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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의천사의 선물
소녀 할디스
목가적이고 전형적인 노르웨이의 풍경이 그림처럼 펼쳐진 오슬로의 숲 근처 작은 마을에 여자 아이가 태어났다.
“여보, 예쁜 딸이에요.”
“그렇군. 정말 수고했소!”
“첫째가 딸이니 당신이 일하실 때 아마 큰 힘이 될거에요.”
“그렇고말고... 눈이 마치 밤하늘에 빛나는 별빛처럼 초롱초롱 하구려!”
“이름은 뭐라고 짓지요?”
“할디스, 할디스가 어때?”
“정말 예쁜 이름이에요.”
“어쨌든 올 봄 농사는 대풍년이겠소. 어쩐지 그런 예감이 들어.”
1936년 4월 6일, 할디스는 이렇게 신혼부부인 할디스의 부모로부터 큰 딸로 한없는 사랑을 받으며 세상에 나왔다.
그녀의 아버지는 농사를 짓는 농부이면서 뜻이 있는 발명가였다.
“아빠, 무얼 만드세요?”
어린 할디스는 자람에 따라 점점 아버지의 발명활동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응, 농사를 지으려면 좋은 농기계가 있어야 하지 않겠니? 그래서 기계를 만들고 있단다.”
“기계가 농사를 지어요?”
“그렇지, 그렇고 말고. 할디스, 그 못 좀 집어 주겠니?”
“녜, 아빠. 여기 있어요.”
할디스는 귀엽고 예쁜 고사리 손으로 나사못을 집어올려 아버지에게 건넸다.
“오, 귀여운 할디스!”
“아빠! 사랑해요.”
눈을 반짝이며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분명하게 말하는 할디스의 태도에는 어딘가 의연함이 베어있었다.
“나도 사랑해, 우리 큰 딸!”
할디스의 아버지는 농기계 분야에서 12개의 특허권을 가지고 있었다.
“아빠, 나도 아빠처럼 발명가가 될래요. 그런데 발명가가 뭐에요? 사람들이 아빠를 그렇게 부르던데...”
“응, 발명가란 이 세상에 꼭 필요한 것을 새로 만들어내는 사람이에요. 예쁜 할디스의 옷도, 인형도, 그리고 이렇게 농사를 짓기 위해 필요한 기계도 다 발명가가 만든 거란다.”
“으응, 나도 아빠처럼 될래요.”
그녀에게 아버지는 첫 번째 영웅이었다.
자상하고, 손재주가 좋고, 끔찍하게 딸을 사랑하는 아버지와 상냥하고 부드러운 어머니의 사랑을 받으며, 할디스는 매사에 열정적이고, 적극적이며 호기심 많은 소녀로 성장해 갔다.
“할디스, 어디 있니?”
“녜. 엄마! 할디스 여기 있어요.”
“그래. 이웃 아저씨 집에 이것 좀 갖다 주고 오너라.”
“이게 뭔데요? 엄마!”
“방금 구워낸 빵이란다. 아저씨는 몸이 불편하신데도 혼자서 쓸쓸하게 지내잖니? 우리가 잘 돌봐드려야지.”
“알았어요. 엄마!”
“할디스 네 것은 여기 많이 있으니까 다녀와서 아빠와 함께 먹자. 응?”
“알아요. 엄마, 다녀오겠습니다.”
할디스는 머리카락을 나풀대며 토끼처럼 껑충껑충 뛰기 시작했다.
백의의 천사
할디스는 7남매 중 첫째로, 동생들이 태어날 때마다 엄마처럼 잘 돌보곤 했다.
“할디스, 너는 이담에 커서 뭐가 될래?”
“간호사가 될래요.”
“오! 역시. 어쩐지 우리 할디스는 아주 훌륭한 간호사가 될 것 같아. 그냥 평범한 간호사가 아니라...”
“엄마, 그건 왜 그래요?”
“너 하는 것을 보니 그렇다. 너는 동생들을 돌보면서도 늘 웃고 있지 않니!”
“그럼, 사랑스런 제 동생들인데 돌보면서 인상을 써야 해요?”
“아니, 그런 것은 아닌데... 힘들텐 데도 전혀 그런 표정을 안 지어요. 엄마가 아빠 일을 돕느라 바쁜데도 우리 할디스는 엄마 몫까지 훌륭하게 해내고 있거든.”
