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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연중의 발견이야기

본 코너에 소개된 모든 글의 저작권은 저자인 왕연중 선생님(한국발명문화교육연구소 소장, 영동대학교 발명특허공무원학과 겸임교수, wangyj39@dreamwiz.com)에게 있습니다.
저자의 허락없이 무단전재나 재배포를 금지합니다.

제목 : 하늘과 땅의 신비를 밝혀낸 발견 10선      

발명의 달 특집

  하늘과 땅의 신비를 밝혀낸 발견 10선

        인체에서 발견된 것
            세포
 사람은 누구에게나 호기심이 있어서 무언가 들여다보기를 좋아하고, 궁금증을 갖기도 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떤 사물에 대해 궁금증이나 의문을 가졌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곧 잊어버리거나 그냥 지나쳐 버린다.
 반면에 의문이 생기면 끝까지 파고들어 관찰하거나 조사하는 사람도 있다.
 세포를 발견하게 된 영국의 로버트 훅도 무엇이건 들여다보기를 좋아하는 호기심이 많은 청년이었다.
 그는 과학에 남다른 흥미를 가지고 있어서 공기나 화석을 연구하고, 사물을 자세히 관찰하기 위해 스스로 렌즈를 갈아서 현미경을 만들어 닥치는 대로 들여다보고, 확대한 모양을 그림으로 그리기도 했다.

 

 “흐음, 꿀벌의 침, 파리의 눈과 다리, 빈대, 거미의 모양을 보았으니 오늘은 이끼의 털의 구조를 볼까?”
 그렇게 현미경과 친구가 되어 여러 가지 동식물을 관찰하던 그가 1665년 어느 날, 코르크 조각을 잘라 들여다보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이야, 이건 꼭 작은 방들 같네!”
 코르크 조각을 관찰하던 그는 혼자서 탄성을 질렀다. 그리고는 다시 작은 식물을 현미경으로 관찰하다가 식물 역시 코르크와 마찬가지로 작은 방들로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오, 모두 이 작은 방들로 구성되어 있어. 이 작은 방을 세포라고 부르자.”
 이 세포가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훅은 그 자신 생물학을 전문적으로 연구한 사람이 아니어서 세포의 의미를 확실하게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식물이나 동물의 몸이 모두 세포라는 단위로 구성되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세포에 관한 최초의 관찰은 이렇게 훅에 의해 시작되었고, 그로부터 시간이 흐름에 따라서 동식물의 복잡한 구조는 연구에 의해 점점 드러나기 시작했다.
 훅이 세포를 발견하고 200여년이 지난 후, 독일의 슈반이라는 학자는 뼈나 신경 및 근육이 형성되어 가는 것을 연구하다가 이 모든 것이 세포로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했으나 발표하기를 꺼려하여 혼자만 간직하고 있었다.
 1831년, 영국의 로버트 브라운은 식물표피의 세포 속에 작은 알맹이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핵이라 불렀으며, 그 후 여러 식물의 다른 구조 속에서도 핵이 있다는 것을 발표했다.
 독일의 식물학자 슐라이덴이 슈반을 만나 서로의 연구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누게 될 기회를 갖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슐라이덴, 당신의 연구실에 가서 세포에 관련된 여러 가지 사실을 확인하고 싶은데요.”
 “좋습니다. 슈반!”
 그들은 식물이 자라는 모양을 관찰하며, 식물은 세포가 모여서 이루어졌고, 식물이 성장하는 것은 세포가 늘어나기 때문이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슐라이덴은 1838년 ‘식물의 발생에 관하여’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슈반의 뼈의 발생이나 과정을 연구하여 동물의 몸도 세포로 구성되어 있음을 1839년‘동물과 식물의 구조 및 생자에서 볼 수 있는 일련의 현상에 관한 현미경적 연구’라는 논문을 통해 세상에 알렸다.
 슈반과 슬라이덴의 세포설에 반대하는 학자도 있었으나 이것은 점점 사실임이 입증되었다.
 “동물의 알도 단지 하나의 세포일 뿐입니다.”
 “달걀은 굉장히 큰데, 그렇다면 세포가 그렇게 크단 말입니까?”
 “아닙니다. 그것은 세포에 양분이 많이 들어있기 때문이지요.”
 세포의 구조에 관하여는 정확한 사실에 바탕을 두지 못했으나, 세포설은 생물학의 발전에 증대한 역할을 했다.
 1844년, 독일의 H 본 몰은 ??모든 세포는 세포의 분열에 의해 발생하며, 세포를 만들고 있는 물질은 원형질이다.??고 밝혔다
 1854년 비르효는 ??모든 세포는 세포에서 생긴다.??고 주장했고, 1861년 슐체는 ‘세포는 핵 안의 원형질로 만들어 진 것이다.??고 정의했다.
 이로써 생물의 성장은 세포분열로 이루어짐을 믿게 되었다.

