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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코너에 소개된 모든 글의 저작권은 저자인 왕연중 선생님(한국발명문화교육연구소 소장, 영동대학교 발명특허공무원학과 겸임교수, wangyj39@dreamwiz.com)에게 있습니다.
저자의 허락없이 무단전재나 재배포를 금지합니다.

제목 : 발명의 날의 유래      

*발명의 달 특집 발명이야기*

 발명의 날의 유래

 발명의 날 제정
5월은 발명의 달이고, 19일은 발명의 날이다. 발명의 날의 제정은 우리나라가 산업재산권(특허-실용신안-디자인-상표의 총칭) 출원이 세계 4위로 우뚝 서게 하는데 한 몫을 다했다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발명의 날은 언제 어떻게 제정되었을까?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발명 진흥을 위한 노력이 가시화되기는 했으나 특허행정 등 발명 기반은 아직 미약하기만 했다. 특허국(현 특허청) 인원도 1957년 15명, 1958년 14명, 1961년 19명에 불과했다. 조선발명장려회 등 단체의 활동 역시 발명에 대한 전 국민의 관심을 촉발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에 정부는 발명사상과 과학진흥정신을 고취하기 위해 연중행사의 하나로 발명의 날을 제정하기로 했다. 1956년 8월 15일 열린 제2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이승만 대통령이 취임사를 통해 발명의 날 제정을 약속하면서 속도가 붙었다. 즉 1957년 2월 22일 제 19차 국무회의에서 세종대왕의 측우기 반포일(1442년 5월 19일)을 발명의 날로 정했다.

 발명의 날 행사
우리나라 역사상 저명한 발명이나 발견의 날을 선정하기로 하면서 활자 발명의 날, 측우기 발명의 날,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 발명의 날이 후보에 올랐는데, 활자는 만든 날짜와 사람이 밝혀지지 않았고, 측우기는 서양보다 200년이나
앞섰으며 만든 사람도 날짜도 분명하므로 이날을 삼는 것이 타당하다는 결론이었다. 5월 19일 발명의 날은 1957년 2월 26일 상공부 고시 제256호로 공포됐다.

 
제1회 발명의 날 기념행사는 1957년 5월 20일(19일은 일요일) 상공부, 문교부, 교통부장관을 비롯해 당시 특허국장 등 5천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중앙청 광장에서 열렸다. 이날 기념식에서 이승만 대통령은 유시(상공부장관 대독)를 통해 “좋은 발명이 많이 나도록 정부와 민간에서 많이 도와서 우리나라를 발전시켜 나가는 데 다 같이 힘써 줄 것”을 당부했다.
지방에서도 도청 소재지 단위로 기념식을 개최했으며, 전국 각급 학교단위로도 행사를 개최했다.

 
서울사범대학교 합창단의 발명의 날 노래 합창이 있은 후 가마니 제조기를 발명하여 기업화에 성공한 유재철 등을 비롯한 발명품 기업화 및 우량상표 보유자에 대한 표창장을 수여했다. 1958년 제2회 행사에서는 기념식과 함께 5월 15일부터 6월 3일까지 시내 종로 화신백화점에서 발명품전시회(129점 출품)를 개최했다.
이같이 전국적으로 거행된 발명의 날 기념행사는 1959년 제3회 행사까지 계속됐다. 그러나 1960년에는 4·19 혁명으로, 1961년에는 5·16으로 인해 두 해를 거르고, 1962년 제6회 행사부터 1965년 제9회 행사까지는 제3회와 마찬가지로 한국발명협회 주최로 개최됐다.
1966년 제10회 행사부터 1972년 제16회 행사까지는 한국발명협회에서 명칭을 변경한 대한발명협회 주최로 개최됐는데, 1966년 제10회 행사 때는 제1회 과학기술자대회도 함께 개최됐다.
이후 정부는 1973년 3월 30일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대통령령 제6615호로 제정된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에 의해 발명의 날을 상공의 날에 통합했으나 1994년 3월 발명진흥법이 제정되자 매년 5월 19일에 정부 주도로 발명진흥연차대회가 열리기 시작했다.
특허청을 중심으로 발명특허의 중요성을 인정함으로서 비 법정 기념일임에도 불구하고 발명의 날 기념행사를 개최하고 국무총리가 훈-포장을 수여하는 등 그나마 발명의 의미가 퇴색되지 않도록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발명진흥법의 규정에 따라 1995년부터는 발명의 날 기념행사를 ‘발명진흥 연차대회’ 형식으로 특허청이 주최하고 한국발명진흥회가 주관해 진행하게 됐다.
1995년 5월 19일 세종문화회관에서 개최된 제30회 발명의날 기념 발명진흥 연차대회에는 이홍구 국무총리를 비롯해 600여명의 관계자가 참석한 가운데 기술선진국을 향한 결의를 다졌다.

