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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 유 병
분주한 아침
“여보, 나 회사에 늦겠어. 빨리 해.”
“엄마, 오늘도 늦으면 저는 화장실 청소에요.”
“가만있어 봐요. 나도 바쁘단 말이에요.”
경훈이네 아침은 이렇게 시작된다.
다음 순간 집밖에서 울리는 미니버스의 크락숀 소리. 바아앙～
“아이고, 이거 큰일 났네. 은영이 유치원 차가 왔나 봐! 은영아, 빨리 빨리 옷 입어.”
“아잉, 졸려! 하～품.”
“이 쪽 다리 끼어야지! 저 쪽 손들고... 아이 참!”
허둥대는 엄마의 손에 끌려 졸리는 눈을 비비며 미니버스에 태워지는 은영이.
“엄마! 나 밥 안 먹었어요.”
“그래, 알았다. 알았어. 이따가 빵 사서 보낼게.”
“다녀오겠습니다.”
그래도 떠나는 차창 밖으로 가늘고 조그만 손을 흔들어 보이는 은영이를 태우고, 차는 꽁지가 빠지게 달아났다.
떠나는 차의 뒤꽁무니에 시선을 잠시 매달고 있던 엄마가 화급히 집안으로 뛰어들자, 식탁에 앉아있던 가족들이 그녀를 재촉한다.
“빨리 밥 줘! 늦겠어.”
“엄마, 내 도시락!”
“아이구. 못살아! 그러게 내 뭐랬어요. 우리 집도 이웃 영미네 처럼 토스트와 우유로 간편하게 하면 이렇게 황당한 이유가 없잖아요.”
투덜거리면서도 김치, 콩나물무침, 찌개, 계란부침, 김 등을 내놓고 밥을 푸는 엄마의 이마에는 어느덧 송글송글 땀이 솟았다.
그러나 그렇게 허둥대며 차린 아침식탁은 별로 알뜰하게 치워지지 못했다.
“내 서류 가방!”
식탁 의자를 빼며 선 채로 물을 마시는 아빠.
“엄마, 다녀오겠습니다.”
밥숟가락은 두어번 뜨고, 번개처럼 도시락 가방을 찾아들고 뛰어나가는 경훈이.
“그래, 다녀 오너라.”
“여보! 나도 다녀오리다.”
“녜, 일찍 오세요.”
그렇게 식구들이 빠져나간 썰렁한 식탁에 앉아 경훈이 엄마는 혼자서 수저를 들었다.
‘이거 안되겠어. 무슨 수를 내야지! 참, 내 정신 좀 봐, 나도 서둘러야 출근하겠네!’
앞치마를 벗어던지고, 잽싸게 옷을 갈아입은 그녀는 재빨리 출근버스를 탔다.
이튿날 아침, 경훈이네 식탁.
“와, 켈로그다! 엄마, 우유 주세요.”
“오빠! 나 난 딸기 우유다.”
“이거 뭐야. 토스트에 우유?”
“군소리 말고 이제부터는 간편하게 식사하세요. 아이들의 성장기에는 뼈를 튼튼하게 해줘서 좋고, 나는 골다공증 예방, 당신은 영양을 골고루 섭취해서 건강해지고요.”
“아주, 우유 일색이군...”
그래도 아내의 여유있어 보이는 상냥한 모습에 할 말을 잃고 마는 아빠.
“아, 좋다! 이렇게 편리하고 한가한 것을...”
그리고 멀리서 느슨하게 울리는 크락숀 소리에 엄마는 은영이의 손을 잡았다.
우유의 포장 기술은 어떻게 변했나?
우유의 특성과 장점에 대해서 열거하라고 하면 적어도 몇 가지씩은 금방 대답하리만큼 관심이 많다.
“뼈를 강하게 하고, 성장에 도움이 된대요.”
“영양분이 골고루 들어있어 균형을 유지해 줍니다.”
그만큼 우유라는 식품에 일반인들의 깊은 관심이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렇게 우유에 관심을 보이는 반면 우유 포장 문제에 대하여는 상대적으로 무관심해 보인다.
우유를 안전한 상태로 가정까지 배달하여 안심하고 마실 수 있는 것은 전적으로 포장 유통문제에 달려있음에도 그저 무심히 흘려버리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유를 포장하는 기술은 누구에 의해 어떻게 발전되어 왔을까?
19세기까지 우유의 유통을 위한 개별 포장법은 개발되지 않았다. 유목생활을 하는 민족은 동물의 가죽을 꿰매어 개인용 주머니로 활용하였고, 좀더 문명화된 사회에서는 도기와 주전자 그리고 양철, 양동이 등을 사용하였다.
특히 소를 기르는 목장으로부터 우유를 배달하여 먹는 과정에서는 커다란 양철동이가 큰 몫을 담당하였다.
