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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속의 보물
식량증산과 비료 개발
1898년 독일의 유명한 일간지들은 대형 사진과 함께 특보 기사를 신문의 제일 면에 게재했다.
일간지들의 첫 면을 가득 메운 기사는 모두 같은 제목으로 시민들의 시선을 끌고 있었다.
“기근 위기, 곧 인류에게 다가온다!”
겨울의 혹독한 추위속에서도 사람들은 걸음을 멈춘 채 신문 기사를 읽어 내려갔다.
“원시적이며 현재의 농업 재료와 기술만을 고집하는 농산부의 농업 문맹인들이 있는 한 인류의 굶주림속의 생존을 위한 싸움이 머지않아 인간을 위협하게 될 것이다.”
영국의 과학자 윌리암 크룩스의 경고는 위기감을 느끼게 했다. 크룩스는 다음의 말을 덧붙임으로 그의 경고가 절대 헛말이 아님을 사람들에게 주지시켜주었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인구의 수에 비해 식량의 증가는 매우 제한적이다. 일정한 토지 면적을 통한 식량 생산 속에서 우리가 바로 인식하고 있어야 할 것은 바로 질산나트륨의 사용에 있다!”
질산나트륨의 사용이 왜 인류의 생존에 위협을 주는가라고, 의아해하고 질문한다면 다음의 이야기가 조금은 이해를 도와줄 것이다.
식물 성장의 3대 비료로 우리는 칼슘(Ca), 인(P), 질소(N)를 이야기한다. 3대 비료라는 것은 식물성장에 절대적인 영향을 주는 것으로 위의 영양소 결핍이 생기게 되면 식물은 제대로 성장할 수 없게 된다. 그러나 19세기 까지만 해도 지금처럼 비료의 발전이 이루어지지 않은 때였다.
특히, 질소 비료의 경우는 많은 부족현상이 나타나고 있었다. 당시의 질소비료는 암모니아수와 황산의 화합물인 황산암모늄이 쓰이고 있었다. 이 황산암모늄은 농업에 비료로 많이 쓰였지만 생산 과정이 복잡하고, 원료비가 너무 많이 든다는 단점을 지닌 것이었다.
황산암모늄을 발생시키는 암모니아수인 경우에는 석탄의 건류 때 발생하는 것으로 그 증류과정이 까다롭고, 원료인 석탄 채굴이 어려워 쉽게 구할 수 없고 엄청난 비용을 부담해야 했다.
그러기에 황산암모늄은 구하기도 힘들고 비료 비용이 농민들에게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위해 궁여지책 사용한 것이 질산나트륨 이었다.
그러나, 황산암모늄 사용 시 생겼던 많은 문제점들은 질산나트륨 사용에 있어서도 달라지지 않았다.
천연비료인 질산나트륨의 생산은 한계가 있었고, 만약 바닥이 날 경우 커다란 혼란이 일어날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인공적인 화학비료의 개발! 그것이 앞으로 닥칠 인류의 기근을 막아줄 것이다.”
크룩스의 주장은 마지막으로 인공적인 화학비료 생산을 위해 정부적 차원의 연구와 자금 지원이 이루어져야 한다며 자신의 주장을 끝냈다. 그렇다면 영국 과학자의 주장이 유독 영국이 아닌 독일 국민과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던 것일까?
영국의 경우 “대영제국 건설”이라는 영토 확장계획을 통해 인도를 비롯한 아프리카에 커다란 식민지를 확보해두고 있었다. 적어도 영국은 식민지를 통한다면 식량 문제를 안 겪어도 되는 것이었다. 광활한 토지에서 생산되는 천연 질소인 질산나트륨이 풍부했고, 열대지방의 넘쳐나는 곡식이 영국을 든든하게 받쳐 주었다.
그러나, 독일의 사정은 영국처럼 맘편한 것이 아니었다.
영토를 늘리기 위한 전쟁을 통해 식민지를 확보한 영국·프랑스 등 다른 유럽 국가와 달리 독일은 식민지도 없었고, 지형의 특징상 독일의 토지는 질산나트륨도 지니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우연한 만남
“안녕하십니까? 전 뮌헨의 신문기자 마크 러쉘입니다. 저희 신문사에서는 이번에 박사님께서 발표하신 암모니아가스 생산 이론을 기사화하고 싶은데...”
1908년 7월. 독일 남부의 칼스루에의 공과대 물리학과 실은 연신 터뜨리는 카메라 후레쉬와 기자들의 질문으로 시끌벅적했다. 기자들이 앞 다투어 취재 경쟁을 벌인 대상은 이 대학의 물리학 교수인 유태인 출신의 하버였다.
하버가 발표한 암모니아가스 생산 이론은 사람들을 설레임으로 흥분되게 했다. 그것은 앞서 말한 것처럼 암모니아가스가 질소비료를 만드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었다.
