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결핵이여 안녕
현미경과 씨름
이제 막 태어난 아기의 울음소리가 독일의 글라우스타르 산악지대의 한 집에서 들려왔습니다. 1843년 12월 11일, 인류를 전염병에서 구해 낸 로베르트 코호가 세상에 태어난 것입니다.
코호는 건강하게 자라 어느덧 대학에 가도 좋을만한 나이가 되었습니다. 어느 겨울이었습니다. 독일의 브로켄 산에서는 심한 눈보라가 휘몰아치고 있었습니다. 난로를 쬐면서 코호의 아버지는 아내에게 걱정스럽게 얘기를 시작했습니다.
“저 녀석은 장차 뭐가 되려고 매일 저 모양이지?”
코호를 두고 하는 말이었습니다.
“무엇보다 행복하게 살려면 돈을 벌어야 할 텐데 장사를 시킬까?”
코호의 어머니는 잠자코 뜨개질만 하고 있다가, 빨갛게 달아오른 난로 쪽으로 눈을 돌리며 넌지시 코호 아버지의 뜻을 물었습니다.
“계속 공부를 시킬 생각은 없어요?”
그 말을 들은 코호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끄덕 하면서 말했습니다.
“물론 공부를 시켜야지. 하지만···.”
“장사를 시키는 것보다 공부를 시키는 게 좋겠어요. 저 애는 다른 애들과 다른 데가 있잖아요.”
어머니는 신중히 아버지를 설득시켰습니다.
“공부를 시켜도 어떤 공부를 시킨다는 목표가 있어야 하지 않겠소.”
그 말을 들은 어머니는 웃으며 기쁜 듯이 대답했습니다.
“의학 공부를 시켜 의사가 되게 하면 어떨까요?”
“의사···, 의사도 훌륭한 직업이지.”
자식이 많은 부모로서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로베르트의 부모는 어떻게든 로베르트만은 공부를 시키기로 결심했습니다. 그것도 로베르트의 소질에 맞는 의학 공부를 시키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청년이 된 코호는 괴팅겐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생전 처음 부모의 슬하를 떠나, 타향에 살면서 공부를 하게 된 것입니다. 고향 생각이 날 때도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꾹 참고 의학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학교의 시설은 보잘 것 없었지만 몇 대의 현미경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코호의 담당 교수는 약간 낡은 현미경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이 현미경은 자네가 언제든 사용해도 좋으니 열심히 해보게.”
현미경을 마음대로 사용해도 좋다는 말을 듣자, 코호의 가슴은 기쁨으로 뛰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돋보기를 처음 발견한 사람처럼 흐뭇하고 감격스러웠던 것입니다.
코호는 밤낮을 잊고 현미경에 붙어앉아서 열심히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저 녀석은 옆을 못 보게 만든 말같이 뛴단 말야. 있는 힘을 다해서 길을 달리는 것 같아.”
코호가 공부하는 모습을 본 친구들의 말입니다. 코호는 성실하고 착실하게 삼각법이나 입체 기하학을 연구했고, 식물학과 동물학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탄저병 병원균 발견
로베르트 코호는 1866년 1월, 괴팅겐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졸업을 한 코호는 함부르크를 비롯해서 여러 지방을 돌아다니면서 의사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던 1872년 코호는 국가에서 시행하는 지방 위생기사 시험에 합격하여 독일 국격에 있는 볼시타인에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생활에도 여유가 있었고, 마을 사람들로부터 존경도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코호는 의사라는 직업에 만족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의사로서의 책임을 다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의사이기 때문에 작은 병은 고칠 수 있어도, 디프테리아나 결핵 같은 중병은 원인조차 모르고 있는 것이 너무나도 안타까웠기 때문입니다.
하루는 한 아주머니가 울면서 뛰어왔습니다.
“선생님 ! 우리 아들이 디프테리아에 그만···. 어떻게 해서라도, 어떻게든 꼭 우리 아들을 살려 주십시오.”
