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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 개량의 마술사
말없고 수줍은 소년 시절
곡식과 화초에 이르기까지 2,500여 종의 식물을 개량한 마술사 루우더는 1849년 3월 7일 미국 메사추세츠 주에 있는 랭카스터의 어느 농가에서 태어났습니다.
언제나 말이 없고 조용한 편인 루우더는 몹시 수줍음을 타는 어린이였습니다.
동네 친구들과 잘 어울려 놀지도 않고 장난치기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혼자서 들에 나가 식물이 자라는 모양을 한참 동안씩 물끄러미 바라보거나, 꽃잎을 세거나 그 생김새를 비교해 보는 일에만 열심이었습니다.
루우더네 집의 꽃밭은 동네 사람들이 모두 부러워 할 만큼 훌륭한 꽃이 언제나 만발해 있었습니다.
이렇게 꽃밭 가득한 루우더의 집에 어느 날 불행이 찾아왔습니다.
루우더를 귀여워해 주시고 언제나 건강하시던 아버지 새뮤엘 쿨튼 버어뱅크가 병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시게 되었습니다.
1868년, 루우더가 열아홉 살 때의 일이었습니다. 아버지를 여읜 루우더는 열아홉 살의 가장이 되어 가족들을 부양해야 할 무거운 책임을 지게 된 것입니다.
집안이 어렵게 되자 청년 버어뱅크는 어머니와 의논하여 그로톤이라는 시골로 이사를 했습니다.
다윈의 진화론에 감자씨 개량
집안에서 일할만한 사람은 이제 버어뱅크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그는 이웃 농장에 일자리를 구하여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아침 일찍부터 저녁까지 고단한 일은 계속되었지요.
그러나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아름답게 피는 꽃들, 탐스럽게 매달린 과일과 오묘한 자연의 신비로움 속에 식물에 대한 끝없는 사랑이 청년이 된 버어뱅크의 가슴을 가득 메웠습니다.
그때 찰즈 다윈의 『종의 기원』과 『사육 동 · 식물의 변이』가 출판되자, 버어뱅크는 이 책을 사서 열심히 읽고 공부했습니다.
이 책에는 생물의 성질은 사람이나 그 밖의 여러 가지 환경으로 바꿀 수 있다고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사람의 손으로 동물이나 식물의 성질을 바꿀 수가 있겠구나. 감자를 더 크게 맛있게 만들 수도 있으며, 장미꽃을 더 아름답게 가꿀 수도 있을 거야.’
이렇게 생각한 버어뱅크는 식물의 품종을 개량해 보겠다는 생각으로 밤낮을 골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무렵 미국의 서부 개척자들에게 있어서 감자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식량의 하나였습니다. 감자는 심어 가꾸거나 거두어들이기가 쉽고 저장하기도 편리하며 요리하기에 간편할 뿐 아니라 영양가도 높아서 매우 알맞은 농작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모두 좋은 품종의 감자를 가꾸려는 노력을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씨는 선조의 여러 가지 성질을 이어 받는다. 그런데 이 씨는 성질이 다른 토지에 뿌려졌을 때, 씨 속에 있는 어버이의 성질 중에서 그 토지에 알맞은 어떤 성질이 나타나게 되어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감자도 씨를 뿌려 열매를 맺게 하여 그 중에서 가장 조은 것을 골라내면 그 토양에 알맞은 훌륭한 품종을 만들 수 있지 않겠는가.’
이렇게 생각한 버어뱅크는 씨가 잘 맺히지 않기로 유명한 품종인 ‘알리 로오즈’라는 감자의 씨를 구해 본격적인 감자씨 개량에 들어갔습니다.
초여름의 어느 날 버어뱅크는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감자밭을 돌아보고 있었습니다. 거기에서 연구를 위해서 여러 가지 종류의 감자가 심어져 있었습니다.
갑자기 버어뱅크는 환성을 올렸습니다.
“꽃이다, 감자꽃이 피었다.”
버어뱅크가 기쁨에 넘쳐 바라본 곳에는 한 송이의 감자 꽃이 피어 있었습니다. 그토록 기다리던 ‘알리 로오즈’ 종의 감자가 꽃이 핀 것입니다.
