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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러기 발명왕(4)
관가의 종에서 정3품 상호군으로 성공한 발명왕
“영실아! 영실이 어디 있느냐?”
일곱 살 남짓한 사또 아들의 다급한 목소리가 쨍하니 마당을 울렸다. 그러자 허름한 베옷차림의 소년이 허겁지겁 달려와서 머리를 조아렸다. 얼핏 봐서 도령보다 서너 살은 위로 보이는 소년 종이었다.
“부르셨습니까요, 도련님?”
“이것 좀 봐.”
도령은 울상을 지으며 들고 있던 팽이채를 내밀었다. 끈을 매단 머리 부분이 똑 부러져 있었다. 그러고 보니 도령의 발 앞에는 방금 치던 팽이와 팽이채에서 떨어져 나간 끈이 뒹굴고 있었다.
“도련님도 참, 그러게 제가 몇 번이나 일러드렸습니까? 팽이라는 것은 팽이채로 치는 게 아니라….”
“팽이채에 달린 끈으로 치는 것이다! 또 그 소리 하려고 그러지?”
도령이 얼른 말을 가로막고 나서면서 이렇게 말했다. 도령이 팽이채를 부러뜨릴 때마다 어머니가 잔소리하듯이 하던 소년의 얘기였다.
“그 소리라면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들었으니까 빨리 팽이채나 고쳐줘.”
“알았습니다요.”
소년 장영실은 경상도 동래현에서 일하는 관노(관청의 종) 였다. 이제 열 살이 갓 넘은 장영실은 손재주가 아주 뛰어나서, 동생 나이 벌 밖에 안 되는 사또 아들은 걸핏하면 장영실을 불러댔다.
장영실이 만든 연은 구름처럼 가볍게 높이 날았고, 그가 깎은 팽이는 한두 번만 휘감아 치면 ‘위잉!’소리를 내면서 힘차게 돌았다. 도령이 갖고 노는 놀이기구며 장난감은 대부분이 장영실의 솜씨였고, 망가져서 버리다시피 해둔 것들도 말짱하게 고쳐주었다.
장영실은 비를 만들려고 베어다 둔 싸리나무 중에서 손가락 굵기 정도의 것을 골라내서 잘 다듬었다. 몸체를 칼로 매끄럽게 다듬은 다음에 가지가 났던 부분을 약간 뭉툭하게 만들었다. 그리고는 들에 나갈 때마다 벗겨다 두었던 닥나무 껍질을 그곳에 묶었다. 빳빳하게 마른 닥나무 껍질을 칼자루로 자근거려 부드럽게 만든 장영실은 그 끝을 입에 넣고 잘근잘근 씹으면서 침을 묻혔다.
“왜 팽이채를 만들 때마다 끈에 침을 묻히는 거야? 더럽게끔….”
“그냥 치면, 끈이 팽이에 잘 감기지가 않거든요.”
“그럼 침을 묻히면 잘 감긴단 말야?”
“그럼요. 팽이채 끈에는 늘 약간의 습기가 있어야 한다구요. 그래야 착착 감기거든요. 자, 이제 한번 쳐 보세요. 그리고 반드시 끈으로 쳐야지 팽이채로 치면 안 돼요?”
“알았어!”
도령은 닥나무 껍질로 만든 끈에 팽이를 감아 땅바닥에 눕히고는 팽이채 끝을 잡았다. 호흡을 가다듬은 다음에 팽이채를 휙 뿌리자 팽이는 저만큼 날아가서 돌기 시작했다. 도령은 그쪽으로 잽싸게 달려가더니 팽이채를 가볍게 서너 번 찰싹 거렸다. 팽이는 점점 빠르게 돌기 시작했다.
“됐어요, 도련님!”
도령은 팽이채를 잡은 손바닥에 침을 퉤 뱉었다. 그리고는 팽이채를 힘차게 휘둘렀다. 장영실의 침이 묻은 닥나무 껍질은 ‘쩍!’ 소리를 내면서 팽이를 휘감아 돌렸다.
