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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물과 백두산이
내 손으로 지도를 만들겠어!
깊은 산속의 어둠을 깨듯 군데군데 불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갑자기 나타난 불빛에 놀란 짐승들이 황급히 뛰기 시작했다.
어둠 속에 모습을 드러낸 사람들이 하나씩의 횃불을 들고 산위로 올라오고 있었다.
“정호야! 정호야!”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어두운 숲 안을 메아리쳤다. 더 이상의 고요함과 적막감을 허용하지 않으려는 듯한 함성 같았다.
“정호야! 있으면 대답해라. 대체 어디에 있는 게냐?”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의 목소리는 다급함이 보였다.
“행여 저 벼랑 끝으로 갔을지도 모르니 우리는 그곳으로 가봅시다.”
몇몇 개의 횃불이 사람의 움직임을 따라 춤을 추었다.
“어머니... 저... 있어요.”
고통에 찬 어린아이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아이의 세찬 숨소리가 규칙적으로 울려 퍼졌다.
“여기다. 찾았어!”
사람들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사람들이 에워싼 불빛 밑으로 어린소년이 다리를 붙잡고 울먹였다.
“정말 일찍 가려고 했는데... 흑흑.”
바로 이 소년이 대동여지도를 만들어낸 김 정호였다. 우리나라 지도제작의 선구자로 불리었던 김 정호.
그리 넉넉하지 않은 황해도 가난한 시골마을에서 태어났고, 지도제작에 자신의 평생을 바친 지도의 아버지. 그의 지도에 대한 애착은 어릴 적부터 남달랐다.
“정호니 정말 인절미 사 줄 거지?”
누런 코를 훔쳐내며 호석은 정호의 뒤를 따랐다.
“그렇다니까! 자 어서 저 느릅나무 옆에 가서 서 있어봐.”
어린 김 정호의 손끝은 까치가 둥지를 튼 커다란 나무를 가리키고 있었다.
중천에 걸려있던 해는 어느새 기울어 가고 있었다.
“너무 늦었어. 나 먼저 가야겠다.”
“그래. 해도 지고 있으니 들어가 봐라. 내일 나오는 것 잊지 말고.”
“알았어. 너도 약속 꼭 지켜야 한다.”
호석은 생각만으로도 군침이 도는지 침을 꿀꺽 삼켰다. 어린 김 정호는 사라져가는 친구의 모습을 지켜보다가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어린 김 정호의 얼굴에는 만족에 찬 미소가 흘렀다. 해가 져서 어둑한 하늘을 보자 발걸음을 재촉했다. 집 앞에 도착한 소년은 조심스럽게 문을 열기 시작했다.
“고물문아! 제발 소리 없이 열려라.”
소년의 손동작을 따라가며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삐그덕. 삐익.”
“정호냐? 게 이리 들어오너라.”
정호를 기다리는 정호아버지의 목소리엔 노여움이 베여 있었다.
“너 지금 어디서 무얼 하다 오는 거냐?”
“저...”
“왜 빨리 말하지 못하는 거냐! 또 지도 만든답시고 이곳저곳 싸돌아다닌 게냐?”
정호의 아버지는 격해진 목소리로 소리치며 단상을 내리쳤다.
“쾅”
소년은 더 이상 변명이 소용없음을 깨달은 듯 고개를 떨군 채 입을 봉했다.
“잘될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더니 공부를 열심히 해도 입에 풀칠하기 힘든 세상에 놀 궁리나 하고.... 그 천한 역쟁이 노릇이나 하고 다니다니... 이 시간부터 내 허락 없이 문밖으로 나가지 말거라!”
“예.”
어린 김 정호의 머리 속은 친구의 약속과 거의 완성단계에 이른 지도로 가득 찼다.
문을 나서는 어린 김 정호는 마음속에서 휑한 차가운 바람이 이는 것을 느꼈다.
자신의 양손과 발이 잘린 느낌이었다.
“저녁식사는 먹은 게냐?”
풀이 죽은 소년의 모습을 보며 소년의 어머니가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죄송해요 어머니.”
“정호야! 이 에미는 네게 큰 것을 바라진 않는다. 다만 아버님의 뜻을 거역하지 않음을 하는 거지.”
소년은 말없이 방으로 들어갔다. 그로부터 며칠을 어린 김 정호는 방안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정호야!”