어린이들을 위한 동화 ‘프란다스의 개’에서도 볼 수 있듯이 그 시절의 우유 유통과정은 매우 비효율적이었다.
“자, 마차야! 가자.”
작은 수레에 우유가 가득 담긴 양철통을 실은 마차가 뒤뚱뒤뚱 마을로 내려와 집집마다 배달하곤 했던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위생적인 우유를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장거리를 배달한다거나, 장시간의 유통 또한 불가능했을 것이 뻔하다.
“이거 뭐야! 이놈의 파리들...”
냄새를 맡은 벌레나 파리 떼들이 우유를 향해 달려들었을 것이고, 때때로 예기치 않은 사고로 인해 배달이 늦어져 신선도가 떨어지는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이거 혹시 상한 것 아냐? 냄새가 이상한데!”
심지어 지나치게 따뜻한 날씨 덕분으로 상한 우유가 배달되는 사례도 종종 있었다.
일이 이쯤에 이르니, 배달된 우유를 먹는 소비자들은 모종의 해결책을 마련하라고 목소리를 높이게 되었다. 하긴 그 누가 말의 뒤꽁무니에 붙었던 파리가 마음껏 헤엄친 우유를 먹고 싶었겠는가.
“좀 더 위생적이고, 신선한 우유를 먹고 싶어!”
가정주부에서 시작된 이런 요구는 지역 언론까지 가세하여 점점 큰 목소리로 변해갔다. 그리고 결국 우유 배달 업자들을 움직여 1870년대에 들어서는 몇몇 배달부들이 유리 항아리를 이용하게 되었다.
“이제부터 양철통 대신 유리 항아리에 우유를 담아 배달해 드립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우유병의 배달은 종전 유통과정에 비해 획기적인 발전이었지만, 기술적인 부분에 있어 여러가지 문제들이 불거져 나왔다.
 맨 처음 나온 우유병은 병의 입구를 고무 바킹으로 씌워 금속나사로 잡아매도록 되어 있었다. 그러나 봉합 작업이 복잡하고 실효성이 떨어지는 것이었다.
“이건 봉합 작업이 너무 복잡해!”
“다른 방법을 찾아야 겠어.”
다음으로 나온 형태는 지금의 맥주병처럼 병의 목 부분이 길고, 종이 패킹을 이용하여 철사로 목 부분을 잡아매도록 고안된 것이었다. 하지만 이것 또한 유통 범위가 좁아 대중화하는 데에는 실패했다.
더군다나 우유병은 깨지기가 쉬웠고, 가격 또한 만만치 않은 수준이어서 우유 보급자들을 난처하게 만들었다.
“이런! 또 깨졌어.”
“우유 병 값이 이렇게 비싸서야 어디 제대로 쓸 수 있겠어?”
“그렇다면 비싼 우유병을 한번만 쓰고 버릴 것이 아니라, 다시 회수하여 재활용하면 어떨까?”
“그것 좋은 생각입니다.”
그러나 우유병을 회수한다 하더라도 깨끗하게 씻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여 소비자들에게 신뢰를 얻지 못했다.
“한번 사용한 우유병을 다시 재사용한다고? 아휴 불결해서 우유도 사 먹을 수 없겠네!”
이러니 답답한 것은 우유 유통업자들이었다.
그런데 우유병의 이런 속사정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있었다.
의사인 허비 D.대처였다.
“우유는 우리 식생활에 필수품이고, 위생적이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문제가 좀 있는 것 같군...”
대처 의사와 소녀의 인형
대처는 비위생적인 우유가 건강에 심각한 위해를 끼친다는 사실을 중요시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비위생적인 우유는 건강을 해칠뿐만 아니라 심각한 위해를 끼치지만, 우유는 꼭 먹어야 할 필수식품인데 어떻게 하면 안전하고 위생적으로 유통되게 할 수 있을까?”
대처는 우선 제일 먼저 우유를 위생적으로 생산하기 위한 방법을 연구했다.
“젖소로부터 우유를 짤 때 사람의 손으로 직접 짜는 것은 여러 가지로 안전하지 못하다. 고무튜브를 이용해서 직접 용기에 담도록 하면 어떨까?”
이렇게 연구 끝에 젖소와 우유용기를 직접 연결하는 통로를 만들었다.
그의 첫번째 발명품은 ‘우유 보호 장치’라고 불리며 꽤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대처씨, 우유 보호 장치를 발명했다니 이제부터 안심하고 우유를 먹을 수 있는 겁니까?”
더운 여름날이면 쉽게 변하고, 유통과정이 안전하지 못해 비위생적인 우유를 마실 수 밖에 없었던 사람들이 반응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정작 관심을 가져야할 농장주들의 반응은 냉담하기 이를데 없었다.
“아니? 우유 보호 장치가 꼭 필요한 농장주들이 왜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무관심하지?”
