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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씨앗
앙증맞은 의료제품
“아얏!”
가느다란 비명소리에 놀라서 아이를 돌아보는 엄마의 목소리.
“어머, 왜 그래?”
아이는 손가락을 움켜쥐고, 얼굴을 찌푸리며 기어드는 소리로 간신히 대답한다.
“어휴, 아파! 엄마, 손을 베었어요.”
“그래? 연필을 깎다가 그랬니? 조심하지 않고.”
잠시 후, 아이의 손가락에 핏방울이 맺히는 것을 본 엄마는 부리나케 약품 상자를 가져 온다.
“얘야, 얼른 피를 멈추게 하고, 연고를 바르자.”
“엄마, 약 바르지 않아도 제 상처는 금방 났잖아요. 밴드나 주세요.”
“그래도 괜찮겠니? 하긴 사내자식인데, 그 정도야 대수롭지 않게 넘겨야지. 여기 있다. 00밴드!”
밴드 반창고의 대명사처럼 되어있는 00밴드.
조그맣고 귀여운 게 어린 아기 엄지손가락만 하지만 그 안에 반창고와 거즈가 다 들어있다.
바쁜 일상생활에 쫓기다 보면 그런 조그만 밴드 반창고쯤이야 으레 약품 상자에 들어있는 것이려니 하지만, 자세히 살피다 보면 새삼 놀라게 된다.
‘아! 이런 것도 있었지!’
‘이 조그만 밴드가 참 편리하기도 하지. 상처에 붙이기만 하면 되니 참 간편하고.’
이렇듯 감탄을 연발하게 하는 것이다.
평소에는 있는 듯도 하고, 없는 듯도 하던 물건인데 자세히 살펴볼수록 신기하기도 하고, 여러 가지 의문사항들이 고개를 든다.
‘이 조그만 반창고는 누가 생각해 냈을까?’
‘어떻게 만들었지?’
유심히 관찰할수록 호기심은 발동한다.
작은 구멍을 숭숭 뚫어 상처에 공기가 드나들도록 배려한 점이며, 상처의 분비물을 흡수할 수 있도록 붙여 놓은 거즈 조각, 손가락 크기에 딱 맞도록 알맞게 만든 것 하며 어느 것 하나 버릴 것이 없는 물건이다.
앙증맞기 짝이 없는 이 물건은 저절로 생겨나서 처음부터 그렇게 존재했던 것이 아닌 데도, 너무나 친숙해진 덕분에 당연히 처음부터 있었던 것으로 여긴다.
그러나 이 일회용 반창고가 하늘에서 툭 떨어졌을 리는 절대로 없을 테고, 그렇다면 누가, 어떻게 해서 만들어 냈을까?
딕슨 부부의 신혼일기
밴드 반창고의 탄생은 1900년대 초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알 수 있다.
“여보! 오늘 저녁에는 무슨 요리를 할까요?”
이제 막 신혼여행에서 돌아와, 신혼의 단꿈에서 채 깨어나기도 전인 어느 날, 어얼 딕슨의 아내는 남편에게 상냥한 목소리로 말을 건넨다.
“요리는 무슨... 간단하게 먹지 뭐. 일주일 내내 집에만 있어서 답답할 텐데. 간단히 먹고 바람 쐬러 나갑시다. 여보!”
「존슨 앤드 존슨」이란 회사에 다니고 있는 딕슨은 사랑스러운 아내를 바라보고만 있어도 마냥 즐거웠다. 그래서 아내가 공휴일만이라도 그의 곁에 있어주기를 은근히 바라며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그래도 저녁 식사는 맛있게 잘 먹어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대요. 그러니 오늘은 당신 좋아하는 비프 스튜우를 할 거에요.”
“쇠고기 요리라고? 좋아요. 그것 참 기대가 되는 데, 내가 도와줄게.”
“알았어요. 그럼 준비할게요.”
딕슨의 아내는 앞치마를 두르고, 콧노래를 불러가며 요리 준비를 했다.
딕슨은 볼수록 사랑스러운 아내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소리 없이 미소를 지었다.
‘흐음, 귀여운 여자야!’
“산새들이 노래한다. 수풀 속에서... 랄 라라～.”
저물어가는 석양빛은 이들 부부의 사랑스런 모습을 훔쳐보느라, 고개를 늘어뜨리고 살포시 기웃거렸다.
