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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비롯하여 앞으로 연재될 글들은 사실에 근거한 내용과 각색을 통해 흥미로운 소설 형식을 빌려 작성하였으므로, 다른 소설의 내용과 일부 다를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발명소설로 이해하고 읽어주시기 바랍니다.(저자 올림) |
하늘이여 땅이여
마루 밑의 소년
대청마루를 통해 가을의 맑은 공기가 방 틈으로 스며들었다. 열린 문틈으로 어린아이들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일제히 합창하는 소년들의 소리가 산뜻한 바람을 타고 음악이 되어 춤을 추었다.
“하늘 천, 따지, 검을 현...”
아이들의 소리를 따라 훈장선생님의 엄한 목소리가 아이들의 주위를 휘어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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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끼 이놈들! 열심히들 못하겠냐!”
단상을 내리치는 담뱃대의 시선 끝으로 아이들의 눈이 쏠렸다.
“하늘 천, 따지...”
갑자기 조용하던 주위를 훔쳐내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들은 일제히 일어나 문밖으로 나갔다. 소년들의 눈에는 맑은 가을하늘과 곱게 익은 감이 익은 나무만이 눈에 띄었다.
“야! 너 분명 그 소리 들었지?”
“그래, 분명히 들었어. 그런데....”
아이들은 근원지 없는 소리에 의아해하며 다시 방으로 되돌아갔다.
“자! 딴대 신경 쓰지 말고. 독서삼매라고 했느니라. 무릇 책에 빠지면 잡념이 없고 아무소리도 듣지 못한다 했으니 책읽기에 전념하여라.”
“예!”
서당아이들은 약속한 듯 똑같이 대답했다.
“하늘 천, 따지, 검을 현...”
어디선가 아까의 그 소리가 또 들렸다. 서당의 웅성거림은 심해졌고 쉽게 진정될 것 같지 않았다.
훈장선생님은 자리에서 일어나 문밖으로 나갔다. 주위에는 개미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아니? 도대체 어디서 난 소리지?’
고개를 갸웃거리던 훈장선생님이 갑자기 몸을 숙여 대청마루 밑을 내려다보았다. 서당아이들이 종종 숨어 낮잠을 자던 곳이었다.
“게 누구냐? 넌 도대체 누구야? 사람이면 신원을 밝히고 귀신이면 물러 가거라.”
훈장은 어두운 곳에서 눈을 반짝이는 어린소년을 보고 황당해서 소리쳤다.
방안에서 기다리던 소년들이 구경거리를 기다렸다는 듯 순식간에 몰려나왔다.
마루 밑에서 허름한 옷을 입은 소년이 기어 나왔다. 소년의 모습은 먼지와 거미줄로 뒤범벅이 되어 거지꼴이 되어 있었다.
“훈장 어르신 죽을죄를 졌습니다. 그냥... 저도 한자를 배우고 싶어서 그래서 몰래...”
더듬거리는 소년은 두려움에 가득 찬 듯 시선 둘 곳을 몰라 바닥만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마루 밑에서 기어 나온 소년의 얼굴은 부끄러움에 귀밑까지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꼭 홍당무 같았다.
“어라? 저 녀석은...”
먼지투성이 소년을 알아보는 목소리가 서당아이들의 틈을 비집고 흘러나왔다.
“그래 맞아! 저 녀석은 관기 해명의 자식 놈 아냐!”
또 다른 목소리가 고개를 숙이고 있는 소년을 향해 날아들었다.
“뭐? 관기의 아들이 지 주제도 모르고 글을 배우려 한다고?”
서당아이들의 비아냥거리는 소리가 소년의 귓전을 맴돌았다.
“조용히 하지 못하겠느냐!”
아이들은 일제히 입을 다물었고 서당 내에는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너는 가거라. 이곳은 네가 올 곳이 못되느니라. 다음부턴 이런 불상사가 없도록 하여라. 다음에 이런 일이 다시 있을 시에는 내 심히 시비를 가릴 것 이니라. 그리고 네 녀석들은 하던 글공부마저 하여라.”
훈장의 눈치를 보던 서당소년들은 하나둘 누더기 소년을 흘기며 들어갔다.
곧이어 훈장이 서늘한 눈초리로 두어 번의 헛기침을 한 후 방으로 들어갔다.
방문이 세차게 닫혔다.
혼자 마당에 남겨진 어린소년은 흙먼지를 털어내며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허름하고 낡은 옷을 걸치고 아쉬운 듯 서당을 바라보던 이 소년이 바로 후에 문종과 함께 측우기를 발명하는 장 영실이었다.
관기의 아들
발명왕 장 영실의 어린시절은 참으로 불행했다.
