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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라 999호
Ⅰ
“달려라 999호! 그렇지.”
“야호! 999호가 선두다. 와아아!”
“야 저 붉은 차 정말 대단하지? 이름이 ‘999’라고 하더군. 꼭 먹이를 향해 돌진하는 굶주린 사자 같아!”
“저것 봐! 저 차 다른 차들보다 무려 한 바퀴 반이나 앞섰다고!”
“저런 차는 도대체 누가 만들어 낸 거야! 괴물이라고, 괴물!”
“헨리 포드라는 아일랜드계 영국인이 만든 차라고 하더군.”
“그래? 정말 멋지군. 그 사람 정말 대단하지?”
잠시 후, 결승점을 통과한 붉은색의 999호가 멈춰 서고, 심판은 우승을 알리는 깃발을 힘차게 휘둘렀다.
“와아아! 만세! 999호의 우승이다!”
관중석에서는 놀라움과 경탄에 들뜬 함성이 쏟아졌고, 경기장은 사람들의 흥분의 물결이 가득했다.
곳곳에 있던 신문 기자들이 달려 나와 플래시를 터트리며 ‘붉은 악마 999호’를 찍느라 북새통을 이루었다.
그날 저녁 석간신문은 대문짝만한 특집기사가 실렸다.
“자동차의 제왕 헨리 포드. 자동차 트랙을 석권하다!”
Ⅱ
여름의 뜨거운 햇살이 눈에 부실정도로 따가운 7월의 오후.
마을의 곳곳은 녹색의 새 옷을 입은 나무들이 간간히 불어오는 바람결에 춤을 추듯 일렁였다.
시내로 들어가는 좁은 마을길 위에는 아버지와 아들이 한가롭게 마차를 몰며 다정스럽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멀리 보이는 시내의 교회 철탑이 보이기 시작하자 마차 위에서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던 곱슬이는 금빛 머리카락을 지닌 소년의 가슴이 심하게 뛰기 시작했다.
오래간만에 나오는 시내 풍경은 상상만 해도 소년에게는 흥분되는 일이었다.
“아빠! 저 여기서부터는 혼자 뛰어 갈게요?”
덜컹거리며 천천히 움직이는 마차가 못마땅한 듯 소년은 아빠에게 투정을 부렸다.
“안 돼! 이곳에서는 절대적으로 아빠의 말에 따르도록 해. 안 그러면 다시는 시내구경은 못할 거다!”
“꿍?”
소년은 실망한 듯 마차 뒤 의자에 엉덩이를 밀어 넣고는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소년의 실망은 잠시였다. 어린 소년의 눈앞에 펼쳐진 시내의 모습은 모든 것이 다 신비스러웠다.
생기에 넘친 시내의 풍경은 소년의 호기심을 자극 하였다. 소년이 머물고 있는 시골 농장의 조용한 풍경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것 이었다.
거리 가득히 들어선 건물들과 희한한 처음 보는 물건들, 여인들의 화려한 옷차림. 여름 햇볕의 따가움도 잊은 채 소년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계속 쳐다보아도 질리지 않았다.
“엉? 저게 뭐지? 정말 신기한 물건인데.”
주위를 돌아보던 소년의 저편 시선으로 말이 매어있지 않은 커다란 마차 같은 물건이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와아아! 저절로 움직이잖아!”
대장간 옆에서 천천히 굴러가는 무인 마차의 모습을 보던 소년은 그만 너무 놀라 마차에서 훌쩍 뛰어 내렸다.
“이? 이런? 헨리!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그러다가 크게 다치기라도 했으면 어쩌려고.”
“죄송해요. 아빠, 저 저곳에서 조금만 구경하고 올게요. 금방 돌아올게요.”
소년은 급한 일이 생긴 듯 뒤도 돌아보지 않고는 달렸다. 무인 마차는 멈춰 선채 대장간 앞에 있었다.
‘히야아? 정말 신기한데? 이름이 뭐지?’
소년은 떨리는 손가락 끝으로 무인 마차를 살짝 건드려 보았다. 손끝에 느껴지는 차가운 감촉이 소년의 심장을 세차게 흔들었다. 예전에 소년이 처음으로 망아지 새끼를 받았을 때 보다 더 흥분되는 일이었다.
“이 녀석! 너 지금 뭐하는 거야! 어서 저리 가거라!”
무인 마차의 주인으로 보이는 신사가 나와 소년에게 소리쳤다.
“저? 아저씨. 이 마차의 이름이 뭐지요? 그리고, 말도 없이 이건 어떻게 움직이는 거예요?”
“허? 그 녀석 보게. 이건 증기 엔진차라는 거야. 조금한 녀석이 당돌하기는? 이제 이름을 알려 줬으니 저리로 비키 거라.”
“아저씨, 어떻게 움직이는 거예요? 도대체 어떻게? 말도 매어있지 않은데.”
소년의 간절한 부탁에 신사는 난감 스러운 듯 혀를 찼다. 그러나 반짝이는 눈빛이 금방 물러서지 않으리라고 느껴지자 조용히 소년에게 말했다.
