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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위복
사업가의 꿈을 안고
‘여장부 후지무라’
비누공장을 경영하는 그녀를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불렀다. 언제나 당당한 모습으로 활보하며 활기차게 일하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뭇 남성들과 비교해서 전혀 뒤질게 없는 인텔리였다. 이 때문일까, 그녀는 매사에 자신만만하게 임했고, 웬만한 시련에도 눈물을 보이는 법이 없었다.
‘내가 여기서 울면 지는 거야. 눈물을 보이는 대신 밝게 웃어주자. 분명 마지막 승리는 나의 것이 될 거야.’
학교에서나 처음 직장생활을 할 때, 수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편견어린 시선으로 여성을 바라보는 사람들과 그녀의 능력을 제대로 평가하지 않은 문제들이 여기저기에 도사리고 있었다. 이런 어려움에 부딪힐 때마다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지만 그녀는 이를 악물고 참아냈다. 그리고 오히려 밝게 웃어보였다.
이 때문에 그녀는 언제부턴가 ‘여장부’라는 수식어로 불리게 되었다.
사업가로 성공하겠다는 꿈을 안고, 비누공장을 인수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사업이야기를 꺼내자 그녀를 아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펄쩍 뛰었다.
“후지무라, 사업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고… 좀더 냉정하게 생각 하는 게 좋아.”
“그래, 사업을 하려면 무엇보다도 사람관계가 좋아야해. 거래를 트거나 은행에서 대출을 받는 것도 모두 인간관계로 이루어지는 거니까.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자를 신뢰하지 않아, 믿지 않는다고.”
모두들 무슨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 목소리를 높였다.
“편하게 살 수 있는데 왜 사서 고생을 하려는 거야? 그냥 남편이 벌어다주는 돈으로 지혜롭게 살림이나 하는 게 가장 큰 복 이라고.”
“냉정하게 생각하는 게 좋아. 여자가 사업해서 성공하긴 정말 힘들다고.
여러 가지 부정적인 예까지 들어가면서 만류했지만, 후지무라는 말없이 듣기만 할뿐이었다. 알 듯 말 듯 한 엷은 미소만 띤 채.
“모두의 걱정을 잘 알겠어. 그 말대로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을 거야. 하지만 시작도 해보지 않고 포기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고 생각해. 난 성공할 자신이 있어.”
후지무라는 낮지만 힘이 실린 목소리로 단호하게 말했다.
비누사업에 뛰어들다
후지무라가 선택한 사업은 비누생산업이었다.
‘비누를 많이 사용하는 계층은 단연 여성이다. 남자들은 대부분 아내나 누이, 어머니가 사다놓은 비누를 생각 없이 쓰는 법이지. 결국 여성의 취향을 잘 아는 사람이 좋은 비누를 만들 수 있는 거야.’
그녀는 누구보다 여성이 좋아하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좋은 상품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처음엔 그녀의 생각이 적중한 듯 했다. 여성이 좋아하는 색과 향기, 모양을 고려해 만든 후지무라의 비누는 비교적 좋은 반응을 얻으며 팔려나갔다. 또 후지무라는 특유의 성실성과 창의력으로 거래처와 은행에 좋은 인상을 남길 수 있었다.
처음에는 여자라는 이유 때문에 달가워하지 않던 사람들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녀의 참모습을 보고는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물론 모든 편견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처음에 걱정했던 불편들은 많이 사라지게 되었다.
그러나 어려움은 여러 곳에 도사리고 있었다. 특히 비누를 만들어내는 제조공정은 너무나 까다롭고 신경이 쓰이는 부분이었다.
처음엔 잘 해보겠다는 의욕이 앞서, 이 문제를 미처 의식하지 못했지만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점점 더 그녀를 압박해왔다. 크고 작은 실수들이 여기저기서 생겼고, 그때마다 그녀는 적지 않은 손해를 봐야했다.
비누 생산량이 늘어나면서 문제는 더욱 커져갔다. 많은 양을 만들다보니, 사고도 잦았고 그만큼 원료의 낭비가 많았던 것이다.
다행히도 비누 판매량이 적은 수준이나마 꾸준히 늘고, 기술자들이 적극적으로 도와준 덕분에 치명적인 피해는 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기술과 경험이 쌓이면서 사고의 횟수도 눈에 띄게 줄어갔다.