호석의 목소리였다. 순간 김 정호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어서와라.”
“다른 게 아니고 아버지가 관아에서 지도를 두어 개 구해오셨어. 그런데 네 생각이 나길래 아버지를 졸라 하나 얻어왔다.”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호석이 누런 종이를 소매 속에서 꺼내 놓았다.
“정말 나주는 거냐?”
“그래 헌데...”
호석이 주위를 살폈다. 그리고는 나지막이 속삭이기 시작했다.
“너무 귀한 거라 적의 손에 들어가면 안 되니까 꼭 기밀을 지켜라.”
어린 김 정호는 웃음이 나올 것 같았지만 참았다.
‘지도가 생겼다. 이건 진짜라고!’
어린 정호가 펼쳐든 지도에는 산과들이 강이 마을이름이 적혀있었다.
소년은 지도를 들고 동리 뒷산위로 뛰어 올랐다. 이 뒷동산은 어린 김 정호가 자주 올라와 마을을 그리던 곳이었다. 오밀조밀하게 모인 마을의 풍경이 작은 장난감처럼 느껴졌다.
“여기가 감대산이고... 이곳이 황 대감 댁 논이고... 엉?”
순간 지도와 마을을 번갈아 보던 소년의 얼굴이 잿빛으로 일그러졌다.
‘이럴 수가? 실제 마을과 틀리잖아. 이게 지도야! 이런 엉터리 지도를 관아사람들은 사용했단 말이지...
김 정호는 마을사람들이 속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지도상이라면 황 대감 댁에서 서낭당까지의 논은 서판서 댁 논인데 사실은 그보다는 작은 것이었다.
“휴- 마을 지도가 이런 상태라면 우리 조선 땅 전체의 지도는...”
소년 김 정호는 지도를 말아 쥐었다. 그리고는 마을을 노려다 보았다.
“내손으로 지도를 만들겠어. 조선 제일의 지도를.”
그렇게 어린 김 정호는 자신의 꿈을 키우고 있었고 세월은 흘렀다.
포기하지 말자!
어렸던 김 정호는 어느새 어른이 되어 딸을 가진 아이의 아버지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세월도 김 정호의 지도제작에 대한 열망을 잠재울 수는 없었다.
“이해해 주오. 이젠 더는 지체할 수 없소이다.”
김 정호는 아내를 이해시킨 뒤 여행준비를 서두르기 시작했다. 지도제작을 위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였다.
떠나는 남편의 뒷모습을 보며 김 정호의 부인은 눈물만 흘렸다.
‘내 제대로 된 지도를 만들기 전까지는 결코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대장부 세상에 태어나 이름석자 남기지 못한다면 무슨 낯으로 하늘을 대할 것인가!’
김 정호의 지도제작에 대한 집념과 신념은 대단했다. 그 일이 얼마나 힘들고 고달픈 일인가를 잘 알고 있으면서도 간 길이기에 더욱 가치가 있었다.
김 정호가 집을 떠난 지 일년이 다되었다. 봄에 떠난 그에게 겨울이 닥친 것이었다. 세상은 온통 하얀빛의 물결을 이루었다. 하지만 김 정호의 마음은 그리 편치 못했다. 그동안 지난 시간에 비해 그해 해놓은 것은 매우 적었다. 설상가상으로 넉넉지 않던 여비가 떨어져 수중엔 한 푼도 없었다. 거기에다 추운 겨울이 닥친 것이었다. 그에게 견디기 힘든 시련의 예고였다.
‘여기가 어디쯤인가?’
김 정호는 인가를 찾기 위해 두리번거렸다. 그러나 그의 주위는 온통 앙상한 가지가 드러난 나무뿐이었다. 인가를 찾는 일이 쉽지 않았다.
‘낭패군. 날은 점점 어두워지는데...’
매서운 바람이 김 정호의 살을 에이고 여기저기서 밤 짐승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우...우... 우우.”
추위와 배고픔이 김 정호를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몸이라도 녹였으면 좋겠다.’
김 정호의 몸이 무거워졌다. 더 이상 발걸음을 옮길 수가 없었다. 이틀째 아무것도 먹지 못한 탓이었다.