           혈액순환  
 요즘은 사람이 죽는 것도 예사로 여기고, 시체를 해부하는 것도 보통으로 생각한다. 심지어 초등학생까지도 해부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를 안다.
 그러나 과거에는 인간의 몸에 칼을 대고 해부한다는 것은 생각조차 힘들었고, 만약 교황청 몰래 해부했다 하면 화형을 당했다.
 그렇다면 인체의 신비는 어떻게 밝혀졌고, 의학은 어떻게 해서 발달했을까?
 기원전 300년 경, 로마의 가레노스라는 과학자가 쓴 의학서적에는 “심장에서 나온 혈액은 몸속으로 들어가고, 간장에서는 새로운 혈액을 만들어 심장에 보낸다.”고 적혀 있었다.
 사람들은 1550년까지도 이 설명을 철석같이 믿고 있었고, 만약 이의를 제기하면 박해와 벌을 가했다.
 스위스의 세르베토라는 학자가 가레노스의 책에 있는 심장에 관한 설명에 정면으로 도전했다.
 “혈액은 심장으로부터 나와서 심장으로 되돌아간다.”
 세르베토는 교황청 몰래 인간의 시체를 해부하여 가레노스의 잘못된 이론을 확인하였으나, 결국 화형을 당했다.
 벨기에의 베잘리우스라는 학자도 시체를 몰래 해부하여 연구하고, 가레노스의 이론이 틀렸다는 것을 밝히고는 박해를 피해 벨기에를 떠나 버렸다.
 그러다가 시일이 흐르면서 세르베토나 베잘리우스의 설명에 수긍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교황청의 세력이 점차 약해져 시체의 해부를 수월하게 할 수 있게 되었다.
 이탈리아의 파두아 대학은 유럽의 학문 중심지로서 세계적인 과학자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이 파두아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하던 윌리암 하비의 머리 속에서는 큰 의문이 떠나지 않았다.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심장과 폐는 잠시도 쉬지 않고 움직이는데 어떻게 해서 이렇게 움직일까?”
 하비는 파두아 대학을 졸업한 후 고국으로 돌아와서 켐임브리지 대학의 의학교수가 되었다. 그러자 그는 학생 때 품었던 의문을 풀기위해 심장과 혈액의 관계를 밝히기 위한 연구를 시작했다.
 사람의 시체를 해부하고, 동물도 해부하여 심장에서 나오는 동맥과 정맥이 나뭇가지처럼 뻗어있는 것을 조심스럽게 관찰했다.
‘심장의 좌심실이 한 번 오므라들면 그 안의 혈액이 모두 밀려나오고, 반대로 불어나면 혈액이 흘러들어와 가득 차는군. 그런데 이렇게 많은 혈액이 심장에서 나오는데 사람의 몸무게가 조금도 변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곰곰 생각하던 그는 번뜩이는 한 가지 생각에 호흡이 멎는 것 같았다.
??혹시, 동맥의 피와 정맥의 피가 서로 같은 것이 아닐는지???
 하비는 그의 생각을 증명하기 위해서 토끼, 개구리, 들쥐들을 해부하여 관찰하기로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비는 우연히 자기의 팔목을 구부려 보다가 동맥이 톡톡 튀는 것을 느끼고 다른 손으로 눌렀다.
 ‘어? 파랗게 혈관이 불어났군!??
 그는 이상한 생각에 같은 행동을 반복해 보고, 끈으로 팔을 묶기도 했다.
‘팔 아래가 파랗게 변했군. 기운도 없어지고. 이것은 분명 동맥의 혈액이 순환하지 못하는 탓이야!’
 그는 다른 사람의 팔에 대해서도 실험해 보고, 개구리의 혈관에 대해서도 실험해 보았다.
 “동맥의 혈액은 심장의 강한 혈액이 모두 밖으로 흘러 나와 버려 곧 죽게 되고, 인체에 영양이 공급되면 혈액으로 변하며, 혈액 때문에 체온이 유지된다.”
 그는 13년간 인체에 대한 연구와 실험을 되풀이 하다가 1628년 그의 연구결과를 독일에서 발표하였다.
 이렇게 해서 인체생리학의 기초가 되는 혈액순환의 이론이 하비에 의하여 처음으로 발견된 것이다.
 관찰과 실험은 과학의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실증하고 실천한 하비는 진리 탐구를 위해 생명도 아끼지 않은 용감한 과학자 중의 한 사람으로서 오늘날까지 우리에게 교훈을 남기고 있다.


     각종 법칙과 원리 등에서 발견된 것
          만유인력
 쇳덩이, 나무, 새의 깃털 등 무거운 것이나 가벼운 것이나 위에서 떨어뜨리면 모두 밑으로 떨어진다.
 왜 모든 물체는 땅에 떨어질까?
 그리고 왜 무거운 것일수록 빨리 떨어지고 가벼운 것은 천천히 떨어질까?
 아리스토텔레스는 무거운 물체는 가벼운 물체보다 아래쪽으로 빨리 떨어지는 성질이 있어서 빨리 떨어진다고 했고, 그래서 사람들도 처음에는 그렇게 믿었다.
 그런데 이 학설에 의문을 품은 사람이 있었다. 바로 피사의 사탑이 있는 이탈리아 피사대학의 갈릴레오 갈릴레이 교수다.
 “자, 여러분! 제 손에는 무게가 각각 다른 두 개의 금속이 있습니다. 어느 것이 먼저 떨어질까요?”
 아리스토텔레스의 학설대로라면 무게가 각각 다르니까 무거운 것부터 떨어져야 옳다. 그러나 갈릴레이의 실험 결과, 두 금속은 똑같은 시간에 동시에 땅에 떨어졌다.
 “자, 이제 알았지요? 무거운 물체나 가벼운 물체나 조금도 틀리지 않고 같은 시간에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나뭇잎이나 새의 깃털처럼 가벼운 것이 천천히 떨어지는 것은 그 물체가 가벼워서가 아니라 공기의 저항이 떨어지는 물체를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공기의 저항?”
  “그렇지요. 물체가 아래로 낙하하는 것은 지구 자신의 위에 있는 물체를 그 중심으로 끌어당기는 힘 때문입니다. 이것이 중력입니다.”
  

