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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코너에 소개된 모든 글의 저작권은 저자인 왕연중 선생님(한국발명문화교육연구소 소장, 영동대학교 발명특허공무원학과 겸임교수, wangyj39@dreamwiz.com)에게 있습니다.
저자의 허락없이 무단전재나 재배포를 금지합니다.

제목 : 인류의 생활상을 바꾼 위대한 발명(주방용품 편)      

  인류의 생활상을 바꾼 위대한 발명(주방용품 편)

먹지 않고는 살 수 없는 것이 인간. 원시시대부터 주방 관련 제품은 타 제품에 비해 우선 발명되었고, 이는 지금도 예외가 아니다.
주방용품의 발명은 여성을 주방 노동으로부터 해방시켰고, 급기야 주방은 여성의 공간만이 아닌 시대를 열었다.
주방이 없는 집은 없다. 따라서 주방 용품만큼 시장이 넓은 발명품도 흔치 않다. 이 때문에 세계적인 발명가들이 주방 용품 발명에 뛰어들었고, 주방용품 발명가 중에는 세계적인 유명한 과학자도 있다.
반면에 우연한 발명도 있고, 대부분의 주방 용품은 오랫동안 주방의 주인이었던 주부보다는 남성들의 발명품이 주류를 이룬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세계 7대 주방용품 발명을 선정해 보았다.

  생산되자마자 100만개 이상이 팔린  토스터 발명
빵의 기원은 정확하지는 않다. 기원전 3000년경의 바빌로니아인들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효모를 넣은 희고 부드러운 빵은 서기전 2000년경에 이집트인들에 의하여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미 그 시절 빵의 품질을 높이기 위해 밀폐 형 오븐이 발명된 것이 이를 말해주고 있다.
토스터를 누가 언제 발명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지금까지 알려진 내용으로는 1491년 프랑스 사람 그라드가 발명했다는 설에 가장 무개가 실리고 있다. 그라드가 국왕에게 올린 이 식품은 그 맛이 뛰어나 국왕은 ‘세상에서 가장 비싼 황금보다도 뛰어난 맛’이라며 ‘토스트’라는 이름을 하사했다고 한다. 그런데 ‘축배와 행운을 빈다.’는 의미의 단어 토스트는 당시 국왕의 딸인 공주의 이름이기도 했다.
최초의 토스터는 미국 제너럴 일렉트릭 회사의 기술자였던 프랭크 셰일러가 1909년 발명하였다. 비록 셰일러가 발명한 토스터는 안에 빵을 넣은 후 알맞게 구어지면 손으로 돌려 빼야 하는 등 불편하기 짝이 없었으나 토스트를 즐겨먹는 사람들에게는 더 없이 반가운 손님이었다.
‘토스터 D-12’라는 이름으로 선보인 이 제품은 생산되자마자 미국에서만 100만개 이상이 팔렸고, 대서양 건너 영국 등 많은 나라에 수출까지 되는 등 그 인기는 가히 폭발적이었다. 그러나 그 인기는 오래 가지 않았다. 처음 선보인 탓인지 온통 결점 투성이였다. 무엇보다 빵을 빼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놓치면 새카맣게 타버리는 것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던 인기를 하루가 다르게 떨어뜨리고 있었다.
바로 이때, 이 결점을 개선하여 새로운 토스터를 선보인 사람이 찰스 스트라이트였던 것이다. 스트라이트는 미국 미네소타주 스틸워터의 작은 공장에서 일하는 평범한 공원이었다. 셰일러가 발명한  ‘토스터 D-12’라는 토스터는 커버 없이 전선들을 얼기설기 엮어 만들어 아무리 숙련된 요리사라 할지라도 타지 않은 토스트를 만들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내가 한번 다시 만들어볼까? 나도 기술자인데 해낼 수 있을 거야.’
생각이 여기에 이른 스트라이트는 그날부터 토스터 발명에 매달렸다. 평소 기계와 더불어 살아온 스트라이트에게 새로운 토스터의 발명은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1919년 어느 날 스트라이트는 스프링과 타이머를 결합시켜 적당히 구워지면 툭 튀어나오는 팝업 토스터를 만들었고, 최초의 자동 전기 토스터인 '토스트 마스터'는 1926년 워터스 겐터 회사에서 생산되었다.
이후에도 발명가들의 노력은 계속되어 빵을 굽는 동시에 수란을 만들 수 있는 토스터와 온라인으로 조정하는 토스터 등도 발명되어 생산되었다.