10년 전 크룩스 박사의 식량위기에 대한 경고가 있은 후 사람들의 뇌리 속에서 잊혀졌던 일들이 다시 하나하나 떠오르고 있었다. 독일의 화학 연구학계도 하버의 연구 발표로 긴장감이 흐르며 술렁이고 있었다.
“제 이론은 앞서 발표된 내용처럼 질소가스와 수소가스를 이용한 것입니다.”
기자들의 질문 속에서도 침묵을 지키던 하버가 입을 열었다. 그러나 그의 표정은 덤덤해 보였고 하버의 움직임은 매우 침착하고 정돈되어 있었다.
사람들의 커다란 관심을 끌고 있는 이론을 발표한 사람답지 않았다.
“질소가스요. 수소가스를 화합시키려면 앞으로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합니다. 이것은 이제 첫걸음에 지나지 않습니다. 앞으로 넘어야할 산이 많습니다. 기자분들도 아시다시피 질소와 수소의 화합은 학교의 실험실에서 어린 학생들이 산소와 수소를 화합하는 것과는 엄연히 다릅니다. 매우 섬세하고 세밀함이 필요한 연구지요. 더군다나 굉장히 위험하기도 합니다.”
하버의 암모니아가스는 질소가스와 수소가스의 화합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었다. ‘공중질소 고정법’ 혹은 ‘하버법’으로 불리는 하버의 이론에서 질소와 수소를 화합시키려면 무려 200기압과 섭씨 500도의 온도가 필요했다.
해저 450미터가 50기압이라고 한다면 200기압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더군다나 이런 엄청난 기압을 견뎌낼 용기를 만든다는 것은 꿈에서나 가능한 일처럼 느껴졌다. 그러니 수소가스와 질소가스의 화합은 그저 솜사탕처럼 달지만 금새 녹아버리는 이론처럼 보였다.
그리고, 설령 연구를 시작한다고 해도 그것은 목숨을 건 처절한 싸움이었다.
이러한 어려움을 하버는 잘 알고 있었기에 쉽게 시작하기 어려웠다. 이 연구는 하버 혼자서는 진행하기 힘들었다.
어둡고 끝이 없는 늪에 빠진 것처럼 허우적거리는 하버가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고 연구에 박차를 가하게된 것은 이론발표 후 3개월이 지난 어느 날의 우연한 만남에서 였다. 하버의 협력자로써 암모니아 합성연구에 도움을 준 사람은 염료회사 기술자인 보시였다.
그들의 만남은 동료이자 어려움을 함께한 친구로써 계속되었고, 1923년 암모니아 합성이라는 업적을 이룩하기까지 고난과 땀방울 속에서 더욱 그 빛을 발하였다.
고난 끝에 돌아온 영광
“하버! 헉헉... 하버선생 어디 있는 거예요!”
아침 일찍 실험재료들을 사기위해 시내에 나갔던 보시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숨을 헐떡이며 뛰어 들어왔다.
“보시! 왜 그러나? 무슨 일이 길래 그렇게 숨이 차서 뛰어온 거야?”
“전쟁... 전쟁이라구요!”
“뭐? 뭐라고?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지금 시내가 아수라장이예요. 모두들 밀가루며 설탕이며 음식들을 사느라 정신이 없다고요. 하버 선생, 이 일을 어떻게 해야 될까요?”
“아!”
하버는 외마디 소리를 내며 힘없이 자리에 주저앉았다.
‘결국은 그렇게 되는 거였군.’
하버는 1911년부터 베를린 대학의 물리학 교수 및 카이저빌헬름 연구소의 소장일을 맡고 있었다.
카이저빌헬름 연구소는 물리화학 및 전기화학에 관한 연구를 하는 곳으로 그동안의 하버의 연구 성과를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
암모니아 합성에 관한 연구에 박차를 가하던 때라 하버의 연구소 소장 취임은 그들의 연구 활동에 부담을 주고 있었다. 그 무렵 하버는 독일군 사령관의 호출을 받게 되었다.
독일군 사령관이 하버를 부른 목적은 하버의 ‘공중질소 고정법’을 이용하여 화약을 제조하기 위함이었다.
질소비료를 사용하여 향상된 기름진 토지에서 자란 채소와 노란 물결을 이루어 출렁이는 소백 밭을 꿈꾸어 왔던 하버의 희망은 전쟁의 도구로 변질되어 어둠의 구름으로 뒤덮였다.
질소비료 제작을 위해 개발되었던 하버의 암모니아 합성법은 화약을 만들기위한 방법에 사용되었고, 독일군의 화약제조법이 우수하지 못하고 생산능력이 없다는 판단을 했던 연합군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예상보다 긴 전쟁의 끝은 연합군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패전국으로써 피해보상을 해야했던 독일 정부는 재정의 빈곤을 이유로 그동안 과학자들에게 지급했던 연구 지원금을 중단했다. 전쟁이 끝나길 기대했던 하버와 보시는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연구를 포기하지 않고 실험에 전념했다. 생활비의 대부분을 연구비로 사용하고 하루 한 끼의 식사를 하면서도 과학자로써의 책임을 다했던 하버는 1918년 노벨화학상을 받기도 했다.