그러니까 공기의 영향을 받지 않는 곳 즉, 진공상태에서는 돌멩이나 나무, 새의 깃털, 금속 등이 모두 동시에 낙하한다.
 이 위대한 실험을 피사의 사탑에서 보여준 갈릴레이가 1642년 세상을 떠나던 해, 영국의 한 농가에서는 아이 잭 뉴턴이라는 아기가 태어났다.
 뉴턴은 태어나기 몇 달 전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다가 어머니마저 재혼하는 바람에 외할머니와 함께 병약한 소년으로 성장했다.
 “애야, 내가 돌아왔다.”
 뉴턴이 14살 되던 해, 그의 어머니는 다시 돌아와 그와 함께 살게 되었지만 뉴턴은 우울한 환경 때문이었던지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것보다 혼자서 자연현상을 관찰하거나 해시계와 물레방아 등 여러 가지 기계들을 만들며 놀았다.
 동네 아이들은 그런 뉴턴을 바보, 목수라고 놀렸다.
 그가 16살이 되던 해, 바람이 세차게 부는 어느 날이었다.
 뉴턴은 혼자서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뛰어보고, 반대방향으로 뛰어 보고, 제자리에서도 뛰어보았다.
 “이상하다. 지구에 중력이 있어서 뛸 때 몸이 곧바로 제자리에 떨어지는 것은 알겠는데, 바람의 힘이 세다고 해서 중력을 방해할 수 있다니?”
 뉴턴이 뛰는 모양을 보고 지나가던 농부는 그를 정신이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교회의 목사인 그의 외삼촌은 뉴턴의 남다를 재능을 발견하고 케임브리지 대학에 그를 입학시켰다.
 그가 24세가 되던 해, 유럽 전역을 휩쓴 무서운 페스트가 영국에도 침입했기 때문에 대학도 휴학하게 되어 뉴턴은 고향에 돌아와 태양광선의 연구를 하고 있었다.
 그러던 1666년 가을 어느 날, 집 앞 뜰에 앉아 생각에 잠겨있던 그의 눈앞으로 잘 익는 사과 한 개가 떨어졌다.
 ??갈릴레이의 피사의 실험을 생각나게 하는구나. 사과가 땅에 떨어지다니. 왜 사과는 땅에 떨어지는 것일까?
 다음 순간 그의 머릿속으로 한 생각이 급히 지나갔다.
 ??지구에 중력이 있어서 물체를 잡아 다니는 힘이 있다면, 사과 쪽에도 그런 힘이
있어야 하지 않나???
 뉴턴은 지구뿐만이 아니라 다른 어떤 물체에도 물체를 잡아 다니는 힘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연구를 시작하여 마침내 그의 나이 42세가 되던 해, 이 이론을 완성했다.
 지상에서 물체가 낙하하는 것은 중력 때문이며, 이 힘은 지구와 달의 사이에도 작용하고, 이러한 힘을 우주 전체의 모든 물체에 적용시켜 만유인력이라고 부른다.

         상대성 원리 
 앨버트 아인슈타인하면 어린이들 까지도 그가 누구인지 안다.
 그는 과학자요, 평화주의자이며 음악가, 자연을 남달리 사랑한 특별한 사람이다.
 그가 이렇듯 유명한 사람이 된 데는 이유가 있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아이슈타인은 독일에서 유태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철이 들기도 전부터 유태인에 대한 조롱과 멸시 속에서 가난과 싸우며 살아야 했다.
 “유태인들은 악당이야. 놀지도 마!”
 친구들과 사회로부터 천대를 받을수록 아인슈타인은 유태인의 긍지를 잃지 않고 열심히 공부하겠다는 결심을 굳혔고, 쓸쓸할 때면 어머니로부터 배운 바이올린을 연주하며 외로움을 달랬다.
 그의 고달픈 환경은 후에 그가 대 물리학자가 된 다음에도 평화주의자가 되어 인류를 위한 봉사에 이바지하게 했다.
 유달리 수학을 좋아했던 그는 1900년 가을, 취리히 공과대학을 우등으로 졸업하여 수학과 물리학 교사 자격증을 받았으나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어느 학교에서도 취직을 할 수 없었다.

