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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방과 창조의 차이
우리 사회도 이제 모방에 대해 불편한 시각을 갖는 사람은 없다. 모방이 제2의 창조라는 데에 모두 합의를 한듯하다. 다소 모방의 정도가 지나쳐 창조의 단계로 나아가지 못하고 멈추는 경우도 적지 않지만, 적어도 모방의 모자만 들어도 몸서리를 치는 알레르기 환자는 자취를 감춘 것 같다. 발명의 세계에 있어서는 다행한 징조라고나 할까. 왜냐하면 많은 발명의 성과들이 모방의 과정에서 탄생하였으므로.
모방은 예로부터 아이디어 창조나, 발명의 수단으로 활용되어 왔다. 아리스토텔레스도 모방이 창작의 근본이라 생각하고 ‘모방설’을 제창하기도 하였다. 하긴 굳이 아리스토텔레스를 들먹이지 않아도 모방에 대한 검증을 할 말한 자료는 얼마든지 있다.
아기가 가족과 주위 사람들의 대화를 듣고 이를 모방하여 언어능력을 키우는 것이나, 예술가들이 우선 대가의 작품을 보고 읽고 베끼는 작업을 통해 훈련을 하는 것들이 모두 포함된다. 어디 그뿐이랴? 음식솜씨도 어머니의 손맛을 모방하게 되고, 직장상사의 사무처리 능력을 그대로 배우기도 하고, 모델의 옷 입기에 주목 이를 흉내 내기도 한다. 어찌 보면 모든 생활사가 모방을 통해서만 습득되는 것만 같다.
아무리 천재인들 저 혼자 잘나게 살아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니. 음악의 신동이라는 모짜르트도 이전에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음계체계를 흉내 내지 않았다면 그의 천재성이 결코 후대로 이어지지는 못했을 것이다. 물론 발명 작업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서양의 역사를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는 와트의 증기기관 발명. 어느 별나라에서 뚝 떨어진 듯, 우리는 그 발명의 기억만을 가지고 있지만, 사실 그 위대한 발명 또한 모방의 산물이었다. 그것도 모짜르트와 악보의 관계 같은 다소 피상적인 것이 아니라 좀더 구체적인 것.
“여러분은 저를 위대한 발명가라 추켜세우시지만 사실 제 발명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제 증기기관은 뉴커먼의 것을 약간 개조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와트 자신이 밝힌 바와 같이 그의 발명은 영국의 기계발명가인 뉴커먼의 업적에 새로운 부분을 가미한 것뿐이었다. 그 새로운 부분이 획기적인 것이기는 했지만...
일본 자체 기술로 보일러를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십여 년을 보일러에만 매달린 다구마에게도 모방이 해결책이었다. 그는 낙후한 일본의 보일러 기술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우선 선진기술을 모방하고 배우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 보일러에 대한 기술을 끌어모아 분석하는 데 치중하였다. 그 결과 얻어낸 것이 바브콕의 기관과 코르니슈의 기관 등의 장점을 도입하여 완성한 ‘다구마 보일러’. 그는 이 모방의 대가로 국민적 영웅이 되었다.
어깨 끈이 없는 특이한 수영복 디자인으로 주목을 받은 미국의 디자이너도 모방이 비결이라고 스스럼없이 말했다. 어깨 끈이 없는 이브닝드레스의 디자인을 그대로 따온 것뿐이라는 것이다.
이런 신나는 모방의 경우에는 오히려 창조라는 말이 더욱 어울린다.
와트의 증기기관이 뉴커먼의 증기기관을 모방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그 나름대로의 독창성을 분명히 가지고 있다. 그 독창성, 새로움이 없었다면 산업혁명의 거대한 물결을 불러 올 수 있었을까? 다구마가 아무런 분석이나 고민 없이 단지 모방만 했다면 일본의 보일러 역사는 좀더 늦었을 것이 분명하다. 끈 없는 수영복과 이브닝드레스의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중요한 것은 모방을 통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그들의 저력이다.
잡지에 실린 이브닝드레스의 사진을 보고 수영복을 떠올리는 그 기발함, 좋은 것을 골라내어 완벽하게 이용할 줄 아는 응용력, 사물의 기능을 정확하게 진단할 줄 아는 판단력 등이 없었다면 그들의 업적은 불가능 했을 것이다. 어쩌면 조잡한 흉내 내기에 그쳤을 수도.
이처럼 모방을 발명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데에는 일정한 규칙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경기의 룰처럼 이 규칙을 어겼을 경우에는 퇴장을 당하거나 비판을 받게 된다. 남의 업적을 그대로 도용하여 자기 것처럼 사용하는 행위는 결코 허용될 수 없는 것이다. 창조성이 결여된 모방은 그 자체로 이미 생명력을 잃은 것임을 다시 한번 명심해야 한다.
모방은 창조라는 꽃을 피우기 위한 훌륭한 양분이다. 이 양분의 양을 조절하여 탐스러운 꽃을 피우는 것은 바로 정원사인 우리의 몫이다.
글 : 왕 연 중
(한국발명문화교육연구소 소장, 영동대학교 발명특허공무원학과 겸임교수)
(이메일 : wangyj39@dreamwiz.com, 전화 : 011-890-85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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