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nglish   |  

 
 로그인   회원가입   홈등록   이용안내   고객센터   사이트맵 
발명이야기  
브랜드이야기  
발명교실프로그램  
발명세상  
왕연중의 발명교실  
   왕연중의 발명사전
   왕연중의 발명이야기
   왕연중의 발명칼럼
   왕연중의 발명소설 
   왕연중의 발명동화 
   왕연중의 발명만화 
   왕연중의 발견이야기 
   발명특허 기네스 
   왕연중선생님 소개 
인류의 100대  
과학 사건들  
인터넷 시대의  
지적재산권 기본상식  
기술자가 알아야 할  
특허 상식  
문답식으로 풀어보는  
지적재산 관리  
특허공학입문  
특허단상  
Q&A   


+ Patzine 신청
이름 :
메일 :
 동의
  
뉴스레터를 보내드립니다.
회원수 : 331194
+ 발명이야기 랭킹
1
타는 배 (선박) 이야기
도르래 이야기
스킨스쿠버 이야기
전동기 이야기
자기공명영상장치 (MR..
넥타이 이야기
PDP ( 벽걸이 TV..
시멘트 역사 이야기
철근 콘크리트 이야기
지퍼 이야기
전자레인지 이야기
볼펜 이야기
연필 이야기
깍지않는 연필 이야기
접착테이프 이야기
츄잉껌 이야기
페달자전거 이야기
연식 야구공 이야기
냉동법 이야기
왓트의 증기기관 이야기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 브랜드이야기 랭킹
1
동양 (DONGYANG..
인터파크 (INTERP..
에이스침대 / 가구
농심 (NONGSHIM..
쌍용 (SSANGYON..
지에스 (GS) 그룹
빈폴 (BEAN POL..
Nestle (네슬레)..
HONMA (혼마) /..
Gillette (질레..
한화 (HANWHA) ..
올팩 로고 / 환경
대림 (DAELIM) ..
씨제이 (CJ) 그룹 ..
모나미 (MONAMI)..
한진 (HANJIN) ..
XCANVAS / 가전..
FERRARI (페라리..
Cartier (까르띠..
AUDI (아우디) /..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왕연중의 발명동화

본 코너에 소개된 모든 글의 저작권은 저자인 왕연중 선생님(한국발명문화교육연구소 소장, 영동대학교 발명특허공무원학과 겸임교수, wangyj39@dreamwiz.com)에게 있습니다.
저자의 허락없이 무단전재나 재배포를 금지합니다.

제목 : 꾸러기 발명왕(11) - 가난과 불구를 이겨내다      

 발명동화. 꾸러기 발명왕(11)    