울음섞인 몬멘 소리로 코호를 붙들고 애원하는 것이었습니다.
코호는 그 말을 듣고 아주 짧은 한숨을 쉬었습니다.
자신이 의사이면서 아무런 힘이 될 수 없음에 절망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말만으로라도 위로를 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아주머니, 염려 마십시오. 아드님의 목숨을 살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렇게 대답하고 치료를 준비했지만, 사실 두세 시간 후면 모든 노력이 헛일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다음 날 그 집에서 작은 관이 나가는 것을 코호는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코호는 스스로에게 화를 내었습니다. 죽은 어린 아이가 가엾고, 그 어머니가 측은했으며, 병을 보고도 못 고치는 자신이 원망스럽고 미워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당시의 의학으로는 어떤 의사도 고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코호는 어린이를 죽게 한 병균을 찾고야 말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매일 매일의 바쁜 일과 속에서 현미경을 통한 연구를 계속했습니다. 사람을 죽게 하는 전염병의 원인을 찾아내고야 말겠다는 결심으로 한동안 떠나 있던 현미경 앞으로 다시 다가선 것이었습니다.
현미경에 나타나는 작은 세계, 코호는 이 신비스런 세계가 무척 궁금했습니다. 날이 갈수록 그의 연구는 빛을 보게 되었으며, 서서히 그의 천재성 또한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볼시타인 마을에 있는 동안 무서운 탄저병의 병원균을 찾아낸 것입니다. 이 소식이 신문에 발표되자, 온 독일의 의학자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코호가 처음으로 전국에 알려진 것입니다.
결핵균을 발견하다
1876년 탄저병의 병원균을 발견한 코호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매일 연구를 계속하여 1878년, 또 한번의 창상의 병원균에 대한 연구를 끝냈습니다. 이 연구로 인하여 코호는 베를린의 위생원으로 임명되었습니다. 위생원 정원이 된 코호는 베를린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이젠 결핵을 연구하리라고 결심했습니다.
당시 결핵은 몹시 무서운 전염병이었습니다. 한번 걸리기만 하면 죽는 날만 기다릴 수밖에 없었고, 환자는 급격히 증가하여 일곱 명 중에서 한 명은 결핵을 앓을 정도였습니다. 독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결핵이 퍼져서, 사람들은 누구나 결핵 공포에 시달린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그 때도 결핵에 대한 연구는 많았지만 그것이 전염병인지조차도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선생님 연세가 마흔이신데, 요즘은 전보다 더 정정해 보이신단 말야.”
“글쎄, 우리까지 접근하지 못하게 하고 온종일 열심이신데 도대체 뭘 연구하시는 걸까?”
“거기다가 밤을 새우며 현미경에만 붙어 앉아 계시니 건강 상태가 염려야.”
가프키와 레프리, 두 제자는 근심스러운 듯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베를린 위생원이 된 후 코호의 연구는 큰 발전을 했습니다. 좋은 시설들이 그의 연구를 뒷받침해 주었던 것입니다. 그는 집광 조명장치와 유침법을 발명하여 확대율을 크게 하는 한편, 작은 것을 700배까지 확대해서 볼 수 있는 현미경을 만들었습니다.
요즘 사용되고 있는 세균 염색법도 코호가 시작한 것으로 세균만 색소로 염색하여 확실하고 자세하게 보는 법입니다. 그러나 이 방법으로 결핵균을 찾으려 했던 코호는 어려움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결핵균은 참으로 그가 만난 세균 중에서도 가장 강한 놈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실 결핵균은 양초와 같은 물지에 둘러 싸여 있어서, 코호의 아니린 물감으로는 염색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코호는 색소를 여러 가지로 바꾸면서 환자의 가래나 침에 섞어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실험을 계속했습니다. 그러나 끝내 결핵균을 찾아내지 못한 채 코호는 연구를 잠시 멈추어야 했습니다. 의학계의 모임이 있어 한 달 가량 이집트를 다녀와야 했기 때문입니다. 여행에서 돌아온 코호는 더욱 열심히 연구에 몰두했습니다.
