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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동수(生動水)
한밤의 불청객
“휘이잉⋯ 휘잉⋯”
거센 눈보라가 거리를 휩쓸고 지나갔다.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몰아치는 겨울의 바람은 무언가 삼켜야지만 잠잠해질 것 같은 기세였다. 추위에 눈에 놀란 듯 거리는 조용했고 사람들의 발걸음도 무거워 보였다. 어둠이 내려와 짙게 그늘진 거리는 사람들의 시야를 어지럽게 했다. 그러한 거리의 저 골목 끝에서 한 사람의 희뿌연 그림자가 나타났다. 중년의 세월을 거친 듯 보이는 키 작은 신사였다. 길게 늘어뜨린 수염과 온 몸을 휘어감은 망토와 그 끝에 달린 모자를 얼굴이 파묻히도록 깊게 눌러쓰고 있었다. 그의 어깨와 망토모자에 내려앉은 수북한 눈은 오랜 동안 거리를 헤매고 다녔음을 짐작하게 했다.
신사는 큰 골목을 지나 세 번째의 막다른 골목으로 몸을 돌렸다. 문들로 가득찬 작은 골목길을 지나 모퉁이를 돌자 검붉은 나무로 짜여 진 문이 나타났다.
“똑똑⋯”
짐승의 포효하는 듯 거친 바람의 울음소리가 문의 노크 소리를 집어 삼킬 듯 했다.
“누구시요!”
얼굴을 보이지 않은 문의 안쪽에서 평온한 밤을 방해하는 방문자에 대한 불쾌감으로 가득한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날세⋯”
굳게 닫혀있던 문이 살포시 열리자 실내의 훈훈한 공기가 신사의 코끝을 스치고 지나갔다.
“어떻게 된 일인가? 이렇게 눈을 흠뻑 맞고는⋯”
“야외 광장에서 열린 정치 토론회에 참석하고 오는 길이야⋯”
“뭐? 그럼 그곳에서부터 이곳까지 걸어왔단 말이야? 십 키로도 더되는 거리를⋯ 거기다 앞이 안보일 정도로 눈이 내리는데⋯”
“응⋯ 그나저나 손이 얼어버릴 것 같아. 뜨거운 물 좀 가져다 주겠나? 씻어야겠어.”
애써 지친 표정을 감추며 눈이 녹아 축축해진 망토를 벗었다.
“이봐. 갈릴레오! 어서와. 준비가 다 되었네.”
“고마워⋯ 앗!”
세면 그릇에 손을 담그던 신사는 화들짝 놀라며 손을 빼냈다. 그의 손끝으로 흘러내린 물줄기가 카페트 위로 떨어졌다.
“무슨 일이야? 뜨거운 거야? 그럴 리가 없는데⋯”
갈릴레오의 행동이 이상하다는 듯 손을 세면대에 담그어 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한데⋯ 순간 물이 무척 뜨겁게 느껴졌는데⋯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아.”
갈릴레오도 다시 손을 담그어 보고는 고개를 흔들었다.
“자네가 추운곳에 있다가 들어와서 그런거 아닐까?”
“왜 같은 온도의 물인데, 자네와 내가 다르게 느끼는 거지? 아주 잠깐 동안에 물이 식었을 리는 없잖아.”
갈릴레오는 자신의 손과 세면대에 담긴 물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러나, 끝내 알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그의 얼굴에는 궁금함으로 가득 찬 호기심이 어려 있었다.
이 신사가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진 유명한 천문학자며 과학자였던 갈릴레오 갈릴레이이다.
갈릴레오는 참 많은 발견·발명을 한 위대한 사람이었다.
피사의 탑에서 크기가 다른 두 공을 떨어뜨려 무게가 속도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사실과 천체의 관찰로 지구의 자전을 확인하는 등의 “자전 설”을 밝힌 일등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그가 이러한 일들을 한 개인으로 해낼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꼼꼼하고 신기한 일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 호기심과 작은 부분도 놓치지 않는 섬세한 성격 덕분이었다.
