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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해방 선언
팬티와 단추
발명사에는 에디슨이나 노벨처럼 그 이름이 자랑스럽게 기록된 발명가들이 있는가하면 반대로 훌륭한 아이디어를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름이 전혀 알려지지 않은 경우도 허다하게 많다. 또 번듯한 연구실이나 책이 수없이 많이 쌓인 책상이 아닌, 평범한 생활 곳곳에서 만들어진 발명품들도 그 수를 셀 수 없을 정도이다. 논두렁이나 부엌, 헛간 혹은 새색시의 신혼 방까지 어디든 아이디어 탄생지가 되었던 것이다.
지금은 상식이 되어버린 남성용 이중팬티도 이렇게 이름없는 평범한 이의 손에 의해 탄생되었다. 그 주인공은 일본의 한 새색시.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수줍고 평범하기 짝이 없는 한 주부가 전 세계 남성을 해방시킨 발명품을 탄생시킨 것이다.
새색시의 하루는 바쁘기 그지없었다. 시집 식구들의 눈치를 보느라 이리저리 바쁜 날의 연속이었다. 시어머니보다 먼저 일어나 아침밥을 지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온 식구의 빨래도 모두 그녀의 몫이었다. 오랫동안 꿈꾸어오던 신혼의 단꿈과는 거리가 먼 고된 날이었다. 그래도 그녀는 늘 행복했다. 남편과 도란도란 앉아 하루의 일과를 이야기하는 소중한 시간이 매일 저녁 남아있기 때문이었다. 이 순간이면 하루 종일 그녀를 괴롭혔던 긴장도 어느새 풀어져 버리고, 그녀는 수줍은 새 악시가 되곤 했다. 어쩌면 저녁 무렵, 돌아온 남편을 기다리며 하루해를 견디는 지도 몰랐다. 이렇게 평범하지만 바쁜 일상을 보내는 그녀에게 색다른 고민이 생긴 것은 신혼생활을 시작한지 불과 한 달 정도가 지난 무렵이었다.
여느 날처럼 빨래를 정리하던 그녀의 손길이 남편의 속옷에 머물렀다.
‘하나, 둘, 셋… 세상에 다섯 개나 되네… 단추를 잠그는 시간만도 꽤 걸리겠는걸.’
당시만하더라도 남성의 팬티에는 작은 단추가 여러개 달려, 창구멍을 여미도록 되어 있었다. 때문에 화장실에 갈 때 면 단추를 일일이 열고 닫는 불편을 겪어야만 했다. 아주 거추장스런 일이었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다들 단추달린 팬티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 작은 단추가 달린 속옷이 그녀의 관심을 끌게 된 것이었다. 결혼하기 전에도 식구들의 빨래를 할 때면 속옷을 정리하기도 했지만, 언제나 건성건성 보아 넘겼었다. 남자 속옷을 유심히 볼 일도 없었거니와 관심이 있을 리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문제가 달랐다. 그 누구도 아닌 사랑하는 남편의 옷이기 때문에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남편은 겉으로는 너무나 의젓하고 힘도 세어 보이지만, 안에서는 너무 부드럽고 어린아이 같은 구석이 있었다.
그녀가 일일이 챙기지 않으면 속옷도 갈아입지 않았고, 출근할 때 서류를 빼놓고 가기도 일쑤였다. 때문에 남편의 일 거수 일 투족을 세심히 관찰하고 뒷바라지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이렇게 단추가 많으면 일일이 잠그는 것도 큰일이겠는 걸….’
그녀는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만약 급한 일이라도 생긴다면 화장실에서 서두르다 단추를 잘못 잠글수도 있고, 단추가 헐거워져 떨어지는 일도 있을 것이다. 평소에도 덤벙대기 일쑤인 남편에게는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일것만 같았다.
‘만약에 속옷 단추 잠그는 일을 잊어버리고 그대로 화장실을 나오면….’
그녀의 얼굴이 갑작스레 붉게 물들었다. 남편이 화장실에서 옷매무새를 다듬지 않고 그냥 서둘러 나오는 장면을 상상해보다 너무나 민망하여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만약 그런 일이 생긴다면 정말 이만저만한 망신이 아닐 수 없었던 것이다.
남편뿐만이 아니었다. 만약 나중에 작은 사내아이가 태어난다면 그 아이도 이런 불편을 겪게 될 것이 분명했다. 어른은 용변을 참을수 있는 인내력도 있고, 또 손놀림도 재빠르니까 단추를 잠그고 푸는 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지만, 나이어린 소년들에게는 힘겨운 일일 것이었다.