  가난과 불구를 이겨내다

 ‘노구치 히데요’라면 우리 어린이들에게는 낯선 이름 일지도 모르겠다. 그는 일본인 의사이며 세균학자였다. 24살에 미국에 건너가서 독사와 뱀의 독을 연구하여 알려지기 시작했고, 스피로헤타 팔리다의 연구로 세계적인 세균학자가 되었다.
 ‘스퇴로헤타 팔리다’란 1905년에 독일의 샤유딘과 호프만이 발견한 매독의 병원체다. 매독은 깨끗하지 못하고 질서없이 어지러운 생활을 하는 사람이 걸리기 쉬운 성병의 한 가지로 아주 무서운 만성 전염병이다.
 이 병에 감염되면 10~15년 후에는 마비성 치매와 척수로에 걸리게 된다. ‘마비성 치매’는 스피로헤타 팔리다가 뇌에 발생한 것으로, 실신 · 경련발작이 일어나고 언어와 동작이 느리며 정신작용이 온전하지 못한 상태를 말한다. 또 ‘척수로’는 스피로헤타 팔리다가 척수에 발생한 것으로 손발 근육이 마비되어 일어설 수가 없게 된다. 매독은 이처럼 무서운 전염병으로 유전되기 까지 한다.
 노구치 히데요는 바로 이 마비성 치매와 척수로 환자의 조직에서 스피로헤타 팔리다를 찾아내어, 그 병들이 매독에 의해 일어난다는 사실을 밝힌 것이다. 오늘날까지도 높이 평가되는 업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는 이밖에도 눈의 결막에 생기는 만성 전염병인 트라코마와, 상처를 통해서 몸 안으로 들어가 병을 일으키는 전염병인 파상풍, 그리고 열대성 전염병인 황열병을 연구했다.
 그는 나중에 아프리카로 건너가서 황열병의 연구를 본격적으로 하다가 그만 황열병에 감염되어 죽었다. 이처럼 자신의 몸을 던져 세균학자로서의 길을 걷다가 연구하던 세균에 감염, 귀중한 목숨을 잃은 노구치 히데요의 어린 시절은 참으로 눈물겨웠다.
 노구치 히데요는 1876년에 일본의 동북지방에 있는 후쿠시마 현 이나시로 시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집안이 기울어진 뒤부터 술로 세월을 보냈고, 어머니의 품팔이로 겨우 굶주림을 면했다. 히데요의 어렸을 때의 이름은 세이사쿠였다.
 저녁놀이 곱게 물들기 시작하자 집집마다 굴뚝에서는 저녁 짓는 연기가 한가롭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아직 땅거미가 내리기 전인데도 몇몇 집들의 창밖으로는 불빛이 흐르고 있었다.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큰길 가에 앉아 있던 세이사쿠는 사방을 두리번거리면서 초조하게 눈동자를 굴렸다. 저녁때라서 그런지 지나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쪼그려앉은 그의 발 앞에는 큼지막한 물통이 놓여 있었는데, 그 안에는 꼬리를 파닥이기도 하고 몸을 꿈틀대어 거품을 일으키기도 하는 물고기들이 있었다.
 “아니, 얘야. 날이 저물어가는데 여기 앉아서 무얼 하는 거냐?”
 한 노인이 세이사쿠 앞으로 다가오면서 물었다. 그는 공손이 대답했다.
 “민물고기를 팔고 있어요, 할아버지.”
 “민물고기라구? 어디 보자…. 어이구, 제법 큼지막한 놈들이구나. 그래, 네가 잡은 것이냐?”
 “네, 할아버지.”
 노인은 세이사쿠를 찬찬히 훑어보더니 다시 물었다.
 “집에서 끓여 먹지, 어린 네가 왜 이걸 팔러 나왔니?”
 “돈이 필요해서요.”
 “군것질하려고?”
 “아녜요, 할아버지. 전 지금 초등학교에 다니는 학생인데 집안이 가난해서 학용품 살 돈이 없어요. 그래서….”
 노인은 눈을 크게 뜨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 사는 곳이 어디냐고 물었다. 세이사쿠가 마을 이름을 대자 노인은 다시 한번 놀랐다. 시오리는 족히 되는 거리였기 때문이었다.
 “어린 것이 고생이 많구나. 네 뜻이 갸륵해서 내가 물고기를 다 사주마. 모두 얼마면 되겠니?”