그러나 불행은 언제나 작은 틈을 노리는 법. 후지무라는 뜻하지 않은 사고를 겪게 되었다.
예기치 못한 사고
유난히도 볕이 따사로운 오후였다. 점심식사를 막 끝낸 후라 노곤함이 밀려들어오는 시간이었다.
“하암～”
기무라는 늘어지게 하품을 하고, 작업장 한구석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의 눈앞에선 거대한 솥에 담긴 비누원료가 희미한 소리를 내며 끓고 있었다.
‘한 시간 정도 남았군.’
그는 벽에 걸린 시계를 곁눈질로 보고 솥의 상태를 유심히 관찰했다. 비누원료는 보통 때와 마찬가지로 잘 끓고 있었다.
비누원료를 끓이는 작업은 까다롭고 동시에 중요한 일이었다. 가장 적당한 시간을 맞추어야만 작고 고운 거품이 이는 고급비누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시간이 넘치거나 모자라면 비누의 질이 그만큼 떨어지게 마련이었다.
때문에 후지무라 공장에선 교대로 솥을 지켜보며 끓는 과정을 감시하고 있었다.
기무라는 비누를 만드는 일에는 베테랑인 기술자였다. 그는 원료의 색깔만 보아도 완성도를 알 정도였다. 그가 솥을 지키고 있는 한 걱정할 것이 없었다.
‘정말 피곤하군.’
잦은 야근으로 피로가 누적된다가 점심을 먹은 직후 때문인지, 기무라는 자꾸 눈이 감기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십여 분이 지난 후, 그는 자신도 모르게 깜빡 잠이 들고 말았다.
“어머나 이걸 어째!”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기무라는 웅성거리는 소리에 놀라 잠이 깨었다. 무슨 일인지 비누 원료를 끓이는 솥 앞에 사람들이 잔뜩 모여 있었다. 그들의 얼굴은 심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가까스레 정신을 추스린 기무라는 순간적으로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기무라씨, 어떻게 된 거예요? 비누원료가 모두 끓어 넘쳤잖아요.”
잠깐 졸았다고 생각했는데 벌써 두 시간이 흘러 있었다. 불을 꺼야 할 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넘어 있었던 것이다.
비누원료는 끓어 넘쳐 바닥을 흥건하게 적시고 있었다.
“이럴 수가.”
보고를 받고 뒤늦게 달려온 후지무라는 눈앞의 광경을 믿을수 없는지 두 눈만 껌벅이고 있었다. 끓어 넘친 원료는 한 달 치 상품을 만들 수 있는 엄청난 양이었다. 돈으로 환산해도 어마어마한 금액이 될 것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그녀는 기무라에게 일의 자초지종을 물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잠깐 존 사이에 일이 이렇게 됐습니다.”
기무라는 새파랗게 질린 체 얼굴도 들지 못하고 있었다.
“좋아요. 지금은 책임을 따질 때가 아닌 것 같군요. 어떻습니까? 저 원료를 사용할 방법이 있나요?”
“죄송한 말씀이지만 불가능합니다. 거품이 거칠게 일어나서 좋은 상품을 만들 수 없을 겁니다.”
기무라는 체념하듯 말했다.
“아아, 그래요.”
후지무라는 크게 낙심하여,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이 사건으로 입을 피해는 너무나 컸다. 겨우 기반을 잡아가고 있었는데 원점으로 돌아간 꼴이 되었다.
‘휴우～’
그녀는 깊게 한숨을 쉬었다. 너무나 가슴 아픈 일이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리고 언제까지나 낙심만 하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녀는 결심한 듯 입술을 깨물고 벌떡 일어섰다.
“자자, 이제 잊어버립시다. 이미 엎질러진 물을 주워 담을 수도 없잖아요. 오늘은 쉬고, 내일부터 다시 열심히 일합시다.”
그녀는 기무라를 비롯해 풀이 죽은 직원들을 위로하고 자리를 떴다.
거품비누의 비밀
‘좋은 방법이 없을까?’
시간은 벌써 자정을 훨씬 넘기고 있었지만, 후지무라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못쓰게 되어버린 원료를 생각하니 도저히 편안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너무나 아까운데… 다른 활용방법은 없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좋은 묘책이 떠오르지 않았다.
‘차라리 그냥 비누로 만들어버릴까? 좋은 상품은 아니더라도 비누의 역할은 하지 않을까?’