‘위잉! 잉잉!’
“야아, 팽이가 운다!”
도령이 좋아라고 팔짝팔짝 뛰더니 다시 두세 번 팽이채를 휘두르자 팽이는 더욱 요란하게 울면서 자리를 잡았다. 팽이는 마치 마당에 그대로 세워놓은 듯이 흔들림 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다른 아이들이 치는 팽이나,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준 팽이는 아무리 세게 쳐도 두툴두툴 돌아갔다. 그러나 장영실이 만든 팽이는 치면 칠수록 세게 울었고 그림처럼 자리를 잡았다. 그것은 작은 쇠꼬챙이 끝을 숫돌에 둥글게 갈아서 팽이 끝에 박은 장영실의 재치 탓이었다. 그러니까 요즘의 어린이들이 팽이에 구슬을 박는 이치와 같은 것이었다.
잘 알려진 대로 장영실은 세계 최초로 비가 내린 양을 재는 측우기를 발명한 조선시대의 과학자였다. 그러나 그의 어린 시절은 참으로 불우했다.
장영실은 관기의 아들이었다. 옛날에 잔치나 술자리에서 노래나 춤으로 흥을 돕는 것을 직업으로 삼는 여자를 ‘기생’이라고 했으며, 그 가운데서 관청에 딸려 있는 기생을 ‘관기’라고 했다. 장영실은 경상도 동래현에 소속된 관기의 아들이었던 것이다.
옛날에 종을 만들던 제도 가운데 종모법(수모법이라고도 함)이라는 것이 있었다. 평민과 여자 종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는 모두 어머니처럼 종으로 만드는 법이 었다. 관기가 낳은 자식도 마찬가지였다. 천한 계급으로 치던 관기의 자식인 장영실도 예외가 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장영실이 태어난 해가 언제인지는 기록에 남아 있지 않다.
종의 자식이라면 양반집 개보다도 못한 대접을 받던 시절이었다. 하물며 아버지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관기의 자식인 장영실의 고통이 어느 정도였을지는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동무도 없는 천덕꾸러기로 자랄 수밖에 없었던 어린 시절에 혼자 놀면서 손장난을 많이 한 탓이었을까? 아니면 하늘이 그를 불쌍히 여겨 자비를 베풀었을까? 고장 나거나 부서진 것을 고치고, 불편한 점을 없애기 위해 무얼 만들어내는 손재주는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어머니의 곁을 떠나 관가의 종으로 들어간 소년 장영실의 고생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걸핏하면 나이 많은 관노들의 매질이 퍼부어졌다. 그것도 욕설과 알밤을 먹는 정도는 귀엽다고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관노들은 어린 장영실의 코에서 단내가 나도록 부려먹었고, 조금만 잘못하면 마구 두들겨 팼다. 게다가 윗사람에게 꾸중을 듣는 날에는 화풀이까지 당해야 했다. 그러나 그런 모든 슬프고 힘든 고통도 만들기를 할 때는 다 잊을 수가 있었다. 무엇을 만들거나 고치거나 하고 있으면 절로 신바람이 나는 것이었다.
어느 날 사또가 방을 빈 틈을 타서 도령은 사랑방에 살짝 들어갔다. 아버지가 책을 읽을 때 쓰는 책상을 벽장 아래에 갖다놓고 올라섰다. 벽장 속에 있는 꿀단지를 찾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키가 모자라는데다 꿀단지가 깊숙이 있어서 발꿈치를 들고 허우적대다가 그만 방바닥에 나동그라지고 말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책상의 한쪽 다리가 건들거렸다. 순간 송충이 눈썹을 꿈틀대는 아버지의 호랑이 같은 얼굴이 떠올랐다. 도령은 살금살금 밖으로 나가서 장영실을 데려왔다.
