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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하라
기업들이 신제품을 내놓을 때 가장 고려하는 것이 소비자들의 욕구 변화와 유행, 그리고 시기다. 유행에 뒤쳐진 상품은 바로 외면당하기 마련이다. 때문에 기업들은 시장조사와 제품에 대한 선호도 조사에 많은 시간과 비용을 투자한다.
변화에 민감해야 하는 또 하나가 바로 발명이다.
자칫 발명은 시기와 관계없이 참신한 아이디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이는 아주 심각한 착각이다. 발명이야말로 유행과 변화에 민감한 분야다. 얼마나 변화에 잘 적응하고 유행에 적합한 아이디어를 창출하느냐가 발명을 성공으로 이끄느냐 아니냐를 결정하는 잣대인 것이다.
특히 한 발짝 앞서 유행을 내다볼 수만 있다면 성공 행 기차의 탑승권을 손에 쥔 것이나 다름없다.
빔 프로젝터 시장의 경우 십여 년 전만 하더라도 크고 비쌀수록 많이 팔렸다. 대부분 학교나 대강당, 관공서가 주요 구입 층이었기 때문이다. 학교는 넓은 곳에서 많은 학생들을 상대로 교육을 하기 때문에 당연히 크고 밝은 것을 필요로 할 수밖에 없었다. 관공서도 마찬가지였다. 한자리에 고정해서 사용하는 것이니, 작은 것보다 크고 묵직한 것이 잘 팔릴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따라서 대부분의 빔 프로젝터 생산업체들은 모두 비싸고 밝고 큰 제품 위주로 물건을 내놓았다. 한대 당 1천만 원을 훌쩍 뛰어넘는 고가제품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3～4년이 지나면서 시장에도 서서히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새로운 유행이 생겨난 것이다.
가장 큰 변화는 벤처기업의 탄생. 기술력만을 밑천으로 탄생한 기업들이 속속 생겨나면서 기업설명회라는 새로운 문화가 파생됐다. 자본력이 취약한 벤처기업들은 돈 많은 투자자나 대기업을 설득해서 기업자금을 만들어야 했는데, 이때 자신들이 가진 기술을 가능한 멋지게 설명하는 것이 필요했다. 특히 말만으로 설득하는 것보다 뭔가 확실한 제시해 믿음을 얻는 것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이때 컴퓨터와 연결해서 아무 곳에서나 작은 영화관을 만들 수 있는 빔 프로젝터야말로 안성맞춤인 상품이었던 것이다. 이 때문에 벤처기업인을 중심으로 서서히 빔 프로젝터에 대한 관심이 일기 시작했다.
또한 가정에서도 서서히 변화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그동안 일반 가정은 빔 프로젝터와 전혀 상관없는 곳이라고 치부됐으나, 소득수준이 높아지면서 집에 오디오와 함께 영화관 시설을 갖추려는 고객층이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은 빔 프로젝터 업계에 엄청난 변화의 신호탄이었다.
새로운 시장은 기존의 무겁고 비싼 제품으로는 공략이 어렵기 때문이다. 기업설명회는 장소가 정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기회가 주어지면 이리저리 옮겨 다니면서 아무 곳에서나 홍보를 해야 했다. 당연히 무거운 제품보다 가볍고 작은 것이 유리했다. 게다가 주머니 시장이 얄팍한 벤처기업에게 1천만 원에 육박하는 고급제품이 버거울 수밖에 없었다.
가정용도 마찬가지다. 1천만 원이 넘는 고가 제품을 살수 있는 경제력을 지닌 사람은 그야말로 몇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당연히 가정에 많이 팔기 위해서는 TV처럼 값싼 제품이 필요했다.
그동안 한국 시장에서 전혀 팔리지 않는 싸고 작은 제품들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이다. 그러나 기존에 많은 제품을 팔던 대형 업체들은 변화의 바람을 보고도 이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아직까지 빔 프로젝터를 구입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학교나 관공서였고, 작고 싼 제품을 찾는 사람들은 전체 시장에 비하면 아직 미미했기 때문에 기존에 하던 방식을 고수하려 한 것이다.
비싼 상품을 파는 쪽이 오히려 이익이 더 많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런 변화를 제일 먼저 직감한 것은 S사.
‘이제 작고 가볍고 싼 제품이 시장에 많이 나오면 사람들의 인식이 달라질 거야. 관리하기 어렵고 비싸기만 한 제품을 누가 사려고 하겠어? 비슷한 품질이라면 작고 가볍고 싼 것에 손이 가기 마련이지.’
