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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구멍 속의 황금을 찾아라
발명 초심자들이 흔히 저지르는 실수 중의 하나가 거창한 꿈에 사로잡힌다는 것이다. 거창하고 커다란 발명품으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다든가, 복잡한 기술을 사용한 엄청난 기계를 만든다고 나서는 사람도 적지 않다. 발명이란 의례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에디슨이 만든 축음기나, 벨이 발명한 전화기, 라이트형제의 비행기 등,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거창한 발명품의 이야기를 너무 많이 본 탓일까?
마치 허무개그를 보는 듯이 너무나 간단하고 손쉬운 아이디어이기 때문에 그 중요성을 모르고 무심코 지나기도 하지만 분명히 발명 사에 기록된 발명품이다.
때론 작은 구멍 하나가 요술램프처럼 엄청난 부와 명예를 선사하기도 한다. 발명의 세계란 바로 그런 것이다.
일본의 발명가 후쿠이에도 아주 간단한 아이디어 하나로 부를 거머쥐었다. 아주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후쿠이에 에게 기회가 찾아온 것은 어느 겨울날이었다.
감기몸살로 출근도 못하고 어두운 방안에서 이틀째 앓아누워, 그의 신경은 잔뜩 당겨진 고무줄처럼 예민해져 있었다. 방안 한구석에서는 난로가 이글이글 타고 있었고, 그 위에는 양은 주전가가 얹혀 시끄러운 소리를 내고 있었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주전자는 금방이라도 폭발할 듯 했다.
‘정말 시끄럽군. 하긴 사무실에서도 난로에 물이 끓을 때 요란한 소리가 나곤 했지. 그때는 일에 열중하느라 잘 몰랐었는데, 신경이 예민한 사람들에게는 여간 거슬리는 일이 아니겠는 걸...’
주전자의 얇은 뚜껑이 덜그럭거리며 아래위로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을 보며 후쿠이에는 생각에 잠겼다. 혼자 하루 종일 누워있자니 심심하기도 하고, 주전자 뚜껑이 들썩거리는 모양이 우습기도 했다. 그는 아예 모로 누워 주전자 뚜껑을 응시했다. 당시에는 건물의 난방이 부실해서 별도로 난로를 때지 않으면 겨울을 날수 없었다. 때문에 추위가 닥치면 집집마다 난로를 설치한다, 연통을 연결한다 하며 부산을 떨곤 했다. 그러나 난로는 집안을 아주 건조하게 만들기 때문에 화재의 위험도 높았고, 어린아이들은 감기에 걸리기도 쉬웠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난로 위에 커다란 주전자를 얹어 놓고, 마냥 물을 끓이며 습도를 조절하고 있었다. 게다가 하루 종일 뜨거운 물을 사용할 수 있어서 언제든지 차를 마실 수 있는 장점도 있었다. 하지만 당시 주전자 뚜껑에는 김이 빠져나갈 수 있는 구멍이 없었기 때문에 물이 끓으면 엄청난 소음이 발생하곤 했다. 끓어오른 수증기가 빠져나갈 수 없어 주전자 뚜껑을 밀어내고 심지어는 부글부글 거품을 토하기도 한 것이다.
얇은 양은 주전자 냄비가 덜거덕거리는 소리는 여간 시끄러운 게 아니었다. 뚜껑을 열어두면 간단한 일이었지만 주전자 안에 먼지가 들어가면 먹을 수 없으므로 다들 요란한 소리를 참고 있었다.
‘물이 끓으면서 발생하는 수증기가 빠져나가기 위해 주전자 뚜껑을 밀어내는 것이군. 그래서 저렇게 덜거덕거리는 요란한 소리를 내는 거야. 만약 주전자에 수증기가 빠져나갈 수 있는 구멍을 만들어주면 어떻게 될까? 적어도 뚜껑이 들썩이는 일은 없지 않을까...’
후쿠이에는 들썩이는 주전자 뚜껑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김이 나갈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주전자 뚜껑을 열어두는 것이 다를 바 없을 것 같았다.
작업은 간단했다. 날카로운 송곳으로 적당한 크기의 구멍을 뚫으면 그만이었다. 그리고 효과는 그가 짐작했던 대로였다. 주전자 뚜껑의 구멍으로 수증기가 빠져나오면서 소리가 한결 줄어든 것이다.
‘성공이다!!’
후쿠이에는 아픈 것도 잊고 아이디어의 특허출원을 서둘렀다. 간단한 아이디어였지만 그 누구도 생각해내지 못했던 것이었기 때문에 특허로 보호받기에 충분한 일이었다.
그리고 얼마 후 그의 아이디어를 사겠다는 사람들이 그를 찾아오기 시작했다.
주전자 제조업자는 물론이고 냄비를 만드는 회사 사람들까지 그 구멍의 사용권을 얻기 위해 그에게 돈을 지불하겠다고 나섰다.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구멍 뚫린 주전자 뚜껑이 불티나게 팔려나가면서, 그의 수입도 눈 덩이처럼 불어났다. 그에겐 마법의 구멍이었던 것이다.
작은 구멍에 얽힌 이야기는 또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알아채지 못했겠지만 각설탕의 포장에는 사방 모서리에 미세한 구멍이 뚫려있다. 이 구멍 때문에 각설탕은 웬만한 더위와 습기에서도 녹아내리지 않고 원형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 구멍의 발명가는 어린 선원이다.