신나게 뛰어놀다가 급하게 화장실로 뛰어 들어 갔다가 단추가 쉽사리 풀리지 않으면, 옷에다 그냥 실례를 저지르는 낭패를 겪을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좋은 방법이 없을까?’
그녀는 속옷의 단추를 일일이 정성스레 잠갔다가 다시 풀어 헤쳐보기도 하면서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마치 신기한 물건을 다루는 듯 진지하기만 했다.
그녀의 고민은 팬티?
이후로 그녀에겐 이상한 버릇이 생겼다. 가족을 위해 빨래하고 청소하고, 모든 것은 이전과 똑같았지만 어딘지 모르게 고민에 잠긴 모습이었다. 남편이 출근할 때면 아랫도리를 유심히 살피는가 하면, 빨래를 할 때나 서랍정리를 할 때 멍하니 앉아 생각에 잠기는 시간도 길어졌다. 또 방구석에 돌아앉아 남편의 속옷을 만지작거리는 일도 간간히 있었다.
남편은 진작부터 아내의 변화를 느꼈지만, 그 이유를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수다스럽거나 많이 웃는 편은 아니었지만 생각이 깊고 늘 웃는 얼굴로 미소짓던 아내였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혼자 뭔가를 중얼거리기도 하고 알 수 없는 질문을 하곤해 그를 어리둥절하게 만들고 있었다.
“여보, 당신 무슨 걱정이 있소? 며칠 전부터 통 잠을 못 이루는 것 같던데.”
“걱정이 있을게 뭐가 있겠어요. 그냥 여러 가지로 생각할 일이 많아서 그렇지요.”
그녀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는 듯 빙긋이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미소는 평소와 전혀 다를 게 없었다.
“생각할 일이라니? 무슨 문제가 생긴 거요? 혹시 당신 친정에?”
“아니 예요, 그저 당신….”
그녀는 말을 하다말고 얼굴을 붉혔다. 그녀의 시선은 방구석에 밀어둔 빨래 바구니를 향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요? 혹 집안일이 힘들기라도 하오?”
“아니… 그럴 리가 있겠어요. 당신은 신경쓰지 않으셔도 돼요. 그냥 제 혼자 생각이예요?
그녀는 남편을 안심시키려는 듯 밝게 웃어보였다. 묻고싶은 말들이 있었지만 꿀꺽 삼켜버렸다.
그녀의 설명대로 집안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넉넉하지는 않은 살림이었지만 그럭저럭 꾸려나가고 있었고, 시가족과의 관계도 좋은 편이었다. 물론 친정집도 큰 사고없이 잘 지내고 있었다. 그녀를 고민하게 만든 문제는 이렇게 평범한 것이 아니었다. 고민은 참으로 엉뚱한 곳에 있었다.
‘괜시리 걱정을 끼쳤구나… 그나저나 단추 없는 편리한 팬티를 만들 방법은 없는 걸까?’
우습게도 그녀의 고민거리는 남편의 단추달린 팬티였다. 우연히 팬티의 불편함을 느끼게 된 뒤로 그녀는 주욱 남몰래 새로운 팬티에 대해 궁리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누가 볼새라 방안 구석에 혼자 돌아앉아 여러 가지 팬티를 살펴보기도 하고 단추를 바꿔 달아보기도 하면서 나름대로 아이디어를 만들고 있었다. 그러나 단추를 대신할 좋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 그녀는 밤잠도 이루지 못할 지경이었다.
‘빨리 좋은 방법을 찾아야 할텐데….’
그러나 아무리 궁리해도 묘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동안 그녀가 시도해본 방법은 여러 가지였다. 작은 끈을 만들어 붙이기도 하고, 여미는 단추대신 눌러 잠그는 단추를 달아보기도 했다. 그러나 그 어느 것도 만족스럽지 못했다. 그녀의 고민은 쉽게 끝날줄 몰랐다.
열쇠는 가까운 곳에
유난히 햇볕이 따뜻한 오후였다. 새색시는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늘의 구름이 남편의 하얀 속옷처럼 보였다. 그녀는 그 구름에다 맘껏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었다.
“여보, 여보!”
직장에서 돌아온 남편이 등 뒤에서 그녀를 나직이 불렀지만, 그녀는 알아차리지 못한 채 계속 하늘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만의 상상의 세계에 빠져있었다. 남편은 아내의 변화에 몹시 당황하였다. 특별히 걱정거리가 있는 것 같지도 않은데 먼 산을 바라보거나, 이처럼 불러도 모른 채 뭔가에 집중하고 있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어쩌면 아내에겐 변화가 필요한지도 몰라.’
남편은 그녀의 옆모습을 바라보다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어머, 당신 언제 돌아오셨어요? 무슨 일이 있었나요?”
