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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옷 입은 발명가
군인이 꿈인 소년
수많은 업적으로 찬란한 문화시대를 열었던 세종대왕.
그의 옆에는 항상 지혜롭고 슬기로운 충신들로 가득했다.
그중 세종대왕의 중요한 업적중 하나는 눈부신 과학의 발전이었다.
우리가 갑인자의 창안자로 잘 알고 있는 이천은 조선시대 최고의 발명가중 한사람 이었고, 세종대왕이 아끼는 숨은 일꾼이었다.
하지만, 그의 뒤를 따라다녔던 그의 수많은 애칭과 명예와는 달리 그의 어린시절은 무척 참담했다.
“천아! 천아!”
녹색의 푸른 잎들이 빛을 받아 춤을 추던 오후, 숲 속의 새들과 꽃, 또 산속의 모든 것들이 맛보던 평온함을 깨뜨리는 소리가 메아리쳤다.
“스님! 저 찾으셨어요?”
이제 겨우 일곱 살 정도 됐을법한 어린소년이 볼에 홍조를 가득 띠운 채 땀을 흘리고 있었다.
“인석아! 어디 갔다 오는 게냐? 그리 싸돌아다니면서 공부는 언제 하누.”
스님은 어린천이의 행동이 못내 못마땅한 듯 얼굴에 주름살을 만들며 얼굴을 찡그렸다.
“스님 저 동자승 암자 뒤에 제가 만들어 놓은 것 보시겠어요?”
천이의 손가락은 우물물이 놓인 암자의 뒤편을 가리켰다.
소년의 티 없는 웃음을 보며 스님의 얼굴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무엇인데? 그래 네가 만든 것을 한번 보러 가자꾸나.”
소년의 손에 이끌려 간 곳에는 나무로 만든 칼과 훈련을 위해 만든 듯한 목각인형이 우뚝 서있었다.
소년은 스님을 향해 찡긋 눈을 감더니 나무칼을 들고 하늘을 찌를 듯한 고함을 내지르며 목각인형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야 압. 하 압, 이야아.”
긴 나무보다 더 기다란 소리가 숲 속에 메아리쳤다.
“스님, 저 어른이 되면 훌륭한 군인이 되겠어요. 왜군과 오랑캐들을 무찌르겠다고요.”
소년의 해맑은 웃음과 땀방울들이 밝게 빛을 내며 굴러 떨어졌다.
스님의 얼굴이 소년을 향해 움직이며 어린 천이의 꿈을 쫒는 듯 했다.
동생은 영의정이 꿈
“천아! 너 은이 데리고 내암자로 건너오너라.”
어린 천이는 스님의 말에 하던 동작을 멈추었다.
어린 천과 은, 두 형제에게 있어서 스님은 부모님과 같았다.
어린 천이 형제에게는 부모·친척 등 다른 피붙이가 없었다. 넓은 땅위에 단 두형제만이었다. 그래서인지 천과 은의 우애는 남달랐다.
“스님! 저희 왔습니다.”
“들어오너라.”
천이는 은이의 손을 꼭 쥐고는 방으로 들어왔다.
“은이야! 넌 커서 무엇이 될 거냐?”
“영의정이요.”
어린 은이가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소리쳤다.
“왜?”
“영의정이 되서 용구 녀석 혼내줄 거예요. 자꾸 부모 없는 거지라고 놀리잖아요.”
은이는 그때 일이 떠올랐는지 울먹였다.
“그자식이 또!”
천이는 화가 났다. 마을에 사는 용구라는 녀석은 늘 그렇게 천이 형제를 업신여겼다. 그렇다고 영의정이 되겠다는 동생 은이의 말엔 웃음이 나왔다.
“임마! 우린 그렇게 높은 분들처럼 벼슬을 얻을 수 없어!”
“왜?”
갑작스런 동생의 질문에 천이는 말문이 막혔다.
“그건... 그래! 우린 부모님도 안계시고 또... 우린 양반이 아니잖아.”
자신이 한 말이지만 소년은 속이 상했다. 어린 동생의 꿈을 꺾는 것 같았다.
“그래 천이는 무엇이 될 거냐?”
“전 되고 싶지 않아요. 스님처럼 머리 깎을래요.”
천이는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말하면 뭐해! 될 수도 없는 걸...’
“허 그 녀석 성깔하고는...”
스님은 천이를 보며 살포시 웃으셨다.
“형아! 난 양반이었음 좋겠어. 엄마도 아빠도 있고, 하인도 있고.”
