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사의 숲
천사의 숲으로 가요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희들 왔어요.”
대 여섯 명의 어린이들이 제너의 진료소 문을 살짝 열고는 함박웃음을 지어 보였다. 데이빗을 비롯한 어린 소년, 소녀들은 제너의 열렬한 팬들이었다.
“응. 어서들 오너라. 들어와서 잠깐만 기다려 주겠니? 지금 로이드 씨를 치료해야 하거든⋯ 대신 진찰이 끝날때까지 아주 조용히 있어야해!”
“옛! 대장.”
아이들은 일제히 합창하며 진료소 안으로 우르르 몰려들었다. 무엇이 그리 신나고 즐거운 건지 아이들의 얼굴에서는 웃음이 떠나가지 않았다.
삼십여 분이 지나고 환자가 병원 문을 나서자 제너는 맑은 웃음을 머금고 아이들이 모여 앉은 쇼파 곁으로 다가갔다.
“우리 귀염둥이들⋯ 아주 약속을 잘 지켜주었는걸⋯ 자, 어른스럽게 조용히 앉아 있었으니 상을 주어야지.”
제너의 등뒤로 감추어졌던 손이 아이들 앞으로 내밀어졌다. 그의 손에는 커다란 드롭사랑이 들려있었다.
“와아아! 감사합니다.”
“대장, 잘 먹겠습니다.”
아이들은 제각기 손을 뻗어 사탕을 받아들고는 소리쳤다. 딸기 시럽이 묻고, 초코렛이 덮인 둥글고 넓적한 사탕은 아이들이 굉장히 좋아하는 것이었다. 쉽게 구할 수 없는 드롭사탕은 아이들에겐 최고의 선물이었다.
“어디 보자 ⋯ 흠⋯ 오늘 진료는 대충 끝난 것 같은데 우리 어디 갈까?”
“천사의 숲으로 가요!”
“천사의 숲? 음⋯ 그래 좋아.”
아이들은 매우 흡족한 표정으로 제너의 뒤를 따라 나섰다.
에드워드 제너. 직업이 의사였던 제너는 바로 종두법을 발명한 사람이었다.
훤칠한 키에 나이에 비해 어려보이는 얼굴과 천진스런 웃음을 지닌 제너는 유난스러울 정도로 아이들을 좋아했다.
그의 주위는 언제나 그를 그림자처럼 따르는 아이들로 북적대었고, 그 또한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을 진심으로 즐거워했다.
그는 소설, 시, 동화 등 아이들이 즐거워하고 흥미로워하는 신비하고 모험에 가득찬 재미난 이야기들을 많이 알고 있었다. 그의 진료가 끝날 때쯤이면 마을의 어린이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병원 앞으로 모였다. 아이들은 제너가 잊지 않고 챙겨주는 맛있는 과자와 달콤한 사탕을 쥐어들고는 그들이 자주 찾는 마을의 모습이 한눈에 보이는 언덕 위나 강가 또는 숲으로 달려갔다. 그곳에서 제너는 흥미로운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곤 했다.
천사의 숲은 그들이 자주 이용하는 장소 가운데 하나였다. 자작나무와 늪 다리 나무로 울창한 이곳은 시원한 그늘이 많았고, 커다란 나무 등걸이 편안한 의자 역할을 해주었다. 휴식처로는 손색이 없는 천사의 숲 옆으로 흐르는 시원한 시냇물은 경쾌한 소리로 낯설지 않은 어린 손님들을 반겨 주었다.
언젠가 제너가 그의 어린 악동들을 데리고 와서 들려주었던
이야기 때문에 아이들은 이곳을 ‘천사의 숲’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옛날에 호버라는 청년이 살았는데, 굉장한 말썽꾸러기였데. 그런데 그날도 마을 언덕에 놓인 풍차에서 장난치다가 그만 풍차의 날개를 고장 냈던 거야. 호버는 놀라서 허둥지둥 도망치기 시작했는데⋯ 그 말썽꾸러기 호버가 도망쳐 숨은 곳이 어딘줄 아니?”
