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 면
인스턴트식품의 왕자
인스턴트식품 중에서 단연 으뜸으로 손꼽히는 라면. 식품업계의 혁명으로 까지 극찬 받았던 라면은 1958년 일본에서 발명되어 시판되기 시작하였다.
발명가는 일본의 사업가였던 안도 모모후크.
중국의 상용 식품인 건면에서 유래했다는 일화가 전해지기도 하지만, 이에 대한 믿을만한 기록은 없다.
우리나라에 첫선을 보인 것은 1960년대 초.
“철호야, 너 이거 뭔지 아니?”
“으응...글쎄.”
초등학교 2학년 교실 안이 갑자기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야, 영희야! 뭔데 그래?”
“나도 좀 보자.”
아이들이 영희의 주변으로 우루 루 몰려들었다.
“이거 먹는 거야.”
그러자 영희는 봉지 안에 들어있는 과자부스러기 같은 것을 조금씩 먹기 시작했다.
“그거 국수니?”
“그래 꼬부랑 국수지?”
“아냐, 과자 같은데...”
아이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궁금증을 참지 못 하겠다는 듯 한마디씩 던지다가 손을 내밀었다.
“영희야, 나 좀 주라.”
“나도!”
그제 서야 영희는 아이들에게 선심을 쓰듯 먹던 것을 조금씩 떼어 나눠줬다.
“야, 맛있다.”
“그래, 정말 맛있는데. 이건 과자야.”
그때, 멀리서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똑순이가 한마디 던졌다.
“바보들아, 그건 과자가 아니라 끓는 물에 넣어서 먹는 국수야. 라면이라고...”
“뭐? 라면... 그럼 똑순이 너는 먹어봤단 말이야?”
“그럼, 어제부터 우리 동네 가게에서 팔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이들은 우드 득 소리를 내가며 라면을 생으로 먹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후, 아이들의 책가방 속에는 라면이 도시락 대신 들어있었고, 아이들은 점심시간도 채 되기 전에 틈만 나면 라면을 생으로 먹어댔다.
“이야, 맛이 죽여준다.”
엄마들은 라면은 물을 붓고 끓여먹는 것이라고 거듭 일러줬지만, 아이들에겐 그 말이 들리지 않았다.
“엄마, 그냥 먹어도 맛있어요.”
이처럼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며 우리나라에 선보여, 지금까지도 밥보다 라면을 더 좋아하는 아이들이 있게 만든 라면은 어떻게 해서 만들어졌을까?
세계대전의 패망 국 일본
“엄마, 배고파요.”
“미찌꼬, 조금만 참아요. 아빠가 쌀을 구하러 가셨으니 곧 오실거야.”
“그래도 배고파! 밥 주세요.”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일본은 건국이후 최대의 고난을 겪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굶주림에 시달리고, 곳곳에서 질병으로 쓰러지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폭격을 맞아 건물이나 집들은 모두 부서졌고, 원자폭탄이 투하된 시가지 부근에서는 후유증으로 고통을 겪는 사람들로 아수라장이었다.
1950년 6·25라는 한국전쟁의 반사이익과 끈질긴 전후 복구 작업이 계속되어 겉으로는 동경 올림픽을 준비하는 여유를 보이고 있었으나, 속으로는 많은 사람들이 식량부족으로 수난을 겪고 있었던 것이다.
“여보, 배고파 우는 어린 것들을 어떻게 달래야할지 모르겠어요.”
“이제 곧 미국에서 밀가루를 지원받게 된다니까, 조금만 참읍시다.”
식량이 부족하다 보니 당시 지구촌 대부분의 가난한 나라들이 그러했듯이 일본 또한 미국의 잉여농산물인 밀가루를 지원받게 되었다.
그러나 쌀밥을 주식으로 삼던 전통적인 식생활 습관 때문에 밀가루로 빵을 만들어 연명하는 것도 그들에게는 괴로운 일이었다.
“엄마, 빵은 이제 지겨워요. 쌀밥! 하얀 쌀밥을 주세요.”
“그래, 여보! 나도 쌀밥이 먹고 싶어. 빵은 아무리 먹어도 먹은 것 같지가 않아.”
“후유, 정말 큰일이군요. 언제까지 이런 지긋지긋한 생활을 해야 하는지. 전쟁의 후유증이 이렇게 무서울 줄이야...”
이렇게 시달리는 국민들의 신음소리를 들으며 안타까워하는 사람이 있었다.
‘말이 아니구나...... 무슨 좋은 방법이 없을까?’
안도는 폐허가 된 거리를 거닐며 밀가루를 이용한 새로운 식품개발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 밀가루를 이용하여 쌀밥 못지않은 주식을 개발하면 될 거야.”