  6~7세기에 발명된 긴 역사를 가진 커피포트
지구촌의 제일 음료로 손꼽히는 커피는 그 역사도 깊어 6~7세기에 발명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커피가 이 처럼 대중 음료로 자리 잡게 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대표적인 것은 포트의 발명으로 그 맛과 향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커피의 역사가 긴 만큼 포트의 역사도 깊다.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포트도 존재했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렇다면 커피포트는 언제 누가 어떻게 발명했을까? 역사에 기록되어 전해오는 것 중에서 비교적 널리 알려진 내용으로 살펴본다.
가장 오래된 커피포트는 이브릭과 체즈베를 들 수 있다. 이 포트는 중동지역에서 커피문화가 자리를 잡으면서부터 사용되었고, 1664년 프랑스로 전해져 유럽에 전파되어 약 200년 동안이나 사용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래서 터키식이라고도 한다. 이밖에도 1763년 프랑스인 마틴이 발명한 드립포트, 1817년 영국의 비긴이 발명한 비긴포트, 1800년경 프랑스의 벨로이가 발명한 몸체가 2부분으로  나뉜 퍼콜레이더, 1840년 로버트내피어가 발명한 사이폰, 1882년 프랑스에서 발명된 에스프레소 머신, 1895년 안젤로 모리온도가 발명한 증기압을 이용한 커피포트,  1908년대에 독일의 평범한 주부 멜리타 벤츠가 발명한 드커피 필터, 1930년경 이탈리아에서 발명되어 1950년경 프랑스의 메리오르사(社)가 대중화에 성공한 프렌치 프레스 등 수없이 많다.
커피는 단숨에 전 세계로 전파되었고, 커피포트도 다양하게 발전하였다. 대표적인 것으로 진공포트를 들 수 있다. 누가 발명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1827년 독일의 물리학자 뇌렌뵈르그가 그린 그림에 소개되고 있다.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모카포트이다. 모카포트는 1933년 알폰소 비알레띠가 발명한 것으로 이때 나온 팔각형 알루미늄 재질의 포트는 지금도 출시되고 있는데 이후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많은 업체들이 생겨났고 재질도 알루미늄에서 스테인레스와 도자기 등으로 다양해졌다.
모카포트는 상하의 2개 부분으로 되어있으며, 아래 부분에 돌출된 너트가 달려있다. 너트 속에는 스프링이 있고 안쪽에는 쇠구슬이 있는데 과도한 압력을 소멸케 하는 안전 벨브다. 그리고 아래 부분 속에 커피를 담는 바스켓이 들어있다. 바스켓은 바닥에 구멍이 뚫려있고 아래 포트내부로 드리워진 도관이 있다. 아래 부분과 윗부분 사이에는 고무로 된 패킹이 있어 압력 손실을 방지한다. 한편, 최초의 용해성 인스턴트 커피는 1901년 일본계 미국인 사토리 가토가 발명했다.

  미국 해군이 전쟁 중 발명한 정수기
정수기란 물리적 화학적 방법으로 물을 걸러 불순물을 제거하는 기구를 말한다. 금수강산. 비단에 수를 놓은 것처럼 아름다운 산천이라는 뜻으로, 우리나라의 산천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이러다보니 물 또한 좋아 가는 곳보다 특급 자연수가 넘쳐흐르고, 약샘과 약수터 또한 수없이 많았다. 한 마디로 우리나라는 정수기가 필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산업사회의 발달과 함께 급기야 상수원까지 오염되면서 정수기가 등장하게 되었다. 우리나라는 이 처럼 정수기의 역사가 짧지만 다른 나라는 아니다. 정수기는 아니지만 정수의 역사는 기원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원전 2000년경 파키스탄과 인도에서 물을 정수하여 마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 기원전 1500년경 이집트에서는 정수에 약품도 사용했다.
먹는 물에 대해 가장 큰 관심을 가진 고대 사람은 히포크라테스였다. 그는 그때 벌써 사람들에게 물을 그대로 마시지 말고 정수하거나 끓여먹는 것을 권장했다고 한다. 정수하는 방법은 나라마다 조금씩 달랐다. 우리나라의 경우 가뭄이나 홍수 등 일시적인 자연재해로 물 사정이 좋지 않은 경우 숯과 모레 그리고 자갈 등으로 물을 정수하기도 했는데, 외국의 경우 주로 모레와 자갈을 이용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근대사회로 접어들면서 안전한 먹는 물의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시 되면서 정수기 발명이 요구되기 시작했다.
정수기를 처음 발명하여 사용한 것은 미국 해군이었다. 1940년대 초 미국은 일본과 태평양 전쟁을 치루고 있었다. 이때 해군들은 바다 한가운데에서 몇 달 동안 생활을 해야 했다. 배에는 일정량의 식량과 식수가 실려 있었다. 그런데 가장 부족한 것이 물이었다. 지금처럼 헬기 등 운송수단을 동원하여 물을 보급을 할 수 없게 되자 바다 가운데 배에 있는 해군들은 목욕과 세탁을 커녕 먹는 물조차 부족했다. 바로 이때 미국 해군은 모든 기술을 총동원하여 바닷물의 염분을 제거하여 담수로 바꾸는 장치 즉, 역삼투압식 정수기를 발명했다. 역삼투압식은 압력으로 물이 반투막을 통과하도록 하여 불순물을 걸러주는 방식이다.
정수원리는 자연여과식, 직결여과식, 이온교환수지식, 증류식, 역삼투압식 등으로 나눌 수 있는데, 세계 대부분의 나라가 역삼투압 정수기를 사용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의 경우는 80% 이상이 역삼투압식 정수기를 사용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가정용 정수기가 도입된 것은 1948년으로 미국에서 발명된 제품을 6.25전쟁 당시 미군이 사용한 것이 기록상 최초다. 이후 상품화된 것은 1968년도이지만 1980년대에 이르러 비로소 본격적으로 생산되기 시작했다.

