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펌프와 심장
조국을 위한 의학 공부
윌리엄 하아비는 1578년, 지금부터 약 400년 전에 영국의 포크스톤 시에서 태어났습니다. 집이 대단한 부자인 하아비는 아무것도 부족함 없이 1579년에 케임브리즈의 케어스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영국에 해부학을 처음 전달한 케어스의 학장님은 성적이 우수한 하아비가 자신의 뒤를 이어 해부학을 공부해주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이 학문을 하아비에게 더욱 더 깊게 연구시키고자, 이탈리아의 파브리티우스 선생님을 뵙도록 권유했습니다. 우리의 인체 구성에 대해 늘 궁금증이 많았던 하아비는 기꺼이 선생님 말씀을 따르기로 했습니다.
이탈리아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했습니다. 무엇보다도 불편한 것은 교통이었습니다. 기차도 없는 16세기 말이었기 때문에 , 네덜란드를 돌아서 라인 강을 따라 배를 타고 내려와, 다시 스위스를 지나 알프스의 험한 산맥을 넘어야 이탈리아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젊은 하아비는, 보는 것 듣는 것마다 새롭고 신기하여 여행의 피곤함 따위는 이내 잊고 말았습니다. 가는길에 들르는 나라마다 그 나라에서 유명한 대학의 선생님을 찾아가기도 하고, 그때마다 이탈리아의 파브리티우스 선생님에 대해 묻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아아, 파브리티우스 박사님 말씀입니까? 그 분이야말로 이탈리아, 아니 세계에서 제일가는 해부학자이십니다.” 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찾아가고 있는 파브리티우스 교수의 명성은, 이탈리아가 가까워질수록 점점 더 높아 갔습니다.
(고향을 떠나, 긴 여행을 하면서 찾아온 보람이 있는가보다.)
하아비는 세계 제일의 해부학자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설레었습니다. 그리고는 이런 결심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반드시 파브리티우스 선생보다 더 훌륭하고 많은 연구를 해내고 말테다.’
이탈리아에 도착하자 하아비는, 즉시 파도바 대학으로 가서 그가 소망하던 대로, 파브리티우스 선생님의 해부학 연구실에서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으로 파브리티우스 교수의 훌륭한 해부실을 보았을 때, 하아비는 한참 동안 말도 못할 정도로 감동하여 넋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 해부학 강의실의 가운데에는 해부대가 있고, 그 둘레에는 계단이 만들어져 학생들이 잘 관찰을 할 수 있도록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역시 파브리티우스 교수의 연구실은 세계 제일이다. 이런 시설이면 교수님의 메스(수술칼)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하나도 빠짐없이 바라볼 수 있겠다.”
그밖에 많은 해골과 뼈, 여러 가지 표본을 진열해 놓은 표본실, 얼마나 많은지 헤아릴 수 없는 의학 서적으로 가득 찬 도서실, 어느 것 하나도 하아비를 놀라게 하지 않는 것이 없었습니다.
(해야지, 나도 열심히 공부하고 연구를 쌓아서 우리 인체의 수수께끼를 풀어 봐야지.)
하아비의 마음은 더욱 굳어졌습니다.
옛날에는 어느 나라나 인간의 몸을 해부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금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인간의 몸이 어떤 조직으로 되어 있는가를 알기 위해서는 사람 대신 여러 종류의 동물들, 특히 사람을 많이 닮은 원숭이 같은 것을 해부하여 연구하는 방법밖에 없었습니다.
인체의 해부를 어느 나라보다도 먼저 허락한 것은 12세기 이탈리아를 다스리고 있던 독일의 황제 프리드리히 2세였습니다. 그로 인해 이탈리아의 해부학은 다른 어느 나라보다 빠르게 진보해 왔던 것입니다.
로마 법황은 종교적인 입장에서 사람의 몸을 해부하는 것을 금해왔지만. 진리를 끝내 찾아내려는 의학자들의 열의는 법황의 금지령을 뛰어넘는 것이었습니다.