“⋯⋯”
“훗⋯ 그곳이 바로 여기란다. 아마 데이빗 네가 앉은 그 자리가 호버가 앉았을거야. 자신이 들어온 출구가 기억나지 않고 밤이 점점 깊어지자 호비는 무서워지지 시작했지. 여기저기서 굶주림에 지친 늑대의 울음소리가 들려오고⋯ 그때였어. 어디선가 풀잎의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동안 자신이 괴롭혔던 토끼, 사슴, 쪼롱새 등 마음 착한 동물들이 서있었지. 그래! 잭이 앉은 그쯤에 말이야⋯”
아이들은 자신의 이름이 불릴 적마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제너의 이야기를 듣는 아이들의 눈은 강한 빛을 뿜으며 반작였다. 욕심이 없이 초롱초롱 빛나는 아이들의 맑은 눈을 바라보는것은 제너의 커다란 기쁨이었다. 그러나 그를 비롯한 그의 어린 천사들의 행복한 시간은 영원하지 못했다. 바로 무서운 전염병인 천연두가 마음에 돌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천진한 어린이의 죽음
“모두들 천연두에 걸린 어린이들을 마을 회관에 격리시키도록 하세요. 그리고 어른들 가운데 어릴 때 천연두를 앓은 경험이 없는 분은 절대 환자를 치료하거나 환자와 함께 계셔서는 안 됩니다.”
마을의 유일한 의사인 제너는 마을 사람들을 불러 모은 후, 주의 사항을 전했다. 그의 얼굴은 며칠째 계속된 밤샘으로 매우 피곤해 보였다.
‘걱정이야⋯ 도대체 어떤 경로를 통해 마을로 들어 온거지⋯’
천연두의 전염 속도는 놀라울 정도로 빨랐다. 마을에 천연두 환자가 두 세 명만 있어도 단 일주일이면 온 마을이 천연두의 공포에 시달릴 정도였다.
더군다나 치료제나 예방법이 전혀 발견되어있지 않았으므로 한번 천연두가 돌면 사람들은 속수무책으로 천연두 균에 노출되어야 했다.
사람들은 자포자기 상태로 자신들의 운명을 하늘의 뜻에 맡긴 채 망연자실해 했다. 어른들도 견디기 힘든 터라 죽음의 그림자에 희생자의 대부분은 어린이들 이었다.
“선생님! 제너 선생님!”
마을 회관의 문이 벌컥 열렸다. 그를 애타게 부르며 뛰어 들어온 이는 마을에서 대장간을 운영하는 대장장이 호버츠 씨였다. 그는 제너의 열렬한 팬들 가운데 한명인 데이빗의 아버지이기도 했다. 숨을 헐떡이며 거칠게 호흡하는 호버츠 씨의 눈가에는 잔잔한 물기가 서려 있었다. 순간 제너는 온몸이 경직되는 것을 느꼈다. 불길한 기운이 그의 온몸을 휘감았다.
“흑⋯ 선⋯ 선생님! 우리 데⋯빗⋯ 데이빗이⋯”
“호버츠 씨, 무슨 일입니까? 혹시⋯ 데이빗이⋯ 도데체 어떤 상태인데요? 차근차근 말씀해 보세요!”
얼마전 호버츠 씨가 제너를 찾아온 적이 있었다.
“선생님, 데이빗이 이상해요. 어제 저녁부터 열이 나더니 오늘 아침엔 식은땀을 흘리며 구토까지하고⋯ 헛소리도 해요.”
서둘러 진찰가방을 챙겨 대장간에 도착했을 때 그의 어린 친구 데이빗은 고열로 흘린 땀으로 얼룩져 있었고, 초롱초롱 빛나던 눈은 맥없이 풀려 제너를 바라보았다.
‘천연두다⋯’
진료를 끝낸 후 제너는 착잡한 심정으로 준수 사항을 호버츠 씨에게 설명했다.
“당분간 데이빗의 곁에서 떠나지 마시고⋯ 급한 일이 생기면 바로 연락하세요.”
아주 잠깐 동안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게 그의 머리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오⋯ 데이빗⋯ 안돼!”