코호의 조수 가프키와 레프리는 스승의 연구열에 탄복했습니다.
“결핵균은 무서운 놈인가 봐. 코호 선생님 같은 고명하신 분도 어떻게 할 줄 모르시니까 말이야. 연구를 하다 화를 내시고 애태우시기도 이번이 처음일 거야.”
그때 코호의 아내 앤미 여사가 달려 왔습니다. 앤미 여사의 얼굴은 붉으락푸르락 하고 있었습니다.
“제 얘기 좀 들어보세요. 저는 이제 더 이상 참을 수 없습니다. 오늘은 아무래도 저 이의 연구를 쉬게 하고 모시고 가야겠어요.”
“예? 사모님께서 그런 사소한 일로 연구실 문을 연다면 크게 꾸중을 들으십니다. 어림도 없는 말씀이죠.”
코호의 두 조수는 목을 움츠리며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에요. 저 이는 그 전에도 그러셨지만 이번 이집트여행 후로는 정도가 지나쳐요. 연구실에 나오시기만 하면 밤이 늦어도 집에 돌아오시지 않습니다. 저렇게 심혈을 기울이다가 병이라도 나면 어쩐단 말입니까?”
이 말을 들은 가프키와 레프리는 난처하게 서로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두 조수가 같이 걱정을 하며 다시 의논을 한 끝에,
“그럼 이렇게 합시다. 제가 제 연구에 대해 질문을 하기 위한 것처럼 하고 연구실에 들어가죠. 들어가서 선생님의 용태를 살피고 나오겠습니다.”
가프키는 연구실 문 앞에서 조심스럽게 노크했습니다. 안은 아무도 없는 방처럼 조용했습니다. 가프키는 용기를 내어 다시 똑똑 문을 두드렸습니다.
문이 살며시 열렸습니다. 코호 선생님이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습니다.
“저··· 사, 사실은 저···”
가프키는 금방이라도 벼락 같은 호령이 떨어지지나 않을까 해서 말을 더듬었습니다.
“어서 들어오게나, 가프키. 그리고 잠깐 이리로 오게.”
이때 코호의 연구는 한창이었습니다. 코호는 이집트를 여행하는 동안, 메치렌브라우라는 액체 속에 넣어두었던 표본을, 날마다 하는 버릇대로 큰 기대 없이 현미경에 대고 들여다보던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아 ! 이게 뭘까?”
현미경에는 푸르게 염색된 가느다란 간상형의 세균이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깜짝 놀란 코호는 벅차오르는 기쁨을 억누르고, 다시 한 번 간상균을 확인하려 했습니다. 곧 표본을 새로 만들어서 메치렌브라우의 액체에 담근 다음 현미경으로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먼저와 같은 간상균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웬일일까? 이상한데···”
코호는 허탈하게 웃으면서 다시 곰곰 재검토를 시작했습니다. 먼저 표본을 넣어 두었떤 방을 생각했습니다. 그때 코호의 머리에 언뜻 떠오르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렇지, 여행하는 동안에는 표본을 암모니아가 가득 찬 방에다 놓아두었었지.”
코호는 어린애처럼 허둥대며 서둘렀습니다. 메치렌브라우라는 액체에다 가성칼리를 조금 넣어 알칼리성으로 변화시킨 다음, 표본을 조심스럽게 그 액체에 적셔보았습니다. 그리고 현미경에 옮기고 있는 순간 가프키가 노크한 것입니다.
꾸중을 들을 줄 알았던 가프키는 코호의 전연 뜻밖의 태도에 당황했습니다. 코호 선생님의 탁 트인 얼굴을 흘깃흘깃 바라보며, 현미경의 대안 렌즈에 눈을 가져갔습니다. 거기에는 아름다은 청색으로 염색된 여러 개의 간상균이 뚜렷이 모양을 나타내고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푸른 색을 띤 작고 가느다란 막대 같은 것이, 하나하나 따로따로 떨어지기도 하고 줄을 지기도 하면서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아주 작은 것은 적혈구 지름의 1/4정도나 1/2정도의 크기였으며 앞은 뾰족했습니다.