그날부터 버어뱅크는 매일 밭에 나가서 알리 로오즈 감자의 귀중한 열매가 익는 것을 기다렸습니다.
사흘째 되던 날, 역시 밭에 나간 버어뱅크는 그 감자 열매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 열매에서는 23개의 씨가 나왔습니다. ‘알리 로오즈’의 감자씨를 얻게 된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1873년 이듬해 봄, 버어뱅크가 24살 되던 해 5월에 버어뱅크는 소중하게 보관해 두었던 23개의 가자씨를 밭에 심었습니다. 얼마 뒤, 23개의 작은 싹이 한 줄로 나란히 돋아나고 곧 잎들이 탐스럽게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23종의 품종들을 세밀히 조사 비교한 결과, 그 중의 한 종류가 굉장히 우수한 성질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지금까지의 어떤 품종보다 더 많은 양을 거둬들일 수 있고 맛도 좋으며 갈무리하기도 쉬운 뛰어난 품종이었습니다.
10년간의 노력과 인내에 대한 보답을 이제야 받은 것입니다.
이듬해 봄에 그는 감자를 심어 지난 해의 10배 정도나 되는 수확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 이 감자가 시장에 팔리기 시작하면서부터 ‘버어뱅크 감자’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버어뱅크 감자’는 서부 개척민들 사이에 순식간에 퍼져 식생활 향상에 크게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한때는 흉년으로 아일랜드를 휩쓴 기근에 많은 사람을 구하는 데 큰 구실을 하기도 했답니다.
가자 ! 기름진 땅을 찾아 캘리포니아로
감자씨 개량에 성공한 버어뱅크는 더 많은 욕심이 생겼습니다.
기후가 좋은 캘리포니아로 가서 더 많은 식물을 개량해 보고 싶어진 거지요. 지금 살고 있는 대서양 연안의 루넨버어그에서 태평양 연안의 캘리포니아까지는 머나먼 거리였습니다.
그 곳은 언제나 따뜻하고 토지도 기름지며 아직도 개간하지 않은 평원이 많았습니다.
버어뱅크는 날씨가 따스하다는 것이 무엇보다도 좋았습니다. 이런 기후 조건이면 식물재배에 적당하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최근 몇 해 동안 무리한 일로 건강이 약해져가고 있었기 때문에 추운 이 지역보다 따뜻한 캘리포니아가 좋을 성싶었습니다.
‘가자, 캘리포니아로 ! 어떠한 어려움도 견뎌 내야지.’
그때 버어뱅크에게는 150달러의 돈이 있었습니다. 이 돈은 매사추세츠 주의 마블헤드라는 마을에 사는 원예가 그레고리 씨에게 버어뱅크 감자의 재배권을 넘겨주고 받은 것입니다. 사실 버어뱅크는 500달러쯤 받아야겠다고 생각했지만, 그레고리 씨가 가진 돈이 없음을 알고 마음 약한 버어뱅크가 더 우기지 못하고 150달러만 받고 만 것입니다.
10월의 어느 조용한 날 아침, 버어뱅크는 어머니와 동생의 전송을 받으며 혼자서 먼 여행을 떠났습니다. 이 때가 1875년, 그의 나이 26세 때였습니다.
손에는 조그만 보퉁이 하나가 들려졌을 뿐입니다. 갈아입을 옷과 책 몇 권, ‘버어뱅크 감자’ 10개와 여러 종의 꽃씨, 돈 150달러가 그의 전 재산이었습니다.
넓고 넓은 대륙을 횡단하는 기차의 딱딱한 의자에 안자 밤과 낮을 세우고 캘리포니아에 도착했을 때는 온 몸에 피로가 밀물처럼 몰려왔습니다.
그가 찾아간 산타로자라는 곳은 밀밭으로 에워싸인 조용한 동네였습니다. 확실히 토지는 기름지고 햇볕은 부드러워 버어뱅크를 만족시켰습니다. 또 이곳에는 과수원도 없고 꽃밭도 없어 그의 실력을 발휘하기에는 안성맞춤이었습니다.