긴장감을 감추지 못하고 그는 소리쳤다. 그의 심장은 미친 듯이 뛰며 제너의 온몸을 흐뜨러뜨렸다. 데이빗에게 달려가는 제너의 발걸음은 웬지 제자리를 맴도는 듯 했다. 마을은 막 내기기 시작한 굵은 빗줄기로 가득했다. 하늘은 검게 그을린 먹구름으로 뒤덮여 있었다. 제너는 빗물에 젖은 흙탕물이 온통 그의 몸에 얼룩지는 것도 모르고 정신없이 달렸다.
어느새 대장간 앞에 다다른 제너의 눈에는 망연자실한 채 하늘을 응시하는 데이빗의 어머니가 보였다. 그리고 그 옆으로 데이빗의 남동생과 누이의 모습도 보았다. 그들의 처절한 흐느낌이 빗소리에 실려 간간히 새어 나왔다.
‘오! 데이빗⋯’
어린 아들을 잃은 데이빗의 부모는 하늘을 향해 울부짖었다. 제너 역시 데이빗의 존재가 사라짐으로 인한 아픔으로
오열했다.
제너는 의사로써 자신의 무능함과 아직도 치료제나 예방제를 발명하지 못한 어른들의 무책임에 깊은 혐오감을 가졌다. 오랜 동안 데이빗의 해맑은 웃음소리는 제너의 귓가에 맴돌며 그를 고통과 악몽의 공간속에 가두었다.
우두와 천연두
마을을 흰 눈으로 뒤덮어 그동안의 슬픔을 묻어두었던 겨울이 지나고 봄이 찾아왔다. 마을의 둔턱이나 언덕, 들판 등 구석구석에 어김없이 싱싱한 풀잎들이 고개를 들었다. 연한 잎들은 독기가 없고 억새지 않기 때문에 풀을 주식으로 하는 소떼들에게 훌륭한 음식이었다.
제너가 사는 마을은 넓은 언덕을 이용해 방목을 하는 가정이 많았다. 특히, 젖소를 길러 얻은 우유로 치즈나 버터 등의 발효 식품을 만들었다.
겨우내 울타리나 축지 안에 갇혀 지내던 소들은 즐거운듯 서로 무리를 지어 한가롭게 풀을 뜯어 먹었다.
“깔깔⋯ 까르르르⋯”
오전 진료를 마치고 진료소를 향하던 제너는 들판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소의 젖을 짜며 즐거운 듯 재잘거렸다.
“안녕하세요? 무슨 재미난 이야기라도⋯”
“어머나! 제너 선생님 아니세요? 어디 다녀오시나 봐요.”
“예. 스커트 씨 댁에요.”
“그렇군요. 작년에 천연두가 마을을 휩쓸고 지나간 뒤 그분도 앓아누우시더니⋯ 아직도 그 모양새인가 봐요?”
“워낙 연세가 높으신 노인분이라⋯ 쉽게 회복하지 못하세요.”
“하긴⋯ 그런데 소 키우는 분이 어째서 우두에 걸리지 않았나몰라. 그랬으면 훨씬 수월하게 위기를 넘겼을 텐데⋯”
여인들은 안타깝다는 듯 혀를 찼다.
동네 아주머니들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듣고 있던 제너는 자신이 무엇인가 놓쳤다는 생각에 흠짓 놀랐다.
“저⋯ 방금 뭐라고 하셨어요? 우두라고⋯ 소의 천연두 말인가요? 아⋯ 그 이야기 다시 해주실 수 있어요?”
제너의 다그치듯 쉴새 없이 쏟아지는 질문에 여인들은 당황스러운 듯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저⋯ 그게⋯”
처음에는 망설이며 우물거리던 아주머니들은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래요. 우리는 우두에 걸린 사람들을 몇 보았어요. 목과 손등에 약간의 붉은 점이 생기고는 일주일도 안 지나서 말끔히 가라앉더라고요. 심한 고열에 시달리지도 않고⋯”
“맞어. 그래! 더 신기한 것은 우두에 걸린 사람은 그래 천연두가 온 마을에 퍼졌을 때 전염되지 않고 멀쪙했다는 거예요⋯”
“음⋯”
열중하며 이야기를 듣던 제너의 입가에서 신음 소리가 새어 나왔다. 놀라움의 탄성이었다. 신비한 힘이 그를 끌어당기고 있었다.