그제 서야 남편이 옆에 있는 것을 알아채고 황급히 돌아앉았다.
“음, 아무래도 오늘 밤새 일을 해야 할 것 같아서 간단히 준비하려고….”
“그래요? 그럼 뭘 준비하면 될까? 아참, 우선 식사는 하셔야죠?”
“아니 아니, 준비 안 해도 되오. 서류만 가지고 가면 되니까. 그보다 여기 좀 앉아 봐요.”
남편은 아내의 소매 끝을 붙잡아 끌었다.
“오늘은 한껏 자유롭게 보내요. 책도 읽고… 아참, 저녁도 밖에 나가서 맛있는 걸 사먹도록 해요. 같이 가고 싶지만 내 사정이 여의치 않으니까. 친구라도 불러서….”
“괜찮아요. 전 집이 더 좋은걸요.”
“고집부리지 마요. 당신 그동안 많이 힘들었을 거야.”
그는 뒷주머니에서 두툼한 지갑을 꺼냈다. 검은 색의 가죽을 덧댄 고급스런 장지갑이었다. 그녀가 결혼 후 그에게 준 첫 선물이었다. 지갑은 동전을 넣을수 있는 작은 공간과 안쪽엔 두 장의 천을 맞대어 비상금을 넣어둘 수 있는 비밀공간까지 있었다.
그는 지갑을 열어 지폐 몇 장을 끄집어냈다. 늘 집에만 틀어박혀 있는 아내에게 모처럼의 여유를 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이었다. 무심히 남편의 지갑을 바라보던 그녀의 얼굴엔 갑자기 생기가 돌았다.
“잠깐만요!”
남편의 손에서 지갑을 뺏어든 그녀는 지갑의 안쪽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그녀의 얼굴엔 요사이 보지 못했던 밝은 미소가 흐르고 있었다.
“바로 이거예요, 이거요. 이게 제가 찾던 바로 그 해답이에요.”
그녀는 지갑 안쪽의 비밀공간을 가리키며 밝게 웃었다. 그녀가 그토록 오랫동안 찾던 문제의 해답이 가까운 곳에 있었던 것이다.
남성을 해방시키다
그녀는 천과 천을 이중으로 겹쳐 만든 비밀공간에서 얻은 힌트를 바탕으로 새로운 팬티를 디자인했다. 팬티의 앞창에 단추를 다는 대신 천을 넉넉하게 서로 덧대어 창이 안으로 감추어지도록 했다. 겉에서 보면 덧댄 천 덕분에 안이 들여다보일 염려도 없었고, 편하게 통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거추장스런 단추는 단 한 개도 필요 없었다.
‘좋았어.’
단숨에 새로운 팬티를 만든 그녀는 자랑스럽게 살펴보았다. 그녀가 원하던 바로 그런 것이었다.
“아니, 이걸 당신이 만들었단 말야? 정말 놀랐는걸!”
새로운 팬티를 받아든 남편은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단추팬티가 불편하다고 생각하곤 있었지만, 해결책이 없다고 내심 포기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남자도 아닌 수줍은 아내가 그 일을 했다고 생각하니 너무나 놀라왔다.
“어때요? 편안해요?
“물론이지. 너무나 편해. 전의 팬티는 가끔 단추가 걸리적거릴 경우도 있었는데, 그럴 염려도 없고. 아주 좋아.”
남편의 만족에 힘을 얻은 그녀는 남편의 도움을 얻어 자신의 아이디어를 상품화하기로 했다. 특허를 내고 사업자에게 자신의 아이디어를 비싼 값에 팔았다. 여전히 수줍음 많은 그녀였지만, 자신의 아이디어로 많은 사람들이 편안해진다는 보람으로 기꺼이 모든 일을 할 수 있었다.
그녀의 아이디어로 만든 팬티는 시중에 소개되자마자 큰 주목을 받았다. 만들기가 무섭게 팔려나가 가게엔 언제나 품절표시가 붙어있을 정도였다. 기존의 속옷 제조업체들도 앞다투어 그녀의 아이디어를 모방했다. 어느새 그녀의 팬티는 세계 모든 남성들의 필수품이 되었다.
그녀의 작은 고민이 남성을 불편함에서 해방시켰던 것이다.
아쉽게도 그녀 자신의 뜻에 따라 그녀의 이름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지만 아이디어만큼은 국경과 인종을 초월하여 많은 이들에게 편리함을 안겨주었다.
글 : 왕 연 중
(한국발명문화교육연구소 소장, 영동대학교 발명특허학과 겸임교수)
(이메일 : wangyj39@dreamwiz.com 전화 : 011-890-85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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