“그래? 정말 알고 싶으면 다시 한번 이곳을 오너라. 난 언제나 이곳에 있으니까.”
소년은 그제 서야 안심을 한듯 한숨을 내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아버지의 마차가 서있는 곳으로 달렸다.
이 소년이 ‘자동차의 제왕’ 헨리 포드였다. 헨리 포드의 자동차에 관한 꿈은 이렇게 포도가 익는 여름에 우연한 만남으로 싹이 텄고, 어릴 적 본 증기 엔진 차의 또렷한 기억이 그의 인생을 바꾸었다. 평범한 농부의 아들이던 헨리 포드의 자동차 인생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Ⅲ
“이렷! 어서 달려라!”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시내를 다녀오던 헨리는 예고 없이 쏟아지는 반갑지 않은 비를 맞으며 말을 재촉했다.
시간의 흐름은 어느새 소년을 17세의 어엿한 청년으로 성장시켰다.
작은 키에 자그마한 일에도 수줍어 얼굴을 붉히던 소년은 커다란 밀가루 자루를 어깨에 걸고도 씩씩하게 걸을 수 있었다. 그러나 한 가지 성장한 그에게 바뀌지 않은 것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5년 전 시내에서 그가 결심한 것이었다.
자동차의 발명.
아버지의 농사일을 거들면서도 단 하루도 잊어본 적이 없었다. 그는 고된 농사의 노동 후에도 하루도 거르지 않고 그의 창고로 지친 몸을 이끌었다.
곡식을 거두어 저장하는 창고의 한 귀퉁이를 개조해서 만든 그의 작은 작업실 이었다.
작업실이라고 해도 고장 난 몇 개의 시계와 고철을 제외하고는 그다지 쓸 만한 것이 없는 볼품없는 창고였다. 그러나 자동차 발명을 꿈꾸는 헨리에게는 그 무엇보다도 소중한 보물이었다.
빗속에서도, 마차를 모는 헨리의 머릿속에서는 자동차를 만들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상상에 그치고 언제나 실망스러운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다.
‘벌써 5년이 지났는데? 난 해놓은 것이 하나도 없잖아.’
헨리는 집에 도착하자, 바로 창고로 향했고 짚으로 만든 간이침대 위에 누웠다. 피곤함이 몰려 왔다.
비가 내리고 하늘이 우중충한 것이 자신의 우울함을 대신하는 듯 했다.
‘내가 너무 심한 욕심을 부리는 건가? 그때는 분명 할 수 있을 거라 믿었는데?’
헨리는 5년 전의 일을 기억했다.
“이봐, 꼬마. 너 진심이었구나! 이렇게 다시 나타날 줄이야.”
다시 나타난 자신의 모습을 보는 자동차 주인의 놀란 모습이 헨리의 귓가에 메아리치며 맴돌았다.
“자, 이건 말이다. 이 엔진 속에 있는 실린더의 피스톤이 수증기의 힘으로 운동하면서 엔진을 돌리기 때문에 움직이는 거지. 어찌 보면 굉장히 간단한 원리라고. 어때?”
“아! 그래서 말이 없이도 스스로의 힘으로 움직일 수 있었던 거군요.”
소년 헨리는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금방 무슨 결심이라도 한 듯 두 주먹을 불끈 쥐고는 소리쳤다.
“아저씨! 저도 이런 차를 만들겠어요. 꼭!”
헨리의 옛 기억이 이곳에 머무르자, 그는 그만 콧 웃음을 쳤다.
‘훗? 내가 생각해 보아도 그때의 나는 참 철이 없었어. 너무 순진했던 거야.’
실망한 헨리는 농사일에만 전념했다. 그의 모습에서 자동차 발명을 꿈꾸는 소년의 옛 모습은 찾아 볼 수 없었다.
그러나 작은 실망과 함께 그의 마음 깊숙한 곳에서 작은 오기의 씨앗이 움텄다.
‘뭐야! 벌써 지친거야! 이봐 헨리 포드. 정신 차리라고! 넌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실패란 있을 수 없어!’
‘맞아! 벌써 포기하다니? 그래, 지금이 시작이야.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하자!’
Ⅳ
“헨리 포드씨, 이거 너무 심한 것 아닙니까? 세상에 시끄러워서 잠을 잘 수 있어야지? 당신은 올빼미요!”
“정말 죄송합니다. 조용히 하도록 하겠습니다.”
“자꾸 이렇게 시끄럽게 하다가는 이곳에서 살지 못할 거요!”
“?”
이웃과의 언쟁은 언제나 헨리의 일상처럼 되풀이 됐다. 낮에는 생계를 위한 직장에서 일해야 했고, 퇴근 후 시작되는 그의 차에 관한 연구는 늘 새벽을 넘기기 일쑤였다.
그의 이웃의 불만은 이만 저만한 것이 아니었다. 연일 계속되는 새벽을 깨는 망치 소리로 사람들은 헨리의 가족을 싫어했다.
“들었어요? 헨리라는 사람, 미친 거라고. 연일 밤낮 구분 없이 저렇게 두들겨 대니 사람이 살 수 있어야지요.”
