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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명동화. 꾸러기 발명왕(12)
고자질 못해 퇴학당한 소년
“닮았다, 닮았어!”
“근데 코가 너무 작아! 선생님은 코주부잖아.”
“그래, 맞아! 그리고 콧수염도 그려야지.”
녀석은 저마다 한 마디씩 떠드는 아이들은 상관도 하지 않고, 칠판에다 담임선생님의 얼굴을 아주 우스꽝스럽게 그렸다. 그리고 그는 그림을 다 그린 다음에 손을 탁탁 털면서 자리로 돌아왔다. 아이들이 좋아라고 발을 동동 구르면서 깔깔댔다. 어떤 녀석들은 손바닥으로 책상을 마구 두들기기도 했다.
약간 벗겨진 대머리, 송충이 눈썹, 눈 꼬리가 치켜 올라간 눈매, 사자코에 콧수염, 뾰족한 턱 등이 볼수록 담임선생님과 비슷했다. 그때 한 녀석이 앞으로 나사더니 분필을 들고는 턱 밑에 대여섯 가닥의 수염을 염소처럼 그리고, 양 볼에 점을 네댓 개씩 찍어놓았다. 볼만했다. 아이들은 까다롭고 깐깐하고 엄격하기로 학교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선생님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고소해 했다.
“우와, 저 수염 좀 봐!”
“하하하! 꼭 늙은 염소 같구나!”
“히히히! 염소수염에 사자코라!”
누군가 또 나가더니 이번에는 커다란 코에다 점을 서너 개 찍어놓았다. 아이들은 더욱 요락하게 웃어댔다. 뒷줄에 앉아 있던 뢴트겐도 베를 움켜쥐고 웃다가 벌떡 일어섰다. 자기도 나가서 뭔가 덧붙여 그리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뢴트겐보다 빠른 녀석이 있었다. 앞자리에서 나간 녀석은 선생님의 이마에 세 줄의 주름살을 그렸다.
“그래! 그게 바로 내 생각이었어!”
뢴트겐은 이렇게 소리 지르고는 다시 깔깔대면서 웃기 시작했다, 한참 배를 움켜쥐고 허리를 구부린 채 웃고 있는데, 누가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하도 웃어서 눈물이 맺힌 얼굴로 돌아보니 옆자리에 앉은 친구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왜 그래?”
그는 대답도 못하고 손가락으로 입술을 누르더니 교실 앞을 눈짓해 보였다. 그리고 보니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웃음소리는커녕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문득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얼굴을 돌려 교실 앞을 보았다.
언제 들어왔는지 담임선생님이 무서운 눈초리로 뢴트겐을 쏘아보고 있었다. 뢴트겐은 얼른 주저앉았다. 선생님은 그제야 교탁 앞으로 걸어갔다. 그러더니 칠판의 그림과 뢴트겐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뢴트겐!”
“네, 선생님…”
교실은 물을 끼얹은 듯이 조용했다. 선생님은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으로 뢴트겐을 노려보면서 물었다.
“누가 그렸나?”
“……”
“누가 이 그림을 그렸냐니까?”
“……”
“아무 대답도 못하는 걸 보니까 네가 그린 모양이구나?”“아, 아닙니다. 제가 안 그렸습니다, 선생님.”
“그럼 누구야?”
곁눈질로 살펴보니까 그림을 그린 녀석은 얼굴색이 완전히 납빛이었다. 고래를 푸욱 수그리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보니 차마 이름을 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우물쭈물하고 있는데 교실 천장을 찌르릉 울리는 선생님의 목소리가 다시 떨어졌다.
“누가 그렸는지 모르나, 뢴트겐?”
“아, 압니다.”
“그럼 말해 봐!”
“……”
“말 못하겠나?”
“알고는 있지만 이름을 말할 수는 없습니다. 선생님.”
“아니, 뭐야?”
선생님은 뢴트겐을 노려보더니 학생들을 둘러보면서 물었다.
“누가 이 그림을 그렸나? 좋은 말로 할 때 앞으로 나와라!”
그러나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선생님은 더욱 화가 치솟는 모양이었다.
“자, 봐라. 아무도 없지 않니? 넌 지금 선생님한테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거야. 네가 그렸지, 뢴트겐?”
“아닙니다, 선생님. 맹세코 제가 아닙니다.”