 “알아서 주세요, 할아버지.”
 노인은 세이사쿠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돈을 꺼내 주었다. 그리고는 앞으로도 오늘처럼 물고기가 안 팔리면 자기한테 가져오라면서 집을 가르쳐주었다. 돈을 받은 세이사쿠는 허리를 꺾어 절을 한 다음, 나는 듯이 달려 가게에 가서 학용품을 사들고 집으로 향했다.
 세이사쿠는 학교에서 늘 우등생이었다. 집안이 하루 끼니를 걱정할 만큼 가난해서 학용품을 사기가 늘 어려웠다. 그러나 그는 물고기도 잡아서 팔고, 마을에 있는 여관에서 청소를 해주고 손님들의 목욕물도 데워주는 등 부지런히 일을 해서 푼돈을 모았다.
 고달픈 품팔이를 하느라고 늘 허리 한 번 펴보지 못하는 어머니는 그러는 세이사쿠를 보는 재미에 피로도 잊을 정도였다. 그리고 늘 충분한 뒷바라지를 못 해주는 것과 화상을 입어 조막손이 된 왼팔을 보면서 가슴 아파했다.
 (불쌍한 자식…. 그렇지만 넌 반드시 훌륭한 인물이 될 거야. 이 에미는 너 하나만 믿는단다.)
 세이사쿠가 3살 나던 해의 어느 날이었다. 방 안에 세이사쿠를 놀게 두고 집안일을 하던 할머니는 금방 숨이 넘어갈 듯이 울어대는 울음소리에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엄, 엄마! 엄마아!”
 건넛방에 있던 할머니는 허겁지겁 달려갔다. 그리고 안방 문을 연 할머니는 하마터면 기절을 할 뻔했다.
 “아니, 세상에! 세, 세이사쿠야!”
 일본 사람들은 방 가운데에 옴폭하게 구멍을 파고 그곳에 화로를 놓아두었다. 구멍을 네모꼴로 만들어졌는데, 그곳 화로에서 요리도 하고 차도 끓이는 것이다.
 아장아장 걸어다니던 세이사쿠는 바로 이 구멍에 굴러떨어져서 자지러지게 울고 있었다. 허겁지겁 달려간 할머니가 손자를 안아올렸을 때는 이미 일이 벌어진 뒤였다. 세이사쿠의 왼팔이 화로에서 이글거리는 숯불 속으로 들어가 있었던 것이다.
 세이사쿠는 새파랗게 질린 채 숨이 넘어가도록 울어댔고, 왼팔은 보기 흉할 정도로 부풀어올랐다. 할머니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농촌에 변변한 약이 있을 턱이 없었다. 이웃집을 달려다니면서 간신히 응급처치는 했지만, 아이는 온몸이 불덩이처럼 달아올랐다.
 해가 떨어질 무렵에야 피곤한 몸을 이끌고 돌아온 어머니의 놀라움은 말로 표현할 길이 없었다. 세이사쿠는 젖을 빨 힘조차 없어보였다. 너무나 울어서 목이 꽉 잠긴 목소리로 힘겹게 울어댈 뿐이었다.
 “이 일을 어쩌나? 이대로 두었다가는 큰일 나겠는데…. 오, 이럴 수가 있을까. 불쌍한 내 자식, 에미를 잘못 만나서….”
 어머니는 흐르는 눈물을 닦을 틈도 없이 밤새도록 정성껏 간호했다. 그저 간호하면서 간절히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요즘 같았으면 병원으로 달려가서 최선의 치료를 했겠지만, 그때만 해도 가까운 곳에 변변한 병원 하나 없었다. 또 병원이 있었다 해도 하루 세끼 먹을 걱정을 해야 하는 살림에 병원에 갈 엄두도 못 냈을 것이었다.
 아무래도 살아나지 못할 것처럼 상처가 악화되면서 온 몸이 펄펄 끓던 세이사쿠는 점점 회복되었다. 어머니와 할머니의 지극한 간호 덕분이었다. 그러나 불에 몹시 덴 왼손은 오그라들어서 다시는 펴지지 않았다. 조막손이 된 것이었다.
 세이사쿠가 태어난 지방은 눈이 많이 왔다. 또 당시만 하더라도 기차가 들어오지도 않았고 도로 사정도 아주 나쁜 시골이었다. 그래서 많은 짐은 짐승이 끌었고, 웬만한 일은 사람의 힘으로 다했다. 어머니는 아들의 조막손을 보면 늘 걱정되는게 있었다.
 (그 조막손으로 도저히 농사를 짓거나 기술자가 될수는 없을 텐데 어떡해야 좋을까? 그래, 공부를 시키는 방법밖에는 없겠다. 돈은 없지만 힘 자라는 대로 공부를 시켜야지.)
