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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장 가
믿거나 말거나
고장난 전축의 소음을 녹음하여 판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그것도 심하게 우는 신생아를 재우기 위한 자장가로 팔린다면?
믿을 수 없는 일이라고 의아해 할 사람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그런 일이 버젓이 일어나고 있다.
상상을 초월하는 이 상품의 고안자는 누구이며, 왜 그런 일을 하게 되었을까?
무대는 영국, 로저 와넬이라는 평범한 선생님의 가정에서 일어났던 일이다.
아가는 울보 왕 이었다.
“여보, 나 출근시간 늦겠어.”
“잠깐만요. 이 아기가 도대체 왜 자꾸 우는지...”
와넬은 학교 교사로 아침 출근을 서두르고 있었다. 그런데 이들 신혼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아가는 울보중의 울보로 눈만 뜨면 막무가내로 울어댔다.
와이셔츠, 넥타이를 챙기다 말고 아기에게 뛰어간 와넬의 아내가 소식이 감감해지자 기다리다 못한 와넬이 아내를 재촉했다.
“이런, 이러다가는 지각하겠네. 학생들 보고 지각하지 말라고 했는데, 내가 늦으면 안되지!”
“와넬, 미안해요. 아기가 울음을 그치지를 않네요. 와이셔츠, 넥타이는 여기 있으니 양말이랑은 자기가 좀 챙기셔야겠어요.”
와넬은 아내와 아기가 있는 방으로 걸어 들어갔다.
“젖이라도 더 주어보면 안될까? 왜 자꾸 울지?”
“젖을 주었는데도 소용이 없어요.”
“내가 안아 볼까?”
“출근 늦으시겠어요. 그냥 가세요.”
아내의 말에 와넬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와이셔츠와 넥타이를 집어 들었다.
“허, 그 녀석 도대체 누굴 닮은 거야. 제비마냥 악을 쓰고 있으니...”
아기는 먹이를 받아먹으려는 작은 제비 새끼마냥 빨간 목구멍을 한껏 벌린 채 목젖을 드러내며 마구 악을 쓰고 있었다.
“여보, 그럼 나 다녀오리다.”
“잘 다녀오세요.”
“알았소, 오늘은 일찍 끝나니까 내가 와서 아기를 좀 봐 줘야겠군.”
와넬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집을 나섰다.
“난, 저만 할 때 안 울었는데... 그 녀석 참!”
하늘은 푸르고, 줄 장미는 울타리 너머로 고개를 늘어뜨린 상쾌한 아침이었다.
저녁 무렵, 수업을 마치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와넬의 마음은 가볍기만 했다.
‘빨리 가서 아내를 기쁘게 해 줘야지. 아기는 쌔근쌔근 자고 있겠지? 귀여운 녀석!’
그러나 집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와넬의 설레이던 마음은 산산조각이 났다.
“으앙, 앙앙”
아기의 울음소리가 집안을 메우고 있었고, 아내는 얼굴이 벌개져서 쩔쩔 매고 있었다.
“아니, 또 울고 있는 거야?”
“녜, 하루 종일 잠도 잘 못자고 보채기만 했어요. 특별히 아픈 데는 없는 것 같은데...”
“내가 안아 볼까?”
“소용없어요. 그냥 막무가내에요. 피곤하실 텐데 좀 쉬셔야지요.”
아기는 굳게 쥔 두 주먹에 힘을 불끈 주어가며 악을 쓰고 울어댔다.
도대체 영문을 모를 일이었다. 젖이나 우유를 먹으려 하지도 않고, 그저 찢어질 듯한 목소리로 울어 젖힐 뿐이었다. 마치 와넬 부부에게 항의라도 하는 듯 했다.
와넬은 아기의 조그만 얼굴을 보며 양미간을 찌푸렸다.
“정말 대책이 안 서는군. 어린 아기한테 호통을 칠 수도 없고...”
머리가 지끈지끈 쑤셔왔다.
와넬은 얼굴까지 새빨갛게 되어 필사적으로 울고 있는 아기가 안쓰러운 한편, 귀청이 찢어질듯 울리는 그 곱지 않은 울음소리에 짜증이 났다.
‘나를 위해서나 아기를 위해서나 얼른 울음을 그치게 하는 것이 좋겠군. 좋은 방법이 없을까?’
와넬은 되도록이면 정신을 가다듬으려 애쓰며 기억을 더듬기 시작했다.
‘아! 맞아. 자장가를 들려주어야겠다. 조용한 음악을 들으면 아기가 정서적으로 안정이 되니까 아마 잠을 잘 수 있을 거야.’
와넬은 언젠가 육아잡지에서 읽은 한 대목을 떠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사실 그 조언이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여보, 아기에게 자장가를 들려주면 잠을 잘지도 몰라. 그러니 잠시만 기다리구려.”
“그럴까요? 하긴 저 어렸을 때도 엄마가 자장가를 불러주시면 곧바로 잠이 들어 아름다운 꿈을 꾸곤 했지요. 한번 해 보세요.”
고장 난 전축
아기는 여전히 울고 있었다.