“아버지가 동헌에서 돌아오시기 전에 빨리 책상다리를 고쳐줘.”
“킥킥, 꿀맛은 어떻던가요?”
칫! 꿀맛은커녕 꿀단지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구경 못했다, 이놈아!“
장영실은 건들거리는 책상다리를 뜯어내고는 부러진 나무못을 뽑아낸 다음, 대나무로 못을 깎아 박았다. 그리고 몇 군데 더 손을 보고나니까 처음처럼 아주 튼튼한 다리가 되었다. 그러나 부러진 부분에 칠이 벗겨져 희끗희끗 드러난 것이 문제였다. 당장 칠을 구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그렇다고 그냥 두자니 눈에 금방 띌 것이 걱정되었다.
장영실은 잠시 생각하더니 벼루 뚜껑을 열고는 먹물을 찍어서 칠이 벗겨진 곳에 발랐다. 그러더니 먹물이 마르자 그 위에 초를 칠해서 윤이 나게 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른 부분보다 더 검은 게 눈에 띄었지만, 무심코 보면 그냥 지나칠 정도는 되었다. 도령은 겨우 한숨을 몰아쉬었다.
그러나 이 사실은 며칠 후에 사또 부인에 의해 들통이 나게 되었다. 분명히 도령이 저지른 짓이라고 짐작한 부인은 아들을 불러다 다그쳐 물은 결과 모든 사실을 알게 되었다. 호되게 꾸중을 내리던 부인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런데 누가 이렇게 감쪽같이 고쳐놓았지?”
“영실이가요.”
“영실이라구?”
속으로 혀를 내두른 부인은 장영실을 불러서 사실인지를 물었다. 소년 장영실은 감히 고개도 들지 못하고 부들부들 떨면서 사실대로 말했다. 무슨 생각을 했는지 부인은 장영실을 데리고 안방으로 갔다. 그리고는 약간 고장난 경대와 삐걱거리는 보석함을 내놓았다.
“이것들도 고칠 수 있겠느냐?”
“네, 마님!”
장영실은 경대와 보석함뿐 아니라 장롱의 덜렁거리는 돌쩌귀까지 말짱하게 고쳐놓았다. 이날 이후로 사또 부인은 쓰던 물건이 부서지거나 고장이 나면 어김없이 장영실을 불렀다.
이뿐이 아니었다. 나중에는 부엌에서 쓰는 상다리가 조금만 이상해도 장영실을 불러댔고, 농사를 짓는 하인들은 농기구를 새로 만들거나 수리를 할 때면 반드시 장영실에게 맡겼다. 그러다 보니까 차츰 나이든 관노들의 매질이나 욕설도 줄어 들었다.
이렇게 성장한 장영실은 자연스럽게 동래현에서 쇠를 다루는 제련, 성을 쌓는 각종 토목공사, 각종 무기와 농기구를 만들고 수리하는 일 등의 책임자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해에 동래현에 큰 가뭄이 들었다. 논바닥은 거북등처럼 갈라졌고 땀으로 키워놓은 벼는 나날이 타들어갔다. 농민들은 구름 한 점 없는 하늘만 쳐다보면서 한숨을 쉬었고, 사또는 기우제까지 지냈으나 가뭄은 여전했다. 어느 날 장영실이 사또에게 제안했다.
“고을 북쪽에 큰 연못이 있는데, 그곳의 물을 끌어다 쓰면 어떠하올지….”
“십 리 밖에 있는 연못의 물을 어떻게 끌어다 쓴단 말이냐?”
“그곳은 이곳보다 지대가 높습니다. 그러니까 백성들을 동원해서 물길을 내면 될 것이옵니다.”