 
 가정교사로 역경을 참고 견디던 그는 후에 스위스 국적을 얻어 특허청에서 일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겉보기에는 평범한 직원이었지만, 퇴근하면 집에 도착하기 무섭게 연구에 몰두했다.
 “뉴턴의 법칙은 어떤 공간에서는 그릇되고 있어.”
 지구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태양의 주위를 돌고 있는데, 지구의 이 운동이 빛의 속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조사한 미국인이 있었다. 조사 결과 빛의 속도는 지구운동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분석이 나왔으나 이 사실을 설명할 방법이 없어 많은 학자들이 고심하고 있을 때, 아인슈타인도 이 문제 해결을 위해 복잡한 계산을 시작했다.
 아인슈타인은 자기의 연구가 진행됨에 따라 당시 사람들이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던 뉴턴의 고전역학의 일부가 어떤 공간 운동에서는 오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905년 그는 드디어 자신의 연구를 독일의 학술잡지에 발표하게 되었다.
 “특수상대성원리는 빛의 속도, 물체의 길이 또는 시간, 물체의 운동에 대한 설명의 근본 원리를 말합니다.”
 이 상대성원리는 너무 복잡하고 오묘한 수식으로 되어 있어서 그가 천재적인 두뇌로 밝혀내기 전에는 아무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의 연구가 발표되자 많은 학자들이 처음에는 잘 믿으려하지 않았으나, 유명한 과학자들 중에는 관심을 갖기 시작하는 사람도 있었다.
 아인슈타인은 자기의 학설을 실제로 실험하여 관찰할 기회를 기다렸다.
 1912년 그는 취리히 공과대학의 교수가 되어 연구를 꾸준히 했고, 2년 후에는 빌헬름 연구소의 물리학 부장이 되었다. 그러는 동안 연구에 열중하여 다시 한 번 세계를 놀라게 했다.
 바로 일반 상대성이론을 발표하였다.
 1919년 남아프리카에서 개기 일식을 볼 수 있게 되었는데, 마침내 그의 이론을 입증할 기회가 온 것이다.
 “그러니까 태양은 아주 큰 인력을 가지고 있는데, 태양이 달에 가려서 검게 되었을 때 빛의 운도에 변화를 볼 수 있단 말이지요?”
 “그렇다니까요. 만약 별빛이 태양 옆을 지나올 때 약간이라도 구부러지면 아인슈타인의 이론이 맞는 겁니다.”
 그러자 그 해 5월 28일, 영국의 천문학자인 에딩턴은 남아프리카에 가서 개기일식을 세밀히 관찰하며 촬영을 했다.
 “과연 아인슈타인의 이론처럼 빛이 인력에 의해서 구부러질까?”
 결과는 별빛이 태양의 옆을 지나면서 분명히 굴절되는 것이 확인 되었다.
 “와, 아인슈타인은 정말 천재군.”
 “어쨌든 그의 상대성원리의 정당성이 증명된 셈이야!”
 이 시기에 러더퍼드의 연구에 의해서 원자의 구조가 점점 밝혀지게 되면서 아인슈타인의 이론을 발전시키면 원자핵을 파괴할 때 막대한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 알려졌다.
 대 폭발력의 위력의 가진 원자탄의 발전도 사실은 그의 이론을 응용한 것이었다.
 고난과 압박과 학대 속에서도 굴하지 않은 한 인간의 긍지와 노력의 소산이다.


         공기에서 발견된 것
             산소
 옛날 어느 왕이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작은 다이아몬드 조각들을 손에 들고 이렇게 말했다.
 “이 작은 다이아몬드들도 좋지만 하나의 큰 다이아몬드라면 더욱 빛이 영롱하고 좋을 텐데......”
 그래서 왕은 궁리 끝에 다이아몬드를 모두 모아서 유리처럼 녹여 큰 다이아몬드로 만들기 위해 열을 가하였다.
 어떻게 되었을까?
 “폐하, 모두 하얀 재로 변해버렸습니다.”
 “무엇이라고? 왜 그렇게 되었지?”
 반짝이던 다이아몬드였지만, 숯과 같이 탄소라는 원소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강한 열을 가하면 타버린다는 것을 어리석은 왕이 미처 몰랐기 때문이다.
 탄소나 산소 등의 원소가 발견되기 전의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이 원소들을 어떻게 해서 사람들이 발견하게 되었을까?
 1767년 가을날, 영국의 리즈라는 마을에 큰 양조공장이 있었는데 포도를 발효시키는 과정을 유심히 관찰하는 사람이 있었다.
 “프리스틀리 목사님 아니세요! 뭘 그렇게 열심히 들여다보고 계세요?”
 지나가던 직원의 말에 그가 대답했다
 “저 거품 말입니다. 저 것을 좀 떠가도 되겠습니까?”
 직원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시원스럽게 말했다.
 “거품이라고요? 얼마든지요.”
 프리스틀리는 발효 통에서 발생하는 거품을 떠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의 집에는 여러 가지 실험기구들이 즐비하게 놓여 있었다. 그는 발효 거품 말고도 여러 가지 기체를 모으는 방법을 연구하여 물에 녹기 쉬운, 그때까지 사람들이 모을 수 없었던 암모니아 가스나 염산의 증기를 병 속에 모았다.
 그리고 그는 기체를 모으기 위해 여러 고체의 물질을 가열하여 어떤 기체가 발생하는지를 실험했다.
 “음, 수은을 공기 속에서 세게 가열했더니 점점 붉은 색을 띠기 시작하는군. 다음에는 어떻게 될까?”
 가열된 수은은 결국 붉은 가루가 되었다. 그리고 다시 가열하자 본래의 수은이 되는 것이었다.
 이 현상에 관심을 갖게 된 그는 거품 속에 어떤 기체가 있지 않을까 생각하여 실험을 계속하였다.
 그 결과 프리스틀리는 어떤 물질을 보통의 공기보다 불에 잘 타게 하며, 동물이 그 속에서 더 오래살 수 있게 하는 기체를 발견해냈다.
 “이 새로운 기체를 ‘플로지스톤을 잃어버린 공기’라고 부르자.”
 1774년 8월 1일의 일이다.
 그리고 2개월 후인 10월 어느 날, 프랑스를 방문한 프리스틀리는 그의 발견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이 설명을 들은 프랑스의 앙트와느 라브와지에는 ‘연소라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연구를 하고 있었는데, 프리스틀리의 연구결과에 힘을 얻어 새로운 기체에 대한 연구를 계속했다.
 “드디어 찾았다! 공기 속에서 물질을 잘 태우는 이 성분, 바로 이거다.”
 라브와지에는 이 기체에 ‘산소’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그는 이 산소가 공기의 5분의 1정도의 부피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도 밝혀냈다.
 다이아몬드나 인이 타는 것도 모두 이 산소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생물이 살아가는데 이 기체가 없으면 생명을 유지할 수가 없다.
 라브와지에는 동물의 호흡에 산소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확실하게 관찰하고 입증했다. 그는 또 호흡은 일종의 연소현상이며 동물체의 일정한 온도는 산소와 피 속의 탄소물질의 결합에 의해 방출되는 열로 유지되는 것이라 설명했다.
 그는 1789년 ‘화학요론’이란 책을 출간하여 ??원소란 분석이 도달할 수 있는 최후의 점??이라 정의하고, 33종의 원소를 선정하여 새로운 화학용어로 표를 만들기도 했다.
 산소의 발견은 근대 화학혁명의 주춧돌이 된 것이다.

