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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적 존재
그레이스의 사랑 ‘마크’
“그레이스, 당신의 마음이 도대체 어디에 가 있는 거요?”
“몰라서 물으세요? 저는 지금 사랑에 빠져 있다고요. 호퍼!”
“뭐? 남편 있는 여자가 또 사랑에 빠져있다니, 대체 당신의 마음을 이렇게 사로잡는 녀석이 누구요?”
“마크에요.”
“마크? 마크라니… 그건 배의 이름이 아니요.”
“그렇다니까요. 마크는 키 2.6ｍ에 폭 16ｍ, 길이 2ｍ, 무게가 5톤이나 나가는 커다란 몸집을 가졌지요. 당신하고는 비할 바가 못 되요. 그러니까 질투할 생각일랑 아예 마세요.”
“아니? 여보!”
“그래도 절이해 못하시겠다면 우리 결혼생활은 끝낼 수밖에 없어요.”
“뭐라고?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요? 지금…”
말도 안되는 이야기 같지만, 첫눈에 사랑에 빠져 몇 달 뒤 남편과 이혼해버렸을 만큼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은 거선은 이름하여 ‘마크’였다.
“아버지, 저 이혼했어요.”
“아니? 그레이스 호퍼, 그게 무슨 말이야!”
“호퍼가 저의 일에 대한 열정을 이해하지 못해서 어쩔 수 없었어요.”
“아이쿠 머리야…”
이 의지의 여성 그레이스 머레이 호퍼는 1906년 12월 9일, 뉴욕에서 세 아이들 중 큰딸로 태어났다.
그녀의 아버지는 보험중개인이었고, 외할아버지는 토목기사, 증조할아버지 한 분은 남․북 전쟁 당시 해군소장이었다.
그레이스는 1934년, 그녀의 나이 28세 되던 때 예일대학에서 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10년 동안의 강사직을 마친 뒤, 37세의 나이로 미 해군 예비역에 지원했다.
“여성의 몸으로 전쟁을 돕는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텐데.”
“그래도 온 세계가 전쟁에 휩쓸려 있는데 여자라고 집에만 있을 수는 없지요. 저에게 일할 거리를 주십시오. 최선을 다 해 보겠습니다.”
그녀는 중위에 임명되어 보스턴의 명문인 하버드대학 지하에 자리잡은, 군수품 컴퓨터화 계획국에 배치되었다.
그레이스는 그곳에서 그녀의 인생을 바꾸게 한 첫사랑 ‘마크’를 만나게 된 것이다.
“아니, 체중이 겨우 48㎏인데 어떻게 해군이 되었지?”
그레이스는 해군의 최소 몸무게 기준인 64㎏에도 못 미치는 48㎏에 불과했지만, 이 작은 여성은 링 위의 권투선수처럼 강력한 펀치로 무장하고 있었고, 순전히 의지력 하나만으로 몰아부쳤다.
그레이스의 결혼 전 이름은 머레이였으나, 이혼 후에도 그녀는 여전히 전 남편의 이름인 그레이스 호퍼로 불리었다.
그레이스 호퍼는 재직하는 동안 한 번도 해상에 배치되는 일이 없어, 육지에서만 근무하게 되었다.
“해군인 나, 그레이스의 배는 컴퓨터이고, 전쟁은 새로운 발명을 하는 것과, 새로운 공식을 만드는 것, 그리고 새로운 언어를 창조하는 치열한 전투에 승부를 걸겠습니다.”
“그레이스 중위, 제2차 세계대전이 바로 우리의 손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오. 우리의 임무에 최선을 다 하시오.”
최초의 컴퓨터와 컴파일방식
컴퓨터 시대는 ‘마크 I (MARK I)’의 출현으로 시작되었는데, 그것은 1944년 그녀가 개발한 세계 최초의 전자 역학적인 컴퓨터로서 미 해군에 사용되었다.
“이 컴퓨터는 크기가 전투함만 하군. 글자 그대로 컴퓨터 전투함이야.”
그녀와 다른 두 수학자는 컴퓨터의 선구자인 ‘마크 I’을 위한 코드르 만들었다.
그 코드는 기계에 명령을 내리기 위한 목적으로 씌여진 길다란 숫자들의 나열로 구성되었다.
그 후, 그레이스는 ‘마크 Ⅱ(MARK Ⅱ)’의 개발에 들어갔고 1947년, 또 다른 괴물 하나가 탄생했다.
“와, 드디어 제2 컴퓨터 제작에 성공했다.”