은이는 잠자리에 누워 천이의 표정을 살폈다. 은이가 투정을 부리며 엄마, 아빠 이야기를 하는 날은 두 형제 모두 기분이 좋지 않은 우울한 날이었다.
아까부터 아무 말을 하지 않는 형이 마음에 걸렸다.
“형아! 무슨 말이라도 해봐.”
“시끄러! 잠이나 자.”
“으아 앙 왜 나한테 신경질이야!”
하지만 천이는 동생의 울음을 말리지도 더 이상 소리를 지르지도 않았다.
‘나의 출생...’
소년 이천은 답답한 마음 때문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문을 열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많은 별이 반짝였다.
“저건 엄마별, 저건 아가별... 은이야,... 은이야...”
동생은 울다 잠이 들어 있었다.
문을 닫으려는 순간 발자국 소리가 어둠의 고요를 흔들었다.
출생의 비밀
“누구요?”
“나다.”
스님의 목소리였다.
“아직 자지 않으면 잠깐 나와 보거라. 내가 너에게 할말이 있다.”
‘이 늦은 시간에 스님이 무슨 일이실까?’
이천은 어두운 방안을 나왔다. 밖은 달빛으로 환했다. 스님을 쫓아 나온 이천은 스님의 뒤를 따라나섰다.
“천이 너는 왜 칼을 만들어 무술 연습을 하는 게냐?”
“......”
“잘 듣거라. 네 아버지는 판서 출신 이송이고, 네 어머니 역시 대단한 가문의 따님이셨다.”
이천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하지만 네 외삼촌이 정변에 가담했고 너희 가문은 순식간에 몰락했다. 반역죄였지.”
스님은 잠시 말을 멈추고 눈을 감았다. 희미해진 그때의 일을 기억하려는 듯 했다.
“너희 두 형제를 데리고 온 것이 누군지는 모른다. 하지만 난 네 어머님을 잘 알고 있지. 이곳으로 불공을 드리려고 자주 오셨었다.”
어린 천이는 한기를 느꼈다. 몸에 전율이 흐르며 소름이 돋았다.
그때의 참혹했던 모습들이 머리 속에 그려졌다. 이천은 몸이 뻣뻣하게 굳는 것 같았다.
“천이야. 새옹지마라고 했다. 복수 같은 것 생각 말거라. 순리대로 살아야해. 피는 피를 부르거든. 지금 네가 할일은 학문에 전념해서 옛 가문의 영화를 되찾는 거다. 나무관세음보살.”
대웅전을 향하는 스님의 뒷모습을 지켜보는 이천의 눈에 눈물이 흘렀다. 출생의 비밀을 알았지만 지금 자신의 힘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지 알기에 기구한 자신이 더 비참했다.
그날부터 이천은 동생 은이와 함께 학문에 열중했다.
이천은 무과에, 이은은 문과에 급제
그렇게 세월이 흘렀고 태종이 즉위하자 가문의 죄가 풀렸다.
두 형제에게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
형제는 서로 격려하며 과거에 응시했고 이천은 무과에, 이은은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을 얻기에 이른다.
이천은 양반자제에게만 있는 특권도 누리지 못하고 불우한 어린시절을 극복했다. 이천형제에게 있어 스님은 ‘정신적 지주’며 살아계신 아버지와도 같았다.
“스님! 스님! 저희들이 돌아왔어요.”
이천형제는 관복을 입은 채 암자의 마당으로 뛰어들어 왔다.
“어디계세요?”
아무런 대답도 없이 암자는 썰렁했다.
“이보 오 동자승, 여기 제일 큰스님 어디 계시오?”
“제일 큰스님은 며칠 전 떠나셨어요. 좀더 공부를 해야겠다고 하시면서...”
이천형제는 믿을 수가 없었다. 분명 자신들을 기다리겠다고 했던 스님의 말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뛰어간 스님의 방은 주인 없이 목탁만이 주인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스님! 스님의 뜻을 알 수 있습니다. 스님이 저희 형제에게 주셨던 사랑 세상 살면서 그 은혜에 답하겠습니다.’
그렇게 이천의 무관이자 발명가로써의 바쁜 생활이 시작된다. 그리고 또 세월은 흘렸다.
이천의 유능함과 패기, 젊은 학자답지 않은 노련함은 곧 세종대왕의 눈에 띄었고, 인재를 아끼는 세종대왕의 정책으로 젊은 나이에 공조판서로 임명된다.