사또는 장영실의 말을 듣고는 무릎을 쳤다. 그리고 즉시 장영실을 감독으로 임명하여 물길 트는 일을 시작 하라고 지시했다. 결국 그해에 동래현 농민들은 가뭄속에서도 풍성한 수확을 했고, 이러한 장영실의 소문은 나라 안에 널리 퍼졌다. 그리고 그 소문은 높은 대궐의 담을 넘어 세종대왕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그래? 비록 보잘 것 없는 관기의 자식이요 관노이지만 그 뛰어난 재주는 참으로 높이 살만하구나, 장영실을 데려오도록 하라. 그에게 벼슬을 주어 그 재주를 마음껏 활용하도록 하리라.”
종자가 좋은 나무가 아주 기름진 땅에 심어졌다 하더라도 하늘의 기후가 나쁘면 제대로 자랄 수 없고, 하늘의 기후와 나무의 종자가 아무리 좋더라도 좋지 않은 땅에 심어지면 제대로 자랄 수 없으며, 하늘의 기후가 좋고 땅이 기름지더라도 나무의 종자가 나쁘면 좋은 나무가 될 수 없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적성대로 공부하고 살아가는 게 좋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장영실이 훌륭한 재질을 갖춘 나무였다면, 세종대왕은 그 나무를 기름진 땅에 옮겨심어 장차 훌륭한 목재로 키울 기후조건을 만들어준 사람이었다.
관기의 자식이요 천한 관노라고 손가락질 받고 구박받기를 밥먹듯하던 장영실은 세종 5년인 1423년, 드디어 종의 신분을 벗고 상의원 별좌가 되었다. 상의원은 임금의 옷과 대궐 안의 재물, 보물 등을 맡아서 관리하던 곳이며, 별좌는 정 · 종5품의 벼슬로, 요즘으로 치면 5급 공무원쯤 된다. 천대받던 노예의 신분으로서는 꿈같은 일이었다.
기술 하나로 하루 아침에 종의 신분을 벗고 벼슬길에 오른 장영실은 그로부터 20여 년간 수많은 발명품을 내놓았다. 천체 관측기인 간의, 천문시계이자 천체의 모형인 혼천의, 새로운 금속활자인 갑인자, 휴대용 시계라고 할 수 있는 현주일구, 해시계인 앙부일구, 물시계인 자격루, 하천의 범람을 미리 알 수 있는 수표 등….
그러나 이처럼 수많은 발명 업적 가운데서도 보석처럼 빛나는 것은 세종 24년인 1442년에 발명한 측우기다. 유럽에서는 1639년에 로마에서 이탈리아의 가스텔리가 처음으로 측우기로 강우량을 쟀다고 한다. 또 프랑스에서는 1658년부터, 그리고 영국에서는 1677년부터 측우기를 썼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장영실이 만든 측우기는 가스텔리보다 정확하게 197년이나 앞선 세계 최초의 것이 된다.
이 측우기와 수표의 발명으로 장영실은 정3품의 벼슬인 상호군에 특진되었고, 임금이 타는 가마를 감독 제작하게 되었다. 그러나 누가 짐작이나 했을까? 정성을 다해 만든 가마가 임금이 타고 가던 도중에 그만 부서지고 말았던 것이다. 당시의 왕에 대한 무례는 무거운 죄에 해당되었다.
“지난날의 공로를 인정해서 관대한 처분을 내리도록 하라.”
세종대왕은 관대한 처분을 내리고자 했다. 그러나 나라의 법은 사사로운 정을 용납하지 않는 엄격한 것이다. 결국 장영실은 곤장으로 볼기를 치는 형벌인 ‘장형’을 받고 벼슬에서 쫓겨났다.
그 후 장영실이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하다가 몇 살에 숨을 거두었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의 위대한 과학자인 장영실의 태어난 해와 죽은 해는 기록에 남아 있지 않다. 다만 그의 위대한 업적인 발명품들만이 우리들 곁에 남아 있을 뿐이다.
출처 : 왕연중 엮음, ‘꾸러기 발명왕’, =글수레,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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