“그레이스, 축하해!”
이 생소한 거인을 알지 못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보기술 앞에 놓여 있는 놀라운 미래와, 그것이 현대인의 모든 생활에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 ‘마크’라는 컴퓨터가 개발되었다는데, 대체 그건 뭐 하는데 쓰지?”
“그러게 말이야, 전쟁을 하는 데 그런 괴물이 왜 필요한 거야?”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4년이 지난 후, 해군중위 그레이스 호퍼는 하버드대학과 해군을 잠시 떠났다.
그리고 전자컴퓨터의 제1세대인 에니악(ENlAC)을 개발한, 손꼽히는 전자계산기 제조업체인 Messrs Eckert and Mauchly사에 자리를 잡았다.
“그레이스, 우리 회사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감사합니다.”
전자공학은 컴퓨터 세계에 속도를 부여했다. 그리고 그레이스 호퍼가 그들의 팀에 합류했을 때, Messrs Eckert and Mauchly 사는 컴퓨터 세계에 대변혁을 일으키게 될 새로운 컴퓨터 ‘유니백 I(U-NIVAC I)’의 마무리 작업에 들어가고 있었다.
“이 유니백 I은 너무 거대하지만 기억은 아주 정교해서, 많은 양의 정보를 받아들여 저장하고 불러 낼 수 있습니다.”
“정말 놀랍습니다. 대단해요!”
유니백 I과 함께 컴퓨터는 소수 특권자들만의 전유물에서 탈피하게 되었다.
“이제 바야흐로 컴퓨터 시대가 열리게 되는군요.”
“그렇습니다. 대중화가 멀지 않았어요.”
새로운 컴퓨터가 산업 경영에 적용되면서 상업화되기 시작했고, 수 십 대의 모델이 생산되었다.
1952년 그레이스와 그녀의 팀은 ‘A-O’로 알려진 유니백 I를 위한 시스템을 개발했다.
“오, 이것은 최초의 완성된 컴파일러 방식이라는 데 의의가 있어!”
컴파일러 방식이란, 프로그램 언어를 컴퓨터가 이해할 수 있도록 번역하는 프로그램이다.
오늘날에도 컴퓨터는 O과 1, 두가지 숫자로만 되어 있는 2진법 코드 명령에만 따른다.
그레이스 호퍼의 ‘컴파일러 방식’의 발명은 오토매틱 프로그램의 시대를 여는 파격적인 돌파주가 되었다.
항상 넘쳐나는 아이디어를 주체할 수 없었던 그레이스 호퍼는 집중적인 창조의 시대를 맞았다.
미국인의 신화 ‘그레이스 호퍼’
그레이스(Grace:은총)라는 이름은 그녀에게 무척 잘 어울렸다. 성스러운 은총으로 그녀는 항상 적재적소에 있었던 것이다.
그 새로운 영역에서는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었고, 그 미래는 장미빛이었다. 심지어는 여성에게조차 그러했다.
‘A-O’ 시스템의 뒤를 이어 ‘A-1과 A-2’가 나오게 되었다.
1955년에 완성된 획기적인 프로그램 ‘A-2’는 과학자들 사이에서 널리 사용된 최초의 프로그램이었다.
“우와! 정보기술 분야에서 많은 발전이 기대되는 프로그램이야!”
정보기술 분야에서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발전이 빠르게 일어나기 시작했다.
1957년, 그레이스 호퍼와 동료 기술자, 수학자들은 ‘B-O’를 창조했다.
“이것은 경영정보 처리과정에 적합한 최초의 프로그램언어야. 플로 매틱(flow-matic)이라고 하지.”
1957년, COBOL은 광명의 날을 맞이하게 되었다.
근 3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코볼은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언어 중 하나이고, 경영과 행정에 적합한 언어가 된 것이다.
그레이스 호퍼의 팬들은 그녀의 ‘코볼의 어머니’라고 부르지만, 꼭 그렇다고만은 할 수 없다. 40여 명이 코볼을 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코볼은 그레이스가 창조한 언어, 플로 매틱으로 부터 크게 도움을 받았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레이스 호퍼는 많은 수상경력을 갖고 있다. 수많은 상들과 명예박사학위들, 그 밖에도 70여 개 이상이 된다.
그 중 하나를 소개하자면 1969년, 그레이스는 ‘올해의 인물’로 선정되었다. 그것은 미국의 ‘경영정보(Data Prccessing Management)’에서 매년 수여하는 것으로 컴퓨터 공학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에게는 최초로 수여된 경우에 해당한다. 그녀의 팀에서는 경사였다.
