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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평화
‘셀루코튼’이란 무엇일까?
‘셀루코튼’이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아무래도 생소한 이름이기 때문이다.
“자, 여러분! 셀루코튼이 뭘까요?”
“알아 맞추면 뭐 줄건 데요?”
선생님의 물음에 아이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어느 발명학교 6학년 교실.
“좋아, 여기 있는 이 고급화장지 보이지? 휴대용 크리넥스!”
“와, 정말 그것을 주신다고요?”
“그래, 어디 한번 맞춰봐!”
그제 서야 아이들은 눈에서 빛이 발하기 시작한다.
“선생님! 셀루코튼이란 혹시 솜을 말하는 거 아니에요? 보송보송 아기 기저귀를 만드는 천연 솜 같은 거... TV선전에서 보니까 그 뭐라더라 무슨 코튼이라고 하던데!”
“와하하하...”
교실은 순식간에 떠들썩하다. 그러자 선생님은 고개를 약간 끄덕이며 말씀하신다.
“그래, 정답에 가까워오고 있어요. 또 말해볼 학생!”
“네, 선생님! 혹시 옷감 아니에요? 바바리코트랄지. 무슨 코튼 하는 것이 옷감 같은데요.”
“헤헤헤, 호호호”
아이들은 또 다시 폭소를 터뜨린다.
“얘들은... 영문도 모르고 웃기는! 좋아, 또 다음 사람!”
“알았어요. 선생님! 셀리가 루즈를 지울 때나 코를 팽하고 풀 때 쓰는 튼튼한 종이... 셀...루...코...튼 어때요? 맞지요?”
“와, 어떻게 맞혔지? 맞았어요. 셀루코튼이란 바로 이 크리넥스 화장지를 말하는 겁니다.”
“우와! 대단하다.”
“자, 그럼 이 휴대용 크리넥스는 철이 겁니다.”
답을 알아 맞춘 철이는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거리면서도 당당하게 앞으로 나왔다.
“낱말 풀이를 한 것뿐인데...”
“히야, 철이 이따 한턱내라!”
“철아, 축하해! 나도 끼워줘.”
“이런, 배보다 배꼽이 더 크겠네.”
떠드는 아이들 속에서 한 여학생이 손을 들었다. 호순이었다.
“선생님, 그런데 셀루가 코튼을 만났을 때는 왜 갖고 오셔서 철이에게만 주시는 거 에요? 코감기가 든 사람은 전데요.”
“뭐? 셀루가 코튼을 만났을 때...”
“후후후...”
“와하하, 헤헤헤...”
“가만, 조용! 조용히, 좋은 질문을 했어요. 호순이에게도 이따 선물을 할 테니 수업 끝나면 따라 오세요.”
“우와, 땡 잡았네. 호순이!”
“그럼 지금부터 셀루코튼에 대하여 재미있는 이야기를 시작하겠어요.”
이야기라는 말에 아이들은 갑자기 입을 다물고 조용해졌다.
솜을 대신할 새로운 제품?
“그러니까 제1차 세계 대전이 한창이던 1914년 유럽에서의 일입니다.”
“전쟁이라고요? 와 무시라!”
“그래, 전쟁이란 무서운 거다. 전쟁터에는 총과 칼이 난무하고, 병사들은 죽거나 다치거나 둘 중 하나겠지?”
전쟁으로 인해 유럽은 병들어 있었다. 먹을 것, 입을 것, 신을 것, 쓸 것 모두가 궁핍했다.
특히 매일 쏟아져 나오는 부상병들을 치료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위생병, 위생병! 여기 사람이 죽어가요.”
“이 사람은 다리가 부러졌고, 저 쪽 병사는 옆구리에 총을 맞아서 피를 너무 많이 흘렸어요. 어서 치료해 주세요.”
“뭐해, 빨리 빨리 붕대하고 솜!”