그 놀라운 일을 들은 이후 제너의 머리속은 단 한단어로 가득했다.
‘우두⋯ 우⋯두⋯’
그의 귓가에서 맴도는 우두라는 말은 그를 분주하게 만들었다. 진료시간이 끝나면 짐을 서둘러 정리한후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리고 밤이 깊어진 다음에 피곤에 지친 모습으로 나타났다.
종두법의 발명
뜨거운 태양빛이 제너의 머리위로 부서졌다. 무서운 기백으로 달려드는 햇살은 제너에게 더욱 버거운 짐이었다.
그의 이마에서 흐른 방울이 볼을 타고 내려와 목 줄기로 흘렀다. 그러나 이정도의 더위는 그의 답답한 마음에 비한다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몇해전 우두에 걸렸던 적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혹시 제 연구에 동참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연구? 뭔데요?”
“예. 우두 균이 천연두를 예방하는 힘이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겁니다.
우두를 앓은 사람은 면역이 생겨 천연두를 앓지 않는다는 건데⋯ 저⋯ 그래서 선생님의 몸속에 약간의 천연두 균을 투입해서 그 사실을 눈으로 확인하려고 하는 겁니다.“
“뭐? 뭐라구! 천연두 균⋯ 이 인간이 실성했나! 균을 넣으려면 제 몸속에 넣을 일이지⋯”
“저⋯ 그것이⋯ 저는 우두를 앓은 적이 없어서⋯”
“시끄럿! 그렇게 죽고 싶으면 너나 실컷 죽으라고!”
제너의 제안을 쉽게 승낙할 사람은 한사람도 없었다. 천연두가 얼마나 무서운 병인지를 아는 터라 아무리 안전하다고 설명해도 쉽게 이해하지 못했다.
그것은 미친 짓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했다. 아무리 강심장이라도 그런 무모한 일은 어느 누구도 하지 않을 일이었다.
‘아무래도 무리야! 어느 누구도 실험에 응하지 않고⋯ 임상 실험없이 결론짓기는 무리인데⋯’
사람들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는 터라 끈질기게 설득한다는 것도 힘들었다. 제너의 실망과 낙담은 종두법 연구의 포기를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그무렵 제너를 찾아온 낯선 노인의 방문은 그동안의 걱정거리를 말끔히 씻어 주었다.
“흐음⋯ 내 나이 예순 하고도 둘이야. 이정도면 후회 없을 정도는 산거야.”
어릴때 우두를 앓은 적이 있다는 노인은 제너의 실험에 함께 할 것을 흔쾌히 승낙했다.
제너의 예측은 적중했다. 제너의 예상대로 우두를 앓은 경험이 있던 노인은 천연두 균을 몸속에 투입해도 천연두에 감염된 증후들이 나타나지 않았다.
이로써 제너의 연구는 더욱 활기를 띠고 진행되었고, 마침내 종두법을 발명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종두법은 사람의 몸속에 소의 천연두 균인 우두의 투입을 통한 면역을 길러 같은 균으로 인한 발병을 사전에 미리 예방하는 것이었다.
사람의 손으로 미래에 예고되는 재앙을 미연에 방지한다는 점에서 종두법의 발명은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종두법의 신기한 효과는 동양에도 소개되었고, 그간 천연두의 위협에서 고통 받던 인류의 삶에 빛을 던져주는 것과 함께 신이 뿌리내린 자연의 섭리에 도전한 인류의 반란이었다.
글 : 왕 연 중
(한국발명문화교육연구소 소장, 영동대학교 발명특허공무원학과 겸임교수)
(이메일 : wangyj39@dreamwiz.com 전화 : 011-890-8578 )
|
왕연중의 발명소설
Designed by DOWON.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