 물리학자·수학자였던 파팽의 증기 압력솥 발명
전기밥솥이 70여년의 역사를 가진데 비해 증기 압력솥의 역사는 336년이나 된다. 전기밥솥은 밥이 주식인 동양의 일부 나라에서만 필요하지만 압력솥은 그 용도가 다양하고 특히 끓는점이 높아 잘 익지 않는 음식을 조리하기가 쉬울 뿐만 아니라 같은 시간에 더 많은 열이 음식물로 전달되어 더 빨리 요리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일찍 발명되었다 할 수 있다.
압력솥은 증기가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함으로써 압력이 높아져 요리시간을 줄일 수 있고 요리 과정에서 쉽게 파괴되는 비타민이나 무기질의 손실을 최소화 할 수 있고 연료도 줄일 수 있는 등 여러 가지 이점이 있다.
발명가는 물리학자인 데니스 파팽. 수학자이자 발명가이기도 했던 파팽은 증기기관의 개척자이기도 했다. 1647년 프랑스에서 태어나 1693년부터 파리에서 크리스티안 하위언스와 함께 일하면서 진공을 통해 동력을 얻는 데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1675년 영국으로 거처를 옮겨 1676년부터 1679년까지 영국의 화학자이자 물리학자인 로버트 보일의 조수로 일하게 되었다. 그 덕분에 런던에 있는 영국 최고의 자연과학학회인 로열 소사이어티에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게 되었다. 로열 소사이어티는 자연에 관한 지식을 보급하는 런던 왕립학회로 그곳을 출입할 수 있다는 것은 파팽에게 큰 기회이자 행운이었다.
파팽은 이때부터 액체 또는 고체로부터 증발하거나 승화하여 생긴 기체, 즉 증기에 관해 관심을 두기 시작했고, 1679년 압력솥을 발명하게 되었다.
파팽의 증기 압력솥 발명에는 보일의 힘도 컸다. 보일도 파팽도 증기기관 전문가였고, 파팽이 증기기관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보일의 영향이 컸다. 증기 압력솥의 원리를 확립하고 보일에게 자문을 구했을 때 큰 힘을 실어준 것도 보일이었다.
파팽의 압력솥 원리는 증기가 새어나가지 않게 하는 뚜껑을 만들고 찜통 내부에 압력을 주어 물의 비등점을 높이는 것으로 조리의 혁신을 가져왔다.
1680년 12월 8일 로열 소사이어티의 평의회 모임에서 증기 압력솥에 대해 설명했고, 참석자들은 연구보고서 발행을 권장했다. 당시에는 연구보고서 발행이 요즘 특허권과 같은 효력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증기 압력솥의 원리와 도면 그리고 조리방법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파팽은 직접 조리를 하며 증기 압력솥을 홍보하기도 했다. 이 공로로 파팽은 후일 왕립학회의 임시 실험 관리자로 임명되기도 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가마솥도 보기와는 달리 매우 과학적으로 제작되었다. 1679년에 파팽이 발명한 압력솥의 원리와 거의 같다. 따라서 우리나라가 1000년 이상 앞서 압력을 이용한 밥솥을 발명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아주 많다.

