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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통예찬
한 겨울의 싱싱한 과일
요즘에는 제철이나, 산지에 구애받지 않고 갖가지 과일의 맛을 즐길 수 있다.
예를 들어 한 겨울에도 딸기, 복숭아, 포도, 수박 등을 먹을 수 있는 것은 유리온실이나 비닐하우스 재배를 통한 재배기술의 발달 덕분이겠지만, 그보다 먼저 잼 등의 식품가공 및 보관·저장 술의 발명 때문이기도 하다.
과거에는 겨울에 입덧을 하는 임산부들이 가장 고통을 겪어야 했다.
“여보, 자두가 먹고 싶어요.”
어쩌다 첫 아이를 가진 새색시가 신랑에게 이렇게라도 호소하면 정신 나간 사람으로 취급받을 수밖에 없었다.
“아니, 당신 정신이 있어? 창밖으로 함박눈이 저렇게 펑펑 쏟아지는 것이 안보여? 이런 겨울에 어디 가서 자두를 구한단 말이오?”
“그럼 신 포도에, 빨갛고 먹음직스런 딸기, 아니면 복숭아...”
“이 색시가 점점? 이런 날씨에 그런 것들이 어디 있어!”
마침내 퉁명스럽게 대꾸하는 신랑의 된서리를 맞거나, 입도 뻥끗 못하고 먹고 싶은 것을 억지로 참고 있어야 하거나 둘 중의 하나다.
그래서 아이가 태어난 후면, 임산부가 입덧할 때 먹고 싶은 것을 제대로 못 먹어서, 아이의 한쪽 눈이 작다거나, 혹 입이 비뚤어졌다는 등의 말로 놀려대 곤했다.
그런데 요즘의 임산부는 어떤가?
“여보, 나 입덧하나 봐. 갑자기 감이 먹고 싶어요.”
새색시의 말이 미처 땅에 떨어지기가 무섭게 밖으로 뛰어나가는 신랑.
“여기, 홍시 감, 곶감, 단감, 감 수정과까지 대령이요.”
이렇게 된다.
이야기가 좀 비약적이긴 하지만 어쨌든 이같이 시도 때도 없이 ‘미각의 향연’을 마음껏 즐길 수 있게 된 것은 그만큼 식품가공 및 보관기술의 발달이 가져온 결과다.
그러면 식품가공 및 보관 술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발명품에는 무엇이 있을까?
첫 번째는 병조림이다.
우리가 요즘에도 흔히 볼 수 있는 병조림으로 대표적인 것이 딸기잼이다.
발명가는 작은 식당의 요리사였던 아페르다.
채소장사의 의젓한 아들
프랑스의 파리 근교에 있는 작은 마을.
“아페르, 뭐 하는 거야? 이 음식을 손님상에 내다 놓지 않고.”
“네, 알았어요. 지금 갑니다.”
“아페르, 뭘 꾸물대고 있어? 손님이 오시잖아.”
“알았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아페르는 어릴 때부터 식당에서 잔심부름을 하며 잔뼈가 굵었다.
그의 부모는 변두리에서 채소장사를 하여 근근이 먹고 사는 형편이라, 아페르가 학교에 다니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다.
그렇게 온갖 궂은일과, 심부름으로 10년을 보낸 뒤, 비로소 아페르는 흰 가운을 입은 요리사가 되었다.
“아버지, 채소는 다 팔았어요?”
이제는 한결 의젓해진 아들을 대견스럽게 바라보던 아버지.
“아페르, 그동안 고생 많이 했구나. 이제 요리사가 되었으니, 이 세상에서 가장 요리를 잘하는 멋진 요리사가 되어라.”
“네, 아버지! 이젠 채소장사도 그만 하세요.”
“허허허. 알았다. 어서 돌아가자.”
아페르는 팔다 남은 채소들을 주섬주섬 한 곳으로 모았다.
그렇게 몇 년의 세월이 더 흐른 뒤. 당대의 영웅이었던 나폴레옹이 식료품 저장과, 포장 방법을 공개모집 했다.
-나, 나폴레옹은 1천만 프랑과, 본인의 훈장을 내걸고 식품 저장 및 포장 방법을 공모하는 바임. 많은 응모 바람-
그 때만 해도 오랜 항해가 불가피한 선원이나, 전쟁터에서 오랫동안 전쟁을 해야 하는 군인에게 식료품은 매우 중요한 공급원이었고, 이 식품을 잘 보관하는 것이 큰 문제였던 것이다.
음식이 잘 썩거나, 상하여 보관하는 일이 아주 큰 골치 거리였다.
나폴레옹의 이 같은 공개모집 소식이 알려지자, 프랑스의 식품업계는 크게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1천만 프랑의 상금 액수도 엄청나게 컸지만 나폴레옹훈장은 공작의 작위에 버금가는 명예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아페르의 가슴은 뛰기 시작했다.
‘절호의 기회다!’
아페르의 병조림 발명
아페르는 어려서부터 몸에 익힌 식품보관의 노하우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그는 이미 오랜 경험을 통하여, 음식은 찌거나 삶으면 날 것보다 덜 상한다. 뚜껑을 닫아놓으면 변질이 잘 안된다. 음식이 상하기 전에 규칙적으로 끓여 놓으면 오래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현상공모의 주제가 전혀 낯설지 않았던 것이다.