이는 그의 신분 탓이기도 했다.
조선의 신분제도에 있어서 노비와 같은 천한 출신이 글을 배운다는 것은 큰 죄에 속했고 신분상승 또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장 영실은 같은 또래의 아이들에 비해 남달리 총명했고 지혜로웠다. 그런 어린 장 영실이 글을 배우고 싶어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어째서 난 공부를 해선 안 되는 것일까? 공부하고 싶다. 뭐든 배우고 싶다.’
영실은 마음 한구석이 구멍이 생겨 찬바람이 드는 것 같아 몸을 움츠렸다.
서늘한 바람이 영실의 귓가를 스쳐 지나갔다. 영실의 눈에는 커다란 느티나무가 두 팔을 벌린 채 태양을 쐬고 있었다.
“저 나무는 햇볕을 쬐고 싶으면 햇볕을 받고 땅속에서 먹고 싶은 양분을 맘껏 먹을 수 있는데....”
어린 영실은 복잡한 마음을 쓸어안고 느티나무 아래로 가서 앉았다.
“나무야, 너는 참 좋겠구나. 난 나무 정도도 안 되는 것일까?”
커다란 느티나무의 기둥을 쓰다듬으며 소년이 중얼거렸다.
불을 삼킨 것 같은 눈부신 햇빛이 소년을 향해 쏟아져 내렸다.
“하늘 천, 따지, 검을 현...”
영실의 입에서 서당에서 들은 천자문이 리듬을 타고 흘러나왔다. 영실의 소리가 공기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야! 그 관기의 자식 놈이다.”
천자문 외우는 것에 넋이 나갔던 어린 영실을 흔들어 깨우는 소리가 들렸다.
저 멀리서 글공부를 마친 서당아이들이 걸어오고 있었다. 그들의 눈엔 경멸과 야유, 분노가 섞여 있었다.
“이 자식 천한자식이 감히 글을 배우려 하다니.”
영실을 향해 커다란 돌멩이가 날아들었다.
어린영실의 이마를 후려친 돌이 떨어지며 영실이 비명을 질렀다.
“아아악”
영실의 이마에서 붉은 핏줄기가 흘러 내렸다. 순간 서당아이들이 몰려들었다. 어린 영실을 향해 발길질 욕설이 쏟아져 내렸다. 어디서 구한 것인지 작은 막대기가 영실의 등과허리, 허벅지 몸의 구석구석을 때렸다.
“아이 구, 아야야 억!”
영실의 몸은 피투성이가 됐고 영실은 자신의 정신이 희미해지는 것을 느꼈다.
말만 듣던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 같았다. 한동안의 술렁거림이 가라앉자 서당아이들은 제 갈 길로 가고 있었다.
“퉷,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지. 갈잎을 먹으면 죽는 거야! 맵 새가 황새를 쫓아가다가는 가랑이가 찢어지는 법도 모르냐?”
어린 영실의 볼 위로 눈물이 흘렀다.
영실은 고통스러웠다. 웅크린 영실의 등 뒤로 해가 지며 붉은 노을이 퍼져 갔다.
재주 많은 노비
세월이 흐르고 어린 영실은 어느새 건실한 청년이 되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 나이를 먹어 힘을 쓸 수 있게 되자, 그는 관습대로 관비(관과의 공노비)가 되어 그의 어머니와 헤어지는 슬픔을 맛보게 된다. 이때 영실의 나이 16세 이었다. 어머니와 떨어지는 아픔을 겪은 영실의 총명함은 관비로써 생활하는 동안 그 빛을 발하게 된다.
“영실아! 영실아.”
행랑 할아버지의 쉰 소리가 영실을 찾고 있었다.
“예, 저 여기 있어요.”
마당비를 들고 어린영실이 달려 나왔다.
그의 댕기가 흔들거리며 바람에 나부꼈다.
“가서 나무 한 짐 해오너라.”
행랑할아버지는 영실에게 지게와 지게 대를 준 후, 따가운 햇볕을 가리느라 손을 이마위로 올렸다.
“허참 그 햇빛 참 눈부시다. 왜 이리 덥지?”
“할아버지 그 계집아이 같은 놈에게 무슨 나뭇짐이에요. 나무그늘 아래서 낮잠이나 자지 않으면 다행이지.”
커다란 곰보자국이 눈에 띄는 덕배 녀석이 누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행여 놀 생각 말고 열심히 일해야 할 것이야.”
“예. 할아버지.”
“킬 킬 킬 야! 이 계집애야. 그 하얀 얼굴과 그 가느다란 팔목으로 무얼 하겠다는 거냐? 서방님, 제술 한잔 받으시 와요.”