“이런, 숨이 끊어졌잖아!”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붕대, 솜, 거즈 그 어느 것 하나 필요하지 않은 것이 없지만, 절대적으로 태부족 한 것이 전쟁터의 상황이기도 했다.
전쟁에서 승리하자면 이런 필수물자의 확보가 절대적이었으므로, 기업들은 직접간접으로 대체물자 개발에 노력하게 되었다.
“피 흘리는 병사들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솜이 모자란다네. 솜을 대신할 새로운 제품을 개발해야해!”
킴벌리 클락은 종이를 재료로 하는 제품을 주로 만들고 있었지만, 이 개발사업에 동참하기로 했다.
‘시간이 급하군. 솜을 대신할 제품이라... 흡습성이 뛰어나고, 부드럽고, 가볍고... 해야 되겠지?’
킴벌리 클락은 연구 개발에 앞장을 섰다.
이렇게 해서 탄생된 것이 바로 셀루코튼이다.
셀루코튼은 약간의 솜과, 나무의 펄프 섬유소를 이용하여 만든 것으로 솜과 마찬가지로 흡습성을 지니고 있었다.
“의무관, 여기 셀루코튼!”
“솜이 아니라 셀루코튼이라고요? 그게 뭐지요?”
“저런 밥통! 요즘 새로 나온 솜도 모르나? 아무리 전쟁 중이라도 유행이 뭔지는 알아야지!”
전쟁이 한창이던 때, 셀루코튼의 인기는 가히 하늘을 찌를 듯 했다.
유럽뿐 아니라, 미국의 병원에서도 솜 대신에 셀루코튼을 사용했다.
“어이, 셀루코튼!”
“정말 편리하군. 잘 닦이는 데!”
셀루코튼은 또 가스 마스크의 필터로도 훌륭하게 이용되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자 셀루코튼의 인기도 한풀 꺾이게 되었다.
전쟁의 산물은 전쟁과 함께 사라지는 법일까.
“지루하던 전쟁이 끝났으니 다행이기는 한데 셀루코튼은 어떻게 하지?”
킴벌리는 새로운 궁리에 골몰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판로를 개척하라
킴벌리는 좋은 발명품을 그대로 묻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새로운 판로를 개척하는 수 밖에 없었다.
“자, 의료용 솜뭉치를 어떻게 개발해야 사람들이 평소에도 많이 쓸 수 있을까?”
킴벌리는 또 한 가지 색다른 생각을 구상 중이었다.
“셀루코튼을 종이처럼 얇게 만들어서 화장을 고치는 휴대용 천으로 사용하면 어떨까?”
의료용 솜과 얼굴 화장지.
이것 또한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엉뚱한 발상이었다.
“킴벌리 사장님, 정말 좋은 생각입니다. 틀림없이 이번에도 성공할 것입니다.”
그러나 소비자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천으로 만든 가제수건으로 닦아내면 될 화장을 굳이 비싼 화장지를 써야 하겠어? 흥!”
당시에는 얼굴 화장을 지우기 위해 천으로 만든 손수건을 쓰고 있었고, 모든 여성들은 습관처럼 되어버린 그 행위에 만족하고 있었다.
중산층을 대상으로 공략하겠다던 킴벌리의 경영전략은 시작부터 삐걱거리게 된 것이다.
“큰일이군. 이 곤경에서 어떻게 해야 벗어날 수 있지?”
“사장님, 홍보가 부족해서 그런 것 같으니까 대대적으로 홍보를 한번 해보면 어떨까요?”
“흐음, 그것도 좋은 생각이지. 그럼 아주 인기 있는 영화배우를 섭외하도록 해요.”
킴벌리는 이때부터 또 다시 갖가지 아이디어를 짜내었다.
인기 있는 영화배우들을 기용하여 대대적인 홍보를 펼치기도 하고, 품질을 개선하기위해 노력을 기울였다.
“화장지를 한 장씩 연속적으로 뽑아 쓸 수 있게 하면 어떨까?”