         수소
 처음 발견될 당시에는 ‘불에 타는 공기’로 불리었던 수소.
 21세기 새로운 연료로 각광받는 수소는 누가 언제 어떻게 발견 했을까?
 발견자는 영국의 화학자 캐번디시.
 그는 영국의 명문 귀족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느 학자보다도 부자였고, 많은 부자들 중에서도 으뜸가는 화학자라는 말을 들었다. 아무 걱정 없이 연구에만 몰두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인지 그는 돈과 명예에는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특히 그는 내성적이고 사람을 싫어하는 성격이어서 세상을 피해 런던에 있는 자신의 연구실에서 혼자 연구에 몰두했던 별난 성질의 화학자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사실 금속에 황산을 끼얹으면 수소가 빠져 나온다는 수소의 정체는 영국 과학자 로버트 보일과 벨기에의 과학자 판 헬모트 등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들은 불에 타는 공기를 용기에 모아서 그 성질을 구체적으로 연구하지는 않았다. 그러므로 그 정체를 처음 밝힌 캐번디시가 수소의 발견자로 기록되고 있는 것이다.
 ‘금속에 황산을 뿌린 뒤에 빠져 나오는 거품은 무엇일까?’
 그는 곧 가지고 있는 금속에 산을 뿌리고 빠져 나오는 기체를 모아 보았다. 그렇지만 그 기체는 석회수 속에 넣어도 석회수를 하얗게 바래지도록 하지는 못했다.
 ‘고정 공기라면 양초의 불을 넣어도 꺼질 테지.’
 그렇게 생각하고 그 기체 속에 촛불을 접근시켜 보았다. 그랬더니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 불은 꺼지기는커녕 순식간에 타면서 번지는 것이었다.
 ‘이것은 대발견이다. 이산화탄소나 보통 공기와는 다른 새로운 기체를 발견한 것이다.’
 순간 그렇게 생각한 그는 염산이나 황산 속에 철, 주석, 아연 등 연달아 금속을 넣고 빠져 나온 기체를 모아서 그 성질을 분석해 보았다.
 그 결과는 어느 것도 마찬가지였다. 모두 불에 타는 기체가 빠져나온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이 공기를 보통 공기와 여러 가지의 비율로 섞어서 불을 켜 보았다.
 조용히 불타는 때도 있었지만 폭발을 일으키는 때도 있었다.
 ‘불에 타는 공기라...’
 그는 이 공기에는 그 자신이 불에 타는 성질이 있으므로 ‘불에 타는 공기’라는 이름을 붙여 발표했다. 1766년의 일이다.
 드디어 수소라는 기체가 발견된 것이다.

        하늘에서 발견된 것
            성층권
 높은 산에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추워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우리가 지구상에서 높이 올라갈수록 기온은 점점 내려만 가는 걸까? 더욱 높이 올라가면 어떻게 변화할까? 사람들의 이에 대한 궁금증은 고대에도 있었든지 희랍시대부터 구름의 높이에 대하여 여러 가지 설명이 있었으나, 구름의 높이는 6,300미터 정도 이상으로는 생각하지 못했다.
 사람들의 대기권에 대한 관심은 18세기 후반부터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서 연이나 기구를 이용하여 탐사를 시작했다.