이천은 가까이서 세종을 모시게 되고, 세종의 오른팔 역할을 충분히 감당한다.
그러던 어느 날 세종대왕은 이천을 조용히 부른다.
“내 자네를 멀리 보내게 되는 것이 못내 아쉽지만, 어쩌겠나! 지금 저 북쪽은 자네가 필요하네.”
당시 조선은 북쪽지방은 오랑캐, 남쪽은 왜구의 약탈로 민생치안에 구멍이 나있었다.
특히, 북쪽은 빈번히 바뀌는 경계로 그 피폐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농사기술 또한 낙후하여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불모지였다.
이천은 충분히 세종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국가가 부강하지 못하면 문화의 발전, 과학의 발전이란 있을 수 없었다.
“예. 마마.”
그렇게 해서 이천은 절도사로 평안도에 부임하게 된다.
6진의 설치
“아니! 이게 누구인가?”
이천이 간 평안도에는 이미 1진으로 김 종서장군이 있었다. 김 종서는 ‘호랑이 장군’으로 통했다. 그의 호방한 기개와 군인으로써 그의 능력은 이미 모든 사람이 다 알고 있었다.
“허허허, 상감께서 이 김 종서만으론 믿지 못하셨구먼.”
“대감도 참,...”
이천, 김 종서 이 두 군인이 이루어낸 작품이 6진의 설치였다. 6진이 설치되자 북쪽과의 경계가 확연해졌고 국토도 늘어나게 된다. 6진의 설치는 평안도에 평화를 안겨다 주었다.
이는 세종의 북진정책과도 일맥상통했고 곧 화민정책(북으로 이민시키는 것)으로 이어졌다.
6진의 설치는 이천으로 하여금 왕의 두터운 신임을 확인시키는 계기가 된다.
세종대왕의 총애
세종은 곧 이천에게 한양으로 돌아오라는 명령을 내렸다.
“상감마마 전 평안도절도사 이조판서 이천 문안드립니다.”
세종은 버선발로 뛰어나와 이천의 금의환향을 축하했다.
“어서오오. 이공, 자네가 보고파서 내속이 검둥이가 되었소이다.”
“하하하...”
궁 안은 온통 웃음바다가 되었다.
“여봐라. 아까 일러두었던 것을 들여오도록 해라.”
세종은 내관을 향해 소리쳤다.
“따 가닥, 따 각.”
돌길위로 말굽이 부딪히며 소리가 났다.
내관을 따라 멋진 갈기를 가진 말이 들어왔다.
“아니, 사냥 나가시려고요?”
말이 들어오자 모두 뜻밖이라는 표정으로 의아해했다.
“이공 이리 오시오.”
세종은 말의 고삐를 잡고 이천을 불렀다.
“이천, 이 말은 내가 당신에게 주는 선물이오.”
“예! 전...전하.”
“자, 와서 말고삐를 붙들어 보시오. 허... 이 녀석도 새 주인이 마음에 드는가본데.”
“히 이 힝 힝.”
말이 몸을 치켜들며 큰소리로 울었다. 그날의 하늘은 유난히 맑았다. 하늘위로 한 쌍의 솔개가 날았다. 추녀 끝 풍경이 바람이 일적마다 맑은소리를 냈다.
이천에게는 평생을 두고 잊을 수 없는 성은이었다. 세종대왕이 이천에게 주었던 그 말은 세종대왕의 전용 말이었다.
내구마(세종대왕의 말)를 하사한 이일은 후에도 사람들 사이에서 이야기 거리가 된다.
갑인자의 탄생
한양으로 돌아온 이천은 계속해서 학문과 발명에 몰두한다.
‘이런... 좀더 체계적이고 폭넓은 공부를 하고 싶다.’
이천의 학문을 얻기 위한 욕심은 그를 중국의 땅으로 향하게 했다.
몇 해를 지내고 돌아온 이천은 일체의 관직에서 물러나 발명을 하는데 그의 시간을 보냈다.
세종대왕은 한글창제에서도 볼 수 있듯이 많은 문화사업을 일으켰다.
하지만 중국의 글인 어려운 한자를 일반백성들은 배울 수 없었다.
백성들 가운데는 자신의 이름조차 적을 수 없는 무식쟁이들이 많았다. 글이란 양반만이 배우고 쓸 수 있는 소유물처럼 여겨졌다.