김 정호는 희미해져가는 정신을 붙잡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시야는 점점 흐려지고 몸의 기운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한참이 지난 것 같았다. 따스한 온기에 눈을 뜬 김 정호는 희미하긴 하나 호롱불빛을 보았다.
“눈을 떴구먼.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소. 젊은 양반. 어쩌자고 이런 험악한 날에...”
노인은 새끼줄을 꼬며 김 정호에게 말했다.
김 정호는 집에 두고 온 아내와 딸이 생각났다. 코끝이 찡해져왔다.
‘포기하지말자. 지금 포기하면 아내를 무슨 낯으로 볼까.’
김 정호는 흔들리는 마음을 다부지게 되잡으며 몸이 회복되길 기다렸다. 몸이 점차 기운을 찾자 매섭던 날씨도 풀리기 시작했다.
“어르신 그동안 감사드립니다.”
김 정호는 정중히 인사한 후 또다시 여행을 시작했다. 그에게 있어서 끼니를 거르는 일은 더 이상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한 끼라도 먹는 날이 이상한 날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김 정호는 날로 수척해 졌다.
세월이 유수처럼 흐르고 김 정호가 집을 나온 지 어느덧 4∼5년이 지났다.
‘이젠 돌아가야지. 이 정도라면 지도제작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모은 자료들과 지도뭉치를 보며 그는 만족스러웠다.
‘이젠 아내와 딸아이를 볼 수 있겠구나!’
성장해 있을 딸아이를 생각하며 김 정호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저 멀리에 마을이 보이기 시작했다. 한고개만 지나면 김 정호의 집이 보였다.
집에 도착한 김 정호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이것이 나의 집인가?”
깨진 장독이 마당에 널려있고 문풍지 사이로 방안의 험한 모습이 참혹하게 느껴졌다. 또 어린 계집아이가 바가지를 든 채 낯선 남정네의 모습을 우두커니 쳐다보았다.
“내가 내 가족에게 이걸 남기기 위해 그 큰 고생을 했던가!”
김 정호는 심한 죄책감으로 몸 둘 바를 몰랐다.
“그만두자. 여기서 손떼자.”
그는 이후 그의 식솔을 이끌고 고향을 떠나게 된다.
하지만 김 정호의 마음은 늘 지도 만드는 것에 빠져있었다.
드디어 대동여지도의 탄생
좌절 속에서 허덕이는 남편을 보며 김 정호의 부인은 그를 그의 길로 가게 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지 말고 다시 한번 해보세요. 이젠 어느 정도 생활이 나아졌으니...”
김 정호는 아내를 바라보았다.
“하고 싶은 일을 하세요. 저도 힘껏 당신을 도와드리겠어요.”
“아버지 저도요.”
딸아이가 생글거리며 김 정호에게 매달렸다. 이렇게 아내의 도움으로 김 정호는 잃어버릴 뻔한 자신의 꿈을 다시 키우게 된다. 김 정호는 고생 끝에 청구도라는 지도를 만들게 된다.
커다란 좌절이 그의 앞에 있었고 많은 고난이 있었지만 모두 극복한 집념의 결과였다.
“축하해요. 그렇게 소망하시던 지도를 만드셨으니...”
아내의 말을 들으며 김 정호는 어딘지 허전함을 느꼈다. 그의 눈엔 청구도 역시 부족한 점이 너무나 많아 보였다.
“아니오. 이게 아니야!”
김 정호의 말을 들은 김 정호의 아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마음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김 정호에겐 지도제작을 멈추었던 그 공백의 시간을 메꿀 만한 어떤 힘이 필요했다. 그가 쉬는 동안 분명 어느 마을이 변했을 것이었다.
그는 또 한번 멀고 험난한 여정을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이번 여행은 처음보다 더 힘든 여행이 될 것이다.’
김 정호는 삶의 원동력이 지도제작에만 있는 듯이 그의 모든 정신적 육체적 소유물들은 지도 만드는 것에 집중했다. 그는 그 속에서 장인의 정신을 느꼈다.
또 한번의 김 정호의 지도제작의 길은 너무나 험난했다. 발을 헛디뎌 벼랑 끝으로 떨어지기도 하고 호랑이에게 물려갈 뻔하기도 했다. 그렇게 죽을 고비를 수도 없이 넘겼다.