덕배는 영실을 향해 기녀흉내를 내며 코멩멩이 소리를 냈다.
‘그래? 어디 두고 보자.’
영실이 덕배를 노려보며 지게를 지었다. 덕배는 영실의 매찬 눈초리에 움찔거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아침이 지나고 오후 녘이 다가올 무렵 동리 밖에서부터 영실의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의 등에는 그의 몸짓의 2배가 넘는 나뭇짐이 지어져 이었다. 땀으로 범벅된 영실의 얼굴은 붉은빛이 가득했고 손에는 무언가 들려있었다.
“다녀왔습니다.”
커다란 나뭇짐을 내려놓으며 영실은 어깨를 두드렸다.
“이거 보셔요. 짐 다 해놓고 만든 거예요. 어때요?”
영실의 손에는 처음 본 듯한 나무 인형이 놓여있었다.
“이게 정말 네가 만든 거냐?”
“그럼 누가 만들었겠어요. 제가 만들었어요. 이거 봐요. 팔과다리가 자유롭게 움직이잖아요.”
노인은 영실이 만든 인형을 한참동안 들여다보고는 영실을 쳐다보았다.
‘허... 그 나이어린 녀석이 손재주 한번 기발하구나!’
노인의 눈은 놀람의 빛이 역력했다.
재주꾼 마술사로 불려
그 이후로도 영실은 정교하고 진기한 물건을 만들어 내어 사람들의 이야기 거리가 되었다.
“그녀석이 머리가 비상하더라고.”
“아, 그러게 말이야. 관기의 자식이라던데... 참 똑똑해.”
영실을 향한 사람들의 시선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이젠 그 누구도 영실의 여성스런 외모에 대해, 그의 어머니의 출신에 대해 놀리지 않았다.
그렇게 영실은 조금씩 성장해가고 있었다. 늘 얕잡아보던 덕배 녀석도 더는 영실을 못살게 하지 않았다. 아니 덕배에게 있어서 영실은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사람들은 고치지 못하거나 망가진 물건들은 영실에게 가져왔고 영실의 손이 닿으면 모든 것이 새것과도 같게 되었다. 영실을 관내 노비들은 ‘재주꾼’ ‘마술사’라고 불렀다.
그러던 어느 날 새끼줄을 꼬고 있는 영실을 찾는 소리가 들렸다.
“영실아! 영실이는 얼른 사또마님 방으로 건너 가 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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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실은 사또가 자신을 찾는다는 말에 놀랐다. 손바닥에 통증이 느껴졌다.
새끼줄이 손에 박혀 상처가 났다.
‘사또님이 왜 나를 찾으시지? 혹시 잘못한 것이 있나?’
영실은 조금 두려웠다. 아직까지 사또가 자신을 부르는 일은 한번도 없었다. 영실은 노비들 가운데서도 제일 나이가 어렸고 서열이 낮았다.
“사또마님, 장 영실 대령입니다요.”
“들여보내 거라.”
이방에게 주의를 받은 후에야 영실은 방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영실은 이방이 가르쳐 준대로 문 을 여쭌 후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래, 네가 영실이냐?”
“예... 소인이...”
영실의 목소리는 목구멍을 타고 기어 들어갔다.
“내가 너를 부른 까닭은...”
사또의 말을 듣던 영실 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은 관아의 기밀서류함의 자물쇠가 망가져 아무리해도 열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할 수 있겠느냐?”
“사또님, ‘된다.’ 라고 약조드릴 수는 없지만 해 보겠습니다.”
서류함 앞으로 간 영실이 자물쇠를 들여다보며 만지작거렸다.
모두가 영실을 눈여겨보았다. 오랜 시간동안 침묵이 마당에 내려앉았다.
“철컹.”
순간 쇠의 둔탁한 소리와 함께 자물통이 굳게 다물었던 입을 벌렸다.
“와아아!”
모두의 탄성이 쏟아져 나왔다. 사또 역시 감탄한 듯 눈을 반짝이며 영실을 쳐다보았다.
“수고했다. 내 너에게 상을 내리마. 자넨 이놈에게 새 옷 한 벌 내 주도록 하게.”
영실은 곧 유명인사가 되었다. 하지만 이 자물쇠를 해결한 영실에게 시련이 닥친다. 서류함에 든 기밀문서가 없어진 것이었다. 모두가 영실을 의심했다. 두터운 자물쇠를 열수 있는 사람은 영실뿐이었다.
“어서 이실직고 하렸다.”
“나리, 소인은 모릅니다.”
“그래도, 저 녀석을 매우 쳐라. 내 어여삐 보았더니....”
“나리, 억울합니다.”
영실은 모진 고초를 겪었다. 문득 어머니가 떠올랐다.