“엄마, 제가 큰 딸이니까 그런거에요. 다른 누구라도 그렇게 할 거에요. 피곤하실텐데 좀 쉬세요. 설겆이는 제가 할께요.”
그리고 그녀는 아름답고, 예쁜 처녀로 성장해 갔다.
늘 혼자의 힘으로 독립적으로 살며, 오히려 부모님과 동생들을 돌보던 할디스는 그녀의 나이 스물다섯이 되던 해 결혼을 했다.
45세의 여대생 할디스
“여보! 당신 늦겠어요. 어서 식사하세요.”
할디스의 상냥한 목소리에 그녀의 남편이 육중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알았소. 당신도 어서 준비하구려.”
변호사인 남편과의 사이에서 어느덧 4남매를 둔 할디스가 그녀의 딸과 함께 오슬로 대학에 입학하는 날이었다.
“얘야, 서두르자.”
“엄마, 염려마세요. 천천히 해도 늦지 않아요. 오늘은 입학식이니까 좀 늦게 시작할 거에요.”
“그래도, 되도록 빨리 가자.”
그러자 모녀의 대화를 엿듣던 남편이 너털웃음을 웃었다.
“허허허, 당신이 오늘은 어린아이 같구려!”
“하긴 뭐, 이제부터 학생이죠.”
“그동안 아이들 키우랴, 내 뒷바라지 하랴, 간호사 일하랴 고생이 많았는데 대학생이 되면 짐이 하나 더 늘겠구려.”
남편의 말에 할디스는 미소를 지어보이며 말을 받았다.
“어머, 당신은! 짐이 아니라 젊어지고 있는거에요. 대학생이 되어 더 젊게 산다는 것이 얼마나 신나는 일이겠어요. 우리 막내처럼 싱싱한 아이들 속에서... 생각만 해도 기뻐요.”
“그러고 보니 아직도 당신은 젊어요. 아이들도 다 키워 놓았겠다. 이제부터 당신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할 수 있게 되었소. 어쨌든 입학을 축하해요.”
“고마워요. 이런 내 정신 좀 봐! 이렇게 감상에 젖어있을 때가 아닌데... 오븐에 빵 다 타겠네!”
그때 주방에서 걸어 나오며 막내딸이 깔깔거리고 웃었다.
“역시 우리 엄마야! 엄마, 빵은 벌써 꺼냈어요.”
“오 그래? 역시 우리 딸이다. 호호호!”
“뭐가 그렇게 즐거우세요? 엄마, 밥좀 먹읍시다.”
“알았다. 오늘 설겆이 당번은 식사를 제일 늦게 끝내는 사람이다. 알았지?”
아들에게 넌즈시 이르며 할디스는 곱게 웃었다.
“아이 참 어머니! 너무 겁주지 마세요. 저도 바빠요. 레포트가 밀렸단 말이에요.”
“이거 뭐, 갑자기 한 집안에 대학생이 몇이 되는 거야?”
남편의 말에 할디스와 아들, 딸들이 서로 번갈아 가며 웃음을 터뜨렸다.
우연히 목격한 교통사고
1984년 그녀의 나이 48세가 되는 해였다.
어느 날, 할디스는 대학을 가기위해 부지런히 차를 몰고 있었다.
갑자기 그녀의 앞에서 꽝하는 큰소리와 함께 자동차가 충돌했다.
“앗! 사고다!”
간호사로서 직업의식이 발동한 그녀는 사고현장으로 다가갔다.
“많이 다쳤어요?”
사람들을 헤치고 사고현장에 달려들었을 때, 눈앞에서는 너무나 끔찍한 장면이 벌어지고 있었다.
자동차는 박살이 났고, 그 안에 탔던 사람 중에 하나는 척추가 골절되었고, 두개골이 함몰된 사람도 있었다.
“으으... 살려 주세요.”
어떤 환자는 의식을 잃은 쇼크 상태에 있었는데, 머리에서는 계속 피가 흐르고 있었고 그의 발은 부서진 차에 끼어 움직일 수도 없는 처참한 지경에 있었다.
“어머, 저걸 어째!”
“쯔쯔, 너무 끔찍해!”