지금은 기술이 발달해 습기제거제를 사용하거나 겉포장에 특수처리를 해서 보관에 어려움이 없지만 지금으로부터 100여년 전만해도 보관방법이 낙후해 각설탕 한 개를 보관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다.
특히 수출을 하는 무역업자들에게는 골칫거리가 아닐 수 없었다. 긴 항해를 하는 동안 각설탕은 모두 녹아 형체도 없이 녹아내리는 일이 빈번했기 때문이다. 모두 습도 높은 바닷바람 때문이었다. 막대한 손해가 번번이 일어나자 설탕수입업자들은 현상금을 걸고 각설탕 보관법을 찾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아무리 현상금을 많이 걸어도 좋은 방법은 쉽게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허름한 옷차림의 젊은이가 설탕수입업자의 사무실을 두드렸다.
“제가 각설탕 보관법을 알아냈습니다. 약속하신 현상금을 받으러 왔습니다.”
당돌한 젊은이의 태도에 회사사람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유명한 발명가와 과학자도 풀지 못한 문제를 새파란 젊은이가 그것도 남루한 복장의 막노동꾼 같은 사람이 해결했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이런 분위기를 눈치 챘는지 젊은이는 주머니에서 각설탕 두 개를 꺼냈다.
“실은 저도 선원입니다. 이 설탕은 제가 이번 항해 내내 가지고 다녔던 것이고요. 보시다시피, 멀쩡합니다. 설탕 맛도 예전 그대로고요, 다른 냄새도 나지 않습니다.”
회사의 임원들을 믿을 수 없다는 듯, 각설탕을 받아들고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마치 막 포장을 끝낸 새 제품처럼 멀쩡했다. 2～3개월의 항해를 견딘 제품이라고는 믿을 수 없었다.
“자네 설명은 알아들었으나 우린 정확한 증거자료가 필요하네. 설마 이걸 그대로 믿으라는 말은 아니겠지? 미안하지만 지금 현상금을 줄 수는 없겠어.”
임원의 싸늘한 말이 끝나자마자 젊은이는 짐작했다는 듯이 피식 웃으며 자신이 가지고 왔던 각설탕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당연히 그러시겠지요. 이 설탕은 겉으로는 다른 제품과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실은 제가 마법을 부린 설탕입니다. 이 설탕을 두고 갈 테니, 시험 삼아 다음번 출항 때 가지고 가보세요. 제 말이 사실인 것을 알게 될 테니까요. 비밀은 배가 다시 돌아온 후에 말씀드리지요.”
청년은 문제의 설탕을 남겨두고 자신만만한 태도로 성큼성큼 사무실 문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정확히 1개월 후 설탕수입업자는 다시 젊은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회사 중역이 모두 심각한 표정으로 한자리에 모였다. 그들의 한 가운데에는 각설탕은 3개가 얌전히 테이블 위에 얹혀있었다. 1개월 전 젊은이가 남기고 간 그 설탕이었다.
그들은 밑져도 본전이라는 심산으로 젊은이의 말대로 설탕으로 1개월이나 되는 항해 동안 내내 가지고 다녔다. 결과는 놀라웠다. 다른 각설탕들은 습기를 이기지 못하고 모두 녹아서 뭉그러져 버렸으나, 젊은이의 설탕은 처음처럼 그대로였던 것이다. 회사 임원들은 젊은이가 오기 전에 각설탕의 비밀을 알아내려 했으나 허사였다. 아무리 살펴봐도 다른 점을 찾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저 젊은이가 돌아와 비밀을 밝히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마침내 기다리던 청년이 회사로 찾아왔다.
그는 자신감에 넘쳐있었다.
“당신의 말대로 설탕은 오랜 항해에도 멀쩡했소. 비결이 도대체 뭐요. 이제 밝혀도 되지 않소. 원하는 대로 현상금을 주겠소.”
회사임원이 돈과 함께 각설탕을 내밀자, 청년은 빙그레 웃으며 말문을 열었다.
“별 것 아닙니다. 저는 각설탕 포장지에 두어 개의 작은 구멍을 뚫었을 뿐이에요. 선원은 모두 아는 일이지만 배의 아래쪽 창고에는 위로 작은 창이 뚫려있죠. 이 창으로 선선한 바람이 드나들면서 습도를 조절하기 때문에 물건들이 피해를 입지 않는답니다. 저도 이 설탕에 그런 창문을 만든 것뿐이에요.”
젊은이의 설명이 끝나자 그제 서야 임원들은 무릎을 쳤다.
그 이후부터 모든 각설탕 포장지에는 젊은 선원이 고안한 작은 구멍이 뚫리게 됐다. 이 구멍으로 설탕회사가 막대한 이익을 챙긴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이처럼 아주 하찮게 보이는 것들도 돈으로 따질 수 없는 가치를 가진다. 혹시 거대한 발명품에 대한 욕심이 용솟음칠 때는 작은 구멍의 마법을 떠올려보자.
글 : 왕 연 중
(한국발명문화교육연구소 소장, 영동대학교 발명특허공무원학과 겸임교수)
(이메일 : wangyj39@dreamwiz.com 전화 : 011-890-85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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