    

“형, 저 하늘의 구름 위에는 뭐가 있을까? 정말 궁금해?”
 “작크, 너도 그렇지? 나도 그래!”
 “그럼, 우리 저 높은 산으로 올라가 봐!”
  1782년, 프랑스 리옹 부근의 앙노네에 있는 제지공장 주인의 두 아들인 조제프와 작크는 비바레산의 기슭을 따라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며 말했다.
 “형, 우리 더 높은 하늘에 뭐가 있는지 연을 띄워 볼까?
 “그래, 열기구도 만들어 보자.”
 그들은 뜨거운 수증기는 자꾸 위로 팽창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종이 주머니를 뜨거운 연기로 채워 실험을 했다. 그리고 연기뿐만 아니라 뜨겁게 가열한 공기를 가득 채운 기구를 하늘 높이 띄우기로 하고 실험을 했다.
 “아니, 저게 뭐야?”
 “풍선 같은 것이 하늘 높이 올라가고 있어!”
 이듬해, 조제프 형제는 넓은 장터에서 사람들이 모두 구경하는 가운에 뜨거운 공기를 채운 열기구를 하늘 높이 띄웠다.
 이 소문은 곧 파리에 전해졌고, 파리의 과학학사원에서는 기구실험위원회를 만들어 본격적인 실험에 착수했다.
 물리학자인 샤를은 1783년 8월, 비단으로 만든 수소가스 기구를 띄웠고, 조제프와 작크 형제는 인간이 탑승한 기구를 실험했다. 인간이 공중에 올라간 첫 번째 기록이다.
 다음해, 영국의 제프리즈와 프랑스의 브랑샬이 서로 협력하여 기상관측을 목적으로 한 기구를 만들어 올렸다.
 그들은 한난계, 기압계, 온도계, 나침반 등의 기계를 싣고 같이 올라갔다.
 “나는 지상에서의 높이에 따라 기온은 어떻게 변하고, 바람은 어떻게 변화하는지 알고 싶어요.”
 제프리즈의 말이다. 이 실험에 의해 높이 올라가면 올라 갈수록 기온도, 기압도 낮아진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 후로도 높은 곳의 기상관측을 하려는 사람들의 실험은 계속되어 1893년 프랑스에서 기구를 16킬로미터까지 올렸고, 이러한 꾸준한 노력이 성층권의 발견으로 이어졌다.
 20세기 기상학은 성층권의 발견에서부터 시작되며, 이 성층권의 발견은 1902년 프랑스의 디스랑 폴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의 발견에 의하면 기온은 높이 올라갈수록 내려가나, 그 내려가는 정도는 높이 올라갈수록 크다. 그러나 11킬로미터를 지나면 기온이 거의 내려가지 않는다.
 이리하여 대기의 대류권 상층에는 온도의 변화가 없는 성층권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우리 인간은 보통 지표면에서 겨우 몇 미터의 대기 안에서 생활 한다
 비행기는 10킬로미터 이하에서 날고 있는 것이 보통이고, 특별한 경우 15킬로미터 전후에서 비행한다.
 그런데 대기의 성질은 높이에 따라 여러 층으로 구별된다. 어떻게 구분되는지 알아두자.
 먼저 지표에서 10킬로미터 정도의 공간은 대류권이라 하고, 구름이나 비, 바람 등을 일으키는 기후 현상은 이곳에서 발생하며, 높이 오를수록 기온은 내려간다. 성층권은 10~30킬로미터 정도의 공간을 말하며, 높이에 관계없이 기온은 거의 일정하며 날씨는 언제나 맑다.
 30~80킬로미터의 공간은 화학권으로 태양광선에 의한 화학변화가 일어나며, 수증기가 탄산가스도 분해한다.
 80~400킬로미터까지는 전리권, 400~1,000킬로미터 까지는 중간권, 1,000킬로미터 이상의 공간을 위기권이라 한다.

       성운
  밤하늘을 보면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고 있다. 마치 은가루를 뿌려놓은 듯 하다.
  별들은 대체 무엇일까? 몇 개나 될까? 그 별에도 사람이 살고 있을까? 그저 아름답기만 한 별들을 밤마다 관찰하며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약 2백 년 전, 영국 런던에 살았던 독일 태생의 윌리엄 하셀이라는 음악가가 바로 그이다.
    

