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츄잉 껌
치약과 치솔
“제일 먼저 이를 닦자/ 웃니 아래 이 닦자/ 세수 할 때는 깨끗이 이쪽저쪽을 모두 닦고/ 푸후 치카치카⋯”
세면장에서 노래를 불러가며 세수를 하는 똘똘이. 밖에서 기다리다 못해 욕실 문을 두드리는 차순이.
“오빠, 빨리 해!”
“크하아, 알았어. 지금 나간다니까.”
똘똘이는 수건으로 얼굴을 문지르며 밖으로 나왔다.
“기집애, 오빠가 모처럼 이를 깨끗이 닦으려했더니 방해를 놔?”
그러자 식탁 위에 아침상을 차리던 엄마가 이 광경을 보고 한마디 했다.
“어쩐 일이야? 우리 똘똘이가 이를 다 닦고⋯ 해가 서쪽에서 뜨겠네.”
“엄마, 너무 그러지 마세요. 이제부터 잘 닦기로 했단 말이에요.”
“왜? 충치 생겨서 또 병원에 가게 될까봐?”
“그게 아니고, 내 옆 짝꿍이 오늘부터 선미로 바뀐단 말이에요.”
“선미? 너희 반에서 가장 예쁘다는 그 애 말이니? 어쩐지⋯⋯”
그러자 거실 소파에 앉아 신문을 읽고 있던 똘똘이 아빠가 말했다.
“녀석, 벌써 부터 밝히기는⋯”
“호호호, 피는 못속인다니까요.”
곱게 눈을 흘기며 아빠에게 말하는 엄마.
“그게 아니란 말이에요.”
얼굴을 붉히며 자기 방으로 들어가는 똘똘이의 등에 대고 아빠 엄마는 한바탕 웃음보를 터뜨렸다.
똘똘이는 놀리는 아빠엄마가 약간은 원망스러웠지만 기분은 썩 나쁘지 않았다. 어릴 적 소꼽친구였다는 아빠와 엄마가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것이 이유이다.
‘흐흐, 나도 선미랑 한번 사귀어 볼까? 이도 깨끗이 닦았으니 오늘부터 폼을 잡아 봐?’
똘똘이는 거울을 보며, 표정을 일그러뜨렸다가 미소를 지었다가를 반복했다.
‘부드러운 남자를 좋아할까? 아니면 이렇게 씩씩한 남자를 좋아할까? 아무튼 여자란 요물이라는데 얼굴 좀 예쁘다고 도도하게 굴면 어쩌지?’
그때였다. 밖에서 엄마의 목소리가 똘똘이를 재촉했다.
“똘똘아, 뭐해? 빨리 밥 먹고 학교 가야지!”
그제서야 똘똘이는 옷매무새를 다듬으며 밖으로 나왔다.
“그러고 보니 똘똘이가 말쑥해졌네.”
엄마의 말에 아빠의 맞장구가 이어졌다.
“어, 정말 그렇구나. 언제 그 선미라는 애를 한번 초대하지 그래!”
“정말이세요 아빠? 내일이라도 한번 초대할테니 맛있는 거 사 주실래요.”
“녀석, 급하기는⋯ 천천히 생각해 봐.”
“헤헤헤 알았어요. 아빠!”
그리고 한 달쯤 지난 어느 날 아침, 똘똘이는 치약과 칫솔을 손에 들고 입속으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훈민이 녀석! 두고 봐, 선미는 내 짝인데 지가 가로채? 나쁜 녀석’
똘똘이는 칫솔위에 길게 치약을 짜놓았다.
‘흥, 칫솔가는데 치약있고, 바늘 가는데 실 따라가지. 제까짓게 아무리 그래도 이 똘똘이만은 못하다는걸 곧 알게 될거야. 언젠가는 내게 무릎 꿇고 싹싹 빌게 될 걸! 데려가 달라고⋯’
그러다가 똘똘이는 갑자기 수돗물을 확 틀어놓고 치솔에 묻은 치약을 다 털어내며 씻어버렸다.
‘에잇, 이 닦기 싫어! 이 안 닦고도 이가 썪지 않게 하는 방법은 없나? 이 귀찮은 일을 왜 매일 반복해야 하는 거야. 도대체⋯’
과학자 클레버
퍼듀대학의 과학자 칼 클레버 박사는 껌에 대한 높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입냄새를 없애주는 껌, 당분을 최대한으로 억제한 껌, 신비한 열대과일의 향을 맛볼 수 있는 껌 등⋯ 바야흐로 껌들의 춘추전국 시대로군.’