우선 낡은 집 한 채를 찾아 짐을 정리해놓고 일자리를 구하러 다녔습니다. 농장에서 일하고 싶었지만, 알맞은 일자리는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는 새 여러 날이 지나 그의 주머니는 빈털터리가 되었습니다. 의논할 사람도 돈을 빌려 줄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건축일 하는 데 끼워 줄 테니 망치를 준비해 오라고 알려 온 사람이 있었습니다.
버어뱅크는 얼마 남지 않은 돈으로 겨우 망치를 사들고 달려갔습니다. 그러나 벌서 다른 사람이 맡아 일을 하게 되어 그 일자리에서조차 밀려나버리고 힘없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급기야 끼니마저 거르게 된 그는 어느 날 소를 몰아 밭을 가는 일을 맡게 되었습니다. 하루 종일 밭을 가는 고된 일이었지만 당장 끼니조차 잇지 못하게 된 버어뱅크는 그 일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날 밤 피로와 시달림에 지친 버어뱅크는, 온 몸이 뒤틀리고 쑤셔서 한잠도 잘 수가 없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그 일마저 얼마 후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버어뱅크는 그의 일생을 통해 이때가 가장 어려웠다고 합니다. 이 고난을 참고 견디게 한 힘은 오직 조상 때부터 이어온 청교도의 강한 신앙과 의지였습니다. 이러한 생활고 속에서 그는 또 한 해를 보냈습니다.
이듬해인 1876년, 그는 페트루마에 있는 농장에 간신히 취직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설상가상으로 과로와 비위생적인 생활로 인해 열병을 앓게 되었습니다.
중환자가 되어 산타로자까지 되돌아 왔지만 그를 간호해줄 사람이라곤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가 외로움과 아픔에 신음하고 있을 때 뜻밖에도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이웃에 사는 가난한 농부의 부인이었습니다. 그녀가 갓 짠 우유를 병에 담아 가져온 것입니다.
“버어뱅크 씨, 병환은 어떻습니까?”
그 부인은 조용히 웃어 보이면서, 우유병을 버어뱅크에게 내밀었습니다. 꼼짝도 못하고 있는 자기를 위로해 주는 이 부인이 그에게는 천사처럼 보였습니다. 부인의 친절에 그는 눈물을흘리며 우유병을 받았습니다. 병을 치료함에는 차가운 약물보다 따듯한 간호와 정이 더 효력이 있는 것입니다.
그 부인은 날마다 찾아와 우유를 전해주고, 간호해 주었습니다. 차츰 원기가 회복되어 갔습니다. 일어서서 걸을 수 있었고 다시 일터에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건강해진 버어뱅크는 목수 일을 싲가했습니다. 성실한 그에게는 일거리도 차츰 많이 생겼습니다.
채소와 과일, 다알리아의 개량
다음해 봄이 되자 그리웠던 어머니 브록스와 누이동생 에마가 산타로자로 찾아 왔습니다. 어머니는 버어뱅크가 보고 싶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아들이 하는 일을 옆에서 도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좋은 땅은 널려 있어도 가난한 살림 형편이라 사들일 돈이 없었습니다. 농장을 갖고 싶어하는 그의 소원을 잘 알고 있는 어머니와 누이동생은 아들을 위해 그리고 오빠를 위해, 산타로자에 오자마자 품삯 일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몇 달 후, 얼마쯤의 토지를 빌릴 수 있게 된 버어뱅크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얼마나 갖고 싶었던 땅인지 모릅니다. 낮에는 착실하게 목공일을 하고 그 일이 끝나면 바삐 돌아와 농원을 만들 준비를 했습니다.
이 농원은 주로 과실이나 야채의 개량을 위한 연구에 쓰여 졌고, 좋은 열매나 큼직한 채소가 수확되면 시장에 가져가 팔았습니다. 캘리포니아는 과수의 재배가 별로 성하지 않은 지역이었기 때문에 버어뱅크가 만든 개량 채소나 과일은 크게 인기를 모았고 버어뱅크의 이름도 날이 갈수록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1881년 3월 버어뱅크는 뜻하지 않은 주문을 받았습니다.
페트루마에 살고 있는 큰 부호인 와렌 다튼 씨가 자두 관계의 사업을 시작하기 위해 그에게 자두 묘목 2만 그루를 만들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무척 성미가 급해서 꼭 가을가지 2만 그루가 되어야 한다고 우겼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우물에서 숭늉 달라는 식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큰 돈벌이를 그냥 놓칠 수는 없었습니다.