 
이 자리에서는 발명진흥에 공이 많은 유공자-우수특허 관리업체 및 우수 발명반 운영학교 및 교사 등에 대한 포상이 있었는데 3명의 금탑산업훈장 수훈자를 배출해 발명진흥 원년의 의미를 더했다. 발명계에  3개의 금탑산업훈장을 수여한 것은 헌정사상 처음 있었던 일로 정부가 국가경쟁력 제고를 위한 산업재산권 보호와 국가경영 전략으로서 발명진흥에 대한 강한 의지를 표명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발명의 날의 부활
발명의 날을 부활하려는 발명인들의 노력은 끊임없이 계속됐다. 국민의 뜻을 모은 서명운동과 탄원서 등을 통해 관계 부처에 발명의 날 부활을 건의한 것은 물론 기술혁신의 근간이 되는 발명활성화를 이루기 위해 노력했다.
특허청은 발명진흥법 제정 이후 처음 맞는 1995년 5월을 발명의 달로 정해 각종 대회와 세미나-발표회 등을 개최함으로서 국민적 발명 붐의 조성을 유도했다. 그러나 발명인들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았다. 특허청을 필두로 발명관련 단체 및 발명가들의 발명의 날을 법정기념일로 부활시키기 위한 건의가 계속됐다.
그동안 정부 및 국회에 올린 탄원서만 해도 30회가 넘었고, 서명운동 및 언론 홍보도 수없이 펼쳤지만 만족할 만한 답변을 얻지 못했다. 그래도 발명가족은 끈질기게 발명의 날 부활에 최선을 대했다.
이 같은 노력의 노력이 결실의 기미를 보이기 시작한 것은 1998년 4월 특허청 당정협의에서 정부여당이 긍정적인 반응과 관심을 보이면서다.
특허청은 지속적으로 정부와 국회를 대상으로 발명의 날 부활의 당위성을 강조했고, 발명관련 단체들이 뜻을 모아 국무총리실과 행정자치부 등에 탄원서를 제출하는 등 실로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결과 행정자치부로부터 가시적인 회신을 받을 수 있었다. 즉 발명진흥법을 개정해 발명진흥 연차대회를 발명의 날로 명칭을 변경, 법정기념일로 지정하는 방안이 바람직하다는 회신이었다.
이에 따라 특허청을 중심으로 발명진흥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고, 1999년 1월 5일 국회를 통과해 2월 5일 정식 공포됨으로서 1973년 상공의 날에 통-폐합된 지 26년 만에 5월 19일 발명의 날은 법정기념일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발명의 노래’의 탄생
정부는 1957년 5월 20일 제1회 행사는 중앙청 광장에서 성대하게 개최했다.그런데 당시 모든 기념행사에는 그 기념일을 상징하는 노래가 있었다. 3·1절엔 3·1절 노래, 광복절엔 광복절 노래 등등. 따라서 발명의 날 행사를 위해서는 ‘발명의 노래’가 필요했다.

 
정부는 특허국에 전 국민을 대상으로 발명의 노래를 현상모집 하도록 했다. 그 결과 모두 57점의 발명의 노래가 응모되었다. 주옥같은 작품들이었다. 서둘러 심사에 들어갔다. 그러나 당선작이 나오지 못했다. 정부 행사의 노래 가사로 활용에는 약간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행사는 눈앞으로 다가오는데 큰일이었다. 당시 이 승만 대통령까지 큰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행사인데 기념 노래도 없이 행사를 개최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에 정부는 조지훈 시인에게 작사를, 김동진 작곡가에게 작곡을 부탁했고, 이들은 지금의 발명의 노래를 탄생시켰다.
한편 응모작 57점의 발명의 노래가 실린 자료는 필자가 어렵게 찾아내 소장하고 있다.

 제1회 발명의 날 기념 우편물

     
한편  이때 기념우편물이 발행되었다는 기록에 접한 필자는 수년 동안 이를 찾아 나섰으나  찾을 수 없었다. 그런데 2016년 11월 지인으로부터 제보를 받고 마산까지 달려가 촬영하는데 성공했다. 1957년 제1회 발명의 날 기념 우편물도 찾았다.

왕연중(한국발명문화교육연구소장/前유원대학교 발명특허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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