그래서 고안된 상자티슈도 이때 개발되었다.
“크리넥스라는 고유의 상표를 사용하도록 하지!”
이렇게 피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킴벌리는 별다른 성과를 얻어내지 못했다.
화장전용 티슈를 만들겠다는 단순한 전략이 바로 실패의 원인이었다.
“선생님, 킴벌리도 아이 엠 에프를 만났군요. 엉엉...”
“저런, 저런 눈물은 안 나고 콧물만 떨어질라.”
“헤헤, 폭소 대작전!”
“아이 엠 에프라는 데 웃음이 나 오냐? 에이 젬병!”
“어쭈, 아주 근엄하신데...”
보다 못한 선생님이 발을 굴렀다.
“그만들 해요! 이건 웃을 일이 아니잖아. 남은 죽느냐, 사느냐 인데.”
“쟤가 웃기잖아요. 선생님!”
“자, 자 그만 까불고... 그래서 어찌 되었는지 궁금하지 않니?”
“궁금해요. 선생님, 어서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요.”
“그래, 알았다. 궁하면 통한다고 사람이 죽으라는 법은 없지. 그래서 에 또...”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라
“사장님, 일리노이즈 지방 방문을 가시기로 하신 날입니다.”
“오, 그래? 그럼 모두 출발하지.”
킴벌리의 티슈 개발팀은 어느 날 일리노이즈 지방 방문을 하게 되었다.
“어서 오십시오. 킴벌리 사장님!”
“일리노이즈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만, 이 지방 사람들은 대부분이...”
일리노이즈 지방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티슈대신 손수건으로 얼굴화장을 지우고, 이에 대해 불만이나 불편을 느끼는 사람도 없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제 서야 킴벌리 티슈 개발팀은 크리넥스에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하게 되었다.
“우리가 실수를 했군.”
“그렇습니다. 획일적인 시각으로 크리넥스는 화장을 지우는 용도로만 사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 잘못된 것 같습니다.”
“그래, 사람들에게 화장지는 필요하지도 않은데, 사용하지도 않는 화장지를 억지로 인식시킨다고 사람들의 마음이 금방 달라질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새로운 용도를 개발하는 것이 어떨 런지... 아니면...”
“좋아요. 티슈에 새 용도를 불어 넣기로 하지.”
자신의 실수를 인정한 솔직한 변화의 시도였다.
“그럼, 이제부터 크리넥스를 어떤 용도로 사용하는 것이 적합하고, 어떻게 해야 사람들이 크리넥스의 필요성을 인식할 수 있을지 찾아봅시다.”
“막히면 돌아가라는 말이 있지요. 막다른 골목에서 벗어나는 길을 찾아봅시다.”
킴벌리는 새로운 길을 찾기 위해 다시 궁리를 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해야 사람들이 크리넥스를 찾게 할 수 있지? 어떻게 해야...’
킴벌리는 식사를 할 때나, 산책을 할 때나 심지어 길을 걸을 때도 온통 그 생각뿐이었다.
휴지와 감기
그러던 어느 날, 킴벌리는 눈이 번쩍 뜨이는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어이 참, 날씨가 왜 이렇게 추워!”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재채기를 하던 사람이 손수건을 꺼내 콧물을 닦았다. 그리고는 그 손수건을 다시 주머니에 집어넣는 것이었다.
곧 이어 길을 가던 어떤 아주머니가 아이의 코에 손수건을 대고 말했다.
“얘야! 훌쩍거리지 말고 킁 풀어!”
“킁!”
아이가 코를 풀자, 아주머니는 그 손수건을 다시 자신의 주머니에 집어넣으면서 말했다.
“에이, 감기가 말썽이군. 어서 가자. 더 추워지기 전에...”
킴벌리의 입가에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크리넥스에는 다음과 같은 새로운 광고 문안이 등장했다.