  음식을 밀폐상태로 포장할 수 있는 사란 랩 발명
무엇보다 음식을 간단하게 밀폐상태로 덮거나 싸서 신선하게 보관할 수 있는 랩. 주방 용품 중에서 랩만큼 유용한 물품도 흔치 않다. 그릇에 담아 뚜껑을 덮어 놓은 초기의 음식 보관법에 비하면 실로 획기적인 발명이라 할 수 있다.
랩이 발명되기 전에도 납지와 알루미늄박 등의 발명이 있었고, 이들 두 발명 역시 그릇에 뚜껑을 덮는 방법에 비하면 한결 편리한 발명이었다.
납지란 글라신페이퍼·모조지·크라프트지 등을 원지로 하고, 가열 용융한 파라핀을 한 면 또는 양면에 도피 또는 침투시킨 다음 냉각하여 마무리한다. 납지가 상품화되었을 때 주부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짧은 시간에 많은 양이 팔리기도 했다. 그러나 납지는 생각처럼 성능이 뛰어나지 못했고, 그러다보니 시간이 흐르면서 그 인기도 시들해졌다. 무엇보다 음식을 오랫동안 신선하게 보존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제대로 밀폐되지 않아 냄새도 차단할 수 없었다. 그릇에 잘 달라붙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성은 물이나 습기의 투과에 대하여 저항이 크지만, 파라핀이나 밀랍만을 사용했을 경우 꺾인 부분의 방습이 저하한다. 이런 결점을 제거하기 위하여 폴리에틸렌수지 등을 혼용한다. 
이 같은 문제점을 개선한 발명이 1947년 레이놀즈 메틸스가 발명하여 상품화한 알루미늄박이었다. 알루미늄박이란 알루미늄의 우수한 신전성과 내식성을 이용하여 알루미늄을 종이와 같이 얇고 판판하게  압연한 시트를 말하는데 두 가지 방법으로 생산되고 있다. 하나는 가열된 알루미늄 덩어리를 압력 하에서 로울 사이를 통과시켜 압연하여 원하는 두께로 제조하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연속적으로 주조하여 냉간 압연하는 방법이다. 알루미늄박의 특성은 미려한 금속의 전시효과가 있고 차광성, 수증기 차단성, 가스차단성 등이 우수하다. 특히 납지와는 달리 가장자리를 오므려 그릇을 감싸 밀폐성도 높일 수 있었다. 생산되자마자 폭발적인 인기였다.
알루미늄박보다 더 편리한 것이 없을 것이란 예상을 깬 것이 사란 랩의 발명이다.
사란 랩은 1939년 다우 케미컬에서 발명한 사란이 주원료다. 사란은 초록색 유성액체로 금속의 부식을 방지하는 방부제로 사용되었다. 실제로 미군에서 사용되기도 했다. 문제는 심한 악취가 나는 것이었다.
‘초록색과 악취만 제거한다면 훌륭한 발명품으로 변신할 수 있을 것이다.’
다우의 연구원들의 생각은 적중했다. 악취를 없애고 랩으로 만들자 기막힌 발명이 된 것이다. 음식을 거의 완벽하게 밀폐상태로 포장할 수 있는 사란 랩이 탄생한 것이다. 이때가 1953년. 사란 랩은 알루미늄박이 지키고 있던 1위 자리를 단숨에 차지했다.
상품화된 지 71년이 되어가지만 아직도 이 분야 왕좌를 지키고 있다.