 세이사쿠의 조막손은 동네 개구쟁이들의 단골 놀림감이었다. 그러나 학교에 들어가서는 아이들의 놀리는 방법도 달라졌다. 전에는 대놓고 조막손을 들먹이면서 놀려댔지만. 이제는 세이사쿠 스스로 비참한 마음이 들게 만드는 것이었다.
 “이리 와, 세이사쿠! 우리 함께 놀자!”
 늘 따돌림을 받던 세이사쿠는 좋아라하면서 달려갔다.
 “나도 붙여줄 거야?”
 “그럼, 우린 친구잖아.”
 “고마워. 근데 무슨 놀이를 할 거야?”
 “글세? 얘들아, 무슨 놀이를 할까?”
  세이사쿠를 부른 꼬마가 동무들을 둘러보면서 씨익 웃었다. 그러자 꼬마들은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내뱉었다.
 “철봉에 매달리기가 어떠니? 먼저 떨어지는 사람이 지는 거야.”
 “아냐, 그것보다는 나뭇가지에 매달리기가 좋겠어. 세이사쿠는 나무에 잘 올라갈 거야.”
 세이사쿠는 그제서야 동무들이 자기를 놀려대고 있음을 알아채고는 얼굴이 벌개졌다. 조막손으로 어떻게 철봉에 매달리며 나뭇가지를 어떻게 붙잡는단 말인가?
 “이 자식들!”
 세이사쿠는 분을 삭이지 못하고 덤벼들었다. 그러나 세이사쿠는 혼자였고 짓궂은 개구쟁이들은 떼로 덤볐다. 번번이 놀림감이 되고 얻어맞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세이사쿠는 집에 와서는 한 번도 그런 얘기를 하지 않았다. 그런 소리를 들으면 어머니나 할머니가 가슴아파할 것 같아서였다. 이를 악물고 참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날은 유난히 많이 두들겨 맞았다. 퉁퉁 부은 얼굴로 돌아온 세이사쿠를 본 할머니가 깜짝 놀랐다. 그러더니 세이사쿠를 힘주어 안으면서 말했다.
 “세이사쿠, 넌 그럴수록 약해져서는 안 된다. 강한 정신을 기르고 비겁하지 말아라. 남을 놀리거나 헐뜯는 사람은 비겁자이고, 자기보다 못한 사람을 놀리거나 때리는 사람은 겁쟁이란다. 그 따위 동무는 사귀지 않아도 좋다, 세이사쿠.”
 할머니의 이 말은 세이사쿠의 가슴에 불 같은 의지를 심어주었다.
 (좋아, 나중에 누가 더 훌륭한 사람이 되는가 두고보자!)
 세이사쿠는 이를 악물고 일하면서 공부를 했다. 물고기를 잡아서 팔 때도, 여관에 가서 잔심부름을 해줄 때도, 집에서 동생을 업어줄 때도 늘 책을 가까이 했다. 결국 그의 노력과 실력은 아무도 따르지 못했다. 그를 놀려대던 아이들도 차츰 줄어들었다.
 세이사쿠는 초등학교를 1등으로 졸업했다. 그러나 중학교 진학은 포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혼자 버는 푼돈으로는 도저히 학비를 댈 수가 없었던 것이다. 어머니는 영리한 자식을 가난 때문에 더 가르칠 수 없다는 가슴 아픔에 눈물만 흘렸다.
 이때 그의 앞에 나타난 사람이 바로 고바야시라는 중학교 선생님이었다. 고바야시는 그의 평생을 통한 은인이요 마음의 스승이었다. 고바야시는 어머니에게 말했다.
 “세이사쿠처럼 의지가 강하고 영리한 학생을 초등학교만 나오게 한다는 것은 너무나 아까운 일입니다. 그래서 저도 여유있는 형편은 아니지만 세이사쿠의 뒤를 밀어주기로 했습니다. 아무런 걱정 마시고 중학교에 보내십시오.”
 지성이면 감천이란 말이 있다. 정성을 다하면 하늘도 감동한다는 말이다. 대개 위대한 업적을 쌓은 위인들의 생애가 그랬지만, 세이사쿠의 경우는 특히 더 그랬다. 가난과 불구의 어려움을 딛고 열심히 노력한 끝에 은인을 만난 것이었다.
 세이사쿠의 이런 노력은 다시 계속되었다. 시오리 정도의 거리에 있는 중학교를 매일 걸어서 통학했다. 요즘으로 치면 중 · 고등학교 과정인 중학생이 되어서도 계속 1등을 했다. 고바야시 선생님과 가족을 기쁘게 해주고, 자신의 앞날을 열어보겠다는 의지의 결실이었다.