- 당신 주머니에 감기를 넣고 다니지 마세요. -
새로운 광고가 나가자 크리넥스의 판매고에 이변이 생겼다. 사람들이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던져 버리고, 대신 크리넥스를 찾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군, 코를 푼 더러운 손수건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것은 너무나 비위생적이야!”
“균이 묻은 손수건을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니...”
“크리넥스로 코를 닦아내면 감기를 가지고 다니지 않아도 되겠어.”
많은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혹은 의식적으로 크리넥스를 찾았다.
“아니, 아직도 손수건으로 코를 닦아주세요?”
“그럼, 어떻게 하지요?”
“전혀 모르시는군요. 크리넥스 티슈로 닦아주고 버리세요.”
“그럼요. 비위생적이에요. 손수건에 감기를 묻혀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것은...”
킴벌리가 원하던 바로 그 결과가 나타났던 것이다.
킴벌리의 오랜 노력에 보답이라도 하듯 크리넥스는 매일 판매기록을 깨뜨리며 효자상품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크리넥스가 하나의 대명사로 굳어진 것만 보더라도 그 인기는 가히 짐작할 만 하다.
전쟁 통에 솜의 대용품으로 태어나 이제는 우리 생활에 필수품이 되어버린 크리넥스.
현실에 머물러 그대로 안주하지 않고 계속 변화하고자 하는 도전정신이 바로 그 성공의 비결이었다.
“선생님, 너무 감동적이에요. 훌쩍, 패 앵～”
선생님의 이야기가 끝나자, 짐짓 훌쩍거리는 체 하며 크리넥스를 꺼내 코를 푸는 철이.
“후 하하하.”
“깔깔깔”
“어쨌든 킴벌리의 노력과, 개발 정신이 바로 그 크리넥스를 탄생시켰다는 것을 잊지 말도록.”
“하지만 선생님,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것이 있어요.”
“뭔데?”
“배고픈 것을 참는 거요. 눈앞에서 돼지 갈비가 왔다 갔다 하는 것을 없애줄 발명품은 없나요?”
“그건 정말 호순이 다운 발상이다. 네가 그것을 만들어 낸다면 다이어트 상품으로 세계적인 인기를 누릴 텐데. 한번 해 볼래?”
“점심부터 먹고요.”
“아이쿠, 못 말려!”
반에서 제일 뚱뚱한 호순이의 너털웃음과, 연신 코를 풀어대는 철이의 훌쩍거리는 소리 속에서 선생님은 번쩍 손을 들었다.
“알았다. 얘들아! 끝!”
발명의 세계에서 보면 크리넥스란 이름보다 셀루코튼이라는 이름에 무게가 더 실려야 정상이다. 셀루코튼이야말로 솜을 대신 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명실상부한 발명품이기 때문이다. 크리넥스는 이를 사용하여 만든 상품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리넥스라는 상품명에 안주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는 이처럼 보다 심오한 발명의 과정이 숨어있기 때문일 것이다.
발명이라 하면 대부분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작업’이라고 간단히 일축해 버리거나, 훌륭한 발명품은 세상에 태어나기만 하면 저절로 히트상품이 되고, 만인의 눈과 귀에 그냥 알려진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갓 태어난 아기가 홀로 살아갈 수 없듯 번쩍이는 아이디어가 혼자 성공한 발명품이 되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발명품이요, 상품이 되려면 적절한 홍보와 판매 전략이 필요하다. 그래서 발명이라 하면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는 일련의 과정에서부터 대중에게 널리 알리는 것 까지를 모두 포함하는 것이다.
셀루코튼도 이 실용화 작업이 부실했다면 살아남기 힘든 발명품이었다.
크리넥스의 탄생이 있었기에 셀루코튼이 발명품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글 : 왕 연 중
(한국발명문화교육연구소 소장, 영동대학교 발명특허공무원학과 겸임교수)
(이메일 : wangyj39@dreamwiz.com 전화 : 011-890-8578 )
그림 : 김 민 재(만화가, http : //www.coolmorning.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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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연중의 발명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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