“세상에, 이럴 수가...”
사고현장 주변으로 사람들이 몰려들었지만, 어느 누구도 선뜻 손을 대지 못하고 발을 구르며 안타까워 할 뿐이었다.
그 순간, 할디스의 머리속으로 갑자기 한 생각이 떠올랐다.
‘아, 저 골절된 척추와, 부러진 다리와 팔, 머리와 목에 충격을 주면 안 되는데...’
그와 동시에 해결책으로 무엇이 필요한가를 깨닫게 된 것이다.
할디스는 그러면서도 사고를 당한 사람들이 혈액 부족으로 죽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이 사람들은 움직이면 안 됩니다. 나는 간호사인데 빨리 구급차를 불러주세요.”
그녀는 환자의 머리를 움직이지 않고는 붕대를 감는 것이 불가능하겠기에 가급적 머리에 붕대를 감지 않기로 결정했다. 환자의 머리와 목에 가능한 한 충격을 주지 않는 것이
더욱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만약에 부상자가 후송되다가 척추부상으로 고통 받는다면 병원에 있는 의사들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만약 척추에 부상을 입게되면 잘못하여 하반신이 마비될 수 있고, 목에 이상이 생기면 전신마비가 될 수 있다.
할디스는 또 생각했다.
‘부러진 다리와 팔을 고정시키듯이 골절된 척추를 고정시킬 방법은 없을까?’
그때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들렸다.
“아니, 저 아주머니는 간호사라면서 빨리 응급처치를 하지 않고 뭘 꾸물대고 있는 거야?”
“글쎄 말이야. 빨리 부상자를 차에 싣고 병원으로 후송하는 것이 급선무지. 저러다가 사람 죽겠어!”
“간호사 아주머니! 왜 그렇게 가만히 보고만 있는 거요.”
그제서야 정신이 든 할디스는 사람들을 향해 큰 소리로 말했다.
“제가 보기에 이 부상자들은 생명에는 지장이 없습니다. 그런데 목과 머리, 척추에 골절상을 입었기 때문에 함부로 움직이다가는 영원히 불구가 될 것입니다. 그러니 의사가 올 때까지 그냥 놔두십시오.”
잠시 후, 구급차가 달려오고, 들것이 내려지며 의사가 황급히 달려왔다.
“어서 오세요. 의사 선생님! 어떻게 손을 댈 수가 없는 상황이라 이렇게 지키고만 있었습니다.”
“오, 잘 하셨습니다.”
의사는 희생자들을 돌보기 시작했다.
책임감이 강하여 끝까지 사고현장을 지키고 있던 할디스는 구급차가 떠난 뒤에야 학교에 등교할 수 있었다.
대학에 도착할 때까지, 그녀의 머리속에서는 사고 당시 부상자들의 참혹한 모습과, 그들을 보호할 방법을 떠올리고 있었다.
‘목보조기가 필요해! 목과 등에 대어서 척추와 목을 보호해야 하는 보조기...’
부목의 탄생과 실용화
트론드하임 병원 원장인 인가드 레라임 교수는 1970년 이후부터 교통사고에 수반되는 의학적 치료방법을 연구해왔었다.
그리하여 교통사고 환자들은 세 명 가운데 두 명 꼴로 머리에 부상을 입고, 게다가 한 두 군데 몸의 다른 부분이 심한 상처를 입는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는 말한다.
“머리의 상처부위는 다양하며 때로는 심각하다. 교통사고에서 입을 수 있는 상처 가운데 머리, 얼굴 다음엔 목이 가장 위험한 부분이다. 목의 부상은 다친 근육이나 인대로부터 골절되고, 심하면 전신마비 증세를 가져올 수도 있다.”
그의 설명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이런 종류의 환자를 위해 가능하면 목과 등의 운동을 제한시켜야 한다. 그것은 사고현장에서 입은 근본적인 상처를 악화시키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할디스는 목보조기를 상품화하여 시장에 내놓기까지 2년 동안의 고된 노력을 쏟아야 했다.
할디스의 이 기구는 부드럽고, 두꺼운 플라스틱으로 되어있어 복부 즉 배와, 이마, 목 주위를 고정시켜준다.
뒷 소매에 삽입된 알루미늄 부목은 목과 척추를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안전하게 고정시킨다.