클레버 박사는 어느 날, TV를 보며 껌을 선전하는 광고를 듣고 혼자서 중얼거리고 있었다.
‘프라그를 제거해주는 껌, 입 냄새를 없애주고, 치아를 광내주는 껌을 만든다면 젊은 층에 꽤 인기가 있을 것 같은데⋯’
클레버는 이렇듯 기능 껌을 만들어낼 것을 결심하게 되었다.
‘씹기만 하면 차아에 붙어있는 프라그를 제거해 주고, 치아를 깨끗하게 하는 껌을 만들자.’
그래서 클레버는 기존의 껌을 사용하여 원료나 재료를 분석하고, 어떻게 하면 잇몸 질환의 원인인 프라그를 제거하고 치아 표면에 광택을 낼 수 있을까 연구하게 된 것이다.
‘씹어서 프라그를 제거하는 기능, 치아를 광택나게 하는 기능이라⋯ 그런데 어떻게 하면 될까?’
클레버는 대학을 오고 가고, 거리를 산책하며, 집에 앉아있을 때에도 온통 그 생각 뿐이었다.
그는 연구실에 틀어박혀, 성분을 분석한 츄잉 껌에 수없이 많은 물질을 첨가해 보며 실험을 계속했다.
그러나 새로운 껌의 개발이란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느 날, 클레버는 그 날도 연구실에 틀어박혀 늦게까지 껌과 싸우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여보, 나 왔어요.”
그런데 여느 때 같으면 초인종을 울리기가 무섭게 문을 열어줄 아내가 보이지 않았다.
‘아니, 이 늦은 시간에 이 사람이 대체 어디 간 거지?’
이상하게 생각한 클레버는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욕실문을 열어보고, 방마다 안을 들여다 보았다.
‘화장실에 갔나? 아닌데⋯’
그러다가 맨 마지막으로 침실문을 연 그는 기겁을 하며 놀라고 말았다.
“누⋯ 누구야!”
침대 위에는 얼굴이 흑인처럼 까만 여자가 누워있었기 때문이다.
그제서야 침대 위의 여자가 윗몸을 일으키며 입을 열었다.
“어머, 늦으셨네요. 저에요.”
클레버는 침실 안으로 들어서며 목소리를 낮추었다.
“아니, 집에 있으면서 문도 안 열어주고⋯ 그런데 얼굴이 그게 뭐요? 나는 왠 흑인이 우리 방에 와 있나 했네.”
“호호호⋯ 여보, 미안해요. 당신이 늦으신다기에 오랜만에 진흙팩을 하고 누웠다가 그만 깜빡 잠이 들었어요.”
“뭐? 진흙팩이라고? 그걸 왜 하는거요? 보기 역겹고만.”
“이건 피부 속의 불순물을 제거하여 피부를 부드럽게 해주고, 또 촉촉해서 화장도 잘 받게하고⋯”
“뭐? 피부의 불순물을 제거한다고? 정말이요?”
“그렇다니까요. 왜 그렇게 놀라세요? 저, 가서 세수하고 올께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클레버의 아내는 부시시 일어나 침실을 나갔다.
‘진흙이 불순물을 빨아들인다고⋯’
클레버는 무릎을 탁 쳤다.
‘바로 이거다! 날이 밝으면 즉시 가서 실험해 봐야지!’
클레버는 슬그머니 미소를 지었다.
‘치아를 광내주는 껌’ 탄생
클레버 박사의 진흙과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진흙 속에 어떤 성분이 있는지, 그리고 그 성분이 어떤 기능이 있는지 실험 연구해 보자.’
오랜 연구 끝에 클레버는 카오린이라는 물질을 찾아냈다.
카오린은 진흙을 높은 온도에서 처리하여 정제한 것으로 어쩐지 껌과는 어울리지 않는 재료처럼 보인다.
그러나 클레버 박사는 이렇게 설명한다.
“이 카오린이라는 물질은 치아의 외피를 다치지 않게 하면서 잇몸질환의 원인인 프라그를 제거하고, 치아 표면에 광택까지 부여합니다.”
정말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츄잉껌의 기본 원료나 재료는 여타의 껌들과 같습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카오린이라는 독특한 재료를 참가한 것이지요.”
광택을 내는 껌의 개발에 성공한 클레버 박사는 모회사를 통해 임상실험에 들어갔다. 수많은 사용자가 다음과 같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개운해지는 느낌이 들었어요.”
“제 친구들이 먼저 알아보던걸요. 제 치아가 전보다 깨끗해졌다고 다들 난리에요.”