가프키는 더욱 어리둥절해서 아무 말도 못 하고 코호의 얼굴만 멍하니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나 스승 코호의 얼굴은 구름 속에서 빛나는 태양만큼이나 환하게 웃고 있었습니다.
코호는 조용하고 나직하게, 그러나 한 마디 한 마디 힘주어서 말했습니다.
“가프키. 찾았네, 찾았어. 이것이 바로 결핵균일세.”
밤낮없이 찾아 헤맨 결핵균을 코호는 드디어 정복하고 만 것입니다.
결핵은 인가이 지구에 살면서부터 생겼답니다. 기원 전1,000년쯤의 무덤에서 발견된 미이라의 폐에 결핵 흔적이 있었습니다. 사람의 눈으로도 확인될 정도였습니다. 그보다 앞선 증거로는 독일 하이델베르크에서 발견된 화석입니다. 이 화석은 수천 년 전의 석기시대에 살았던 사람으로, 척추 카리에스라는 흔적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이 증거만 보더라도, 결핵은 옛날부터 인간을 괴롭히고 병들게 했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흔히 사람들은 폐병은 유전한다고 하여, 폐병(결핵)에 감염된 사람은 물론, 병자의 가족까지 두려워서 가까이 가기를 꺼려했습니다. 이런 어리석은 생각은 약 백 년 전인 1882년, 독일의 로베르트 코호가 결핵균을 발견하여 그 원인과 정체를 밝혀내기 전까지만 해도 계속되어 왔답니다.
결핵 치료법 연구
인류를 전염병에서 구해내기 위해 젊음을 깡그리 태워버린 코호는 벌써 자신이 중년에 접어들었다는 사실에 적이 놀라면서 그 동안의 연구를 차곡차곡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발견한 놀라운 일들이 하나하나 정리하다가, 코호는 다시 한 번 뼈저린 아픔을 느꼈습니다. 그것은 아직도 사람들은 자기가 발견해 낸 결핵의 원인만 알뿐 치료나 예방법을 모른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치료가 불가능했기 때문에 여전히 사람들은 결핵으로 죽어가야 했습니다.
결핵은 치료될 수 없을까? 이것은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의 소원이었습니다. 결핵을 고치는 약만 있으면, 수백만명의 생명을 건질 수 있으리라. 코호는 조용히 입술을 깨물었습니다.
다음날부터 코호의 연구는 또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결핵균을 길러내기도 하고, 약물에 담가 죽이기도 하고, 반쯤 죽였다가 다시 살아나게도 해보았습니다. 그의 연구 방법은 참으로 다양했으며 또한 독창적이었습니다. 연구 도중에 새로 만든 약은 동물에 실험도 해보았습니다. 바쁘고 지리한 연구 끝에 마침내 코호는 새 약을 만들어 냈습니다. 먼저 글리세린이라는 약을 넣은 고기국물에서 결핵균을 자라나게 하고, 다시 거기에 열을 가해 결핵균을 죽여 만든 약입니다.
그는 중년의 생을 보람으로 기억하게 한 이날의 발명에 그저 눈물을 흘리며 기뻐할 따름이었습니다. 먼저 이 약을 ‘투베르쿨린’이라 이름 짓고 투베르쿨린의 발명을 제 10회 만국 의학 회의에서 발표했습니다.
“지금까지 세계 인류는 결핵으로 신음했습니다. 나는 그들을 위해 새로운 약을 만들었습니다. 결핵을 고치는 이 백신을 나는 ‘투베르쿨린’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결핵을 앓고 있는 환자에게 이것만 주사하면 완전히 치료됩니다. 나는 기니피그에 실험을 해 본 후 투베르쿨린의 약효를 확인했습니다.”