우유 보호 장치가 주 고객이라 할 수 있는 농장주들로부터 외면을 당하자 대처 의사는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모든 문제를 순조롭게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농장주들로 하여금 우유 보호 장치의 필요성을 인식시켜야 했다.
그러나 농장주들은 설득하기에는 너무나 완고한 사람들이었고, 대처 또한 다른 대안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대처는 평소와 다름없이 산책을 즐기고 있었고, 그의 주변도 아주 평온한 상태였다.
‘아주 상쾌한 아침이구나.’
신선한 아침 공기를 마음껏 들이마시며 걷고 있는 그의 앞에서 우유 배달원을 멈추게 하고 우유를 사는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아저씨, 우유 좀 주세요.”
“녜, 아주머니!”
우유 배달원은 걸음을 멈추며 양동이를 내려놓았다.
우유를 사는 아주머니의 옆으로 바짝 붙어선 작은 소녀가 손 때 묻은 인형을 만지작거리며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흠, 모녀가 우유를 살 모양이군.’
대처는 잠시 멈춰서서 그들의 모양을 주의 깊게 살펴보았다. 무심코 행해진 일이었다.
“자, 아주머니! 우유 여기 있습니다.”
아주머니가 작은 소녀의 손을 스치며 우유를 받아들기 위해 몸을 움직였다.
그런데 그 바람에 작은 소녀가 들고 있던 더러운 인형이 우유 양동이 속으로 빠지고 말았다.
“저런! 이걸 어째!”
반사적으로 몸을 굽히는 아주머니와, 그녀의 딸 앞에선 배달원은 우유 양동이 속에서 우유에 젖은 인형을 황급히 건져내었다.
“에잇 참!”
그것은 아주 잠깐 동안에 벌어진 일이었다.
단지 우유 배달원의 양동이 안으로 작은 소녀의 더러운 인형이 떨어졌을 뿐이다.
그리고 우유 배달원은 더러워진 우유를 들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음 목적지로 떠났다.
대처와 배달원, 그리고 작은 소녀와 그 아이의 엄마, 네 사람만이 보는 가운데 벌어진 이 사건은 그렇게 끝났다. 1884년 어느 여름날 일어났던 일이다.
그러나 대처는 그 잠깐 동안에 아주 큰 것을 깨달았다.
‘농장주들이 아무리 깨끗한 우유를 만들어도 유통 과정에서 이런 일들이 일어난다면 아무 소용이 없겠군.’
농장에서 아무리 깨끗한 우유를 생산해내도 유통상에서 이런 식으로 취급되기 때문에 소비자들의 신뢰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농장주들도 투자를 하려고 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는 그 잠깐 동안에 농장주들이 진정으로 원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내었다.
가장 위생적인 우유 탄생
‘만약 생산에서 유통까지 위생적으로 처리된다고 한다면 소비자들이 믿어줄 거야. 물론 농장주들도 투자를 하려들겠지.’
대처는 이에 생각이 미치자, 곧 우유 보호 장치와 유리병을 결합하는 장치를 고안해냈다. 그의 생각은 옳았다.
 “위생적인 우유가 나왔대.”
“위생적인 우유라고?”
“그렇대도. 이젠 안심하고 우유를 마실 수 있게 되었어.”
위생적인 우유를 열망하던 소비자들은 그의 유리병과 우유 보호 장치에 지지를 보냈다. 물론 여기에는 우유가 새지 않도록 압축 종이마개로 우유병을 밀봉하는 기술 개발도 뒤따랐다.
그가 그토록 바라던 ‘가장 위생적인 우유’가 탄생한 것이다. 오랫동안 영양의 보급 원으로 활약하던 우유가 옷을 갈아입고 새로운 모습으로 재탄생했다고나 할까.
그의 유리병과 우유 보호 장치는 곧 바로 판매와 이어졌다.
“믿을 수 있는 우유가 탄생되었으니 우유가 훨씬 더 잘 팔리게 되었어요. 대처씨!”
“그렇겠지요. 우선 저부터 안심하고 많이 사서 먹을 겁니다. 우유야말로 우리 식생활에 빠져서는 안될 중요한 영양 공급원이니까요.”
“아무튼 정말 다행입니다. 상한 우유를 먹고 가끔 배탈이 나서 고생한 적이 있었는데... 이젠 그런 염려는 안 해도 되겠어요.”
어쨌든 대처의 우유병은 그 뒤 꽤 오랫동안 세계의 우유시장을 석권했다.
우유 하면 사람들은 으레 우유병을 생각하리만큼 상식으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아저씨! 우유 주세요.”
“옛다. 병 우유 하나!”
지금은 종이 우유팩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는 있지만, 대처의 우유병은 여전히 우유의 대명사로 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남아있다.
글 : 왕 연 중
(한국발명문화교육연구소 소장, 영동대학교 발명특허공무원학과 겸임교수)
(이메일 : wangyj39@dreamwiz.com 전화 : 011-890-85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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