아내의 비명소리
그런데 그때였다. 딕슨의 아내가 갑자기 비명을 질렀다.
“아야!”
딕슨은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아내 옆으로 다가갔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그러자 딕슨의 아내는 빨간 피가 뚝뚝 떨어지는 손가락을 내밀었다.
“소고기를 다듬다가 손을 베었어요.”
“저런! 피가 흐르잖아!”
딕슨은 부리나케 달려 나와, 약품 상자를 찾아들고 붕대와 반창고를 꺼냈다.
“여보! 손 이리 내 봐요.”
“아이 쓰라려!”
딕슨의 아내는 손가락을 내밀며 이마를 찌푸렸다.
“조금만 참아요. 곧 치료가 끝날 테니까.”
“아이 웬 소고기가 질겨 가지고 속을 썩이네.”
“하하하, 칼질이 서툰 것이 아니고?”
“놀리지 마세요. 아이 속상해!”
“당신은 인상 쓰는 모습도 예뻐! 하지만 다음부터는 내가 도와줄게. 자신 없는 것은 나한테 맡겨요. 알았지?”
“알았어요. 치료나 빨리 끝내세요. 후 아아, 호오...”
“쯔쯔. 다 끝났어요. 귀여운 앵무새.”
딕슨은 다친 손가락을 호호 불며 엄살을 피우는 아내의 등 뒤로 다가가서 등을 가볍게 두들기며 말했다.
“알았어요. 고마워요!”
그리고 또 며칠이 지난 어느 날, 딕슨은 다시 또 아내의 비명 소리를 들었다.
“앗 뜨거워!”
잽싸게 아내 곁으로 달려온 딜슨 앞에 아내는 손가락을 입에 물고 있었다.
“아니, 왜 그래?”
싱크대 위에는 여기 저기 밀가루가 묻어 있고, 요리를 하느라 벌여놓은 갖가지 재료들로 앞이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고기를 튀기다가 데었어요.”
“뭐? 어디 봐요.”
그녀가 내미는 엄지손가락은 온통 빨갛게 부어올라 있었다.
“이런! 이런!”
딕슨은 방 안으로 급히 뛰어 들어가 붕대와 반창고를 가지고 나왔다.
다행이도 딕슨은 당시에 외과치료용 테이프를 만들어내는 ‘존슨 앤드 존슨’회사에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반창고를 사용하는 데에는 꽤 익숙했다.
“호오... 아휴, 따가워!”
“조금 참아요. 물집이 잡히겠어! 기름이 튀어서, 튀김 요리는 매우 위험해요. 그러니 다음부터는 나를 불러요.”
“피! 자기는 별 수 있어요? 전문 요리사도 아니면서.”
“어? 내 실력을 모르는군. 아무렴 당신 보다는 나을 거요.”
“그래요? 호호호, 아무튼 고마워요.”
치료를 하느라 한바탕 소동을 피우고 있는 딕슨의 이마에 그녀는 가벼운 뽀뽀를 했다.
“뽀뽀 갖고는 안 되겠는데.”
“그럼, 맛있는 것 만들어 드려요?”
“뭐? 또 다치려고? 제발 그만둬요. 맛없어도 좋으니까 간단히 합시다.”
두 손을 내저으며 머리를 흔드는 딕슨을 향해 그녀는 밝게 웃었다.
“다음부터는 조심할게요. 호호.”
혼자서 치료하는 방법을 찾아라!
아내는 조심하겠다고 말했지만, 딕슨은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옆에 있을 때는 아내가 손을 다쳐서 피를 흘려도, 금방 치료해 줄 수 있지만 혼자 있게 될 때 다치기라도 한다면 그땐 어떻게 하지?’
아무래도 그녀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손을 싸들고 한 손으로 엉거주춤 겨우 치료를 하게 될 것이 뻔했다.
딕슨이 아내의 상처에 유난히 신경을 쓰는 것도 바로 그 때문 이었다.
‘혼자서 쉽게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내가 곁에 없어도 안심할 수 있을 텐데.’
그는 회사에 출근하여 일을 하다가도 아내를 생각하면 문득 걱정이 생겼다.
‘무슨 좋은 방법이 없을까? 혼자서도 치료할 수 있는 방법?’
딕슨은 궁리 끝에 혼자서도 쉽게 치료할 수 있는 반창고를 만들기로 했다.