“녀석, 누굴 닮아서 저렇게 고집이 센 거야. 끈질기게도 울고 있네.”
“혹시 당신을 닮은 거 아니에요?”
“글쎄, 아기야 말 잘못 했다가는 되려 내가 뒤집어쓰겠구나. 곧 음악을 들려줄 테니 잠시만 기다려라.”
와넬은 자신이 즐겨듣던 피아노곡의 음반을 전축에 살며시 올려놓았다.
그러나 와넬의 입에서 낭패의 신음소리가 흘러 나왔다.
“이런, 이게 뭐야?”
감미롭고 부드러운 음악소리가 잔잔하게 울려 퍼질 것을 기대했던 그의 귓가에 요상한 소음이 흘러들었기 때문이다.
“또 말썽을 부리는군. 말썽꾸러기 전축 같으니라고. 이걸
어쩌지?”
와넬은 한동안 멍하니 서서 전축을 바라보다가 몸을 서서히 움직였다.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몰라. 어디 한번 고쳐 보자.’
그는 속으로 생각하며 드라이버와 팬치가 들어있는 연장통을 집어 들었다.
작은 연장을 들고 전축으로 다가서던 그는 문득 주위가 갑자기 조용해진 것을 깨달았다.
“어? 이상하다. 여보, 아기 울음소리가 왜 안들리지?”
와넬은 요람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거기에는 아내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요람만 놓여 있었다.
‘이 사람은 금세 어디 간 거야?’
중얼거리며 요람 안을 훑어보는 그의 시야로 새근새근 잠들어 있는 아기의 천연스런 얼굴이 들어왔다.
‘울다가 지쳤나? 어떻게 잠이 들었지?’
와넬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쨌든 잠들었으니 다행이야. 그런데 이 사람은 대체 어디로 간 거야?’
그는 아기가 깰세라, 조심스럽게 연장통을 챙겨들고 방에서 나왔다.
와넬의 아내는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고 있었다.
“여보, 어떻게 된 거요? 아기가 어떻게 잠이 들었지?”
“글쎄요. 당신이 전축을 켜고, 만지는 사이에 잠을 자더군요. 그래서 살짝 빠져 나왔어요. 일감이 밀려서... 그런데 아기는 잘 자요?”
아내의 천연덕스러운 말에 와넬은 대답했다.
“싱겁기는. 그런데 어떻게 잠이 들었지? 울다가 지친 것일까? 아니면 설마, 전축이 내는 소음을 듣고 울음을 멈춘 것은 아닐 테고...”
“설마요...”
와넬의 아내 역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전축의 소음이 자장가 역할을 하다니,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연으로 치부해버리기엔 어쩐지 개운치 않았다.
‘실험을 한번 해 볼까? 머리 속으로 추측만 해서는 알 수 없는 일들이 이 넓은 지구상에서 하루에도 몇백번씩 일어나니까...’
와넬은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생각을 아내에게 전했다.
“여보, 혹시 모르니까 우리 한번 실험을 해 보면 어떨까?”
“그렇게 하세요. 실험을 해서 아니면 그만이고, 만약 효과가 있다면 매우 좋은 일이잖아요. 그동안 아기 때문에 많이 시달렸는데...”
울보들의 실험
와넬은 우선 전축에서 나는 소음을 녹음했다.
와넬의 아내는 이웃에게 양해를 구해 아이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필립 엄마, 제가 몇 시간만 아기를 돌보게 해 주실래요? 좋은 음악을 실험하는 중인데 아이들의 반응을 보고 싶거든요.”
“그러세요. 아기 여기 있어요.”
그렇게 해서 데려온 아기들이 열명이었다.
모두 우는 일이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만큼의 울보들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실험 날, 와넬의 집안은 한꺼번에 울어 젖히는 열명의 아기들 때문에 몸살을 앓게 되었다.
“와, 이거 정신이 하나도 없네요. 여보!”
“자, 자 제발 조용히 해라. 얘들아!”
와넬은 막무가내로 우는 아기들을 향해 중얼거렸다.
“여보, 아기들은 하나가 울면 다 울게 되어 있어요. 어떻게 좀 해보세요.”
“그래, 그래 알았소. 이제 시작합시다.”
아이들의 울음소리는 더욱 거세졌다. 아마 그 아이들의 부모가 온다 해도 달래지 못 할 만큼 발악적이었다.
“좋았어. 이제 딱 알맞은 상태로군.”
와넬은 이제 마악 나타날 효과를 기대하며 전축에 전원을 연결했다. 그러자, 예의 그 소음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잠시 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토록 울어대던 아기들이 서서히 진정의 기미를 보이더니 하나씩 잠이 드는 것이었다.
그리고 실험을 시작한 지 30분 만에 열명 중 무려 아홉 명의 아기가 곤히 잠들었다.
와넬 자신조차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이럴 수가! 정말 대단하군.”
“여보,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지요? 아기들이 이 시끄러운 소음 속에서 잠을 잘 수 있다니...”
와넬 부부는 성공을 예감하고 기쁨에 넘친 환호성을 내질렀다.