“뢴트겐! 집에 돌아가거라. 너처럼 버릇없는 녀석을 더 이상 학교에 다니게 해야 할지 선생님과 의논해 봐야겠다. 결과는 편지로 알려주마.”
선생님은 휑하니 교실을 나가버렸다. 학생들이 웅성거리면서 그림을 그린 아이와 뢴트겐을 번갈아 쳐다봤다. 그러나 그림을 그린 녀석은 아직도 고개를 숙인 채 앉아 있었다.
(비겁한 녀석…)
이 사건으로 위트레히트 고등학교 졸업반이던 뢴트겐은 퇴학 처분을 받았다. 칠판에 그림을 그린 학생을 끝까지 가르쳐주지 않은 때문이었다. 뢴트겐은 자신이 한일에 대해서는 후회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뢴트겐의 말을 믿어주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칠판에 그림을 그린 학생을 찾아내려고 하지도 않았으며, 순전히 감정적으로 선생님들의 회의에서 자신을 비난한 담임선생님이 원망스러웠다. 그리고 비겁하게 가만히 앉아 있기 만한 녀석도 미웠다.
이 소식을 들은 아버지는 무척 놀랐다. 그러나 이렇게 격려해주었다.
“졸업을 앞두고 학교를 그만두게 되어서 안됐지만, 네가 옳다고 생각한 일을 꿋꿋하게 밀고 나갔다는 것은 훌륭했다. 자기감정에 휩쓸린 선생님이나, 자기 잘못을 고백하지 못한 친구를 용서하도록 해라. 어머니도 그렇지만 아버지는 네가 자랑스럽구나. 여기서 좌절하지 말고 더욱 열심히 공부하도록 해라.”
뢴트겐은 이 무렵에 약간의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당시의 독일이나 네덜란드에서는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김나지움이라고 하는 고등학교에 들어갔다. 그리스 어와 라틴 어 등 고전적인 교양의 공부를 중요시하던 교육과정으로 몹시 규율이 엄격했다, 또 대학 입학을 위한 준비 교육기관이어서, 김나지움의 졸업장이 없으면 대학에 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뢴트겐은 스위스에 있는 취리히 공업대학에 입학하게 되었고, 이곳에서 수학과 화학을 전공했다. 당시의 스위스에 있는 대학은 독일과는 달리 실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고등학교 졸업장 같은 것은 없어도 대환영이었다.
뢴트겐은 이곳에서 ‘쿤트의 실험’으로 유명한 독일의 물리학자 쿤트를 만나서 물리학자로서의 길을 걷게 되었다. 뢴트겐의 뛰어난 재주를 눈여겨보던 쿤트 교수가 그를 조수로 선택, 물리학자로서의 길을 열어주게 된 것이었다.
빌헬름 콘라드 뢴트겐은 1945년 독일(프로이센 지방)의 레네프에서 옷감을 짜는 직물업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이 무렵의 유럽, 특히 독일은 평화스런 나라가 아니었다. 게다가 뢴트겐이 태어난 프로이센 지방은 국민운동의 중심지여서 언제 싸움이 터질지 모르는 불안스언 나날이 계속되었다.
“저 아이만은 평화스런 분위기에서 자라나야 할 텐데….”
뢴트겐이 어느덧 학교에 갈 나이가 되자 아버지는 자못 걱정이 되었다. 어머니도 동감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제안을 했다.
“네덜란드로 보내는 게 어떨까요?”
뢴트겐은 결국 네덜란드로 건너가서 공부하게 되었다. 이곳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위트레히트 고등학교에 들어갔던 것이다.
취리히 공대를 졸업한 뒤 뢴트겐은 쿤트 교수에게서 물리학 공부를 하고 슈트라스뿌르크 대학과 기센 대학, 뷔르츠부르크 대학, 뮌헨 대학 등에서 물리학 교수 셍활을 했다. 그리고 뷔르츠부르크 대학에서 학생들은 가르치던 1895년, 저 유명한 ‘X(엑스)선을 발견했다.
한편 실험실에 틀어박히면 해가 지는지 달이 뜨는지, 밥 먹을 시간인지 잠잘 시간인지 모르고 연구에 몰두하는 뢴트겐이었다. 그날도 뢴트겐은 유리관 양쪽에 달린 감응 코일에 전기를 보냈다. 역시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연둣빛 빛이 유리관 속을 흘렀다.
뢴트겐은 유리관을 검은 종이로 감싸고 빛이 새어나오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는 책상 위에 놓인 형광펜을 들었다.
