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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에 타지 않은 실
병상에 누운 여인
1981년 겨울, 유고슬라비아의 조그만 병실에 한 여인이 식음을 전폐하고 누워 있었다.
“여보, 뭘 좀 먹어야지.”
판사인 그녀의 남편이 간절하게 말했지만 그녀는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광대뼈가 앙상하게 드러난 얼굴에 핏기라곤 하나도 없었지만 두 눈은 맑았다. 이제 갓 40을 넘긴 그 여인의 이름은 비다 포포빅으로 유고슬라비아의 유명한 발명가다.
그러나 비다는 사랑하는 남편에게조차 입을 뗄 기운이 없을 만큼 깊숙하게 자리한 절망감으로 벌써 몇 개월 째, 누워만 있었다.
‘나는 내가 왜 살아야 하는지 이유를 모르겠어. 차라리 죽고 싶어…’
그랬다. 그녀의 심경에는 이미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여보, 나 또 올께. 몸조리 잘하시오. 그럼 다녀오겠소.”
“……”
손을 흔들며 병실을 빠져나가려는 남편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이는 그녀의 눈언저리로 물기가 가득했다.
이윽고, 병실이 텅 비자 그녀의 눈은 창밖으로 앙상하게 모습을 드러낸 나뭇가지에 머물렀다.
그리고 1976년, 자신의 두 번째 발명품이자 그녀에겐 가장 소중한 발명품인 비다 실(Vidasil)을 만들어 내기까지의 여정이 되살아났다.
가난한 소녀의 꿈
유고슬라비아의 몬테그로에 아름다운 석양빛이 거리를 뒤덮었을 때였다.
“비다 포포빅, 자 이제 네 차례야. 어서 술래 해.”
동네 공터에서 여자 아이들 몇이서 놀이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눈이 동그란 소녀 하나가 뒷걸음질을 쳤다.
“아니야, 나 이제 그만 집에 가 봐야 돼! 엄마를 도와드려야 해.”
“뭐? 조그만 네가 어떻게 어머니를 돕겠다는 거야. 그러지 말고 어서 놀자.”
“안돼, 나 먼저 간다.”
비다 포포빅은 아쉬운 마음을 떨치며 자꾸 뒷걸음질을 쳤다.
눈이 동그란 소녀 비다는 가난한 부모님 밑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심한 생활고에 시달렸기 때문에 이렇듯 마음 놓고 친구들과 함께 제대로 놀 수조차 없었다.
“얘, 비다야, 어서 방 좀 치워라.”
비다는 가난하고 배움이 없는 부모님에게서 일곱 형제 중 첫째 딸로 태어났다.
그래서 어린 비다는 어머니를 도와서 동생들을 돌보거나 집안일을 해야 했다.
비다는 그러면서도 항상 책읽기를 좋아하고, 공부를 잘 해서 반에서는 수석을 차지했다.
“우리 비다가 이번에도 일등을 했구나, 착한 내 딸…”
비다의 어머니는 그 때마다 비다를 꼭 안아 주었다.
수석을 놓치지 않은 덕에 비다는 열아홉 살이 되는 해, 장학금을 받아 대학에 가게 되었다.
“아버지, 저는 화공학과의 연금학 분과에 가고 싶어요.”
“아니, 여자가 무슨 화공학과야? 졸업하면 좋은 곳에 취직해서 돈을 벌 수 있는 학과가 좋지. 무슨…”
경제적으로 도울 수 있는 일을 찾기를 바라는 부모님의 뜻과는 달리 그녀는 화공학과에 입학했다.
대학에서의 첫 1년은 끔찍할 정도로 모든 것이 부족했다. 책은 물론이고 입는 옷, 먹는 음식 등 어느 것 하나 풍족한 것이 없는 학교생활이었지만 그녀는 간신히 대학을 졸업했다.
비다에게는 한 꿈이 있었다. 그것은 발명가가 되는 것이었다. 다른 수많은 발명가들처럼 비다에게도 발명에 관한 생각이 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결국 1976년 비다실을 발명했다.
그녀의 나이 35세 때의 일이다.
비다실이란 1,500은의 높은 열에서도 견딜 수 있는 불연성 단열재를 생산하는 공정이다.
“여보, 정말 놀라운 발명을 했구려. 축하하오.”
그녀와 가장 가까이 있는 남편이 제일 먼저 그녀를 축하해 주었다.
“하지만 이제 시작에 불과해요.”