그녀는 거친 거품으로 만든 비누를 상상해보았다. 입자가 곱고 단단한 미용비누와는 달리, 조직이 성글고 공기함량이 많아 거품 같은 비누가 될 것이었다.
“거품같은 비누라, 거품 같은….”
주문을 외우듯 혼자말로 중얼거리던 그녀는 갑자기 벌떡 일어났다.
‘거품 같다면 분명 가볍겠지? 거품은 물에 쉽게 뜨니까.’
갑자기 일년 전 방콕 여행에서 만났던 희한한 광경이 떠올랐다. 방콕 사람들이 떼지어 강가에서 목욕하는 장면이었다. 그때 사람들은 강에 몸을 깊숙이 담근 채 비누칠을 하며 요란스럽게 목욕을 했었다.
‘맞아! 강에서 목욕을 하는 방콕사람들에겐 물에 뜰만큼 가벼운 비누가 필요할거야. 만약 비누를 물에 빠트리기라도 하면 여간 곤란할 일이 아닐 테니까.’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공장의 작업실로 향했다. 모두가 잠든 한밤중이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넘쳐버린 원료로 정말 가벼운 비누를 만들 수 있는지 알아봐야 해.’
실험실에 도착한 후지무라는 끓어 넘친 원료를 이용해 비누를 만들기 시작했다.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 없이 단지 혼자서 밤새 몇 번이고 같은 일을 되풀이 했다.
원료로 비누를 만들고, 직접 실험을 했다. 그리고 문제점을 체크할 뒤 또 새로운 비누를 만들었다. 이렇게 그녀의 앞에는 여러 가지 비누들이 쌓여갔다.
물에 뜨는 비누 아이보리
“어머나, 이게 무슨 일이야!”
오전 8시, 서둘러 출근한 직원들은 공장 작업실에 벌어진 광경을 보고 모두 놀라 굳은 듯 서 있었다.
작업실 온통 비누조각들과 거품으로 잔뜩 어지럽혀져 있었다. 그리고 커다란 목욕통에는 물이 한가득 출렁이고, 그 옆에는 후지무라 사장이 죽은 듯 엎드려 있었다. 마치 전쟁이라도 치른 듯한 광경이었다.
“사장님, 사장님! 정신 좀 차려보세요.”
당황한 직원이 어깨를 잡아 흔들자, 후지무라는 가까스레 눈을 떴다. 그녀의 두 눈은 벌겋게 충혈 되어 있었다.
“아아, 벌써 다들 출근했네요. 잠깐 쉰다는 것이, 그만….”
그녀는 겸언 적은 듯 살짝 웃어 보이고 벌떡 일어섰다.
“여러분, 좋은 소식이에요. 어제 기무라씨의 실수를 만회할 좋은 아이디어가 생겼어요.”
후지무라는 여전히 웃으면서 탁자위에 놓인 비누를 하나 집어 들었다. 그리고 물이 담긴 목욕통 속에 주저 없이 던져 넣었다. 비누는 순간 가라앉는 듯 하더니 물위로 둥실 떠올랐다.
“자, 보세요 여러분. 물에 뜨는 비누 아이보리입니다. 어때요, 근사하지요? 우리 회사가 내놓을 신상품입니다.”
후지무라의 얼굴에 자신만만한 미소가 번졌다. 밤새 내내 치룬 비누와의 전쟁에서 당당히 승리한 것이었다.
물위에 둥둥 떠 있는 비누와 후지무라의 얼굴을 번갈아 보던, 직원들의 얼굴에 비로소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좋습니다. 자, 우리 모두 다시 시작하십시다.”
한 고참직원의 고함을 신호로, 모든 직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애물단지로 취급받던 거품원료가 신중히 옮겨졌고, 멈추어있던 기계들이 돌아갔다. 이렇게 세계적 히트 상품 아이보리 비누가 만들어졌다.
아이보리 비누는 시중에 나오자마자 세계인의 이목을 받았다. 하마 트면 실패로 묻힐 번했던 것이 졸지에 세계최고의 상품이 된 것이다.
여장부 후지무라. 쉽게 포기하지 않는 도전정신으로 실패를 성공으로 바꾸어냈다.
글 : 왕 연 중
(한국발명문화교육연구소 소장, 영동대학교 발명특허공무원학과 겸임교수)
(이메일 : wangyj39@dreamwiz.com 전화 : 011-890-8578 )
그림 : 김 민 재(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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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연중의 발명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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