살아있는 물
여름의 뜨거운 햇살이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베니스의 시장터로 부서져왔다. 사람들 사이에서 오가는 흥정의 뜨거운 열기와 고함 소리로 시장 안은 더욱 후덥지근하게 느껴졌다. 거리로 쏟아져 나온 수많은 인파속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사람이 있었다. 턱밑까지 길게 자란 수염과 작은 키에 살이 붙어 약간은 통통해 보이는 사람이었다. 바로 갈릴레오였다. 그에게 시장의 모습은 아주 흥미롭고 재미난 곳이었고 신나는 자극을 주는 곳이었다. 쉴새없이 구경거리를 제공하는 이곳에서 운이 좋은 날이면 그의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는 사건을 만날 수도 있었다. 또, 곳곳에서 장사를 하기위해 배를 타고 온 이방인들을 통해 다른 지역의 소식을 전해 듣기도 했다.
그에게 있어서 시장은 사교의 장소인 동시에 정보 획득의 역할도 해주었다.
‘이번은 별로 재미난 일이 없는 걸⋯ 그래도 오래간만에 나온 건데⋯ 무료하고 더운데 서둘러 돌아가야지⋯’
시장을 돌던 갈릴레오가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상점의 천막이 놓인 모퉁이를 막 돌던 때였다.
“자, 보십시오! 이 얼마나 기막히고 놀라운 장면입니까? 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시는 볼 수 없습니다. 아마 평생을 두고 후회하게 될것입니다. 자 동전2개! 동전2개로 멋진 추억을 만드세요.”
그의 어깨 너머로 날카롭고 찢어지는 듯한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안보면 평생 후회한다고⋯ 음⋯ 그럴 수는 없지⋯’
갈릴레오는 소리가 들리는 곳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그의 시선이 머무른 곳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을 정도로 사람들로 가득했다. 사람들은 미리 약속된것처럼 둥그렇게 원을 만들어 서 있었다. 키가 작은 갈릴레오는 사람들 사이를 헤쳐 나가 힘들게 앞으로 다가가 앉았다.
사람들이 둘러싼 가운데는 번쩍이는 구슬로 치장한 우스꽝스러운 모자를 눌러 쓴 한 노인이 있었다. 그리고 노인 앞에 놓인 탁자 위에는 검은 보자기가 덮인 알 수 없는 물체가 있었다. 허풍스런 노인의 고함은 계속됐다.
“자! 그럼 지금부터 살아 움직이는 물을 보시겠습니다.”
‘살아있는 물?’
노인의 한마디에 갈릴레오의 강한 호기심이 그를 자극시켰다. 갈릴레오는 뚫어지라 노인의 행동 하나하나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노인은 자신의 주변에 빽빽하게 둘러선 구경꾼들을 한 바퀴 돌아본 후 조수의 모자에 가득 찬 동전을 확인하자 흡족한 듯 미소를 지었다. 잠깐 동안 침묵이 흐르고 노인의 손은 검은 보자기로 얹어졌다가 곧 보자기를 걷어냈다.
탁자위에는 두개의 유리공이 놓여 있었고, 그 유리공은 하나의 관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괴상한 구조의 장치는 사람들을 요술에 걸린 생쥐처럼 꼼짝하지 못하도록 묶어두었다.
“자, 이 유리공의 한쪽은 물, 다른 한쪽은 수은입니다. 저의 고함소리에 이쪽의 물이 수은 쪽으로 서서히 움직이게 될 것입니다.”
노인의 말은 사실이었다. 노인이 고함치자 물은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움직여 수은이 담긴 유리병을 향해 이동했다.
“앗!”
갈릴레오는 그만 자신도 모르게 놀라 소리치며 뒷 걸음질 쳤다.
한란계의 탄생
‘어떻게 그런 일이⋯ 귀신의 장난도 아니고⋯’
서재에 돌아와 의자에 앉아 눈을 감은 갈릴레오의 눈앞에는 낮에 시장에서 경험한 재미난 실험의 일들로 가득했다.