그런 상황 속에는 세종대왕은 양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젊은 학자를 통해 한글을 만드는 것 이었다. 또, 한글을 보급해야 하는 것은 시급한 문제 중의 하나였다.
“이보시오. 나라의 녹을 먹고 있는 자들이 백성을 업신여기고 그들의 울음소리를 듣지 못한다면 어찌 하늘을 볼 것이오!”
“...”
세종은 마음이 답답했다. 그 누구하나 자신의 심정을 알아주는 이가 없었다. 이천이 그리웠다. 늘 자신의 옆에서 충고와 격려를 해주던 이천이 보고 싶었다. 이천이라면 자신의 고민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봐라! 이천을 부르라.”
대신의 전갈을 받은 이천이 급히 궁에 당도했다.
“이 보 오 이공. 자네밖에는 없소이다. 백성들을 까막눈에서 벗어나게 하기위해선 많은 책이 있어야 하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책 한권 만들기도 힘드니... 난 자네만 믿겠소.”
세종의 말을 듣고 있던 이천은 자신의 어린시절이 생각났다.
힘들게 익혔던 글들... 그나마 이천에겐 스님이 있어 다행스러웠던 시간들...
“마마 심려 마십시오. 제가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그날부터 이천은 바로 새로운 활자를 제작하기위한 연구에 들어간다.
그의 주위는 젊은 보좌관들로 가득했다. 많은 젊은 학자들 가운데 장 영실은 이천이 가장 아끼는 사람이었다.
장 영실은 늘 이천 곁에 머물면서 이천이 요구하는 모든 것을 그 자리에서 만들어내는 천재성을 지닌 사람이었다.
후에 그 유명한 측우기를 만들어 세인의 관심을 받는 장 영실은 이천의 큰 힘이었다.
“대감! 쉬어가며 하셔요. 그러다 몸 상하십니다.”
사실 많은 젊은 학자들도 고단해서 힘들어하는 일을 이천은 몇 날 밤을 새가며 젊은 보좌관들을 지도했다.
“임금님의 마음을 생각하면 쉽게 잠이 오질 않아. 생각해보게. 내가 한 시간 쉬면 이 있단 말이지.”
이천의 말을 들은 젊은 연구가들은 자신들의 경솔함을 뉘우쳤다.
깊은 밤에도 이천의 연구실은 연구에 몰두하는 연구가들의 검은 그림자가 가득했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는 세종의 마음은 든든했다.
많은 실패를 거듭하며 연구는 계속됐고 드디어 새로운 활자제작에 성공하게 된다.
최초의 한글 활자본인 갑인자가 탄생되는 순간이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활자본의 탄생은 곧 많은 한글 책이 보급되는 계기를 주게 된다. 정말 위대한 발명이었다.
완성된 갑인자를 본 세종대왕은 이들의 노고를 칭찬했다.
“수고했소. 정말 훌륭하오.”
갑옷 입은 발명가
‘갑옷 입은 발명가’이천.
그의 어린시절은 비참했지만 지금의 역사는 그의 위업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갑인자의 발명은 곧 조선식 청동 활자의 주조기술과 인쇄기술의 발전으로 이어지게 된다.
또 갑인자의 활자본은 지금 우리의 생활 속에서 볼 수 있다. 많은 발명품들이 오늘날 전해져 내려오지만 이천의 갑인자처럼 오늘날도 우리의 생활에서 밀접하게 숨쉬고 있는 것은 몇 되지 않는다.
이처럼 이천은 어떠한 칭호를 받기에도 부족함이 없는 문·무를 겸비한 충신이요 발명가였다.
그런 이천은 그의 나이 60이 넘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그의 늙은 몸을 이끌고 함경도와 평안도에서 잦은 노략질을 일삼던 오랑캐를 소탕하는 큰 공을 세운다.
익양 이천.
그는 죽는 그날까지 세종대왕의 커다란 신임과 총애를 받았다.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는 많은 학자들이 위대한 학자의 죽음을 슬퍼했고, 세종 역시 자신의 충신을 잃은 아픔에 눈물을 흘렸다는 일화가 전해오고 있다.
그가 죽던 날 하늘에서는 하나의 유성이 긴 꼬리를 물고 떨어졌다.
글 : 왕 연 중
(한국발명문화교육연구소 소장, 영동대학교 발명특허공무원학과 겸임교수)
(이메일 : wangyj39@dreamwiz.com 전화 : 011-890-8578 )
그림 : 김 민 재(만화가, http : //www.coolmorning.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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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연중의 발명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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