“이탈리아에는 학문의 자유가 있다. 학문을 하고 싶으면 이탈리아로 가라.”
의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면서, 서로 앞을 다투어 이탈리아로 모여들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우리들의 오랜 궁금증이던 생명의 불가사의를 풀 수 있는 때다. 그러나 지금부터 사오십 년 전만 해도 그렇지는 못했지. 나의 은사인 파로비우스 교수님의 선생 되시는 베살리우스 선생님 같은 분은 해부하는 데 필요한 시체를 얻기 위해, 말로 다할 수 없는 고생과 위험을 겪지 않으면 안 되셨던 것이다.”
사람의 몸을 정확히 연구하기 위해서는 동물의 몸이 아닌 사람의 몸이 필요하다고 늘 생각했던 베살리우스는 오랜 고민 끝에, 사형장에서 교수대의 시체를 정말로 훔쳐 왔다는 얘기를 파브리티우스는 종종 들려주었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 베살리우스를 미치광이라고 욕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그의 집념은 끝내 인체의 구조에 대하여 라는 유명한 의학서를 저술해 내기에 이른 것입니다.
불가사의한 심장(염통) 연구
하아비가 파브리티우스 교수의 실험실에 들어가 일하기 시작했을 때, 이미 60세를 넘어 있었던 교수는, 오랜 세월 연구하고 있던 혈관에 대한 문제를 논문으로 정리하려던 참이었습니다.
하아비는 열심히 선생님의 연구를 도우면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연구 과제에 대해서도 쉬지 않고 정열을 쏟았습니다.
<깨어 있을 때나 자고 있을 때나, 심장은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다. 심장이 움직이고 있는 것은 사람이 살아있다는 증거다. 심장이 멎으면 틀림없이 죽음이 찾아온다. 즉, 심장은 인간의 생명 바로 그것이라 할 수 있는 불가사리의한 구조이다. 도대체 심장은 어떤 구조로 되어 있는 것일까?>
심장의 작용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학설이 있었지만, 그학설들은 모두 하아비를 만족시키지 못했습니다.
파브리티우스 교수는 3세기경의 대학자인 갈레노스를 대단히 존경하고 있었습니다.
갈레노스가 남긴 80권의 의학서는 1.400년이 지난 그때 까지도 의학자들에게는 마치 성서와 같이 읽혀지고 있었습니다.
갈레노스는 <인간은 프뉴머라는 것을 공기 중에서 받아들여, 그 작용으로 영양물에서 혈액이 만들어지고 그것이 심장에 보내진다. 심장의 우심실에서는 흐려진 혈액을 가려내어 그것을 기체로 하여 폐로 보낸 다음, 숨쉬기를 할 때 밖으로 뱉어 버린다. 맑아진 피는 좌심실과의 사이의 벽에 있는 수많은 작은 구멍에서부터 좌심실로 흘러들어, 거기서 다시 폐로부터 들어온 프뉴머와 섞여서 몸속으로 보내어진다.>는 주장을 했던 의학자였습니다.
베살리우스는 인체의 구조에 대하여 라는 책에서 ‘심장의 오른쪽 염통집과 왼쪽 염통집 사이의 벽에 있는 구멍은 오른편에서 왼편으로 뚫린 것이 아닌 것 같아.’ 라고 적어 종래의 갈레노스의 설이 잘못되어 있음을 암시하였습니다.
그런데 인체를 해부했다는 이유로 화형을 당한 세르베투스는 더욱 명확하게 관찰한 사실을 다음과 같이 기록했습니다.
“심작의 오른쪽 염통집과 왼쪽 염통집 사이에 있는 벽에 작은 구멍이 있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 혈액은 오른쪽 염통집에서 왼쪽 염통집으로 그 사이의 벽을 따라 흐르는 것이 아니고, 심장에서 허파동맥으로 들어가 허파를 지나는 동안에 깨끗한 붉은 피가 되어 정맥을 통해 심장으로 흘러들어가는 것이다.”