이 상품은 1987년 2월 이후 실용화되었다. 무게는 600g 정도 나가며, 말아서 감으면 부피도 작아진다.
할디스의 목 보조기는 노르웨이 교통의학협회 의장인 레라임 교수와, 사상자를 위한 의학과장인 조지 블리크라의 지도 아래 트론드하임과 오슬로 대학병원의 공동제작으로 개발되었다.
사고로 부상자들이 머리, 목 등에 심각한 부상을 입었을 때는 부상당한 부위들을 고정시킴으로써 환자가 겪게 될 불행한 결과를 미리 막아야 하는 것이다.
사고현장에서 목보조기를 사용하여 응급조치를 하는 방법은 첫째 기도를 열어주고, 인공호흡을 시켜주며, 피가 계속 나지 않도록 출혈을 막고, 목보조기를 착용하는 순서로 하면 된다.
목보조기를 사용하는 사람은 어떤 경험도 필요하지 않고 초보자도 가능하다. 앰블런스가 사고현장에 도착하기 전의 몇 초가 삶과 죽음의 경지를 결정하는데, 바로 이때 목보조기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할디스는 실용주의자였다. 그녀는 자기가 만든 상품의 시장점유율을 증가시키기 위해 골절을 위한 부목 같은, 목보조기를 다른 용도로도 사용할 수 있도록 구조를 개선시켰다.
“목뿐만 아니라, 다른 부위가 골절되었을 때도 사용할 수 있다면 훨씬 더 편리하고 다양하게 쓸 수 있으리라 생각되어 구조를 개선한 것입니다.”
1987년 4월, 제15회 제네바 국제발명품과 새 기술품 전시회에서 할디스의 목보조기는 그 해 여성발명가로서는 최고인 세계지식재산권기구(WIPO)금메달을 수상했다.
“이건 정말 획기적인 발명품입니다. 요즘처럼 교통사고 등의 재해가 많은 때에 인류의 건강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겠군요.”
“할디스, 대단합니다.”
할디스의 발명품은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그녀는 제네바에서 뜻 있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스물다섯 해 동안 나는 혼자의 힘으로 정말 독립적으로 살았습니다. 이후 25년 동안, 나는 한 변호사의 아내로, 네 아이의 어머니로 행복하게 지냈지요.”
할디스는 이렇게 지난 50년을 아주 평안하게 살았다며, 이렇게 언급했다.
“지금부터 25년은 발명과 여행에 바칠 것이며, 나 자신을 찾는 일에 대해서도 지속적으로 노력할 것입니다.”
또한 그녀가 확신하면서 세운 25년 계획과정에서 해야 할 여러 가지 아이디어 목록 표를 그녀는 갖고 있다.
대학에서 할디스는 민족학과 역사학 그리고 정규과목 이외의 철학을 전공했었다. 그러면서 늘 관심이 있었던 부분을 이렇게 설명한다.
“나는 일상생활과 관련된 여러 가지 문제들을 개선해서 그것들이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그런 발명품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런 그녀가 다른 발명가들을 위해 하고싶은 충고는 무엇일까?
“가능하다면 빨리, 여러분이 생각해낸 발명품의 중요성과 용도를 평가해줄 수 있는 전문가들과 접촉하십시오. 그러나 상품을 시장에 내놓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자기 자신에게 의존해야 합니다.”
“또한 자신의 목적에 맞도록, 크고 작은 문제들을 풀어나가듯이 올바른 전망을 가지고 상품을 지켜야 합니다. 잘못된 견해에 귀를 기울이는 실수를 범하더라도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불가능이란 없어요! 단지 또 다른 도전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 자신 스스로 열정적이고, 적극적이며 어린아이와 같이 호기심이 많은 성격이라고 자신을 묘사하는 할디스는 존경하는 아버지로부터 영감을 받았고, 성인이 된 오늘날에는 세계 곳곳에서 평범한 행복을 이룩해내는 ‘발명의 힘’에 대한 커다란 믿음을 갖고 새로운 아이디어에 도전하고 있다.
왕 연 중
(한국발명문화교육연구소 소장, 영동대학교 발명특허공무원학과 겸임교수)
(이메일 : wangyj39@dreamwiz.com 전화 : 011-890-85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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