 주방의 감초로 통하는 프라이팬 발명
어느 나라 주방에나 어김없이 비치되어 있는 프라이팬. 깊이가 얕고 한쪽에 손잡이가 있는 냄비의 일종으로 볶고, 굽고, 튀기는 것 등 용도는 다양하다. 한쪽을 익힌 후 다른 쪽을 익히기 위하여 냄비를 들어 올려 음식을 뒤집어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긴 자루가 달려 있다. 지름은 20~30 센티미터 정도 되며 기다란 손잡이가 있지만 뚜껑은 없다.
재료는 원래 무쇠 주물이 사용되었으나, 차차 사용하기 편리하고 위생적인 철 ·구리 ·알루미늄 · 스테인리스강 등의 제품이 만들어진다.
프라이팬의 역사는 매우 길다. 구리로 만든 프라이팬은 고대 메소포타미아 시대에 쓰였다. 프라이팬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도 쓰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팬은  고대 영어 ‘panna’에서 나왔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에 이미 삼짇날 진달래 화전을 지져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시대 전기의 기록에는 조리용구로 쓰인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많은 양을 부칠 때 농촌에서는 가마솥뚜껑을 뒤집어 놓고 부치기도 했다. 유럽에서는 1700년대에 북유럽 여러 나라에서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주방의 감초로 통하는 프라이팬처럼 더디게 발전한 기구도 흔치 않다. 눌러 붙지 않는 프라이팬이 1955년에 발명될 정도였다. 이 프라이팬이 발명되었을 때 주부들은 열광했다고 한다. 발명가는 프랑스의 마크 그레고리. 그레고리는 행운의 사나이였다. 1983년 듀퐁이 발명한 테플론을 이용하여 어렵지 않게 눌러 붙지 않는 프라이팬을 발명할 수 있었고, 그가 이 기구를 생산하기 위하여 설립한 회사 테팔은 지금까지도 세계 제일의 프라이팬 회사로 명성을 떨치고 있었다.
듀퐁은 애써 발명한 테플론을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1941년에야 특허를 받았고, 이후에도 프라이팬에 사용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 사이 그레고리는 우연히 테플론으로 산업용 알루미늄을 코팅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프라이팬 코팅을 시도해 보았다. 성공이었다. 1954년에는 특허도 받았다. 1956년에는 테팔이라는 회사를 설립하고 본격적인 생산에 들어갔다. 폭발적인 인기였다. 1년 사이에 자그마치 100만개가 팔릴 정도였다.
테플론을 발명한 듀퐁도 서두러 생산에 착수했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 시장에 ‘테플론 프라이팬’하면 ‘테팔’이라는 인식이 이미 뿌리를 내려버렸기 때문이었다.
한편 테팔은 2년 전에도 첨단 프라이팬을 발명하여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의 아가 쿠커 발명
분명히 하나의 주방 용품인데 각기 조리 온도가 다른 음식을 동시에 4가지 이상 조리할 수 있으며, 그 에너지도 석유, 전기, 등유, 경유, 천연가스, 프로판 가스 등 있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이뿐만이 아니다. 한번 가열하면 5시간 이상 열이 유지되고, 그 디자인 또한 뛰어나고 청소하기까지 쉽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 주방용품은 직화가 아닌 복사열로 각각의 위치에 조리법에 알맞은 최적의 온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고른 열원으로 조리되어 그 요리는 맛 또한 천하일품이다. 미래에 등장할 환상적인 주방용품 같은 생각이 들 정도이다.
그런데 이 신비의 주방용품은 1922년에 스웨덴에서 특허로 등록되었고, 1929년부터는 영국을 시작으로 가장 비싼 주방용품의 왕좌를 지키며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우리에게는 약간 생소한 이름이지만 ‘아기 쿠커(Agi cooker)'가 바로 그것이다.
그렇다면 이 신비의 주방용품 아기 쿠커의 발명가는 누구일까? 놀랍게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스웨덴의 물리학자 구스타프 달렌으로, 스웨덴 출신이며 기계기술에 대한 향학심으로 예테보리의 공업학교에 입학하여 1896년에 졸업하면서 기사의 자격을 취득하였다. 그 후  취리히공과대학에서 1년간 공부하고 귀국하여 열기 터빈 및 착유기 등의 수많은 발명을 하였다. 1906년에는 가스 어큐뮬레이터 회사의 기사장이 되어 폭발의 위험 없이 아세틸렌을 흡수하는 제품을 개발하여 가스 어큐뮬레이터의 자동조절기를 발명하였다.
이 자동조절기에 의하여  무인등대의 자동조명이 가능하게 되어 이 공로로 1912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그러나 다음해에 가스 폭발로 인해 장님이 되었으나 그는 결코 실망하지 않았다. 집에서 아내의 지극한 정성의 보살핌을 받으며 연구를 계속했다. 그때 아내를 위하여 발명한 것이 아기 쿠커였다.
‘이번 기회에 오로지 나를 위해 헌신해온 아내에게 발명으로 멋진 선물을 해야겠다. 오븐을 비롯하여 다양한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만능주방용품은 어떨까?’
비록 눈은 보이지 않았지만 달렌에게 이 정도의 발명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 연구는 눈이 보이지 않는 만큼 더디게 진행되었다.
1929년부터 영국에서 빛을 발하기 시작한 아기 쿠커는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인기가 상승하면서 1948년에는 10만대가 팔려나갔다. 네 개의 오븐으로 구성된 모델은 1987년에 선보였다.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아기 쿠커는 지금도 주방용품의 왕좌를 지키기에 손색이 없다 할 수 있다. (*)

     왕연중(한국발명문화교육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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