“사또! 찾았습니다.”
“뭐라고?”
이방이 호들갑을 떨며 흰 뭉치를 들고 뛰어 들어왔다.
“저... 사또님 방 문갑 밑에서...”
사또의 머리 속에 무언가 빛이 스쳤다. 엊저녁 문서를 확인한 후 머리맡에 둔 것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밤 새...’
사또는 자신의 성급한 판단으로 일이 커진 것에 부끄러웠다.
“정말 미안하구나.”
일은 그렇게 수습이 되었지만 영실은 마음이 큰 상처를 입었다.
가뭄을 해결하다
영실에게 아픔을 준 그해 여름은 유난히 무더웠다. 또 한 방울의 비도 내리지 않아 논의 바닥이 드러나고 거북이의 등줄기처럼 심하게 갈라졌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가 비가 내리기를 원했지만, 비는 몇 달을 두고 내리지 않았다. 이젠 우물도 마르고 냇가도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러다간 올 겨울은 모두 굶어 죽겠구나!”
“정말 하늘 님도 무심하시지....”
사람들이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하늘을 쳐다보았다.
사또 역시 계속되는 가뭄은 커다란 근심거리였다.
계속해서 민초들의 탄원이 들어왔다.
“여봐라! 영실을 불러라.”
사또는 영실뿐 달리 믿을 이가 없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문서사건이후 영실을 알게 모르게 외면해온 터였다.
“부르셨습니까?”
“그래! 영실아. 네게는 무슨 방도가 있을 듯해서... 너도 알지만 가뭄으로 백성들의 원성이 하늘에 넘치는구나!”
사또의 눈은 근심스러워 잠을 설친 듯 눈이 벌겋게 부어 있었다.
“사또, 제 생각으로는 저 건너 금정산 골짜기의 강물을 이곳으로 끌어오는 것이 어떨까요? 그곳은 물도 풍족하고 깨끗하니 이곳의 가뭄을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 하지만 그곳은 십리도 더되는 거리인데 어떻게 물을 끌어온다는 것이냐? 마을사람 모두가 물통을 짊어지고 왔다 갔다 할 수도 없고 행여 그렇다 해도 그 험한 산길을 어떻게 다닌다는 것이냐?”
“마님! 무엇 때문에 그 먼 곳을 물통을 들고 다닙니까? 홈통을 만드는 거예요. 예부터 그곳은 냉한약초가 많이 나는 곳 아닙니까?”
영실은 쉽게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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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춥다는 것은 그곳이 이곳보다 지대가 높다는 이야기가 되지요. 물이라는 것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지요.”
영실의 이야기를 듣던 사또는 자신의 무릎을 내리치며 탄성을 질렀다.
“아하! 영실아 네 말이 맞구나. 네가 앞장서서 이 공사를 성공시키도록 해라. 내가 너에게 감독권을 주겠다.”
영실은 놀라움과 기쁨이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천민이며 나이어린 자신이 공사의 책임자가 된 것이었다.
“예! 사또마님.”
그날부터 영실은 가뭄해소를 위한 공사에 매달렸다.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공사는 진전되어갔다. 마을장정들은 모두 열심히 공사에 참여했고, 아낙네들은 음식을 나르며 물이 흐를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보름이 지나자 공사가 끝났다.
“자, 물고를 트도록 신호를 보내라.”
사또의 말과 동시에 신호 활이 하늘위로 쏘아졌다. 잠시 후 홈통을 타고 물이 쏟아져 내렸다.
“으 와아! 물이다!”
“야호! 물이 흐른다!”
장 영실의 이 나무를 이용한 홈통은 세계최초의 발명품이 된다.
사람들은 물을 기다리는 논밭을 향해 물을 채웠다.
얼마쯤 지나자 논은 물이 찼고, 전의 거북이 등처럼 갈라진 모습은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오랜 동안 사람들의 근심거리였던 가뭄이 해소되는 순간이었다.
환호성을 지르며 북을 치는 사람들 사이로 감격한 영실의 모습이 보였다.
그런 영실에게 사또가 다가왔다.
“영실아 수고했다. 내가 너에게 상을 주고 싶구나. 뭐든 소원이 있으면 말해 보아라.”
영실은 사또의 말을 들으며 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자신을 떠나보내면서도 웃으셨던 어머니.
“사또 어머님이 뵙고 싶습니다.”
“허허허... 내 허락한다. 너는 곧 어머님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영실은 어머니를 만나게 될 그날을 기다리며 물을 뿜어내는 홈통을 바라보았다. 빛을 받은 물줄기가 반짝였다.
어머니와의 재회
오랜 세월을 어머니 곁을 떠나 살아온 영실에게 신의 축복이 내려졌다.