 “캐로린, 어서 가자. 늦겠다.”
  하셀과 캐로린 형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음악가로서 밤마다 음악을 연주하여 생활비를 벌었으나, 낮이면 망원경을 제조하는 천문학자로서의 깊은 밤중까지 별에 대한 연구를 계속했다.
  망원경의 제작과 별의 관찰을 시작한지 10년째 되던 어느 날.
  “형, 기분 좋은 일이라도 있어요?”
  “응 캐로린, 새로운 별을 발견 했어. 이름을 ‘조지의 성’이라고 지었지.”
  조지라는 이름은 당시 영국 국왕의 이름으로, 조지 왕 또한 별의 관찰을 즐겨서 궁전 안에 망원경을 세워놓고 별을 관찰하고 있었다.
  하셀은 자신이 새로 발견한 새로운 별에 대해 1781년 3월, 유명한 학자들이 모이는 ‘왕립학회’에 보고했다.
  이때부터 하셀의 이름은 유명해졌다.
  그는 자신이 발견했던 별의 이름을 천왕성으로 고쳤으며, 천문학자로서의 뛰어난 재능을 인정받아 영국의 왕실천문학자가 되어 별의 관찰에 몰두했다.
  하셀은 이때부터 아주 커다란 망원경을 만들어 매일 밤, 하늘을 끝에서 자로 재듯 차례차례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그는 이상한별을 보게 되었다.
  “뭐야, 별들이 작은 구름처럼 뽀얗게 빛나고 있네!”
  그것은 큰 망원경으로 보면 작은 별들이 모여 있는 것으로서 보통 ??성운??이라고 불리는 것이었다. 당시 프랑스의 메시에라는 천문학자가 100여 개 정도의 성운을 발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셀은 자신의 망원경으로 성운을 찾아보았다.
  “아니, 100여개가 아니라 200개도 넘네. 299. 300개...”
  성운을 찾기 시작한 그는 1802년까지 약 2,500개 정도의 성운을 발견했을 뿐만 아니라 성운의 여러 가지 모양도 발견 해냈다.
  “그물처럼 퍼져 있는 것, 회오리 모양, 이번에는 볼록렌즈 모양도 있군.”
  하셀은 어느 날 밤, 가이라고 부리는 많은 별들이 모인 은하도 역시 하나의 성운이 아닐까 생각하고 은하를 더욱 자세히 관찰했다.
  “은하도 분명히 성운이야! 태양이나 지구, 화성, 천왕성 등은 모두 은하성운을 이루는 한 부분이군.”
  그의 생각을 옳았다. 태양이나, 지구, 화성, 천왕성 등이 모두 은하성운을 이루는 한 부분인 것이다.
  그의 연구는 계속되었고, 그의 아들 죤 하셀도 아버지의 뒤를 이어 별의 연구를 하면서 5천개를 넘는 성운을 발견했다.
  하셀 부자의 연구는 천문학상의 튼튼한 초석이다.
  1916년, 미국 윌슨 천문대에 100인치 망원경이 설치되면서 우주성운의 관측을 더욱 자세히 할 수 있게 되었다.
  우주에는 은하성운 외에도 많은 성운이 있으며, 어떤 모양으로 이루어져있고, 그 속에 별의 상태가 어떻게 되었는지 자세히 알 수 있게 되었다.
  오늘날, 미국의 팔로마 천문대에는 200인치 망원경이 설치되었다.
  이러한 망원경을 통하여 우주에는 1억 개 이상의 성운이 흩어져 있고, 1억 천 개의 별로 이루어진 은하성운도 전체 우주에서 볼 때는 바다에 떠있는 하나의 작은 섬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태양은 은하성운의 중심에서 약 3만 광년(1광년은 빛의 속도로 1년 걸리는 거리) 떨어진 거리의 가장자리에 있으며, 항성으로서는 매우 외로운 존재라고 할 수 있겠으나 그 빛은 생명의 힘을 주며, 희망과 광명의 상징이다.


     전류에서 발견된 것
              유도전류
 과학은 특수한 사람들만 아는 지식이고, 발견이나 발명 또는 많이 배우고 좋은 학교를 나와야만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위대한 발견이란 지식보다는 열정에 의해 탄생되는 경우가 많다.
 마이켈 패러디의 경우도 한 좋은 예이다.
“아니? 패러디, 밤늦게까지 무얼 하고 있는 거야?”
 영국의 조그만 제본소를 운영하던 조지 괴바우는 직원들이 모두 돌아간 공장주위를 둘러보다가 공장 구석에 촛불을 켜놓고 무엇인가 열심히 들여다보며 적고 있는 한 소년을 발견했다.
 “아, 사장님! 낮에 보았던 것이 재미있어서...”
 13세의 소년 패러디는 낮에 책을 제본하면서 본 과학부분을 손수 만든 노트에 적고 있다가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물론 꾸중을 각오하면서.
 “오, 촛불 조심하고 열심히 해라.”
 가난한 집에 태어나 초등학교도 제대로 마치지 못한 소년은 주인의 말에 매우 기뻐하며 용기를 얻어 낮에는 일을 하다가 쉬는 틈을 이용해 책을 읽고, 밤에는 관심 있는 부분을 노트에 적으며 마음 놓고 공부할 수 있었다.
 책 속에서는 유리 막대를 털가죽으로 마찰하면 전기가 일어나서 가벼운 물체를 잡아당긴다는 것과, 이탈리아의 불타라는 학자가 발명한 전지에 관한 것 등도 적혀 있었다.
 패러디는 특히 전기에 관한 실험을 했다.
 당시 영국의 왕립학회에서는 과학지식을 보급하고, 국민들을 계몽하기 위해 데이비 교수 같은 유명한 학자들의 강연을 자주 열었다. 데이비 교수의 강의를 들은 패러디는 편지를 통하여 보조가 되기를 간청했다.
 1872년 12월, 데이비 교수는 패러디의 과학에 대한 열정과 사연에 감탄하여 답장을 보냈고, 패러디는 데이비 교수의 연구를 돕게 되었다.
 패러디가 보조로 있는 동안 그의 명석한 두뇌가 인정되어 그에게 연구과제가 주어졌고, 연구 결과는 학계에 인정되어 영국 왕립학회 회원으로 선출되었으며 어엿한 학자로서의 지위를 얻게 되었다.
  