‘그래, 만일 아내 혼자서 일하다가 손을 다쳤을 때도 쉽게 치료할 수 있는 반창고를 만들면 되겠어!’
아무리 손놀림이 서툴고, 둔해도 혼자서 사용할 수 있는 반창고가 있다면 자신이 치료해 주는 것보다 훨씬 멋진 치료가 되리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딕슨은 먼저 외과 치료용 테이프와 거즈를 이용하여 작은 조각들을 만들었다.
“여보, 뭘 그렇게 열심히 만드세요?”
“응, 나 없을 때 당신 혼자서도 치료할 수 있는 간편한 방법을 연구 중이요.”
“당신도 참! 제가 또 다칠까봐 그러세요?”
“그건 자기 특기잖아?”
딕슨은 아내를 돌아보며 웃었다.
그러자 딕슨의 아내 또한 한참을 깔깔거리더니 이렇게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회사 일이 바쁘실 텐데, 뭘 저한테까지 신경을 쓰세요. 다음부터 다치지 않도록 할게요.”
“누군 다치고 싶어서 다치나, 알았으니 염려 마시구려.”
딕슨은 여전히 궁리를 했다.
‘자, 이 테이프 안의 거즈를 손가락에 붙이기만 하면 되니까, 이 정도면 나 없이도 혼자서 치료할 수 있을 거야!’
딕슨은 자신이 아내의 손을 치료한 경험을 되살리며 테이프를 일정한 크기로 자르고, 그 안에 거즈를 작게 접어서 가운데 부분에다 붙였다.
그 상태로 상처 부분에다 붙이기만 하면 되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실제 생활에서 이용하자면 한 가지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가만, 이것을 두고 사용하자면 한 가지 문제가 생기는데... 이 테이프의 끈적끈적한 부분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지?”
테이프의 보관 방법
그랬다. 그것이 딕슨을 매우 난처하게 했다. 외과용 테이프의 끈적끈적한 부분을 보전할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이것을 그대로 펼쳐 놓자니 먼지나 이물질이 붙을 것 같고, 잘못하면 테이프가 도르르 말려버려서 쓸 수가 없는 무용지물이 되는데... 에이 참!”
끙끙대며 혼잣말로 푸념을 늘어놓는 딕슨을 소리 없이 지켜보던 아내가 그에게 말을 걸어왔다.
“여보, 뭐가 잘 안되세요?”
“응, 문제가 하나 생겨서.”
“커피 드시면서 천천히 생각해 보세요.”
“오, 그래! 고마워요.”
그녀는 남편의 옆에 앉아 다정스럽게 말을 건넸다.
“문제가 뭔데 그러세요?”
“응, 이것 봐. 이 정도면 나 없이 혼자서도 상처를 치료할 수 있겠지?”
“어머, 잘 만드셨네요. 이걸 갖다 상처 난 곳에 붙이기만 하면 되겠어요. 그런데 왜 문제가 있다고 하세요?”
아내는 이상하다는 듯 딕슨을 향해 질문했다.
“이 끈적끈적한 테이프를 어떻게 보관하느냐 그 말이요.”
“아! 그렇군요. 그냥 두면 먼지가 묻어 위생상에도 좋지 않을 거고. 상처에 균이 들어갈 수도 있을 테니까.”
“그렇지. 무슨 좋은 방법이 없을까? 여보!”
딕슨의 물음에 그녀는 대답했다.
“이 끈적끈적한 테이프 부분을 무언가로 덮어두면 안 될까요?”
“붙어 버려서 못쓰게 될 텐데?”
“그렇겠지요? 안됐군요.”
“안될 것도 없지. 반드시 방법이 있을 거야. 그것을 꼭 찾아내고 말겠어.”
“미안해요. 제가 칼질이 서툴러서 자꾸 손가락을 다치고, 그 바람에 당신까지 고생이군요.”
“그런 말 하면 내가 쑥스럽지! 걱정 마요. 방법은 있을 테니까.”
그리고 딕슨은 시간이 날 때마다 궁리를 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문득 아내의 말이 생각났다.
‘무언가를 덮어 둔다? 그렇지 거즈부분에도 먼지와 세균이 들어가지 않도록 위생적으로 보관해야 할 테고. 그러면 테이프 위에 덮어 두는 물질을 찾아야 되겠어.’
그때부터 딕슨은 테이프와 거즈 위를 덮을 수 있는 물질을 찾기 시작했다.
