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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크림 나와라, 뚝딱!
1
“하하 오늘밤은 반드시 월척을 낚겠어.”
빨간 낚시모자에 조끼까지 갖추어 입은 사내가 근사하게 낚싯대를 휘두르며 뽐내듯 말했다.
“어때 우에사카 자네도 함께 가지 않겠어? 내가 여분의 낚싯대가 있으니 빌려 줄게.”
우에사카는 천천히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난 제출해야할 서류도 많고? 낚시는 영 취미가?”
“참내, 자넨 도대체 취미가 뭔가? 등산을 다니는 것 같지도 않고 말이야”
“우에사카는 따로 취미가 있지. 그 칠퍼스트가 애인이자 취미 아니야?”
근처에 앉은 동료가 끼어들었다.
“그런 셈이군. 어쨌든 지금은 칠퍼스트를 가지고 노는 게 재미있어.”
우에사카는 겸연쩍은 듯 싱긋 웃었다. 그의 곁엔 칠퍼스트가 담긴 알루미늄 캔이 놓여있었다.
칠퍼스트는 얼음이나 드라이아이스같이 보냉제로 쓰이는 물질. 아주 차가운 성질을 가지고 있어 간이 냉장고나 실험용 혹은 산업용으로 널리 쓰이고 있었다. 특히 이것은 드라이아이스나 얼음과 달리 녹지 않아서 몇 번이나 재사용이 가능하였다.
우에사카의 관심사는 이 칠퍼스트의 새로운 용도 개발. 그는 쓰임새도 많고 경제적인 칠퍼스트를 효과적으로 사용할 방법을 궁리하고 있었다. 칠퍼스트는 보통 액체상태로 알루미늄 캔에 보관되었는데, 우에사카는 이 알루미늄캔을 늘 옆에 끼고 다녀 칠퍼스트맨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였다.
2
동료들의 술권유를 뿌리치고 집에 돌아온 때는 꽤 늦은 시간이었다. 잔무를 한데다 칠퍼스트를 가지고 이것저것 실험까지 두어 시간 한터라 저녁식사시간도 훌쩍 넘기고 있었다. 우에사카의 귀가 시간이 늦어진 것은 칠퍼스트에 관심을 쏟고서 부터였다. 그는 회사일을 마친 다음에도 남아 혼자만의 시간에 빠지곤 했다.
“우아앙 아이스크림!”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어린 아들의 울음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다고 조르고 있는 모양이었다. 아내는 막무가내로 떼를 쓰는 아이를 달래느라고 진땀을 빼고 있었다.
“그러지 말고 아이스크림을 사주지 그래.”
우에사카의 참견에 아내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근처 상점에 냉동고가 고장 났어요. 아이스크림을 사려면 큰길 편의점까지 가야하는걸요.”
아내는 몹시 지친 듯 보였다. 개구쟁이 짓을 도맡아하는 어린 아들을 혼자 돌보자니 여간 힘든 게 아닐 터였다. 늘 바쁘다는 핑계로 모든 일을 아내에게 떠맡긴 것이 새삼스레 미안했다.
우에사카는 더 이상 대꾸하지 않고 서재로 향했다. 등 뒤에서 아이와 아내의 실랑이가 계속되고 있었다.
“앗 차가워!”
한참 정신없이 일에 몰두하고 있을 무렵, 우에사카는 갑작스런 찬 기운에 놀라 번 번쩍 정신을 차렸다. 팔뚝 근처에 흥건이 하얀 액체가 고여 있었다. 어느 틈에 다가온 아이가 우에사카의 책상 근처를 배회하다 그만 책상위로 우유를 엎지르고 만 것이다. 허연 우유는 순식간에 책상전체로 번져나갔다.
“이런! 조심해야지.”
우에사카는 황급히 책상위에 널린 서류뭉치를 치우며 허둥댔다. 다음날 제출해야할 중요한 보고서가 많았기 때문에 무엇보다 서류를 치우는 것이 중요했다. 겨우 사태를 수습하고 난 다음에야 그는 책상위에 칠퍼스트를 그냥 놓아둔 것이 생각났다.
