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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과학과 발명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샘이 깊은 물은 가뭄에 마르지 아니하나니...
용비어천가의 시작부분이다. 단단한 근본 위에 국가가 번창하길 바라는 마음이 그대로 드러난 빼어난 문장이다.
이런 마음가짐 덕분인가? 조선왕조는 파란만장한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긴 세월동안 왕조를 유지할 수 있었다.
아마도 뿌리, 기초의 튼튼함을 중시하는 그 마음이 국가의 성장을 도왔을 것이다.
우리네 조상들이 가슴깊이 인식하고 있었듯, 만사는 모두 이런 원리에 따른다. 기초가 튼튼하면 감히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
레슬링 선수이건 양궁 선수이건, 축구 선수이건, 체조 선수이건 간에 트레이닝 과정에서 제일 중요시 되는 부분은 달리기 등의 기초 체력 훈련이다.
이 과정을 소홀히 하면 아무리 천부적인 소질을 가진 사람일지라도 제몫을 하지 못한다. 전 경기 내내 자신감을 가지고 버틸 수 있는 체력이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마치 뿌리가 잘린 거목과 같은 꼴이다.
피카소와 같은 추상화가도 착실한 기초 공부를 통해 화가로써의 길을 닦았고, 모짜르트라는 음악의 천재도 아버지의 헌신적인 음악교육이 있었기에 빛을 볼 수 있었다. 기초가 없는 천재란 생각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기초에 대한 인식이 더욱 철저해야할 과학 분야에서 이 진리가 무시되고 있다. 물리나 화학 등의 기초과학에 대해서는 경시하는 풍조를 보이면서 대신 환경공학이니 기계공학, 전산학 등에 열성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제 막 걸음마를 배운 녀석이 삼단뛰기를 시도하는 격이다.
이런 모순적인 상황은 모든 것을 경제적인 잣대로 재려하는 그릇된 풍조에서 비롯되었다. 빠른 시간 안에 이익을 얻어내려 하는 지나친 욕심으로, 기초과학은 너무나 비생산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순수과학은 돈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순수과학 경시풍조는 우리나라 같이 급격한 경제성장을 필요로 하는 경우에는 더욱 심각하다. 당장 먹고 살 일이 급하다보니, 막대한 자본과 시간이 필요한 기초 연구 분야에 소홀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사고방식은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단세포적인 것이다. 기초과학이야말로 가뭄에도 마르지 않고 솟아오르는 샘물 같은 것이다. 근대 발명사의 근간을 차지하고 있는 발명품들을 보더라도 기초과학의 바탕 없이는 불가능한 것뿐들이다.
루비나 사파이어의 주성분이 알루미나라는 것이 밝혀지자, 광산이 아닌 실험실에서 반짝이는 보석들을 만들게 되었다. 최고의 보석이라 불리는 다이아몬드도 합성이 가능하다.
이것은 모두 화학반응과 구성분자들을 밝히는 ‘화학’이라는 기본 지식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결과이다.
만약, 화학의 기초지식이 없으면, 알루미나를 산소와 수소 불꽃으로 녹이고 혼합물을 섞는 방법대신, 장미꽃잎과 향료, 달밤을 맞은 이슬 등을 사용해서 루비를 만들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중세의 연금술사들이 그러했듯이.
빈약한 기초지식으로 얻을 수 있는 이익은 매우 한정적이다. 처음엔 대번에 결과를 얻어 만족 할지 모르지만, 머지 않는 장래에 두터운 장벽에 부딪힐 것이다.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던 기업이 하루아침에 도산하는 것도 다 그런 이유에서 비롯된 것이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기업의 성장을 고려한다면 기초과학 연구에 소홀하면 안 된다.
그 좋은 예로 세계적 기업인 듀퐁사의 성공비결을 들 수 있다. 듀퐁사는 기초과학에 대한 아낌없는 지원으로 세계의 최강 기업으로 성장했다.
‘어느 누구도 간섭하지 않습니다. 마음껏 연구하십시오. 연구비나 시설은 얼마든지 제공하겠습니다.’
여타의 기업들이 눈앞의 이익을 챙기기에 급급하고 있을 때, 듀퐁사는 유수한 과학자들을 지원하며 먼 앞날을 내다보았다. 위대한 과학자 캐러더스도 바로 이 듀퐁사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연구에 몰두하였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그 유명한 나일론, 거미줄보다 가늘고 철선보다도 질긴 섬유라는 극찬을 받으며 전 세계를 풍미했던 작품이 한 기업의 적극적인 경영에 의해 태어난 것이다. 듀퐁사가 이 연구를 위해 지출한 비용은 자그마치 2,700만 달러 정도. 성공이 불투명한 일에 이토록 큰 비용을 대는 것은 다른 기업으로선 생각도 못할 일이었다.
그러나 듀퐁사는 무엇이 중요한지 잘 알고 있었고, 그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이 덕분에 오랜 동안 듀퐁사의 명성이 이어질 수 있었다.
기초과학은 모든 발명의 기본이며, 동시에 직접 활용이 가능한 분야이다. 유행에 휩쓸려 기본을 잊는다면, 절대로 성공을 기약할 수 없다.
사막여행을 하는 사람은 바쁘다는 핑계로 물을 준비 않고 떠나지는 않는다. 물이야말로 거친 사막에서 나의 생명을 지켜주는 존재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기초과학은 사막의 물과 같은 존재이다. 근본을 망각하고 준비를 소홀히 하여 생명을 버리는 우를 범하지는 않는지 다시 점검해보자.
글 : 왕 연 중
(한국발명문화교육연구소 소장, 영동대학교 발명특허공무원학과 겸임교수)
(이메일 : wangyj39@dreamwiz.com 전화 : 011-890-85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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