그것 때문에 세르베투스는 교회의 탄압을 받아, 애석하게도 비참하게 최후를 마쳤던 것입니다. 하아비의 스승인 파브리티우스 교수는 피는 한 방향으로만 흐른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런 여러 가지 새로운 학설을 젊은 의학도 하아비는 순식간에 받아들였지만, 그는 이 구구한 학설 중에서 어는 것이 옳은 것인가를 판단해야만 했습니다.
이탈리아에 온 지도 벌써 5년이란 세월이 지났습니다. 하아비는 우수한 성적으로 파도바 대학을 졸업하게 되었습니다.
5년간의 연구 성과를 인정한 영국의 케임브리지 대학과 이탈리아의 파도바 대학에서는 그에게 의학박사 학위를 수여했습니다.
특히 그 당시, 의학의 중심지인 파도바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는 것은 영국인으로서도 명예로운 일이었습니다.
1602년 하아비는 자기 나라인 영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뒤에 곧 하아비는 런던의 세인트 바아돌로뮤 병원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새로 오신 하아비 박사님은 이탈리아에서 의학 공부를 하고 오신 대단히 훙륭한 의사시랍니다.”
며칠 지나지 않아 그의 명성은 온 시내로 퍼졌습니다.
하아비는 환자들은 치료해 가면서, 이탈리아에서 연구해오던 피가 흐르는 문제에 대해서도 결코 잊지 않았습니다. 하아비는 가끔씩 생각하는 것이었습니다.
‘심장의 작용이나 혈관의 작용을 조사한다고 해도, 이미 심장의 작용이 멈춰진 죽어 있는 몸에서는 아무리 해부를 해봤자 결국 아무것도 알 수가 없지. 피가 흐르는 것을 알려면, 살아서 뛰고 있는 심장을 보아야 할텐데... 좋은 방법이 없을까.’
하아비의 고민은 날마다 커 갔지만 그렇다고 해서 살아 있는 사람의 몸에서 심장을 끄집어 내어 볼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살아 있는 동물을 사용하는 방법밖에는 없었습니다.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먹고 난 다음 하아비는 다시 흰 가운을 입었습니다.
“여보, 피곤하지 않아요? 좀 쉬시는 것이 좋겠어요.”
부인의 걱정도 하아비의 귀에는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뭐, 이 정도는 괜찮아요. 연구실에 있는 것이 가장 피로를 잘 회복시키는 방법이지.”
이것이 하아비의 대답이었던 것입니다.
동맥과 정맥의 피
(오늘밤은 혈관 속의 피가 어떻게 흐르는가를 조사하여, 몸의 피돌기를 완전히 밝혀내야지.)
하아비는 방 안의 한 구석에 놓아 둔 상자 속에서 바시락 바시락 소리를 내고 있는 토끼 한 마리를 잡아내어 해부대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리고 토끼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면서 중얼거렸습니다.
(미안하다, 너희들을 희생시켜서. 그러나 결코 값없는 희생이 되게는 하지 않겠다.)
요란스럽게 버둥거리던 토끼도 이내 온순해졌습니다. 번쩍이는 수술 도를 쥔 하아비의 오른손이 날쌔게 움직이자 토끼의 하얀 가슴에 한 줄의 붉은 피가 줄을 그은 듯이 흘렀습니다. 하아비는 익숙한 솜씨로 뚝뚝 고동 하는 심장이 잘 보일 때까지 절개하여, 가슴을 가른 다음 혈관을 핀셋으로 끄집어내었습니다.
그것은 물론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마치 그물처럼 가지를 뻗고 있는 혈관을, 칼로 실수 없이 가려내는 일은 섬세한 기술이 필요했습니다.
모든 신경을 곤두세우고 칼을 옮겨가는 도중에 하아비의 손이 혈관의 어느 부분에서 잠시 멈추었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피가 사정없이 흘러 나왔습니다.
