 수건이 들려 있었다. 거실에 불이 났거나, 아니면 욕실에 뱀이라도 나온줄 알고 깜짝 놀라서 뜅나온 식구들은 모두가 뻥한 표정으로 빛이를 쳐다봤다. 그때 엄마가 나직하게, 그러나 엄격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여자가 경망스럽게 이게 무슨 꼴이냐? 도대체 밤에 왜 이렇게 소란을 피우는 거냐구?”
  “엄마, 드디어 찾았어요! 생각났다니까요!”
  빛이는 아직도 흥분된 상태였고 얼굴에서는 비눗물이 뚝뚝 떻어져 거실 바닥을 적셨다. 엄마가 얼른 수건을 가져다가 빛이의 얼굴을 닦아주셨다.
  “왜 그러니, 감초야? 뭘 찾았다는 거야?”
  초등학교 선생님인 막내 고모가 재미있다는 듯이 물었다. 그러나 빛이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엄마에게 말했다.
  “이거예요, 엄마 !”
  “그 때미는 수건이 어쨌다는 거냐?”
  “이걸로 손가락 끝이 없는 장갑을 만드는 거예요. 재봉틀로 총총 박아서요.”
  “장갑을? 그래서?”
  “그래가지고 설거지를 할 때 고무장갑에 끼는 거예요. 설거지할 때만요. 그러면 수세미보다 훨씬 좋은 효과가 있을 거예요. 빨래나 김장 담글 때는 그냥 고무장갑만 끼구요.”
 그때서야 엄마는 활짝 웃으시면서 빛이를 꼬옥 끌어안았다. 아름이는 겨우 알 것 같았다. 빛이는 아까부터 그릇이 미끄러지지 않는 고무장갑을 생각하던 중이었고 욕살에서 세수를 하다가 때미는 수건을 보자 그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오른 것이었다. 그래서 마치 목욕하다 부력의 법칙을 발견한 아르키메데스처럼 그 소란을 피우며 뛰어나왔던 것이다.
  “으이그, 저 감초. 자기가 무슨 아르키메데스라고 비눗물을 묻힌 채...”
 아름이가 빈정거리듯 말하자 빛이는 눈을 반짝이면서 물었다.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요 물리학자인 아르키메데스? 그 아르키메데스가 나처럼 했어, 오빠?”
  “그래, 이 감초야.”
  아름이는 빛이가 마치 그렇게 물어오기를 기다리고나 있었다는 듯이, 식구들 앞에서 한껏 으스대면서 다음과 같은 아르키메데스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어느 날 시칠리아의 시라쿠사 왕 히에론 2세가 아르키메데스를 부르더니 이런 부탁을 했다.
  “내가 금덩이 한 개를 왕관 만드는 세공인에게 주어서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왕관을 제작하도록 했더니 며칠 전에 만들어 왔소. 그런데 들리는 말에 의하면, 이 세공인이 그 금을 다 쓰지 않고 은을 섞어서 왕관을 만들었다는 거요. 그래서 내가 금덩이를 내주기 전에 그 무게를 기록해 놓았던지라 왕관의 무게를 달아 보았지만 무게는 금덩이와 똑같지 뭐요. 그렇다고 이렇게 훌륭한 왕관을 녹여볼 수도 없고 해서 그대에게 부탁하노니, 부디 이 왕관이 순금인지 은이 섞였는지 알아봐 주시오.”
  아르키메데스는 그날부터 연구를 시작했지만 그럴 듯한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며칠을 끙끙거리던 그는 어느 날 머리도 식힐 겸 목욕을 하러 갔다. 따뜻한 물이 가득 담긴 욕조에 들어간 그는 천천히 몸을 담그며 앉았다. 그랬더니 물이 넘쳐 흘렀고 좀더 깊숙이 앉자 물이 더 넘치면서 몸은 더욱 가벼워지는 것이었다. 그때였다. 무언가 번쩍 머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다.
  “맞다, 맞아! 바로 이거다!”
  벌떡 일어난 아르키메데스는 어찌나 기쁜지 옷 입을 생각도 안하고 단숨에 집에까지 달려가서 실험실에 틀어박혔다. 그는 왕관의 무게와 똑같은 금덩어리와 은덩어리를 하나씩 만들었다. 그리고는 왕관과 금덩어리, 은덩어리를 차례대로 물이 가득찬 통에 넣어 각각 넘치는 물의 양을 재어두었다.
  “이 왕관이 순금으로 된 것이라면 금덩어리를 넣었을 때의 넘친 물의 양과 같아야 한다.”
  그러나 넘친 물의 양은 은덩어리가 가장 많았고, 다음이 왕관이었으며, 금덩어리가 가장 적었다. 따라서 앙관의 금과 은이 섞인 것이라는 게 판명된 것 이다.
  이때 아르키메데스가 발견한 것이 ‘고체를 액체에 담그면 그 고체의 무게는 넘쳐흐른 액체의 부피만큼 가벼워진다’는 ‘부력의 법칙’으로 아르키메데스가 발견했다고 해서 ‘아르키메데스의 원리’라고도 한다.
  아르키메데스의 이야기를 다 마친 아름이가 어깨를 으쓱거리자 신문기자인 막내 삼촌이 박수를 치면서 말했다.
  “우리 아름이는 삼촌보다 상식이 더 풍부하다니까. 그런데 빛이가 욕실에서 소리를 지르면서 때미는 수건을 들고 나온 것과 그것이 무슨 연관이라도 있다는 거냐?”
  “그건 제가 설명해 드릴께요.”
  그렇게 말하면서 빛이의 얼굴을 다시 한번 닦아준 엄마가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자세하게 설명해 주셨다.
  엄마의 설명을 다 들은 식구들은 저마다 큰소리로 웃어댔다. 식구들의 웃음 속에 서 있던 빛이는 부끄러웠는지 얼굴이 빨개지더니 후다닥 욕실로 들어가버렸다. 그것을 본 식구들은 더욱 웃어댔다. 그리고 모두들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는 귀여운 빛이를 머리 속으로 떠올리면서 흐뭇한 기분에 젖어 가자 잠자리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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