갈릴레오는 시장을 다녀온 후 어떤 일도 할 수 없었다. 무슨 일이든 시작하려고 덤벼들면 유리공 안의 투명한 물이 움직이는 것이 그의 눈앞에서 가물거리며 괴롭혔다. 그때 갈릴레오의 머리 속으로 한줄기의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어쩌면⋯ 그래, 바로 그거야!’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킨 갈릴레오는 서둘러 그의 책상 앞으로 다가갔다. 어지럽게 널려있는 책들은 그의 키보다 훨씬 높아 보였다. 그리고 책상 옆으로 약간 먼지가 내려앉은 상태로 책들이 놓여 있었다. 갈릴레오는 먼지 속을 뒤지다 한권의 책을 집어 들고는 훅훅 먼지를 불어냈다.
“어디보자⋯ 분명히 여기쯤에서 본 것 같은데⋯”
갈릴레오는 중얼거리며 먼지로 뒤덮인 책장을 넘겼다. 30여분정도 유심히 책을 읽어 내려 가던 갈릴레오는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책은 삼분의 일이 넘어가 있었다.
“앗! 이거다. 이거였어. 드디어 찾아냈다!”
그가 쳐다보는 곳에는 낯설지 않은 그림모형이 그려져 있었다. 똑같지는 않았지만 분명 시장에서 보았던 유리관과 같은 원리를 설명한 것이었다.
실험자는 헤론이라고 적혀 있었고, 그림의 밑으로 간단한 설명이 덧붙여져 있었다. <공기한란계>라고 제목 지어진 것이었다. 열에 의해 부피가 늘어나거나 줄어드는 공기의 신기한 성질을 이용한 것이었다. 화학·물리학을 공부한 사람이라면 쉽게 알 수 있었던 공기의 성질을 유난히 갈릴레오가 흥미를 갖는 데에는 그 이유가 있었다. 갈릴레오는 공기의 성질을 이용해서 세계 최초의 온도계인 <한란계>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우리는 온도계를 이용해 많은 일을 하거나 사실을 발견하는 일을 해낸다.
병원이나 가정에서는 화학의 체온을 재거나 튀김 기름의 온도를 맞추고, 화학실험실에서는 화합물의 성질을 분리하기위한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
그렇다면 왜 꼭 온도계가 필요한 것일까? 그것은 같은 온도이나 사람마다 느끼는 체감이 다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의 피부감각으로 느끼는 온도는 정확한 객관적인 수치로 표시할 수 없었다. 사람들은 이러한 불편을 해결하기위해 오늘날 사용되는 온도계처럼 차다· 뜨겁다 라는 정도를 수를 나타내기 위한 노력을 해왔다. 그리고 그 결과 갈릴레오의 한란계가 탄생되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그 무렵의 갈릴레오의 한란계는 현재 이용되는 온도계처럼 성능이 우수한 것은 아니었다. 갈릴레오의 한란계는 기압의 변화에 의한 움직임의 변화는 고려하지 않았다. 따라서 고지대나 바다와 같이 수심이 깊어 강한 압력을 받아야하는 곳에서는 사용할 수 없었다.
오늘날 사용되는 온도계는 갈릴레오의 한란계 탄생 후 230년이 지나서야 만들어지게 되었지만 그 모래는 바로 갈릴레오의 한란계였던 것이다.
온도계의 모태인 한란계
인간의 놀라운 창조력은 참으로 넓고도 깊은 것이었다. 더 편리한 용도로 바꾸어가고 그것도 안 되면 끊임없이 연구하고 도전해서 또다시 새로운 것을 발명하는 인간의 신비한 창조의 능력.
이러한 발명의 힘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결코 아니다. 포기하지 않는 끈기 있는 정신력도 필요하고, 사물을 대할때 왜라고 질문할 수 있는 호기심과 세심한 관찰력도 필요한 것이다.
노력의 결실로 탄생한 한란계는 더욱 눈부신 발전을 이루어 지금은 병에 온도를 감지하는 스티커를 부착한 후 음료수의 시원한 정도를 스티커의 색깔로 구별하거나 건강 상태를 체크하는 등 일정한 온도계의 모양을 갖추지 않아도 식별이 가능한 단계에 이르렀다.
글 : 왕 연 중
(한국발명문화교육연구소 소장, 영동대학교 발명특허공무원학과 교수)
(이메일 : wangyj39@dreamwiz.com 전화 : 011-890-85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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