허나 이런 기쁨은 거저 얻은 것이 아니라 그의 노력과 성실의 결실이었다.
고향으로 돌아가기 전날 밤 영실은 변해있을 어머니의 모습을 생각하며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어머님은 얼마나 변하셨을까? 혹시 편찮으신 건 아니겠지...’
어머니의 생각으로 가득한 그의 머리 속은 5년 전의 젊고 윤기 있는 검은 머리카락을 가진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렸다.
“어머니! 어머니 머리는 꼭 기름을 바른 것 같아. 어쩌면 그렇게 검을까?”
“후후. 그게 그리 궁금 하느냐?”
신기해하며 쉴 새 없이 질문을 쏟아내는 그를 향해 그의 어머니는 항상 인자한 모습과 미소를 띄며 웃곤 했다.
‘어머님! 잠시만 기다리셔요. 제가 곧 갑니다.’
영실의 귓가엔 언제 흘렀는지 눈물이 고여 있었다.
들뜬 마음에 잠을 설친 영실의 모습은 신행 가는 새신랑처럼 매우 상기되어 있었다.
“꼬끼오! 꼬끼오!”
새아침을 알리는 닭 울음소리가 관내에 울려 펴졌다. 영실의 귀에는 더욱 크고 선명하게 들렸다.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난 것 같다.’
새 옷의 대님을 매며 영실은 맑은 하늘가를 올려다보았다. 까치 한마리가 소리를 내며 하늘 위를 빙빙 돌다 처마위로 내려앉았다.
‘허... 내게 오늘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는 걸 어찌 알았누.’
어머니가 계신 고향에 가까이 갈수록 영실의 마음은 설레였다.
멀리서 낯익은 마을이 보이기 시작했다. 고향땅 이었다.
‘어릴 적 놀던 그곳, 어머님의 고향 꿈속에서 가보던 곳이구나!’
어릴 적 아이들과 논 후 쉬던 느티나무 몰래 글을 훔쳐 배우던 서당...
“어머님 제가 돌아 왔습니다.”
마당을 들어서는 영실의 눈앞에는 그의 어머니가 서있었다. 그러나 예전의 어머니가 아니었다. 검었던 머리카락은 하얗게 샜고, 희고 맑던 피부는 가늘고 굵은 주름살로 가득했다.
두 모자는 서로를 부둥켜안은 채 하염없는 눈물을 흘렸다.
어머니는 아들의 성장한 모습을 보며 그동안 흘러간 긴 세월을 실감할 수 있었다.
두 모자를 둘러싸고 있는 마을사람도 눈물을 흘렸다.
영실은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방으로 들어갔다. 조그만 어머니의 방은 옛 모습 그대로였다.
한쪽구석에 놓인 옷감과 그 위에 잘 정돈된 이불들... 그리고 그 옆 모퉁이의 바느질함 등...
“어머니 더 이상 걱정 마세요.”
영실은 그동안의 이야기를 하며 사또가 이곳에 새집을 주셨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간간히 영실이 관기의 자식이라며 받은 수모를 말할 때면 영실의 어머니는 눈물을 흘렸다.
“어린 네가 마음고생이 컸겠구나!”
“그런 말씀마세요. 저 단 한번도 어머니를 부끄럽게 여긴 적 없어요.”
서로를 위로하며 그들의 생활은 행복했다. 마을사람들도 영실모자의 기쁨을 자신들의 일처럼 여겼다.
“영실이 참 대단하구만. 어릴 적부터 총명함이 눈에 뜨이더만....”
“어디 그뿐인가? 영실이는 효자야. 그동안 보고파서 어찌 살았누.”
영실 모자의 이야기는 늘 화제가 됐다.
세종대왕의 어명
그러던 어느 날 이었다.
“엉? 저게 뭐지?”
“보아하니 높은 분들 같은데 이런 작은 마을엔 무슨 일이지?”
웅성거리는 마을사람들 사이로 말을 탄 관복 입은 사람이 군인을 이끌고 지나갔다. 실룩거리는 말의 엉덩이에 기름기가 흘렀다.
“어! 영실네로 가고 있잖아. 혹시 영실이 도망....”
“아이 구 방정맞은 입놀림은...”
사람들은 행렬의 뒤를 따라갔다.
영실네 싸리문 앞에 서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천인 장 영실은 어서 나와 어명을 받으라.”
‘어명 이라니...’
놀라 뛰쳐나온 영실은 무릎을 꿇고 바닥에 머리를 조아렸다.
“장 영실은 곧 대궐로 입궐하라는 어명이오.”
싸리문 밖의 마을사람들은 놀랐다.