코호의 발표가 끝나자, 회의장은 순식간에 기쁨의 축제로 변해 모두 일어서서 환호성을 올렸습니다. 더구나 늘 정확하며 양심적인 연구를 발표해 왔던 코호의 주장이라, 그 환호성은 대단했습니다. 코호의 발표는 전 세계로 퍼져나갔습니다. 코호의 연구소 앞은 사람들로 길을 메웠습니다. 베를린의 모든 시민이 투베르쿨린을 맞으려고 몰려들었습니다. 결핵 환자뿐만 아니라, 건강한 사람들까지도 결핵을 예방하려고 모여들었습니다.
이 소문을 들은 독일 황제 빌헬름 2세는 코호의 연구 업적을 크게 칭찬하고, 코호에게 붉은 독수리 대십자 훈장을 내려 주었습니다. 이 훈장은 독일의 최고의 훈장이며, 학자로서는 코호가 최초로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몇 년이 지나자 이상한소문이 나돌기 시작했습니다. 투베르쿨린이 결핵의 예방이나 치료에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충격적인 얘기였습니다. 어떤 학자는 투베르쿨린이 오히려 결핵을 악화시키고 더 전염케 한다고까지 발표를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코호는 놀라 어절 줄을 몰랐습니다. 기니피그에게 새로운 실험을 한 결과 코호의 실험 방법이 틀렸다느니, 거짓말이라느니 여러 가지 증명이 나타났습니다.
그제서야 투베르쿨린은 결핵의 치료에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위대한 과학자의 실수! 그토록 정확하고 꼼꼼한 코호가, 왜 이런 잘못을 저질렀을까요?
아마도 그것은 결핵약을 하루 빨리 만들어 결핵 환자를 치료하려는 성급한 마음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투베르쿨린이 아무 소용이 없는 약은 아니었습니다. 코호가 처음 발표했을 때처럼 결핵을 치료하지는 못하지만 결핵균을 진단하는 데 사용됐습니다. 예방이나 치료 대신, 투베르쿨린을 피부에 주사하여 몸 속에 결핵균이 들어 있나 그렇지 않은가를 알아보는 것입니다.
결국 예방에는 구실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투베르쿨린을 주사하면, 결핵에 감염된 사람은 그 자리가 벌겋게 부어오르지만, 감염되지 않은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결핵이 발병하는 것은 결핵균이 몸 속에 들어온 지 1년 정도에서 일어납니다. 그러기에 투베르쿨린 반응으로 감염된 것을 미리 확인하여, 결핵으로 죽는 일을 막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투베르쿨린은 이와같이 하여 발견된 것이며, 우리는 코호의 위대한 업적을 저버릴 수 없는 것입니다.
전염병 연구 세계여행
아무리 코호와 같은 위대한 과학자의 끈질긴 노력이 있다 해도, 미개지역이나 열대지방의 전염병은 원인을 알 수 없는 것들이 하나 둘이 아닙니다.
예를 든다면, 태평양과 대서양을 연결하는 파나마 운하를 계획한 레셉스의 이야기도 이에 해당합니다. 레셉스는 막대한 계획을 끝내고 공사를 시작했지만, 열대지방의 열병인 말라리아로 말미암아, 5만 명의 인명 피해와 수많은 예산을 낭비한 채 공사를 내던졌습니다. 모기가 말라리아를 옮긴다는 것을 알고 로널드 로스 외의 많은 의학자들에 의해 치료법이 개선된 후에야 파나마 운하가 완성된 것입니다.