“내쫓아야 돼요. 아이들의 교육에도 안 좋고.”
이런 따가운 이웃의 눈총도 처음 그가 이곳 디트로이트에 왔을때 비하면 천국처럼 평화스러운 것이었다.
무작정 자동차를 만들기 위해 무엇이든 배워야 한다며 고향을 떠나온 그에게 따스한 스프 한 그릇을 먹을 수 있는 여유가 없었다.
남들의 반도 안 되는 월급은 실험용 자재비와 생활비로 충당하기에도 턱없이 부족했다. 그러나 그런 궁핍한 생활도 그의 성실함으로 회복될 수 있었고 곧 안정을 찾게 되었다.
그는 힘들고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 때면, 디트로이트에서의 첫 생활들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자신을 위로했다.
‘그래, 조금만 참자! 이건 아무것도 아니니까.’
이런 긍정적인 사고방식은 자신의 삶을 적극적으로 살아가게 했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헨리는 곧 주위 사람들의 인정을 받았다.
또, 사랑하는 동반자 클라라 브라이언트와 결혼도 하게 되었다.
그의 연구는 활기를 띠며 진척되었고 그의 꿈의 실현은 눈앞의 일로 다가왔다.
Ⅴ
“와아아! 움직인다. 클라라! 여보 이리와요. 어서? 야호!”
하늘에 반짝이는 별들과 구름 사이에 가린 달이 조금씩 부끄러운 모습을 드러내던 1893년, 헨리는 자신의 꿈이던 자동차를 발명하는데 성공했다.
그의 노력과 땀의 결실이었다. 커다란 몸집을 뒤뚱거리며 덜컹거리기는 했어도 분명 헨리의 자동차는 달리고 있었다.
“헨리, 멋지군요! 난 당신이 해낼 거라 믿었어요.”
Ⅵ
아내 클라라의 눈에서 기쁨의 눈물이 흘렀다.
“클라라! 울지 마. 이제 시작이야. 이건 처음 만든 거라 덩치도 크고 소음도 요란하지만 이제 조금 더 작고, 손쉽게 작동할 수 있도록 이 녀석을 개조 해야지.”
헨리는 다시 자신의 전열을 가다듬으며 재무장을 했다.
당시에도 증기 엔진차가 나와 거리를 누볐지만, 터무니없는 비싼 가격으로 손쉽게 장만할 수 없었다.
‘생산량이 적기 때문에? 그러니까 가격이 비싼 거라고.’
‘생산량을 높이기 위해서는 필요 없는 부분은 줄이고, 엔진도 축소시켜서 생산기일을 앞당기면 남들이 한대 만들 때 나는 10대 20대를 생산하는 거야!’
그의 아이디어는 적중했다. 하지만, 이런 생산 라인을 얻기 위해서 막대한 자본금이 필요했다. 또 실험을 더 하기 위해서 연구비용도 있어야 했다.
자금을 구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헨리는 자신의 시간을 쪼개어 자금을 구하기 위해 사람들을 설득했고, 이렇게 정신없이 보내던 1893년 그는 첫아들을 얻게 되었다.
그의 기쁨은 잠시였다. 그 누구도 가난한 공장원인 헨리를 도우려하지 않았다. 잘못하다간 자신의 전 재산을 날릴지 모른다며 펄쩍 뛰었다.
헨리의 실망은 컸고, 돈 때문에 그의 꿈이 좌절될 거라고 느껴지자 슬픔이 몰려왔다.
‘도와주는 사람만 있다면? 돈이 조금만 있어도?’
그러던 중 기회는 헨리에게 찾아왔다. 그의 친구 짐이 경제적 후원을 약속했고, 선뜻 많은 돈을 내놓았다.
Ⅶ
“선생님! 헨리 포드 선생님! 어떻게 생각 하십니까? 이번 승리는 예상 하셨습니까?”
“짐작이요? 짐작만으로는 안 되지요. 확신이 있었습니다. 999호는 제 자식처럼 소중한 것입니다. 그만큼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이번 경기로 많은 자본가들의 투자가 예상된다고 하는데.”
“이건 미래의 투자입니다. 돈과는 비교 할 수 없는 가치 있는 일입니다.”
“마지막 한 말씀은?”
“어쩌면 전 가난한 농부로 평생을 보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던 노력이 지금의 999호와 저를 있게 했습니다. 자신의 꿈을 믿고 노력하는 사람은 언젠가는 성공합니다. 꿈은 실현시킬 수 있을 때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단상위에서 힘 있게 외치는 헨리의 모습에서 예전의 수줍은 소년의 흔적은 찾아 볼 수 없었다.
끊임없이 노력하고 포기하지 않는 그의 생활, 신기함에 호기심을 느끼는 일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꼼꼼히 관찰하던 적극적인 소년은 세계 최대의 자동차 회사를 가진 ‘자동차의 제왕’으로 탄생될 수 있었다.
글 : 왕 연 중
(한국발명문화교육연구소 소장, 유원대학교 발명특허공무원학과 겸임교수)
(이메일 : wangyj39@naver.com 전화 : 011-890-85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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