“그렇겠지. 그런데 그건 어떻게 해서 그렇게 높은 열에서도 견디지?”
“제가 조금 설명해 드릴게요. 비다 실은 석회, 석영, 물 석면 또는 섬유소로 만들어지는데 돌과 같은 조직을 갖고 있지요.”
“엄마, 그럼 돌처럼 단단해요?”
아빠 엄마의 이야기를 유심히 듣고 있던 아들이 물었다.
“그렇지. 집을 지을때나, 불이 나도 옆으로 번지지 않게 하는 열 차단제, 난방장치 주물과 거푸집, 소방서의 아저씨들이 불을 끄려면 열에 견디는 옷을 입어야 하겠지? 그때 필요한 내화성 안감, 포장재, 냉동설비와 우주과학에 이르기까지 그 사용범위가 아주 넓단다.”
“와, 엄마! 맞아요. 우주선을 타는 아저씨들이 우주복으로 만들어 입으면 좋겠어요.”
“우리 아들 머리가 최고구나. 하하…”
나무나 금속에 사용하는 기계로 비다 실을 갈거나, 구멍을 내거나, 윤곽을 그릴 수도 있다. 비다 실은 금속재, 석재, 판재 등 여러 형태로 생산되는데, 그것은 나무와 세라믹을 결합한 물질과 비슷한 공진을 갖고 있다.
비다 실은 미생물이나 곤충, 또는 다른 생물로부터 침해를 받지 않기 때문에 쉽게 상할 염려가 없다.
그런데 비다는 비다 실의 제조과정만 개발한 것이 아니라 생산에 필요한 기계와, 설비도 고안해냈다.
그녀는 꿈에 부풀어, 자신의 발명품을 생산하는 공장을 세우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아들의 사랑
어느덧 40대 초로의 여인이 되어, 병상에 누운 비다는 지난날을 회상하는 동안 내내 눈물을 흘렸다.
1981년 초, 발명품을 생산하기 위해 공장을 세우려했던 그녀의 꿈이 좌절되자 비다는 마치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은 절망감을 느꼈다.
그녀가 사는 유고슬라비아 정부는 그녀에게 너무나 비협조적이었던 것이다.
그들을 납득시키려고 노력하다가, 잘 되지 않자 마침내 그녀는 병상에 누워 심하게 앓기 시작했다. 남편의 성화에 못 이겨 이 병원 저 병원, 이 의사 저 의사를 찾아다녔지만 백약이 무효였고 그러다가 마침내 삶에 대한 의지를 상실하여 죽고 싶다는 마음으로 병상에 누워있는 그녀의 얼굴은 광대뼈가 드러났다.
그렇게 앓기 시작한지 8개월이 지난 어느 날, 오후였다.
“엄마, 엄마가 공장을 세우지 못하면 이제 돌아가실 것 같아요.”
비다의 아들이 눈물어린 눈으로 그녀의 손을 잡고 간곡하게 말했다.
그녀의 병이 왜 생겼는지, 정말 그녀의 병이 무엇인지 아들만이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비다는 감성적이지만 날카로운 지성에 빛나는 눈으로 저으기 아들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들의 말은 이제 사뭇 애원하는 투였다.
“엄마, 엄마한테 일을 해달라고 부탁한 독일로 가서 공장을 세우세요.”
비다는 새삼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감사한 마음을 안고 아들을 주시했다.
갑자기 새로운 날이 밝아오는 것 같았고, 그제 서야 그녀는 처음으로 병이 낫기를 기도했다.
그녀는 마침내 병상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친구들을 통해서 작은 공장 건설에 필요한 융자금을 얻고, 정부의 허락이 떨어져 기계를 만들어 설치하게 되었다.
결국 그 공장에서 비다 실을 생산하게 되었다.
“여보, 드디어 당신의 꿈이 이루어 졌구려! 건강해져서 다행이오.”
“엄마, 정말 축하해요.”
정부는 감독 한 사람과 근로자 두 명을 파견했다.
그러나 창의성과 활동성에 익숙치 않은 그들의 눈에 비다는 이방인으로 비쳤고, 그들을 귀찮게 한다고 생각했다.
결국 공장가동은 잠시 중단되어야 했다.
‘안돼, 여기서 끝낼 수는 없어.’
임시변통으로 비다는 경영자겸 공장 감독관으로 1인 2역을 하며 어렵게 비다실을 생산했다.