크리놀린을 찾아내다
오랜 수소문 끝에 딕슨이 찾아낸 것은 나일론과 비슷한 종류의 직물인 크리놀린이었다.
“드디어 찾았다. 찾아냈어!”
“어머, 당신 좋은 일이 있으신가 봐요.”
그의 아내는 영문도 모르고 좋아했다.
“여보! 이리 와 봐. 내가 재미있는 것을 보여줄 게.”
딕슨은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는 아내를 가까이 불렀다.
“뭔데요. 재미있는 거라니... 장난감이라도 돼요?”
“장난감? 그렇지! 다 큰 철부지 신부나, 개구쟁이 어린이들에게 꼭 필요한 거니까. 장난감처럼 사용해도 되겠어.”
“도대체 뭔데 그러세요?”
아내는 앞치마에 손을 닦으며 딕슨의 앞으로 다가갔다.
“잠시만 눈을 감아봐. 내가 멋진 쇼를 보여 줄 테니까.”
“알았어요.”
딕슨의 아내는 남편의 장난기 서린 행동에 덩달아 장단을 맞추며 눈을 지그시 감았다.
“자, 이제 됐어. 눈을 떠 봐요.”
“이건 크리놀린 아니에요?”
“그렇지, 크리놀린이야. 그럼 이 크리놀린 속에서 무엇이 나오는지 눈을 크게 뜨고 봐요. 지금부터는 마술 시간이야. 자아, 짜 잔!”
“어머! 제 상처를 치료하는 데 쓸 거즈와 테이프를 크리놀린으로 덮은 거 에요?”
“그래요. 자! 어때 깨끗하게 떨어졌지? 이렇게 당신 말대로 덮어서 보관하는 거요.”
“정말 대단해요. 표면이 매끄러워 테이프도 깨끗이 떨어지고, 빳빳하여 보존 상태도 좋은걸요. 여보!”
“어때! 이 정도면 나 없을 때 상처가 나도, 혼자서 손쉽게 치료할 수 있겠지?”
“그럼요. 그렇고말고요. 크리놀린을 떼어놓고 이 테이프를 붙이기만 하면 되는 데요. 정말 너무 고마워요.”
딕슨의 아내는 남편에게 매달리며 볼에 키스세례를 퍼부었다.
“알았어. 알았어! 그래도 다치지 않도록 조심해요. 예쁜 손이 온통 상처투성이가 되면 우리 2세의 손이 미워질 수도 있으니까.”
“여보! 사랑해요.”
“나도 사랑하오.”
드디어 탄생한 사랑의 씨앗
결국 아내를 사랑하는 열정적인 마음이 딕슨으로 하여금 새로운 치료도구를 만들게 한 것이다.
여하튼 그 덕분에 딕슨의 아내는 남편이 없을 때도 손쉽게 치료를 할 수 있게 되었고, 딜슨 또한 마음 놓고 직장 생활에 전념할 수 있게 되었다.
딕슨의 새로운 반창고는 그에게 다른 기회를 가져왔다. 회사의 배려로 그의 아이디어를 상품화하게 된 것이다.
“여보! 이 새로운 반창고를 회사에서 상품으로 내놓겠대!”
“어머, 정말 잘 되었어요. 이 좋은 것을 저 혼자서만 사용하기가 아깝다고 생각했는데... 축하해요!”
이렇게 하여 아내를 위해 만든 반창고는 대량으로 생산되고, 상품화되어 세계 각지의 가정으로 팔려 나갔다.
이로 인하여 딕슨이 회사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경제적으로 많은 혜택을 입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딕슨의 반창고는 많은 이들의 상처를 보살피고 있다.
「밴드 에이드」라고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보통 명사가 되어 버린 것이다.
이 반창고의 인기가 있는 것은 딕슨의 아내에 대한 사랑이 베어있기 때문이 아닐까?
어쨌든 조그맣고 귀여운 밴드 반창고는 가정주부의 손가락에서, 혹은 개구 장이 아이들의 무릎이나 이마에서 한 몸처럼 놀고 있다.
그래서 더욱 애정이 가는 아이디어다.
글 : 왕 연 중
(한국발명문화교육연구소 소장, 영동대학교 발명특허공무원학과 겸임교수)
(이메일 : wangyj39@dreamwiz.com 전화 : 011-890-8578 )
그림 : 김 민 재(만화가, http : //www.coolmorning.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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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연중의 발명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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