먹이를 기다리는 새의 새끼들처럼 입을 쫙 벌린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영실의 주위는 잠시 동안 조용한 적막감이 흘렀다.
“만세!”
순간 적막감을 깨트리는 소리가 어딘가에서 부터 들렸다.
“상감마마 만세!”
“자, 차비를 서두르시오.”
어명을 받들기 위해 영실은 준비를 서둘렀다.
관복을 입던 영실은 잠시 옷 입는 것을 멈추고 어머니를 돌아보았다.
자신이 벗은 옷을 말없이 개고 있는 어머니를 보며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어머님! 죄송합니다.”
“그런 소리 말거라. 난 너무 기뻐 눈물이 나올 것 같다.”
천인에서 관직에 등용
어머니의 곁을 떠나 마을고개를 넘는 영실은 어머니의 모습이 눈에 밟혀 자꾸 뒤를 돌아보았다.
그가 지나가는 길가에 소나무가 그의 길을 마중하고 있었다.
한양에 도착한 후 며칠이 지나서야 영실은 임금님을 뵐 수 있었다. 처음 보는 궁중의 모습들, 그리고 사람들, ‘하늘님의 도움이 넘치는구나!’
나인을 쫓아 들어가는 영실의 눈에는 모두가 낯설고 신기했다.
임금의 거처인 듯한 큰 건물에 들어서자 영실은 자신의 모습이 더욱 초라해지는 듯한 느낌에 가슴이 답답했다.
“그대가 장 영실이란 자인가?”
처음 듣는 임금님의 목소리는 위엄이 있었다.
“그러하옵니다. 마마.”
차마 고개도 들지 못하고 개미목소리 만한 소리로 간신히 대답했다.
“왜 그리 떠는 것이오. 자, 고개를 들어보오.”
조심스럽게 들어올린 영실 앞에는 인자한 모습의 임금이 앉아있었다.
“야! 임금님은 눈이 이렇게 찢어지고 이빨도 이렇게 삐죽하다고.”
자신 있게 임금님의 모습을 떠들어 대던 마을 녀석이 떠올랐다.
“모든 조종대신은 들으시오. 이 순간부터 장 영실을 노비의 신분으로부터 삭제시키겠소. 더불어 장 영실을 종5품 상의원 별좌에 임명하오. 장 영실의 노비문서를 소각하고 그에 따른 별반의 준비들을 서두르시오.”
“성은이 망극하여이다.”
후에 ‘성왕’이라고 불리는 세종대왕의 과학에 남다른 관심은 천민출신 장 영실을 관직에 등용시키기에 이른다.
이러한 분위기속에서 장 영실은 그의 능력을 꽃피우게 된 것이었다.
“이리 가까이 오너라.”
세종은 손을 내밀어 장 영실을 자신의 가까운 옆자리에 앉혔다.
“그대의 총명함은 이미 동래 현감으로부터 다 들었소이다. 이곳 생활이 낯설어 견디기 힘들겠지만... 후에 그대의 힘이 필요한때가 꼭 올 것이오.”
그날부터 장 영실의 상의원 별좌로써의 일이 시작되었다.
상의원 별좌란 임금님의 사용하시는 물건을 만들고 관리하는 것으로 두터운 신망이 있지 않으면 얻지 못하는 관직이었다.
“저 사람이 임금님께서 직접 어명으로 임명한 장 영실이라고 하더구만.”
“우습게보면 안돼. 꽤 똑똑하더라고. 눈속임했던 몇몇 관리가 쫓겨났는데, 그게 저 장 영실이 밝혀낸 거래.”
“허기사 그 정도니 임금님께서 직접 불러들이신 거겠지.”
장 영실을 둘러싼 궁중나인들과 들의 이야기는 그칠 줄 몰랐다. 하지만 더 이상 그는 웃음거리나 시기의 대상이 아니었다. 성은(임금의 은혜)을 입은 장 영실을 부러워했다.
“안녕하시오? 난 이천이오. 오늘부터 자네에게 글과 궁중의 법도를 가르칠 것이오.”
근엄한 모습에 자유스러운 멋을 지닌 이천을 만난 것은 장 영실이 궁에 들어온 지 2개월이 되어갈 무렵이었다.
“대감. 대감처럼 강직한 분을 스승으로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이천은 무관이자 과학자로 세종대왕의 총애를 받던 사람이었다. 후에 갑인자를 발명한 이천을 통해 장 영실의 학문은 깊어갔다.
장 영실은 무엇이든 이천과 의논했고 그렇게 장 영실과 이천은 사제지간이며 친구 사이기도 한 그들의 우정을 키워가고 있었다.