관공서나 학교는 수가 정해져 있어, 많이 팔 수 없는 반면 기업이나 가정은 시장이 무궁무진하다는 점에 눈독을 들인 것이다. S사는 파격적으로 싸고 작은 제품들을 시장에 내놓기 시작했다.
경쟁업체들이 S사의 시장 전략을 성급하다고 비웃었지만, 천만의 말씀이었다.
포화상태에 이른 학교 시장보다 벤처기업의 시장 성장세가 더욱 빨랐다. 사람들의 선호도도 크고 묵직한 것에서 가볍고 심플한 쪽으로 급격하게 옮겨갔다.
작고 싼 제품을 본 소비자들이 큰 제품을 외면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제 서야 심각성을 눈치 챈 업체들이 앞 다퉈 소형제품을 내놓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밝기만을 가지고 싸우던 업체들이 서로 작은 제품을 내놓았다고 자랑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발 앞선 S사에게 당할 수 없었다. 이미 한발 앞선 S사는 새로운 기능까지 갖춘 소형제품들을 내놓으면서 두각을 나타냈다. 가장 늦게 빔 프로젝터 시장에 뛰어든 S사였지만 유행에 민감했던 덕분에 단시간에 성공할 수 있었다.
유행을 무시하고는 성공할 수 없다.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지금은 잊혀져 버린 ‘시티폰’을 보면 유행을 무시한 발명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 쉽게 알 수 있다.
아직 핸드폰이 고가제품으로 대중에 얼마 보급되지 않았을 무렵에 최고의 인기품은 호출기였다. 모두 한 개씩은 가지고 있을 만큼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가격도 싸고 사용료도 저렴해서 핸드폰을 사용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의 주요한 통신수단으로 애용됐다.
그러나 호출기의 불편한 점은 호출을 받은 쪽에서 전화를 해야 용건을 전달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때문에 공중전화는 늘 만원이었고, 숫자만으로 용건을 주고받을 수 있는 ‘3535(사모사모)’ ‘8282(빨리빨리)’ ‘1004(천사)’ 등 신종 숫자 암호가 신세대 사이에서 유행하기도 했다.
이 무렵에 개발된 것이 바로 시티폰 이었다.
시티폰은 당시 핸드폰과 똑같은 모양이었으나 전화를 걸 수만 있고 받을 수가 없는 것이 특징이었다. 호출기로 신호를 받으면 공중전화를 찾아 전화해야 하는 불편에 착안해서 언제든지 전화를 걸 수 있도록 만들어진 아이디어 상품이었다.
이 서비스를 준비하는 통신사들은 꿈에 부풀어 있었다. 호출기와 짝을 이뤄 인기를 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유행의 흐름을 잘못 판단한 것이었다.
당시는 PCS라는 새로운 통신 서비스가 시작되기 일보직전이었고, 이에 대항해 기존의 핸드폰 통신사들이 단말기를 염가에 공급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서서히 핸드폰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때였다.
시티폰을 서비스를 준비하던 업체들은 많은 사람이 호출기를 보유하고 있는 점을 들어 성공을 장담했으나 결과는 참담했다. 이미 핸드폰의 편리함을 익숙히 알고 있던 소비자들이 반쪽짜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티폰에 만족할 리 없었다.
돈을 더 주더라고 핸드폰에 가입하겠다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당황한 시티폰 업체는 단말기를 공짜로 나눠주며 홍보에 나섰지만 역부족이었다.
결국 시티폰은 서비스는 제대로 서비스 한번 해보지 못하고 주저앉고 말았다. 그리고 곧바로 핸드폰의 열풍이 불어 닥쳤다. 성인이면 누구나 한 개의 핸드폰을 가질 정도로 유행이 급격히 번진 것이다. 당연히 호출기 매출도 냉랭하게 식었다.
한때 호황을 누리던 호출기 서비스 업체들도 바로 곤경에 빠졌다. 새로운 업종을 개척한 기업은 기존에 벌어둔 돈으로 변신에 성공했으나 그렇지 못한 업체들은 속절없이 무너졌다.
모두 유행을 감지하지 못한 탓이다.
유행을 빨리 알아차리기 위해서는 부단히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신문이나 잡지를 통해서 새로운 경향을 계속 감시하고, 부단히 새 소식에 귀 기울이는 일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또한 젊은이들의 생각을 진지하게 경청하는 것도 중요하다. 요즘은 젊은이들이 유행을 만드는 세상이다. 그들이 무슨 음악을 듣고, 무슨 영화를 보며, 어떤 놀이를 즐기는지 찬찬히 관찰하자.
글 : 왕 연 중
(한국발명문화교육연구소 소장, 영동대학교 발명특허공무원학과 겸임교수)
(이메일 : wangyj39@dreamwiz.com 전화 : 011-890-85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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