“바빠서 양치질을 잊었을 경우에도 아주 좋더군요.”
개발자인 클레버 박사나, 제과회사 양쪽 모두 이 호의적인 반응에 꽤나 좋아하고 있는 것 같다.
특히 이런 긍정적인 반응은 젊은층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 실용적인 것을 추구하는 젊은 세대의 경향에 일단은 성공적으로 합류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이 껌으로 칫솔질을 대신하게 할 계획은 아직 없습니다. 일단은 기존의 칫솔질을 보완할 목적으로 이 껌을 씹도록 유도해야지요. 그러나 더 큰 문제는 그 뒤에 기술을 보완한다면 가능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약간은 여유있는 제과회사 관계자의 말은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풍토를 점치게 한다.
“똘똘아, 너 뭐하니?”
똘똘이 엄마는 하루종일 뭔가를 우물거리는 아들에게 보다못해 물어본다.
“껌 씹고 있어요.”
“껌? 언제부터 껌을 좋아했지? 전에는 한번도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이건 특수한 껌이에요.”
“특수한 껌이라고?”
“녜, 씹고 있으면 입 냄새를 제거하고요, 치아를 깨끗하게 해요.”
“그것이라면 음식을 먹고난 후엔 꼭 칫솔질을 하면 되잖아.”
“아니, 그 정도가 아니고 잇몸에서 생기는 각종 질병의 주범인 프라그를 제거해 준다니까요.”
“아, 그래서 너 요즘 이를 안닦는거 아니야?”
“어떻게 아셨어요?”
“칫솔이 벌써 며칠째 그대로이고, 치약도 전혀 쓰지 않았더구나.”
“우와, 들켰네!”
“너 계속 그러면 선미에게 일러준다. 이도 잘 안 닦는다고⋯”
이처럼 칫솔질 대신에 카오린이 함유되어 있는 껌을 씹고, 그대신 우리의 욕실에서 칫솔과 치약은 영영 사라지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들은 고시대의 유물이 되어 박물관에 들어앉게 될지도⋯
“자, 학생 여러분, 지금부터 보시는 것은 치약과 칫솔이라고 합니다. 1900년대에 우리의 조상들이 이것으로 이를 닦았지요. 음식을 먹을 때마다, 그리고 하루에 세번이상 3분씩⋯”
“와, 되게 귀찮았겠다. 그치?”
“그러게 말이야. 우리처럼 음식을 먹고 난 후에 껌을 씹으면 저절로 치아가 닦이는 것이 얼마나 편리한지 아마 조상들은 모를거야.”
“하긴 그러니까 칫솔질로 일생을 보냈지. 요즘이야 얼마나 바쁜 세상이니? 칫솔질할 시간이 어디 있어!”
“정말, 그때만 해도 옛날이야!”
어쨌든 세상은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는 사이에도 쉴새없이 발전하고 있음이 틀림없는 것 같다.
아이들의 군것질거리로만 여겨졌던 껌이 어느새 우리의 생활패턴을 바꿀 무기로 탈바꿈되어 있고, 절대 먹지 못할 것으로만 생각했던 진흙 속에서 껌의 성분이 될만한 물질이 추출된다니.
컴퓨터의 좌판을 두드리며 새로운 기능을 탐색하는 세대에게 단순한 상품은 더이상 먹혀들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
급변하는 사회에 발맞추어 무엇이든 실용적인 것을 찾고, 그 기능을 중시 여기는 세태에서 살아남으려면 다기능적이며 동시에 전문적인 인간, 그리고 기업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역할을 내주고 밀려나는 치약과 칫솔의 꼴이 되기 십상일 것이다.
이제부터 앞으로 십년 후, 그 때엔 어떤 형태와 어떤 기능의 껌이 탄생될까?
-프라그를 제거해주는 껌. 당신의 치아를 깨끗하게 해드립니다.-
이제 어쩌면 우리 모두 이런 선전문구를 TV나 라디오를 통해 듣게 될지도 모르겠다.
몇몇 제과회사들이 새로운 차세대 기능껌, 클레버의 ‘치아를 광내주는 껌’에 눈을 돌렸기 때문이다.
현재는 임상 실험 중에 있지만, 다소 보수적이고 경직되어있던 껌 시장에 새로운 회오리 바람을 몰고 올것이 틀림없다.
자못 기대가 크다.
글 : 왕 연 중
(한국발명문화교육연구소 소장, 영동대학교 발명특허학과 교수)
(이메일 : wangyj39@dreamwiz.com 전화 : 011-890-85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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