아페르는 음식을 끓여서 여러 개의 병에 집어넣고, 코르크 마개로 꼭 닫은 후 공기가 들어가지 못하도록 양초를 녹여 밀봉했다. 그리고 밀봉한 병을 솥에 넣고 한 번 더 끓여냈다.
‘흐음, 바로 이거야! 당선은 내 것이다.’
처음 그대로의 신선도와 맛이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는 결과를 가지고 아페르는 나폴레옹부대를 찾았다.
“여기, 병조림 법으로 현상모집에 응모하고 싶은데요.”
그리고, 그의 앞에는 1천만 프랑과 함께 나폴레옹 훈장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생활 속의 지혜와 경험을 제대로 살린 이 발명으로 아페르는 평생 동안 부와 명예를 누릴 수 있었다.
이 병조림 발명으로 인류의 식생활은 혁신적인 발전을 했고, 매우 향상되었다.
바로 식생활 개선의 일대 전기를 마련한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조림은 여러 가지 단점과 불편함을 지니고 있었다.
“아차, 이것 또 깨져버렸네.”
영국에 사는 듀란트는 은백색의 광택이 있는 주석을 다루는 기술자였다.
그는 점심시간이 되면 근처에 있는 식료품 가게에서 병조림을 사다 먹는 일이 많았다.
그런데 그날 점심에 사온 병조림을 따 먹으려다, 그만 미끄러워 놓치는 바람에 병을 깨뜨리고 만 것이다.
아페르가 병조림을 발명한 후 10년쯤 지난 때였다.
“이거 벌써 몇 번째야. 오늘 점심도 굶어야 하겠네. 에이 참!”
병조림이 깨지는 바람에 기분을 잡친 아페르는 식욕을 잃고, 자리에서 일어나 일자리로 돌아갔다.
병조림은 오랫동안 식품을 보관할 수 있어 편리한 점이 있었으나, 깨지기가 쉬웠고, 코르크 마개도 안전하지 못했으며, 자칫하면 밀봉하기 위해 녹인 양초가 병 속으로 흘러들어가기도 했다.
듀란트는 병조림을 자주 이용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병조림의 단점을 발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래서 병조림을 먹을 때마다, 가끔 혼자서 생각에 잠기곤 했다.
‘어떻게 하면 병마개도 안전하고, 양초가 병 속으로 흘러 들어가지 않게 할 수 있을까?’
어쩌다 병조림을 떨어뜨려 병이 깨지는 바람에 아예 점심을 굶게 되는 날은 은근히 화가 나서 투덜거리기도 했다.
“깨지지 않고, 안전하고, 또 깨끗한 그런 통조림은 없나?”
병 대신 깡통으로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유난히 춥고 차가운 겨울 날씨였지만 주문받은 주석 깡통이 밀려 추운 줄도 모르고 분주히 일하던 듀란트는 갑자기 시장기를 느꼈다.
“아, 배고파! 아무리 바빠도 점심은 먹어야 일할 수 있겠군.”
그는 일손을 멈추고, 가방에서 점심에 먹으려고 가져온 병조림을 꺼냈다.
그러나 날씨가 너무 추운 탓에 가방에 넣어 두었던 병조림은 너무나 차가워서 도저히 그냥은 먹을 수가 없었다.
‘날씨도 추운데 이렇게 차가운 걸 그냥 먹으면 몸까지 얼어붙겠어!’
듀란트는 차가운 병조림을 양손바닥으로 감싸 쥐어 체온으로 덥혀볼 심산이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무슨 좋은 수가 없을까? 어떻게 좀 데워 먹었으면 좋겠는데.”
중얼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주위를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그의 눈에 때마침 피워 놓은 난로가 들어왔다.
뜨겁게 달아오른 난로는 보기만 해도 따뜻했다.
‘저 뜨거운 난로에 데워 먹으면 좋겠는데.’
생각하던 그는 갑자기 묘안이라도 떠오른 듯 만들고 있던 깡통 하나를 가져왔다.
‘내가 왜 진작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깡통에 덜어서 데워 먹으면 될 걸.’
듀란트는 자신이 만들어놓았던 깡통에 병조림의 음식을 쏟아 붓고, 난로에 얹었다.
잠시 후, 음식은 보글보글 소리를 내며 끓기 시작했다. 맛있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오, 이 냄새! 죽여주는군.’
그는 맛있게 데워진 깡통의 음식물을 조심스럽게 가져다가 점심으로 먹었다.
“어, 맛있게 먹었다.”
오랜만에 맛있는 점심식사를 마친 후 듀란트는 병과, 깡통을 치우면서 중얼거렸다.
“이것 참 편리하네. 이렇게 편리한 용기가 있는데, 굳이 병을 사용해서 음식을 담을 필요가 있을까?”
통조림의 탄생
듀란트는 그 일이 있은 후부터, 아무리 차가운 날씨에도 따뜻하게 점심을 해결하게 되었다.