(아차, 혈관을 베었구나.)
너무 긴장했던 탓인지 하아비가 실수를 하고 만 것입니다. 그러나 놀라서 혈관을 잡아매려고 하는 찰나에 그는 이상한 현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지금 실수로 베어낸 혈관에서 나오는 피는 지금까지 잘라내던 칼자국에서 나오는 피하고 색깔이 다른데?)
그는 다시 피의 색을 직접 비교해 보았습니다.
먼저 다른 현관에서 나오는 피의 색은 검붉은 데 비해, 지금 나오는 피의 색은 붉고 신선했습니다.
(왜 같은 피인데, 색이 이렇게 다르지?)
하아비는 붉은 피가 나는 혈관과, 검붉은 피가 나는 혈관에 각각 따로따로 칼을 대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붉은 피가 나오는 핏줄에 연결된 가지 핏줄에서는 역시 붉은 색의 피가 나왔고, 혈관의 겉 색이 검푸르게 보이는 혈관에서는 검붉은 색의 피가 나오는 것이 틀림없음을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이 두 종류의 핏줄은 모두 심장과 연결되어 있음을 안 것입니다. 그때에야 하아비는 지금까지의 피가 흘러가는 방향에 대한 학설이 잘못인 것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갈레노스가 주창한 학설에서는 동맥에는 프뉴머가 가득 포함되어 있다고 했지만, 사실은 프뉴머가 아니고 동맥에나 정맥에나 피가 가득 차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피는 서로 색이 다른 피였다는 것이 명백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밤새도록 실험을 되풀이하며 그런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창밖이 훤히 밝아오기 시작했습니다. 기나긴 밤, 날이 새는 것도 모르고 피돌기 실험에 열중했던 하아비는, 밤사이의 연구에 대단히 만족해하며 가볍게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그리고 눕자마자 그는 깊이 잠들었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깊은 잠이 들었기 때문에, 하마비는 다음날도 원기 있게 일을 계속할 수 있었습니다.
하아비가 실험에 사용한 동물은 토끼를 비롯해서 무려 80여 종류나 되었다고 합니다. 어느 날은 뱀도 그의 실험대에 올랐습니다.
뱀의 심장에 이어진 한 줄기의 동맥 핏줄을 꺼내어 실로 단단히 맨 다음, 가운데 한 부분을 베어 피를 나오게 해보았습니다.
뚝뚝, 맥이 뛰는 것과 함께 피가 솟아 나왔습니다.
나오는 피의 분량은 점점 줄어들어 심장은 약하게 뛰게 되고 맥도 희미해졌습니다.
(이것은 어째서일까? 피가 심장으로 되돌아가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갈레노스가 말하는 대로라면 피는 간에서 만들어진다고 하는데, 동물이 살아있는 동안이라면 심장이나 간은 계속해서 온 몸으로 피를 보내야 할 것이 아닌가?)
갈레노스의 학설은 무엇인가 사실과 맞지 않는 데가 있음이 분명했습니다.
하아비는 드디어 갈레노스의 학설을 뒤집고 자기의 새로운 학설을 밝힐 때가 왔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번에는 뱀의 심장에서 나오는 대동맥을 단단히 붙들어 매고 끝 부분을 먼저처럼 칼로 베어 보았습니다. 결과는 한 방울의 피도 볼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 대신 허파나 몸뚱이 여기저기에서 들어오는 피로 점점 가득차서 심장은 터질 것처럼 부풀었습니다.
그리하여 드디어는 온 몸뚱이의 피가 심장으로 몰려드는 결과가 되었습니다.
(이 사실에 의하면, 혈액은 심장에서 동맥으로 나와 온몸으로 흐르는 것이 틀림없다. 그 다음에 그 피는 정맥을 따라 다시 심장으로 흘러드는 것이다.)
하아비의 얼굴에는 개선장군 같은 환한 미소가 가득했습니다.