엉뚱한 곳에 사용된 질소
“꽝... 꽈아앙... 꾸앙!”
하늘과 땅을 울리는 거대한 폭발음이 금방이라도 무엇인가 집어 삼킬듯이 달려 들었다.
거실에서 연구 논문을 읽어 내려가던 하버는 창문을 뒤흔드는 폭발음에 반사적으로 창밖을 바라보았다.
“오! 하느님... 이런... 이럴 수가...”
집에서 칠십 미터 가량 떨어진 실험실에서 검은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었다.
하버와 보시가 암모니아 합성을 위한 고압 반응탑을 만들고 있던 연구실이었다.
“보시! 보시, 괜찮은 건가? 대답을 해봐!”
실험실은 온통 희뿌연 연기로 뒤덮이고 앞을 분간하기 어려워 보였다. 어디서도 사람의 소리가 들려오지 않자 하버의 마음은 불안해오기 시작했다.
“콜록... 콜록... 선생님! 저 여기 있어요. 괜찮아요.”
“오! 하느님 감사합니다.”
검댕이로 얼룩진 보시의 모습이 서서히 일어서며 하버에게로 다가왔다.
“어떻게 된건가? 정말 다친 곳은 없는 거야!”
“예. 반응 탑이 제대로 완성된 건지 확인하려고 실험을 시작했는데... 아무래도 200기압을 견딘다는 것은 무리인 것 같아요.”
“흠... 역시 안 된다는 건가? 좋아! 보시, 연구방식을 조금 바꾸어보기로 합시다.”
“그렇습니다. 여기서 포기한다는 건 그동안 우리가 해왔던 모든 일들이 다 헛수고가 되는 건데... 그건 저도 원하지 않습니다.”
“보시, 이보다 더 많은 위험들과 싸워야 할지도 몰라요. 지금보다 수월할거라고 이야기 할수는 없습니다. 솔직히 당신에게 목숨의 위협을 느끼게 한다는 것이 나로서는 미안한 일이지만...”
“선생님! 괜찮습니다. 이 연구가 성공한다면 인류의 화학 공업의 역사가 바뀌고 식량 위기도 극복되는 건데...”
목숨의 위협 속에서도 하버와 보시의 연구는 그칠줄 모르고 계속되었다. 그리고 그들의 노력은 1923년 9월 암모니아 합성의 성공으로 그 결실을 맺게 되었다. 이는 인류의 화학공업 발전의 눈부신 서막의 예고였다. 더불어 식량의 대량생산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들의 암모니아 합성법은 수소와 질소의 화합물을 압축시킨 뒤 200기압에서 촉매를 이용하여 200℃에서 가열하는 방법으로 얻은 것이었다.
하버의 암모니아 합성 이론과 공업가인 보시의 철제 반응 탑의 멋진 합작품으로 탄생된 결과.
이것은 이전의 천연 질산나트륨에서만 의존하던 농업방식을 화학 질소비료로의 전환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하버와 보시가 바라던 질소비료 사용으로 인한 농산물 증산의 꿈은 바로 눈앞에 다가와 있었다. 그러나 질소비료가 발명된 초기에는 그 사용이 엉뚱한 곳에 이용되고 있었다.
바로 화약의 생산수단으로 전쟁을 대비한 무기 생산에 이용된 것이었다.
쓸쓸한 죽음
무한한 천연자원인 공기 속에서 풍부한 질소 비료를 찾아냄으로써 인류의 미래에 닥칠 식량 문제를 해결했던 하버와 보시. 그들은 서로의 이론과 기술을 적절히 조화시켜 멋진 작품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 깊은 신뢰와 우정도 독일이 제2차 세계대전을 준비하는 과정 속에서 상처 받을 수밖에 없었다.
1931년 보시의 노벨화학상 수상을 가장 기뻐하며 축하해 주었던 하버는 2년 후인 1933년 유태인이라는 탄압을 피해 망명의 길을 선택했다.
그리고 그 이듬해인 1934년 1월에 자신의 질소비료가 평화적인 방법으로 식량 증산을 위한 인류의 풍요의 바탕에 사용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영국 땅에서 쓸쓸히 쓰러져갔다.
불행하게도 하버, 보시의 연구로 식물의 생산에 대량화를 촉진시켜 주었던 질소비료는 세계 2차 대전이 끝난 후에야 정착되었다.
글 : 왕 연 중
(한국발명문화교육연구소 소장, 영동대학교 발명특허공무원학과 겸임교수)
(이메일 : wangyj39@dreamwiz.com 전화 : 011-890-85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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