‘아차.’
칠퍼스트가 담긴 알루미늄캔 표면에는 기묘하게 생긴 하얀 무늬가 서려있었다.
‘이게 뭐지?’
책상에서 흘러내린 우유가 칠퍼스트의 냉기 때문에 얼어붙은 것이었다.
‘오호라 이것 봐라. 우유가 얼어붙었군. 마치 아이스크림 같은 걸?’
우에사카는 책상을 정리하는 일도 잊은 채 캔 주위에 얼어붙은 우유조각을 천천히 살펴보았다. 마치 겨울날 창문에 서린 성에처럼 아름다운 무늬를 이루고 있었다. 그는 무심코 한 조각을 떼어 입속에 넣었다. 우유의 고소한 향취가 입안에서 감미롭게 퍼졌다.
‘칠퍼스트와 우유라?’
냉동고가 고장 나서 아이스크림을 팔지 못하는 작은 구멍가게와 칠퍼스트, 그리고 허옇게 얼어붙은 우유들이 머릿속으로 오고갔다.
‘만약 칠퍼스트를 이용한 간이 아이스크림 제조기를 만들면 어떨까?’
그는 칠퍼스트 쪽으로 눈을 돌렸다. 냉장고와 같이 커다란 냉동장치도 필요 없고, 드라이아이스나 얼음처럼 바쁘게 교환해야할 일도 없을 것이었다.
‘좋았어! 바로 그거야. 당장 조사를 해보자!’
그는 흐트러진 책상을 정리하는 일도 잊은 채 다시 칠퍼스트에 매달렸다.
3
‘더운 여름 해변 가에서는 아주 안성맞춤 이겠군.’
여름 한철동안 피서 인파가 모이는 해변 가에 거대한 냉동고를 설치하는 것은 무리였다. 아이스크림을 만들 만한 냉장고라면 크기가 엄청나게 클 것인데 이를 옮기는 것만 해도 고역일 터였다. 때문에 대부분 아이스박스에 얼음이나 드라이아이스를 넣어 빙 과류를 보관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이런 사정이니 칠퍼스트를 이용한 간이 아이스크림 제조기가 인기가 있을 것은 불을 보듯 뻔 한 일이었다. 이밖에도 커다란 냉동고를 설치할 수 없는 소규모 매장이나 간이시설에서도 얼마든지 활용할수 있을 것 같았다.
우에사카는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수첩에 커다랗게 ‘해수욕장’이라고 적었다. 수첩에는 공원, 백화점 행사장, 학교 앞 등 암호 같은 말들이 빼곡히 적혀있었다. 칠퍼스트를 이용한 아이스크림 제조기가 인기 있을 만한 장소를 조사한 것이었다. 꼬마가 많이 다니는 학교 앞이나 연인들이 자주 찾는 공원, 잠깐 열리는 행사장등 사람이 많이 모인 곳이라면 어디든지 돌아다니며 얻어낸 결과였다.
‘그래. 이정도면 충분히 시장성을 갖겠어.’
그는 조사한 자료가 빼곡히 적힌 노트를 훑어보며 만족한 듯 미소를 지었다.
‘일단 부딪혀 보는 거야.’
아무리 훌륭한 아이디어라 하더라도 상품화되지 못하면 아무 쓸모 짝에도 없는 법. 그는 먼저 자신의 아이디어가 상품화되면 인기가 있을 것인가를 먼저 냉정하게 따지기로 했던 것이다. 그결과 생각보다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우에사카는 이 조사에 자신감을 얻어 자신이 다니는 회사에 아이디어를 건의하여 상품화하려고 마음을 먹었다.
4
“흠.”