 5년에인 중학교를 다닌 지 4년째 되는 어느 날이었다. 작문시간이었는데, 선생님은 자유 제목으로 글을 지으라고 했다. 세이사쿠는 늘 자신과 식구들의 마음을 흐리게 하고, 어려서부터 슬픔을 안겨주던 조막손에 대해서 썼다. 마음 속에 감춰두었던 모든 말을 다 토해 냈다. 공부를 하든지, 글을 짓든지, 친구를 사귀든지, 일을 하든지 그것을 진실하게 하면 감동을 불러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세이사쿠의 글이 그랬다.
 “진심으로 도와주고 싶은 학생이군요.”
 교장 선생님은 고바야시 선생님에게 말했다. 고바야시 선생님은 자기가 보고 듣고 느낀 세이사쿠를 설명했다.
 “호오, 훌륭한 학생이었습니까? 그럼 우리 선생님들이 힘을 모아서 세이사쿠 군을 도와주도록 합시다.”
 선생님들이 세이사쿠의 조막손을 고쳐주기로 하고 힘을 모으자 학생들도 나섰다. 마침 이웃 도시에는 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와다나베라는 의사가 운영하는 병원이 있었다. 세이사쿠는 선생님들과 학생들의 도움으로 와다나베의 수술을 받게 되었다.
 “화상이 너무 심해서 보통 사람처럼 될 수는 없지만, 물건을 쥘 정도로는 회복될 겁니다.”
 이때 만난 와다나베도 고바야시 못지않은 은인이 되었다. 세이사쿠는 자신의 손을 치료받으면서 의사가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무언가 어려운 사람을 돕고, 세상에 빛을 주는 일이 의사일 거라는 느낌을 받은 것이었다.
 중학교를 졸업한 세이사쿠는 와다나베의 병원에 가서 독학을 하게 됐다. 병원 청소에서부터 시작하여 선생님의 잔심부름까지를 해주면서 의학 공부를 했다. 그리고 밤에는 영어와 독일어를 공부했다.
 “의학을 공부하려면 외국어를 잘 해야 된다네. 훌륭한 외국 의사들이 쓴 책을 많이 봐야 되거든.”
 와다나베를 스승으로 삼아 의학을 공부하던 세이사쿠는 21살 때 일본의 수도인 도쿄로 갔다. 와다나베의 소개로 그의 친구인 지와키를 찾아간 것이었다. 도쿄에서 지와키의 도움으로 공부를 한 세이사쿠는 어렵기로 소문난 의사 시험에 합격, 의사가 되었다. 그후 그는 전염병 연구소에서 세균학을 전공했다.
 이 연구소에서의 피나는 노력이 훗날 그를 세계적인 세균학자가 되게 하는 발판이 되었다. 세이사쿠는 뛰어난 외국어 실력 덕분에 미국에 갈 기회를 얻었다. 그래서 1900년 미국으로 건너간 세이사쿠는 록펠러 연구소의 연구원이 되어 본격적인 세균학자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세이사쿠’를 버리고 새로 갖게 된 이름인 ‘히데요’는 옛 스승이자 그의 은인인 고바야시가 지어준 것이었다. ‘히데요’는 세상에서 으뜸가는 사람이란 뜻을 담고 있었다. 결국 자신이 연구하던 세균에 감염되어 낯선 이국에서 숨을 거두기는 했지만, 노구치 히데요는 그의 이름처럼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과학자였다.
                   출처 : 왕연중 엮음, ‘꾸러기 발명왕’,  =글수레, 1989=


 목록보기

 

 

광고 및 이벤트 문의   |   사업제휴  |   회사소개  |   홈페이지 제작/특허 e-biz
◇ 사업자등록번호 : 220-81-74162 (주)도원닷컴 ◇ 대표 : 김수천 ◇ 통신판매업 신고 강남-1025호
dowon.com   |   dowon.co.kr  |   ktt114.kr
Copyright ⓒ 2001 Dowon International. All rights reserved.    Designed by DOWON.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