이런 열대지방의 열병 연구를 위해, 코호는 쉰세 살이 된 1896년에 아프리카로 건너갔습니다. 열대지방에서만 유독 성행하는 원인 모를 열병을 찾아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때는 유럽에서 아프리카에 많은 식민지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그 지역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열병 연구가 시급했던 것입니다. 열병이라 하면 말라리아 외에도 황열병, 수면병 같은 것이 많았으므로, 많은 의학자들이 아프리카로 건너갔습니다. 그 중에도 황열병을 연구하던 스토우크스박사나, 영 박사, 웨이코만 박사 등은 그들이 연구하던 황열병으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러한 무서운 지방으로 코호도 연구를 위해 떠난 것입니다. 의학자들은 황열병 환자들을 진찰 · 치료하고, 황열병으로 죽은 시체에서 나는 고약하고 역겨운 냄새와 싸우면서 연구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코호의 첫 연구는 말라리아와 아메바성 이질, 그리고 수면병이었습니다. 특히 수면병에 관심을 두었습니다. 수면병은 식사를 하거나 일을 하다 말고 슬그머니 잠들어 영영 죽고 마는 병이었습니다. 무슨 일을 하다 말고 슬그머니 잠들어 죽는 병, 처음 코호는 무척 겁이 났습니다. 그러나 수면병에 걸린 사람에게서 병원균을 찾아내고, 그 병균을 갖고 있는 곤충을 찾아야만 했습니다.
그 일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10여 년을 찾아 돌아다닌 끝에 마침내 그는 수면병의 병원균을 갖고 있는 곤충(단세포 동물)이 체체파리라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때는 1905년이었습니다. 체체파리는 호수나 강가 또는 습기가 많은 늪에 숨어 있다가 사람이나 동물을 물고, 그때 수면병에 걸려 자기도 모르게 잠들어 죽는다는 것을 알아낸 것이지요.
길고 긴 연구생활의 막바지에 그는 수면병의 원인인 체체파리를 찾아내고 소년 시절의 꿈이었던 세계여행을 떠났습니다.
천성적인 여행가 기질과 연구에 지친 머리를 쉰다는 목적이었습니다.
코호는 회갑을 맞으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연구가는 마음의 긴장을 풀고 잠을 잘 수가 없어. 늘 세심한 주의로 10년을 연구했어도, 조금 방심하여 연구가 불완전하면 그것은 큰 죄악이지. 조금이라도 뒤늦게 정신을 차리면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자기를 욕하거나 반대하게 되는 거야. 그러니까 연구라는 것은 목숨을 걸고 진리를 찾아야 하는 거지.”
늙은 코호는 항상 부지런했습니다. 전염병 연구소장과 대학 교수라는 직업에서 물러났지만, 성실한 연구가로서 늘 집과 연구소를 출퇴근했습니다.
4월의 어느 날은, 다른 날보다 일찍 연구소에서 돌아왔습니다. 코호는 왼쪽 가슴에 칼로 찌르는 듯한 통증을 느꼈습니다. 그때부터 숨도 잘 쉴 수 없도록 앓으면서 건강이 나빠졌습니다. 그래서 코호는 가족들과 함께 건강 회복을 위해 요양을 떠났습니다. 바이덴의 온천 요양소였습니다. 어느 날 그는 발코니로 의자를 가져 오게 해서 먼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고단하고 외로웠지만 보람있었던 자신의 과거를 되새기는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얼마 후, 발코니로 와 본 요양소 소장은 의자에서 떨어진 채 고개를 들지 못하는 코호를 발견했습니다. 이 날이 코호가 세상을 떠난 1910년 5월 27일이었습니다.
코호의 유골을 넣은 상자는 코호가 일을 하던 전염병 연구소의 벽 속에 모셔지게 되었고, 인류의 역사에 위대한 업적을 남긴 이 연구소는 ‘코호 연구소’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한편 전염병 연구를 시작했던 볼시타인의 집에는, 코호를 기념하는 기념판이 붙어 있습니다.
〈닥터 코호 교수, 1872년부터 1880년까지 지방 위생기사로 살았음. 전염병의 연구 · 발견은 여기서 시작되었으며, 그의 업적은 세균학의 근본이 되었으며 인류에게 행복을 누리게 하였음.>
왕연중 엮음, 꾸러기 발명왕, 1989년, 글수레
|
왕연중의 발명소설
Designed by DOWON.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