그렇게 김 정호는 자신을 이겨나가고 있었다.
한번도 오르기 힘들다던 백두산을 8번이나 올랐고 금강산은 수도 없이 오르내리며 지도를 만들기 위한 정보를 계속해서 수집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대동여지도.
누구나 한번 보고는 그 정교함이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는 그 지도, 바로 김 정호의 혼이 담긴 작품이었다. 아니 이것은 예술이며, 김 정호 자신의 분신이었다.
지도로 인해 불어 닥친 불행
하지만 그 지도로 인해 닥칠 불행을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그렇게 모은 자료로 본격적인 지도제작에 착수하게 된다.
“아버지 힘드시죠. 제가 도와드릴게요.”
밤참을 싸온 딸의 모습을 보며 김 정호는 무척 흐뭇했다.
“아버지! 끼니 거르지 말고 하셔요.”
아버지인 자신을 걱정하는 딸아이는 어느새 아가씨가 되어 자신의 일을 뒤에서 돕고 있었다.
“쉬어가며 하셔요. 지금부턴 제가 목판을 짜겠어요.”
“이젠 시집가도 되겠구나.”
“아버지도 참...”
딸의 붉은 뺨이 더욱 홍조를 띠며 빛났다.
그러던 어느 날 김 정호에게 고향친구인 이 용희가 찾아왔다.
조촐한 주안상이 차려지고 둘은 오랜만의 재회를 기뻐하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자네 지도 덕분에 내가 이번 전쟁에서 큰 공을 세웠다네. 그래서 내 자네의 공덕을 대원군께 고했으면 해서.”
“허허... 내 좋아 한일에 공덕 이라니.”
“자넨 아무 말 말고 그냥 지켜만 봄세.”
“이보게 용희!”
이렇게 친구 이 용희가 다녀간 며칠 뒤 조정에는 한 무관에 의해 상소가 올려진다. 바로 이 용희의 상소였다.
‘김 정호라는 지도제작자의 재능을 높이 사시어...’
바로 이것이 불행의 화근이었다. 딸과 아침식사를 하던 김 정호는 의금부 군인에 의해 신도 신지 못한 채 한양으로 압송된다. 마른하늘에 벼락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었다.
후송마차에 실린 그의 모습의 그의 딸이 따르고 있었다. 마을사람들도 걱정스런 눈빛으로 두 부녀를 지켜보았다.
“끌끌 안됐어. 고생을 많이 했는데....”
한양으로 압송된 김 정호에게는 모진 고문이 기다리고 있었다.
지도의 선구자, 진정한 영웅
“이놈! 네 죄를 네가 알렸다.”
“나리, 소인은 죄가 없소이다. 대체 무엇이 이 비천한 늙은이의 죄란 말이오. 정이 억울 하외다.”
“저놈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군. 저 놈의 입을 찢어라.”
“으아악”
김 정호의 비명소리가 의금부 내를 울렸다. 그것은 육체의 찢김이 아니라 그의 정신이 찢어지는 것이었다.
“내겐... 잘못... 없소이다. 땅을 사랑하고... 한 가지 일에 매달린 것이 죄란 말...”
그의 목소리가 끊기고 그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죄명은 기밀누설죄. 실로 어처구니없는 죄명이었다.
한 시대를 살다간 영웅들은 참으로 많다. 자신의 자리를 고집스럽게 지켜간 사람들. 김 정호 또한 그런 영웅 가운데 한사람 이었다. 김 정호는 자신의 전 생애를 지도제작에 바쳤고 끝내는 차디찬 옥 바닥에서 숨을 거둔다.
그가 만든 대동여지도는 지금의 발달된 과학으로도 따라가지 못할 만큼 실제 지형과의 오차가 거의 없다고 한다.
이건 무엇을 의미하는가?
김 정호는 진실로 ‘지도의 선구자’ 역할을 충분히 감당해낸 장인 가운데 장인이었다.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
그의 비참했던 죽음과 그가 지도에만 바쳐온 생애를 지금의 역사는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글 : 왕 연 중
(한국발명문화교육연구소 소장, 영동대학교 발명특허공무원학과 겸임교수)
(이메일 : wangyj39@dreamwiz.com 전화 : 011-890-8578 )
그림 : 김 민 재(만화가, http : //www.coolmorning.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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