버어뱅크는 곧 자기 땅 2에이커와 남의 땅 5에이커를 빌리고 여러 사람의 일꾼을 고용해서 그 일을 시작했습니다.
땅을 갈아엎고 비료를 넣고 굵은 모래를 뿌린 뒤, 자두 나무의 대목으로 쓸 2만 개의 씨를 묻었습니다.
2주일쯤 지나자 일제히 싹이 트고 기운차게 자라났습니다.
버어뱅크는 이것을 자두의 대목으로 써서 자두나무를 접붙일 계획을 세웠던 것입니다. 여기저기서 자두나무 가지를 구해 왔습니다.
6월이 되자 버어뱅크의 농원에서는 접붙이기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훌륭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대목에 붙은 자두나무 가지는 빠르게 자라 12월에는 모두 건강한 묘목이 되어있었습니다.
이 소문이 사방에 퍼지자 곳곳에서 버어뱅크의 농원으로 자두 묘목을 사러 왔고, 몇 년 후에는 캘리포니아 일대가 버어뱅크의 자두 묘목으로 덮였습니다.
버어뱅크는 자두를 무척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먹고 난 뒤에 커다란 씨앗을 다시 뱉어내야 하는 일이 아무래도 낭비 같았습니다.
‘만약 자두씨를 없앨 수 있다면, 그만큼 먹는 부분이 많아질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으로 씨 없는 자두 만들기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15년 만에 열매가 크고 맛이 좋은 서양 자두에서 씨앗을 완전히 없애버리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 사실이 세상에 발표되자 사람들 사이에서는 재미있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씨가 없다는 자두를 사서 쪼개어 보고는 쪼갤 때 씨가 땅에 떨어져버린 게 아닌가 하고 찾는 사람이 많았다는 것이지요.
버어뱅크는 이런 일 말고도 재미있는 실험을 많이 했습니다. 토마토와 감자 실험 이야기는 너무나도 유명합니다.
그는 어느 날 기묘한 일을 하나 생각해내었습니다. ‘토마토와 감자를 합쳐서 한 그루로 만들면 어떻게 될까?’ 그리고 개구쟁이처럼 실제로 그 일을 해 본 것입니다.
먼저 감자를 대목으로 하고 거기에 토마토 줄기를 접붙였더니, 토마토는 크게 열리고 감자는 아주 작은 형태만 나타나 먹음직하게 열리지 않았습니다. 다음에는 반대로 토마토의 대목에다 감자 줄기를 접붙였습니다. 그러자 이상한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토마토는 열매를 맺고 싶어도 줄기가 없고, 감자는 열매를 맺으려 해도 뿌리가 없는 형편이기 때문에 정말 신기하게도 흙 속이 아닌 줄기의 매듭이 있는 곳에 감자가 주렁주렁 매달렸다고 합니다.
어머니 여의고 67살에 결혼
평생을 식물과 함께 살아 온 버어뱅크는 67세가 되어서야 결혼을 했습니다. 그를 도와주고 마음의 기둥이 되어준 어머니 브록스가 97세로 세상을 떠나자 그는 한꺼번에 밀려오는 외로움을 견딜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때서야 그는 아내가 있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1916년 워타아스와 결혼한 버어뱅크에게는 새로운 행복이 찾아들었습니다. 두 사람의 세계는 즐거움과 희망이 넘쳐흘렀습니다.
그러나 행복한 결혼생활은 겨우 10년, 노인이 된 버어뱅크는 77세에 영영 일어나지 못하는 몸이 되고 말았습니다.
워타아스의 눈물겨운 간호에도 불구하고 그는 샌프란시스코의 병원에서 눈을 감고 말았던 것입니다. 유해는 산타로자의 집으로 옮겨졌으며 일세의 원예 품종 개량가 버어뱅크는, 그가 평소에 아끼던 정원의 히말라야 상나무 밑에 영원히 잠들었습니다.(*)
=왕연중 엮음, 꾸러기 발명왕, 1989년, 글수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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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연중의 발명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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