공장의 재정은 신통치 않았고, 작업장은 절반밖에 완성되지 않은 상태여서 건조기도 없었다.
가공처리와 절단기가 없어 손으로 모든 일을 하면서도 그녀는 열심히 일했다.
그때를 비다는 이렇게 회상했다.
“겨우 물건 하나를 팔명 그 돈은 바로 공장을 완성시키는 데 들어갔다.
하지만… 나는 행복했다. 공장에 있으면 마치 어머니의 뱃속에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창의적인 직관도 하나의 천부적인 재능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잘 이해되지 못한다는 것을 내가 미처 알지 못했기 때문에 고통을 받았다.”
비다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열심히 일하는 것은 행정당국의 관료주의적인 시각으로는 오히려 수상쩍은 일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습관이 변하는 것에도 익숙하지 못했다.
그런 국가에서, 비다가 뛰어난 발명가의 소질을 싹틔우고 있다는 것을 실감한 것은 외국에서 그녀를 인정하고 나서 부터였다. 비다가 1986년 12월 국제 발명전인 ‘브뤼셀유레카(Brussels Eureka)’에서 최우수상을 받게 된 것이다.
“비다씨, 축하해요.”
“그렇게 획기적인 발명을 했다니…”
비다실이 갖게 된 명성의 결과로, 드디어 모든 가능성이 열리게 되었고, 비다는 공장을 완성할 융자금을 얻게 되었다.
“비다실을 구입하게 해주세요.”
“어떻게 하면 계약을 할 수 있습니까? 비다 실을 사고 싶습니다.”
갑자기 그녀의 집 앞에는 300명이 넘는 유고슬라비아 구매자들이 줄을 섰고, 당국에서도 갈채를 보냈다.
그녀의 발명품은 1987년, 그 해 최고의 발명품으로 정해졌다.
비다실의 주문이 쇄도하여 전 생산능력을 발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성공들도 1년 뒤, 그녀의 공장 문을 닫는 일은 막지 못했다.
“비다씨, 왜 공장 문을 닫으시겠다는 것이지요? 이렇게 성공을 했는데…”
“자신을 되찾았고, 이제 홀로 설 수 있다는 확신이 섰기 때문이지요.”
“그렇다면 더욱 공장을 가동해야 하지 않겠어요? 주문량이 날마다 쇄도하고 있다는데…”
“그러나 이젠 지쳤습니다. 설사 발명가 자신이 스스로 이룩한 공장이라 할지라도 발명가의 위치는 공장주인이 될 수 없다고 말하는 비평가들에게도 진력이 났고, 70여 명이나 되는 근로자들을 훈련시키고 사기를 북돋워주는 일 또한 가정을 가진 주부 입장에서는 보통 일이 아니지요.”
사람들은 천재든 아니든 간에 여성들이 어머니와 아내라는 전형적인 모습으로 남아주기를 바라는 것이 사실이다.
“나는 6년 동안 매일 175㎞를 운전해서 집과 공장을 왔다 갔다 했어요. 내가 하루에 몇 시간을 일했는지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나는 한 번도 제시간에 집에 온 일이 없지요.
어느 때는 시작한 일을 마무리하기 위해 공장에서 밤을 새운 적도 있어요. 남편이나, 어린 두 아들에게 죄스러움을 느낍니다.”
결국 비다는 1988년 2월 이후, 집에서 연구를 계속했다.
그녀는 이제 스타인벡, 도스토예프스키, 브로드스키, 니체, 엘리엇, 헤겔, 폴크너, 프롬, 사르트르와 지드의 작품에도 눈을 돌리고 있다.
“내 일을 잘해내기 위해서는 기술에 관련된 과학 서적 뿐만 아니라, 가끔 문학작품을 읽는 일도 필요합니다. 책의 도움 없이는 공허하게 되고, 많은 일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지요.”
“비다씨가 여성이 아니고 남자였더라면, 일생을 과학에 바친다는 이유로 받았던 비난이 훨씬 덜 했겠지요?”
그들을 향해 비다는 이렇게 말했다.
“어떤 상황에서라도 모든 개인이 그 자신의 삶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는 것은 매우 가치 있는 일입니다. 그동안 나는 정말 흥미롭고 열성적으로 그 일을 해왔으니까요.”
글 : 왕 연 중
(한국발명문화교육연구소 소장, 영동대학교 발명특허공무원학과 교수)
(이메일 :wangyj39@dreamwiz.com 전화 : 011-890-85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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