 이때부터 패러디는 전기에 관한 연구를 계속하다가 데이비 교수가 세상을 떠난 후로는 더욱 자유롭게 실험을 했다. 그러나 동안 한 가지 의문을 갖게 되었다.
 “전지를 연결하거나 끊어버리면 그 순간 왜 전지가 발생하지?”
 그리하여 코일 속에 막대자석을 넣고 코일을 검류계에 연결하여 여러 가지 실험을 했다.
 그 결과 전자석은 전류를 통하느냐 통하지 않느냐에 따라 전자석이 자성을 가지거나 가지지 않거나 하는 것처럼, 막대자석의 경우 이것을 코일 속에 넣느냐 빼느냐에 따라 전기가 발생하거나 발생하지 않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이와 같이 전기가 일어나는 현상을 ‘유도’라 하고, 유도되어 일어난 전류에 ‘유도전류’라는 이름을 붙여 세상에 발표했다.
 이 유도전류야말로 전지가 없이도 전류들 얻을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이며, 이러한 전류의 유도현상은 전자석 또는 막대자석과 코일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코일과 코일 사이에서도 일어나는 획기적인 것이었다.
 패러디의 유도전류에 관한 실험결과가 발표되자 많은 학자들은 그 원리를 이용하여 전지 없이 계속하여 전류를 만드는 장치를 고안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연구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패러디의 유도전류가 발견된 지 30년 후인 1867년, 독일의 지멘스에 의해 발전기가 발명됨으로써 이 꿈이 처음 실현되었다.

         전류의 자기작용
 자석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자석은 철을 끌어당기는 성질이 있는 물체를 말하며, 서로 다른 극 사이에는 인력이 작용하여 끌어당기고, 같은 극 사이에서는 척력이 작용하여 밀어낸다. 그래서 남북의 극을 가지고 있다.
 전기 또한 가벼운 종이 조각 같은 것을 끌어당기는 에너지의 한 형태로 양전기와 음전기의 두 종류가 있고, 이 둘 사이에는 인력이 작용하며, 같은 종류의 전기 사이에는 자석처럼 척력이 작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자석과 전기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덴마크에 사는 한스 크리스챤 에르스텟이라는 학자는 바로 이 자석과 전기의 관계를 연구하고 있었다.
 어느 날, 에르스텟이 대학의 실험실에서 학생들에게 전기에 관한 강의를 하고 있을 때였다.
 “야! 저것 좀 봐!”
 갑자기 학생 하나가 눈으로 자석을 가리키며 강의를 듣는 친구를 흔들었다.
 “뭔데? 어! 어?”
 지금까지 남북을 똑바로 가리키고 있던 자석의 바늘이 움직여서 다른 방향으로 기울어지는 것이었다.
 에르스텟도 웅성거리는 학생들의 눈초리에 놀라 주위를 살펴보며 뜻하지 않은 현상에 어리둥절해졌다.
 실험실 주위를 자세히 관찰해 보았지만 단지 자석이 놓인 바로 위에 전지로부터 연결되어 나온 전선이 있을 뿐이었다.
 ‘자석의 바늘이 옆으로 기울어졌다? 옆에서 전기가 흐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에르스텟은 그의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의문을 풀기 위해 곧 연구에 착수했다.
 그는 실험을 하는 동안 전선을 자석으로부터 멀리해 보았다. 그러자 바늘이 본래대로 똑바로 남북을 가리키게 되었다.
 “어! 이제 제대로 되었어요. 교수님.”
 “으음, 그렇군.”
 “자, 이제 전선의 밑에 다시 자석을  놓아 보자.”
 그리고 여러 가지 현상을 자세히 관찰한 에르스텟은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었다.
 “전선의 아래에 자석을 놓을 경우 북쪽을 가리키는 자석의 바늘이 전기가 흐르는 방향을 향하여 언제나 똑같이 왼쪽으로 기울어진다.”
 1820년, 에르스텟은 실험 결과를 정리하여 ‘전류가 자석의 바늘에 미치는 작용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을 발표하였다.
 당시 전기라는 것은 일종의 정전기를 말하는 수준이었는데, 그는 이 논문을 통해 자석의 바늘과 관계가 있는 것은 마찰전기, 즉 정전기가 아니고 움직이는 전기 즉, 전류라고 설명하였다.
 자석과 전류와의 사이에서 깊은 관계가 있다는 에르스텟의 발견은 곧 유럽에 알려지게 되었으며, 당시 프랑스 대학의 교수로 있던 앙드레 마리 앙페르도 에르스텟의 연구논문을 읽게 되자 그 또한 실험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앙페르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밝혀냈다.
 전기의 흐르는 방향으로 양극에서 음극으로 향하는 방향으로 정하고, 자극의 바늘이 기울어지는 방향을 관찰하여 오른손의 법칙을 발견한 것이다.
 그의 머리 속으로 또 한 생각이 지나갔다.
??전기가 자석의 바늘을 움직이게 한 것은 전기가 자기를 만들어서 일까???
 그는 구리줄을 코일로 하여 전기를 흐르게 하는 실험 끝에 전기가 자기를 만들고 코일의 자석이 작용하는 것을 알아냈다.
 이 연구를 계기로 여러 학자들은 검류계나 전류계, 전압계의 원리를 발견했으며, 전기의 문명시대를 열게 된 것이다. (*)


             왕 연 중(wangyj3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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