안도는 발걸음을 힘차게 내딛었다.
밀가루를 이용한 주식을 개발하라
당시 밀가루는 부침, 빵, 국수를 만드는 자료 외에는 달리 사용처가 없었고, 어느 누구도 밀가루의 새로운 용도를 생각할 겨를이 없는 때였다.
그러나 안도만은 밀가루를 이용한 새로운 식품개발을 생각하고 있었다.
‘밀가루를 이용하여 주식 못지않은 새로운 식품을 개발하는 거야. 이 일만 성공하면 국민들의 어려움도 해결될 거고, 나의 장래도 보장받을 수 있을 테고...’
안도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새로운 밀가루 식품개발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영양이 풍부하고, 맛이 있고, 보관성이 우수하면서 누구나 손쉽게 조리해서 먹을 수 있는 식품이라면 꼭 성공할 거야.”
안도는 사업가인 자신의 모든 일을 뒤로 미루고 오직 밀가루에 묻혀 살았다.
그러나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달, 두 달 세월은 흘러갔으나 끈질긴 연구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언제나 실패였다.
“에잇, 이번에도 안 되겠어. 또 실패야 실패...”
어느덧 해가 바뀌고, 그렇게 몇 년이 지났다. 그동안 쏟아 부은 연구비 때문에 가산은 탕진되고, 거듭되는 실패에 의기소침해진 그에게 죽고 싶은 유혹까지 찾아들었다.
“정말, 이젠 끝장이다. 차라리 죽어버릴까?”
매사에 의욕을 잃고 자포자기를 하기 시작한 안도는 매일 술에 취해 살게 되었다.
매일같이 그가 찾아가는 곳은 술집이었고, 그러는 사이 어느 덧 그는 폐인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날도 안도는 평소처럼 어김없이 술집을 찾았다.
“안녕하세요? 주인장!”
안도의 인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술집 주인은 안도가 귀찮다는 듯 등을 돌리고 서서 무언가를 튀기고 있었다.
“냄새가 끝내주는군. 뭘 그렇게 열심히 튀기시나요?”
안도의 물음에 여전히 대꾸조차 하지 않고, 술집 주인은 끓는 기름에 덴뿌라를 튀기고 있었다.
‘흥, 보면 모르나? 술주정뱅이 같으니라고... 에이 귀찮아!’
술집 주인은 속으로 뇌까리고 있는듯했다.
그러나 안도는 술집 주인의 냉정한 태도에도 이골이 난 듯 전혀 개의치 않고 점점 주인 곁으로 다가섰다.
순간, 안도의 눈이 오랜만에 빛나는 가 했더니 입에서는 탄성이 절로 터져 나왔다.
“아! 바로 이거다.”
안도의 이상한 태도에 눈이 휘둥그레진 술집주인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며 입속으로 중얼거렸다.
“허 참, 결국은 미쳐버렸군. 안됐어. 쓸만한 사람이었는데...”
안도는 이에 개의치 않고 술집주인의 조리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주인의 앞에는 밀가루를 물에 푼 반죽, 잘 손질한 생선, 밀가루 등의 어지럽게 널려있었다.
밀가루를 물에 개어 옷을 입힌 생선을 펄펄 끓는 기름에 집어넣었다가 꺼내는 일이 반복되고 있었다.
‘음, 끓는 기름에 밀가루 옷을 입힌 생선을 집어넣으니 밀가루 속에 있던 수분이 순간적으로 빠져나오고, 튀김이 끝난 음식물에는 작은 구멍이 무수하게 생기는구나.’
한참동안 넋을 잃은 사람처럼 덴뿌라 튀기는 것을 지켜보던 안도는 길게 숨을 내리 쉬었다.
‘됐어! 덴뿌라 튀기는 원리를 응용해 보는 거야.’
“주인장, 저 갑니다.”
안도의 말에 술집 주인의 두 눈은 더욱 휘둥그레졌다.
“아니, 자네가 술을 마다하는가? 한잔 하고 가야지!”
“아닙니다. 오늘은 그냥 가고 다음에 다시 오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그리고는 황급히 술집을 나서는 안도의 등에 대고 술집 주인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거 참, 별 일도 다 있네. 내일은 해가 서쪽에서 뜨겠어!”
꼬불꼬불한 튀김 국수
술집을 나선 안도는 서둘러서 연구실로 향했다.
밖에는 어스름한 석양빛이 그의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우선 실험 준비를 해야지.’
여기저기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기구들을 대충대충 정리하는 그의 손길은 매우 가벼웠다.