춥고 귀찮았던 점심시간이 오히려 기다려지기까지 했다.
그러다가 그는 생각하게 되었다.
‘가만, 나 혼자만 이런 기쁨을 누려서는 안 되겠지? 깡통의 편리함을 이용해야 해!’
듀란트는 병 대신 깡통을 사용하여 조림을 만든다면 당연히 깨질 염려도 없고, 코르크 마개를 밀봉하느라 양초를 덮어씌울 필요도 없음을 깨달았다.
또 추운 겨울에는 아무데서나 쉽게 다시 끓여 먹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자 주석 깡통이야말로 훨씬 편리한 용기라는 확신이 섰다.
‘그럼 한번 실험해 볼까?’
듀란트는 곧 주석 깡통에 음식물을 담고, 주석으로 판을 만들어 뚜껑을 해서 덮어 보았다.
‘생각보다 쉽지는 않군.’
뚜껑을 단단하게 닫는 것이 조금은 어려웠지만, 그의 여러 번에 걸친 노력으로 곧 그 문제도 해결되었다.
‘됐다. 이 깡통을 이용하면 되겠군. 내일부터는 아예 음식을 이 깡통에 담아 오자.’
그는 자신이 만든 깡통을 집으로 가져가서, 점심으로 먹을 음식을 아예 집에서부터 깡통에 담아 뚜껑을 닫은 후 일터로 가져 왔다. 추운 겨울의 점심식사로는 그만이었다.
‘이것 참, 정말로 편리하네.’
며칠을 그렇게 깡통을 이용하여 점심을 먹고 난 듀란트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병 대신 깡통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에 특허청을 찾아갔다.
이리하여 듀란트는 자신의 통조림 법을 ‘주석 깡통(can)을 이용한 식품밀봉용기’라는 이름으로 특허출원을 마쳤다.
얼마 후, 특허등록을 받게 된 듀란트의 통조림은 대단한 인기를 얻게 되었다.
“그게 뭐지?”
“보면 모르나? 깡통조림이지.”
“그런 게 있었어?”
“자넨 아직도 병조림을 들고 다니나? 이젠 깡통으로 바꾸게.”
“글쎄, 깨지지도 않을 것 같고, 훨씬 가벼울 것 같은데... 그런가?”
“물론이지!”
듀란트는 통조림의 발명으로 단순한 주석 기술자로 있을 때의 수입보다 10배가 넘는 수입이 생기게 되어 생활이 훨씬 윤택해졌다.
‘흠, 발명 하나로 10배의 수입이 생기다니.’
통조림 시대의 개막
그러나 안타깝게도 통조림의 기업화는 발명가인 듀란트의 손에서 이루어지지 못했다.
당시만 해도 산업의 거의 모든 부분이 수동식에 의존하고 있었던 터라, 듀란트의 통조림 역시 뚜껑을 일일이 납으로 땜질을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듀란트는 넉넉한 생활을 누릴 수 있었다.
1819년의 일이다.
듀란트가 통조림을 발명한 후, 10여년이 지나서야 통조림은 세계 최초로 세워진 통조림공장에서 생산되었다.
영국의 런던.
“저게 뭐지? 무슨 공장인 것 같은데.”
“맞아, 통조림공장이라네.”
“통조림공장이 생겼어?”
“그렇다네. 이제 병조림은 한물 간 것 같군.”
“어쨌든 편리하면 이용할 수밖에.”
시효가 끝난 듀란트의 특허를 본 영국의 한 자본가가 막대한 자본을 투자하여 통조림공장을 세우게 된 것이다.
이렇게 해서 통조림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통조림 발명 190년 후 어느 바닷가
“조개껍질 묶어/ 그녀의 목에 걸고 불가에 마주 앉아/ 밤새 속삭이네. 랄 랄라...”
조용한 바닷가의 모래사장.
“야, 뭐해! 빨리 꽁치 통조림 가져다 찌개에 넣어.”
“그래, 알았어. 여기 간다. 짠!”
단번에 캔 뚜껑을 열어젖힌 미남이.
“어른들은 그렇고, 우리 동생들은 이 참치 통조림이면 반찬 오케이지?”
가족 단위로 여름휴가를 바닷가에서 보내게 된 미남이네 식구들과, 이웃집 석이네 식구들의 캠핑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이야! 이거 푸짐하네. 캔 커피, 캔 사이다에, 옥수수 통조림, 꽁치 찌개...”
“또 있어. 짜릿한 캔 맥주!”
“애 개개 어른들은 그저 술 밖에 몰라.”
“그럼 너도 주스 한잔 할래?”
“아니, 맥주!”
“쪼끄만 게 까불어.”
“와하하하......”
“깔깔깔 껄껄껄...”
지금까지 통조림은 이렇듯 생활 구석구석에 파고들어, 190년 동안 우리의 사랑을 받고 있다.
글 : 왕 연 중
(한국발명문화교육연구소 소장, 영동대학교 발명특허공무원학과 겸임교수)
(이메일 : wangyj39@dreamwiz.com 전화 : 011-890-8578 )
그림 : 김 민 재(만화가, http : //www.coolmorning.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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