“우와! 성공이다!”
정말 우연하게도 그에게 성공의 기회가 다가온 것이다.
“오잉, 귀여운 것들!”
와넬의 아내는 곤히 잠들어 있는 아기들의 볼에 얼굴을 부비거나, 손가락을 만져보며 여전히 깨지 않고 자는 아기들을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소음을 상품으로 내놓다
그로부터 얼마 후, 와넬은 빅터음악공사와 계약을 맺게 되었다. 전축에서 흘러나온 소음을 카세트에 담아 상품으로 내놓게 된 것이다.
“와넬씨, 정말 기발한 착상입니다. 저희 회사와 계약을 맺게 되어서 아주 기쁩니다.”
“사장님, 감사합니다. 저도 생각지 못한 결과가 나와서 어리둥절할 뿐입니다.”
그는 다소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히며 계약을 끝냈다.
“여보, 계약은 잘 하셨어요?”
와넬이 집안으로 들어서자, 그의 아내가 기다렸다는 듯이 반갑게 맞이했다.
“그렇소. 우리 아기는 어때요? 잘 자고 있소?”
“녜, 여보! 정말 신기해요. 그 자장가만 틀어주면 거짓말처럼 잠이 들어요. 그렇게 잘 울던 아이가...”
와넬의 아내는 남편의 웃 도리를 받아 걸며 상냥하게 말했다.
“어디, 우리 효자 보러 갈까?”
“하긴 그렇네요. 벌써부터 아빠 엄마에게 효도를 하고 있으니. 커서도 틀림없이 효자가 될 거예요. 그렇지요? 여보!”
“그렇지만 아기가 다소 까다로운 것만은 틀림없소.”
그의 말에 와넬의 아내는 웃음을 머금으며 팔짱을 끼었다.
“그건 아마 저를 닮아서 일거예요.”
“그래? 하하하!”
와넬 부부가 다가가는 줄도 모르고, 아기는 요람 안에서 새록새록 잠을 자고 있었다.
“천사 같지요?”
“천사가 이렇게 귀여울까?”
“어쨌든 집안이 조용해져서 살 것 같아요.”
“우리 부부 뿐만 아니라, 이제는 울보들 부모들이 그 자장가로 도움을 많이 받으면 좋겠는데...”
“틀림없이 그렇게 될 거에요. 실험이 그것을 잘 말해 주었잖아요. 여보!”
“기왕 상품화가 되었으니 불티나게 팔렸으면 좋겠지?”
“그럼요.”
“귀여운 녀석! 울보가 이제는 잠보가 되었군. 아빠 엄마가 제 흉을 보는 줄도 모르고...”
“쉿, 그래도 건드리지 마세요. 아기는 잠을 자면서도 키가 크고요, 몸무게도 쑥쑥 불어난대요.”
“그래, 여보! 오랜만에 우리끼리 오붓하게 식사합시다.”
와넬 부부는 천천히 요람 곁을 떠났다.
소음이 자장가가 되는 이유
와넬의 하이테크 자장가는 테잎으로 출시되자마자, 찾는 사람들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소음이 테잎으로 나왔다는데 정말 궁금해서 사러 왔습니다.”
“녜, 손님! 여기 있습니다.”
여기저기에서 자장가로 듣기 위해, 혹은 내용이 궁금하여 사가려는 사람들이 줄을 섰다.
“와넬씨,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음악도 아니고 단지 소음일 뿐인데 왜 아기들이 이 소음을 듣고 잠을 잘까요? 제가 듣기로는 잠이 오기는커녕, 오던 잠도 달아날 지경인데요.”
“허허허, 녜! 이 규칙적인 소음에 아기들이 반응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설명해 주시지요. 왜 그렇습니까?”
“아기가 엄마의 뱃속에서 듣고 자란 소리와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아기는 세상에 나온 후, 낯선 생활환경에 종종 스트레스를 받게 되어 이유 없는 울음을 터뜨리며 항의를 하곤 하죠.”
“아, 뱃속에서의 환경과 세상에 태어난 후의 환경이 서로 달라 아이들이 곤란을 겪을 수도 있겠군요.”
“그렇지요. 그러다가 따뜻하고 포근한 엄마의 뱃속에서 듣던 소리에 안정을 찾게 되는 겁니다. 이 소음이 바로 그 안에서 듣던 소리와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와넬은 자신의 테이프에 대하여 묻는 질문에 이렇게 설명했다.
“어쨌든 아기를 가진 모든 엄마들에게 이것은 반가운 소식이 되겠군요. 와넬씨!”
“그렇지요. 난데없는 아기의 투정에 속수무책으로 밤을 지새워본 엄마들이 많이 계실 텐데 이젠 그런 일이 줄어들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 덕분에 창문 너머로 은은하게 들리는 엄마의 자장가 소리가 줄어들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글 : 왕 연 중
(한국발명문화교육연구소 소장, 영동대학교 발명특허공무원학과 겸임교수)
(이메일 : wangyj39@dreamwiz.com 전화 : 011-890-8578 )
그림 : 김 민 재(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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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연중의 발명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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