“그레이스, 컴퓨터 공학 분야에서 최초인 것 알아?”
“그래, ‘올해의 인물’에 선정되었다니 꿈만 같군.”
“정말, 대단한 여성이야.” 63세에도 이렇게 인기가 좋다니. 한턱내야지.“
“알았어. 다들 나가지.”
1985년 그레이스가 해군소장으로 승진했을 때, 또 다른 왕관이 미 해군에서 종사하는 최고령 장교의 머리에 씌워졌다.
“그레이스 소장님! 미 해군의 가장 어른이 되십니다.”
“호호호, 할머니 소장이겠지. 하지만, 내 마음은 지금도 삼십대의 그 왕성한 전투정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명심해 두라고!”
“녯, 그레이스 소장님!”
수많은 명예에도 불구하고, 이 나이 든 여성은 상식이나 전투정신을 조금도 잃지 않았고, 여전히 잘 정돈되어 있었다.
“젊은이들이, 나가서 행동해! 묻지 말고. 허락을 얻는 것보다는 사과하는 것이 훨씬 쉽지. 여러분은 허락을 기다리는 것이 참을 수 없을 거야.”
“소장님은 여전히 젊은이를 좋아하십니다.”
“팬이기도 하지. 왜냐하면 그대들의 마음은 늘 열고 있고, 새로운 생각들에 대해 수용적이기 때문이야.”
“멋쟁이 할머니 소장님, 저희들도 소장님의 팬입니다. 저희들에게 남겨주고 싶은 격언이라도…”
“항구에 놓여 있는 전함은 안전하지만, 그것은 전함이 만들어진 목저이 아니야. 그것을 잘 알라고!”
보통 지휘관들과, 그들의 닫힌 사고는 그레이스와는 거리가 멀었다.
설사 그녀가 제독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을지라도, 관습적이라든가 인습적이라는 면은 결코 찾아볼 수 없었을 것이다.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망원경은 과거가 아닌 미래에 잘 맞추어져 있었다.
그레이스의 사무실에는 배에서 사용하는, 거꾸로 돌아가는 시계가 걸려있었다.
지휘관들이, “이것이 늘 행해지던 관행이다.”라고 주장하면, 그녀는 말없이 그 시계를 가리키곤 했다.
그녀는 전통적인 경로를 따라 문제에 접근하는 사람들에게, 보다 많은 길이 있음을 상기시켜주는 사람이었다.
그레이스는 해군 모자를 쓰고 있다는 것 때문에 많은 오해를 불러 일으켰다.
“할머니, 식당은 어디지요?”
“이곳 관리인이십니까?”
공항이나 호텔로비, 식당에서 사람들은 종종 이 작은 은발의 여인을 경비원이나 보통 관리인으로 착각하곤 했던 것이다.
그녀는 말한다.
“하루는 세관 수속절차를 마치고 왔는데 말이야. 누가 내게 ‘만약 당신이 정말 해군에서 일하고 있다면 당신은 가장 나이 많은 해군임에 틀림없소.’ 라고 말했어.”
그런 이야기로 청중을 약간 놀라게 한 뒤, 눈을 반짝이며 그녀는 모자를 벗고 강연을 시작했다.
그레이스 호퍼는 미전역에서 강연 요청을 받는 연설가이기도 했다.
그녀는 1년에 20차례의 연설을 했고, 그녀의 연설을 들으려면 6개월 전에 예약해야 했다.
1986년 10월, 80세의 나이로 은퇴하기 전까지 그녀의 생활은 그러했다.
그러나 사실은 그 은퇴도 진정한 은퇴라고 할 수 없었다.
“그레이스 호퍼, 당신을 우리 해군의 특별 고문관으로 임명합니다.”
해군장관이 그녀를 불러들여, 더 훌륭한 제복을 입혀 특별고문관으로 임명했으므로 다시 숨 쉴 시간도 없이 지내게 되었던 것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컴퓨터 프로그램언어 창시자들 중에서도 가장 영예로운 자리를 차지한 그레이스 호퍼가 8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그녀는 미국에서, 고향 사람들에게서 살아있는 신화적 존재였다.
글 : 왕 연 중
(한국발명문화교육연구소 소장 겸임 영동대학교 발명특허학과 교수)
(이메일 : wangyj39@dreamwiz.com 전화 : 011-890-85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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