‘심장에서 나온 피가 온 몸으로 흘러나가 몸의 조직 사이에서 양분으로 사용된다.’고 한 갈레노스의 주장이 옳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피가 사용된다면, 대단히 많은 양의 피가 매일 만들어져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우리가 하루에 먹는 음식 2~3킬로그램으로는, 도저히 그런 양의 피를 만들 수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심장이 고동할 때마다 피는 계속 심장으로 들어가고 나가고 하는데, 그렇다면 심장에서는 피가 나가기만 하고 나간 피는 모두 몸 안의 양분으로 쓰여 진다고 한 갈레노스의 학설은 사실과 다를뿐더러 이론상으로도 맞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아비는 한 동물에 대하여 확인이 될수록 더욱 많은 실험을 되풀이해 나갔습니다.
그러던 중에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붉은 피나 검붉은 피나 사실은 마찬가지 피다. 몸 안에는 일정한 분량의 피가 있어서 그것이 몸 안을 언제나 돌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이치에 맞는데.)
이 착상이야말로 하아비가 ‘혈액의 순환’을 발견하게 된 최초의 동기가 되었습니다.
어느 날 병원에서 점심을 먹고 난 뒤 양지바른 베란다에서 쉬고 있던 하아비는 흰 가운의 소매를 걷어붙이고 오른손으로 왼팔을 쓰다듬고 있던 중에 무심코 팔꿈치 안쪽을 만지다가 ‘뚝뚝’ 맥박이 뛰는 것을 느꼈습니다.
(오 그래, 여기서도 맥박이 뛰고 있었구나, 오늘은 몇 번이나 뛸까?)
오른손의 엄지손가락으로 오니팔의 맥박 뛰는 곳을 누른 상태로 있었더니, 이상하게도 왼팔이 저리기 시작했습니다.
정맥 부분이 퍼렇게 부풀어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눌렀던 손의 힘을 늦추자 팔의 피가 다시 움직여 흐르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이것 참 재미있다.”
하아비가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것을 옆에 있던 조수가 들었습니다.
“하아비 선생님, 무슨 일이 생겼습니까?”
“자네, 잠깐 여기 앉아 보게.”
하아비는 재빨리 조수를 옆 의자에 앉히고 그의 팔을 걷어 올리게 한 다음 팔목을 눌렀다가 놓았다가 또는 붕대로 감아 보는 등 여러 가지 실험을 해 보았습니다.
누구에게나 마찬가지로 정맥은 부풀어 오르고, 손끝의 맥박은 약해지며 시들어지는 것을 알았습니다.
조수가 돌아간 후에도 하아비는 의자에 앉은 채로 방금한 실험에 대해 곰곰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날 밤 집에 돌아와 하아비는 노트에 다음과 같이 적어 넣었습니다.
“심장에서 동맥을 통하여 손끝으로 흘러나오는 피는, 어디선가 정맥으로 바뀌어 심장으로 다시 흘러 들어간다. 이와 같은 동작은 손가락뿐 아니라 손이나 발에서도 일어고 있다고 생각된다. 사람의 온 몸에는 일정한 분량의 피가 있어서 그것이 심장을 중심으로 언제나 몸 안을 돌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심장은 몸 안의 피를 돌게 하는 펌프의 구실을 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찌끼가 섞인 검붉은 정맥의 피는 허파 속을 지나는 동안에, 불고 신선한 피가 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여 하아비는 이 연구를 사람과 동물의 심장 및 혈액의 운동에 대한 해부학적 실험 이라는 책으로 만들어 발표했는데, 그때가 1628년이었습니다.
지금까지 1.400년 동안이나 아무 의심 없이 갈레노스의 프뉴머 설을 그대로 믿었던 의학계에, ‘혈액은 돌고 있는 것’이라는 하아비의 새로운 학설은 기존의 모든 학설을 뒤집고 의학계에 커다란 진보를 가져오게 했습니다.
=발명박사(왕연중 엮음, 글수레)=
|
왕연중의 발명소설
Designed by DOWON.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