“처음 자네를 보았을 땐 관복이 커서 사람이 관복을 입은 것이 아니라, 관복이 사람을 짊어진 듯 우스꽝스럽고 거추장스러워 보였는데...”
이천은 영실을 처음보고 느꼈던 일을 이야기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 자네가 이렇게까지 성장할 줄은 정말 몰랐네.”
이천의 눈은 정말 놀라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자! 내잔 받으시... 자네 내말이 언짢은 것인가?”
“아... 아닙니다.”
“그럼 얼굴이 왜 그래? 이건 약 먹은 닭처럼... 아니? 그럼 어디 아픈 건가?”
이천은 장 영실의 초췌한 모습이 걱정스러웠다.
“좀 말을 해봐. 이러다 소중한 술친구 하나 잃을까 두려우이.”
이천의 진심어린 마음에 장 영실은 근심걱정을 털어 놓았다.
“다름이 아니고, 어머님 걱정 때문에... 제가 이곳에 이렇게 온 것은 감개무량한 일입니다. 허나 홀로 외로이 고향을 지키시는 노모의 생각에 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곧 어머님의 생신도 돌아오는데...”
장 영실의 말을 듣던 이천은 자신에게도 나이든 어머님이 계심이 떠올랐다.
“나또한 그대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아. 그 일은 내가 적극적으로 도와줄 터이니 오늘저녁부터는 아무 걱정 말고 푹 자게.”
다음날 아침 일찍 이천은 세종대왕을 알현한다.
“마마. 별좌감 장 영실이 고향에 홀로 계신...”
자초지종을 들은 세종대왕은 영실의 지극한 효심에 감탄했다.
“허허허 장 별좌는 총명할 뿐 아니라, 그 효심도 우주만큼 넓구려. 허나 장별좌를 궁내로 들여온 것으로도 얘기가 많으니 그 일은 좀더 시간을 갖고 신중하게 검토하도록 합시다.”
사실 천민인 장 영실이 궁에 들어온 것은 큰 사건이었다. 거기다 벼슬도 얻었으니 이는 세간의 이야기 거리가 되고도 남았다.
“조금만 기다려보게. 상감마마가 분명히 내게 약조하셨으니.”
장 영실의 마음은 실망과 기쁨이 교차했다.
그 후 몇 달이 지나서 영실에게는 기쁜 소식이 날아왔다.
“장별좌! 상감마마의 허락이 떨어졌네. 이보게... 자네 어머님의 관비신분도 벗겨주셨어.”
장 영실은 그날의 하늘빛을 평생 잊을 수 없었다. 맑고 청청한 하늘. 그곳을 유유히 비행하던 까치. 언제인가 자신에게 기쁜 소식을 전해준 그 까치였다.
“정말 상감께 너무도 많은 은혜를 입은 것 같습니다.”
영실의 눈에 투명한 눈물이 고였고 그 눈물이 빛을 받아 반짝였다.
영실은 상감이 계신 어전을 향해 큰절을 올리며 감사의 말을 되뇌었다.
‘상감마마, 성은이 망극하여이다.’
더 이상의 걱정이 없는 영실은 어머니를 뫼시고 더더욱 학문연구에 몰두했다.
또 그는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했고 그런 영실을 세종대왕은 잊지 않았다.
간의의 발명
시간이 흐를수록 영실의 벼슬은 높아갔다.
그러던 어느 날 영실을 찾아온 두 손님이 있었다. 바로 익양 이 천과 예운관 대제학 정 인지였다.
“아니 어쩐 일로....”
“긴히 의논할일이 있어왔소. 상감께서 간의를 만들라는 명을 내리셨소. 쉽게 맡길 일도 아니고 떠오르는 것이 자네라서...”
“간의라면...”
“그래, 하늘의 움직임에 따라 농사에 필요한 절기와 자연의 변화를 보는 기구지.”
“허나 간의에 대한 기술도 없을 뿐 아니라, 자료 또한 턱없이 부족하지 않습니까?”
장 영실은 어안이 벙벙해 정인지와 이천을 번갈아 보았다.
“그러니 자네에게 온 것이지...”
이천의 간곡한 부탁에 승낙은 했지만 처음을 어찌 풀어야 할지 난감했다.
우선 장 영실은 많은 양의 과학책을 읽었다. 혹은 중국학자가 만든 책도 읽었다. 몇 달이 지나고 시간이 흘러도 아무런 진척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책을 읽던 장 영실은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알아낸다.
‘그래! 한양이 북쪽위도로 38도에 위치했구나!’
그로부터 얼마 뒤 장 영실은 간의를 만드는데 성공한다.
이어 연구의 연구를 거듭해 간의보다 한 단계 발전된 혼천의를 만드는 데도 성공한다. 이 혼천의는 천문시계의 기능을 지닌 것으로 서양의 기술보다 약200년 앞선 것이었다.