“아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책상 위의 형광판이 연둣빛으로 빛나고 있는 게 아닌가? 뢴트겐은 두꺼운 노트를 유리관과 형광판 사이에 넣어보았다. 그래도 형광판은 빛나고 있었다. 이번에는 노트 대신 널빤지를 끼워보았다. 마찬가지였다.
“종이도 나무도 뚫고 지나가는 빛이 있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혹시….”
뢴트겐은 조심스럽게 널빤지를 빼고 자기의 손을 넣어 보았다.
“아니, 이럴 수가?”
뢴트겐은 손을 움직여 보았다.
“이것이 과연 나의 손뼈란 말인가?”
빛 속에 나타난 가느다란 것은 틀림없는 손뼈였다. 손을 움직이면 그것도 움직이고, 손을 빼내면 뼈는 사라졌다. 이날부터 뢴트겐은 두 달 가까이 실험실에 틀어박혀 몰두했다. 그 결과 사진 건판에 이 빛을 지나게 하면 사진이 찍힌다는 것과, 그 빛은 납처럼 밀도가 큰 물질은 뚫고 나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X선은 이렇게 발견되었다. 그 후 X선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각종 질병의 진단과 치료의 획기적인 발전에 크게 기여를 했고, 요즘은 공업발전에도 한몫을 하고 있다.
뢴트겐이 X선을 발견한 어느 날이었다. X선을 연구하는 동안 하루 세 번씩 식사를 실험실로 날라다주던 아내 베르타를 쳐다보는 뢴트겐의 눈빛이 반짝 빛났다. 베르타는 수염이 텁수룩하게 자란 남편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무언가 좋은 일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동안 매일 식사를 나르느라고 고생이 많았소. 오늘은 내가 당신에게 선물을 하나 하리다.”
“선물이라구요?”
뢴트겐은 말없이 아내의 손을 끌어다가 놓고 X선을 비추었다.
“아니, 뭘 하시는 거예요?”
“조금만 기다려요. 내가 멋진 사진을 뽑아줄 테니까.”
“사진을요?”
잠시 후에 만들어진 사진에는 아내 베르타의 손뼈가 찍혀 있었다. 베르타는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게 제 손뼈인가요?”
“그렇소.”
“어머나, 당신이 연구하신 게 바로 이거로군요?”
“맞았소. X선이라고 이름 붙이기로 했소.”
“오, 축하해요! 근데 여기 약손가락에 있는 까만 점은 뭐죠, 여보?”
뢴트겐은 아내가 가리키는 까만 점을 들여다보더니 껄껄 웃었다. 그리고는 아내의 손을 끌어다가 약손가락에 끼고 있는 반지를 가리켰다. 그것은 결혼반지였다. 세계 최초의 X선 사진 촬영자가 도ls 아내는 뢴트겐을 쳐다보면서 환하게 웃었다.
뢴트겐의 연구결과가 발표되자 세상은 X선 얘기로 온통 떠들썩해졌다. 신문에는 대문짝만한 제목으로 X선의 발견을 알렸고, 독일 황제는 훈장을 주면서 격려했다. 이렇듯 공개실험과 강연회로 바쁘게 돌아가던 어느 날, 점잖게 차려입은 신사가 뢴트겐을 찾아왔다.
“X선 발견이야말로 뢴트겐 교수의 위대한 업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저를 찾아오신 용건은 무엇인지요?”
“다름이 아니라, X선 발생장치를 만드는 권리를 사려고 왔습니다. 돈은 요구하시는 대로 얼마든지 드리겠습니다.”
이 말을 들은 뢴트겐은 벌떡 일어나면서 화를 와락 냈다. 그리고 이렇게 큰소리로 말했다.
“그런 용건이라면 당장 돌아가시오! 나는 X선을 발견했지 발명한 게 아닙니다. 그리고 X선은 인류 모두의 것이지 어느 한 사람의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나는 X선에 관한 모든 것을 누구에게나 알려줄 것입니다.”
그 신사는 아무 말도 못하고 돌아갔다. 이처럼 훌륭한 과학자들은 돈을 위해서가 아니라 인류를 위해서 연구를 했던 것이다.
뢴트겐은 1901년 X선을 발견한 업적으로 최초의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출처 : 왕연중 엮음, ‘꾸러기 발명왕’, =글수레,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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