우에사카의 보고가 진행되는 동안 일본경금속의 사장은 시종일관 진지한 표정으로 조용히 듣고 있었다. 사실 우에사카가 몸담고 있는 일본경금속은 회사명 그대로 금속과 관련된 사업에 주력하고 있는 업체였다. 따라서 칠퍼스트를 이용한 간이 아이스크림제조기 아이디어는 회사의 주력업종과는 별반 상관이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우에사카는 이 아이디어가 좋은 상품이 되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과감하게 경영진에 건의하기에 이른 것이었다.
“아이스크림 제조 말고 다른 용도는 없나?”
굳게 입을 다물고 있던 사장이 갑자기 질문을 던졌다.
“빙 과류는 모두 응용할 수 있을 겁니다.”
우에사카는 재빨리 대답했다. 사장의 질문은 곧 관심이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사장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아주 좋군. 상품화 가능성을 타진해 봅시다. 우에사카씨는 책임지고 구체적인 상품화 방안을 만들어보도록 하세요.”
“그리고 늘 말했듯이 참신한 아이디어는 언제나 대환영입니다. 창의력만이 이 기업과 여러분 개인이 발전할 길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오”
사장은 우에사카의 손을 굳게 잡았다.
5
회사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우에사카의 개발연구는 순조롭게 이어졌다. 그는 머릿속에 담긴 아이디어를 제품화하기 위해 구슬땀을 흘렸다. ‘우유가 언다.’는 사실만을 가지고 덤벼들었기 때문에 알아야 할 것도 배워야 할 것도 너무 많았다.
제일 중요한 것은 아이스크림 제조방법을 익히는 것이었다. 좋은 아이스크림 제조기를 만들려면 아이스크림이 가장 맛있게 만들어지는 상태를 알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는 수십개의 아이스크림을 맛보기도 하고, 직접 아이스크림을 만들어보기도 했다. 심지어는 아이스크림에 파묻히는 꿈을 꾸기도 했다.
또 어디서나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간단한 구조로 만드는 것도 중요했다. 수리와 청소가 간편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었다. 단순한 아이디어였지만 개발과정은 만만치 않았다. 밤을 새는 것도 예사였다. 그러나 우에사카는 조금도 지친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콧노래를 부르며 즐겁게 일했다. 마치 금방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새신랑처럼 마냥 싱글벙글 거렸다.
6
본격적인 제품 개발에 뛰어든 지 한 달 남짓 후 우에사카의 아이디어 상품이 드디어 선을 보이게 되었다. 구조는 매우 간단했다. 이중으로 고안된 통 안에 한쪽은 칠퍼스트가 들어있고, 다른 한쪽은 아이스크림의 재료를 넣도록 되어있었다. 또 아이스크림의 재료를 넣는 부분엔 회전톱니가 들어있어 전원을 연결하면 계속 휘저어주도록 고안되었다. 분리도 간편하고 부피도 작은 편이었다.
“아주 좋은걸.”
우에사카의 개발품을 본 사람들은 모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7
일본경금속은 이 제품을 ‘돈비에’라는 이름으로 시장에 내놓았다. 인기는 가히 폭발적이었다. 1984년 한 해 동안 일본 내에서만도 1백30만개를 팔았다. 모두의 상상을 초월하는 대히트였다. 우에사카의 짐작대로 해변이나 공원 등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소는 물론이고 대형 쇼핑센터나 음식점에서도 앞 다투어 돈비에를 설치했다. 뜨거운 여름, 사람들은 시원한 것을 찾아 돈비에로 몰려들었고, 인기는 식을 줄 모르고 계속되었다.
수출량도 엄청났다. 미국과 유럽에서 주문량이 밀려들어와 공장을 새로 지어야 할 정도 였다. 워크맨 다음가는 히트상품이라는 찬사를 받을 정도였다.
이 제품의 성공으로 일본경금속은 물론이고 우에사카 개인도 크나큰 이익을 보게 되었다. 아이디어 개발에 적극적이었던 기업과 개인의 승리였다.
=글:왕연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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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연중의 발명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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