“정말 장하오. 그대와 같은 능력자가 있는 이상 우리의 과학기술이 충분히 발전하리라 믿소.”
세종은 영실을 칭찬했다.
“들으라. 별좌감 장 영실을 정4품 호군에 임명하오.”
“성은이 망극하여이다.”
천한 관기의 아들로 태어난 장 영실은 조선 아니 세계 최고의 발명가였다. 금속활자의 단점을 보완한 갑인자 또한 서양보다 200년 앞선 것이었고, 자격루(물시계) 앙부일구(해시계)등도 장 영실이 만들어낸 발명품이었다.
드디어 측우기의 발명
장 영실의 업적은 이에 그치지 않고 비의 양을 측정하는 측우기를 만들어 내는데 그 찬란한 빛을 발하며 절정에 달한다.
오랫동안 발명연구를 했던 장 영실은 채방별감의 자리를 자청해 경상사 문경으로 내려가게 된다.
‘그곳에서 여러 종류의 광물을 다루다보면 내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허나 채 3년이 되기도 전에 장 영실은 한양으로 돌아온다.
“어서 오시오.”
모두가 장 영실의 한양귀환을 축하했다.
“마마, 정4품 호군 장 영실 알현이오.”
장 영실의 인사가 끝나기도 전에 세종은 영실을 향해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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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별감, 그대가 필요하오. 내 비의 양을 측정하는 기구를 만들었으면 해서...”
장 영실은 세종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한양으로 돌아온 지 삼일도 되지 않아 영실은 또다시 무거운 직책을 맡게 된다.
하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여러 방법을 써도 결과는 실패였다.
‘허... 내가 이 연구에 몰입한지도 벌써 여섯 달이 다되어 가는데 소득은 하나도 없으니...’
사실 측우기의 제작은 서문관에서 맡은 지 2년이 넘어서도록 진척이 없던 것이었다. 여러 사람의 아이디어와 노력에도 힘든 일을 장 영실 혼자 해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낮이 지나고 밤이 와도 장 영실의 방의 불빛은 꺼질 줄을 몰랐다.
달이 더할수록 장 영실의 마음은 초조했다. 그냥 그렇게 해가 바뀌었고 살인적인 더위가 전국을 감쌌다.
하늘이 우중충하며 대낮인데도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금방이라도 소낙비가 쏟아질 것 같았다.
문을 열어놓고 하늘과 마당을 내다보던 영실은 자신의 아내가 물동이를 들고 나오는 것을 보았다.
“무얼 하려는 것이오.”
“빗물을 받아두려고요. 금방 비가 쏟아질 것 같아요.”
아내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이야기했다.
“당신도 더운데 그곳에 있지 말고 대청에 나와 계셔요.”
“그럴까? 올 여름은 유난히 더운 것 같아.”
순간 굵직한 빗줄기가 마당을 적시기 시작했다. 부인은 급히 몸을 피하며 부엌으로 달려갔다.
빗소리가 유쾌하게 마당에 떨어졌다.
계속된 비로 부인이 내놓은 물동이는 조금씩 빗물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무심코 밖을 보던 영실은 무릎을 내리쳤다.
“그래 그거다.”
버선발로 튀어나온 영실을 보고 부인이 화들짝 놀랐다.
“아니 대감! 지금 무얼 하시는 거예요.”
“부인 보시오. 드디어...”
영실은 아내에게 측우기를 설명했고 부인은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 덕분에 큰일을 해냈오.”
영실은 곧 측우기 제작에 들어갔다.
여름이 다가고 새싹과 봄 나비가 춤추는 다음해가 되서야 작업을 마칠 수 있었다.
높이 41.2㎝ 지름 16.5㎝의 원통모형의 쇠그릇 이었다.
이 발명으로 장 영실에겐 ‘정3품 무관 상호군’의 벼슬이 내려졌다.
천한출신으로 ‘정3품 무관 상호군’의 자리에 오른 조선의 ‘과학의 아버지’ 장 영실.
그는 전전이나 전후를 통틀어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
그가 만든 측우기는 서양의 것에 비해 197년이나 앞선 것이었다.
하지만 그가 만들어낸 발명품 가운데 오늘날 기록뿐, 실제 전해져 내려오지 못하는 것이 너무 많다.
물론 끊임없이 연구하며 발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지키고 후세에 전하는 것도 중요하다. 우리의 역할은 여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글 : 왕 연 중 (한국발명문화교육연구소 소장, 영동대학교 겸임교수, wangyj39@dreamwiz.com)
그림 : 김 민 재 (만 화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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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연중의 발명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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