실험 준비를 마친 그는 우선 밀가루를 국수로 만들어서 기름에 튀겨 보았다.
“옳지, 됐다. 됐어!”
성공이었다.
국수 속의 수분이 증발되고 국수가 익으면서 속에는 작은 구멍이 무수히 생기는 것이었다.
“자, 이제 이것을 건조시켜 보자.”
건조시킨 튀김 국수에 뜨거운 물을 부었다.
“그렇지! 뜨거운 물을 부으니까 작은 구멍에 물이 들어가서 다시 먹음직스런 국수가 되는구나!”
안도는 이것을 며칠동안 보관해 보았다. 이 실험 또한 성공이었다.
“며칠을 보관해도 변함이 없으니 바로 이거다! 이거야.”
안도는 드디어 라면 개발에 성공을 한 것이다.
“얏 호, 성공이다! 성공.”
안도는 자신이 개발한 라면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와, 이상한 국수가 다 있네.”
“국수가 아니고 라면일세!”
사람들의 반응은 대단했다.
“우와, 맛있어!”
“아주 색다른 맛이군.”
안도는 라면 발명가라는 명예와 함께 사업가로서의 명성을 되찾게 되었다.
상품의 가치를 높여라
이렇게 개발된 라면은 다른 국수와는 달리 면이 꼬불꼬불한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
“안도, 왜 라면은 다른 국수처럼 반듯하지 않고, 면이 꼬불꼬불 한지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나는 여러 번의 실험을 통하여 한정된 부피를 지니고 있는 많은 양의 국수를 작은 포장지 안에 넣기 위해 공학적인 계산을 해야 했는데, 직선보다는 곡선상태가 많은 양을 함축한다는 원리를 이용하게 된 것입니다.”
“이유는 그것뿐입니까?”
“아닙니다. 또 있습니다.”
안도는 지방 등의 영양가를 높이면서 유통과정에서 보존기간을 오래 지속하기위한 연구와 실험을 계속했다.
‘영양가가 풍부하고, 오랫동안 보관해도 변하지 않는 라면이 필요해.’
그는 여러 번의 실험 연구 끝에 튀김 공정에서 빠른 시간에 많은 기름을 흡수하여 튀겨지도록 하기 위해서는 수분증발을 도울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한데 이는 직선보다 곡선형이 좋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아, 그렇군요.”
또한 상품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그의 연구도 한 몫을 더했다.
“사업가로서 성공하려면 상품의 가치를 높여서 보다 많은 상품이 소비되도록 하는 데 있다. 그렇다면 직선과 곡선 중에 어느 것을 택할까?”
상품가치로 본다면 단순하고 평범한 직선보다 꼬불꼬불한 곡선형이 시각과 미각에 어울리는 미학적 가치가 높다.
‘그래, 여러모로 곡선이 좋겠군.’
그래서 라면은 면이 꼬불꼬불한 것이다.
이렇게 탄생한 라면은 그 동안 수많은 변화를 거쳐 오늘에 이르렀고, 우리나라에 있는 라면의 종류만 해도 수 십 종에 이를 것이다.
“신라면, 열라면, 삼양라면, 안성라면, 생 라면, 해물 탕 라면, 짬뽕라면, 컵라면, 김치라면, 새우라면, 자장 라면, 우동라면...”
“떡 라면도 있어요.”
여하튼 요즘도 초등학교 학생들의 책가방 속에는 심심치 않게 라면이 등장하고, 스프까지 곁들여 우지직 깨물어먹는 맛이란 어린이들이 더 잘 알 것이다.
전쟁 뒤에 폐허로 변해버린 조국의 비참함 속에 굶주리는 사람들을 염려하다 만들어진 라면.
이것은 안도의 예상대로 지금 우리에게 쌀밥을 대신할 만큼 제2의 주식이 되고 있다.
지금도 세상에는 굶주리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고, 가까운 북한의 동포들은 식량이 모자라 죽어간다.
경제적으로 위기를 맞고 있는 지금 우리나라에도 결식아동들이 늘고 있고, 하루 한 끼 밖에 먹지 못하는 실직자들이 부지기수이다.
과연 이 고통스러운 현실의 타개를 위하여, 지구촌의 굶주리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안겨 줄 제2의 안도는 없는 것일까?
슈퍼옥수수를 개발한 ‘옥수수 박사’같은 또 다른 발명가의 헌신적인 노력이 기대된다.
글 : 왕 연 중
(한국발명문화교육연구소 소장, 영동대학교 발명특허공무원학과 겸임교수)
(이메일 : wangyj39@dreamwiz.com 전화 : 011-890-8578 )
|
왕연중의 발명소설
Designed by DOWON.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