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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코너에 소개된 모든 글의 저작권은 저자인 왕연중 선생님(한국발명문화교육연구소 소장, 영동대학교 발명특허공무원학과 겸임교수, wangyj39@dreamwiz.com)에게 있습니다.
저자의 허락없이 무단전재나 재배포를 금지합니다.

제목 : 허충선이와 힌트      

    허충선이와 힌트

   할머니, 할아버지는 마루에 깔아 놓은 돗자리에 앉아서 바둑을 두고 계셨다. 창문을 활짝 열어 놓았지만 바람은 거의 불지 않았고, 선품기 바람이 할머니, 할아버지의 모시 한복 안으로 파고들어 땀을 식혀주고 있었다.
   “학교에 다녀왔습니다!”
   “오냐, 무척 덥지? 홀홀 벗고 시원하게 목욕부터 해라. 할머니가 미숫가루를 맛있게 타주마.”
   “그런데 다들 어디 가셨어요, 할머니?”
   “엄마는 시장에 갔고, 아빠랑 삼촌이랑 고모는 아직 퇴근 전이지.”
   할머니는 아마 할아버지께서 둘 차례인지 바둑판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대답을 주셨다.
   “빛이는요?”
   “빛이? 참, 그러고 보니 빛이가 아까부터 안 보이는구나. 빛이가 어디 갔죠, 영감?”
   할머니는 짐짓 모른 척하면서 할아버지를 쳐다봤다. 그러자 할아버지도 아름이는 쳐다보지도 않고 말씀하셨다.
   “친구들이랑 실내 수영장에 간다고 했잖아?”
   “아니, 할아버지! 그게 정말이세요?”
   “그래, 친구들이랑 약속했다더라. 심통은 나겠다만, 넌 시원한 냉수 목욕으로 만족해야겠다. 이제 곧 방학하면 수영이야 실컷 할 텐데, 뭘.”
   아름이는 화풀이라도 하듯이 옷을 벗어던지고 욕실로 들어가다.
   “그럴 수가 있어? 나를 쏙 빼놓고 저만 수영장에 가다니, 어디 두고 보자.”
   아름이는 온 몸에 벅벅 비누칠을 하고는 냉수를 마구 끼얹었다.
   목욕을 하고 나오니까 할머니가 시원한 얼음물에 미숫가루를 타주셨다. 한 그릇 마시고 나자 갈증이 가시면서 속도 좀 풀렸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다시 바둑을 두는 일에 정신을 쏟고 계셨다.
   “뭐 내기예요?”   할머니, 할아버지는 늘 내기 바둑을 두셨다. 군고구마, 순대, 호떡, 엿, 참외, 수박 등 주로 먹는 것 내기였지만, 간혹 등 두들겨주기 같은 내기도 하셨다.
   “아이스크림 내기다.”
   “우와, 그럼 저도 콩고물 좀 있겠네요?”
   “이 녀석아, 아이스크림이 떡이냐? 콩고물은 무슨 콩고물? 할머니, 할아버지는 가난하니까 기대하지 않는 게 좋을 게다.”
   “칫!”
   할머니나 할아버지, 아름이와 빛이의 바둑 솜씨는 서로 비슷했다. 아름이와 빛이가 바둑을 두면 아빠는 이렇게 놀리듯이 말씀하시곤 했다.
   “바둑 두는 거냐, 오목 두는 거냐?”
   바둑 두는 솜씨가 아직 서툴러서 오목 두는 것처럼 바둑알이 열을 지어 서 있다는 소리였다. 할머니 할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할머니 할아버지가 바둑을 둘 때의 아빠의 말씀은 사뭇 달랐다.
   “아이구, 어머님, 아버님 바둑 솜씨가 무척 느셨습니다. 까딱 잘못하면 저희들도 못 당하겠는 걸요?”
   “아범아, 뭐 그렇게 부모한테까지 아부할 것 있냐? 아름이나 빛이처럼 오목 두는 격이지, 뭐. 안 그렇소, 임자?”
   그러면 할머니는 빙그레 웃기만 하셨는데 오늘 바둑에서는 아슬아슬하게 할아버지가 지셨다. 할아버지는 두말 없이 돈을 내주셨고, 이긴 할머니는 싱글벙글하며 아이스크림을 사러가려고 허리를 툭툭치며 일어서셨다.
   “제가 갔다 올께요, 할머니.”
   “콩고물 얻어 먹으려고?”
   “아녜요. 심부름만 해 드릴께요.”
   심부름만 한다고 아무리 말씀을 드려도 할머니는 막무가내였다.
   “내기에서 이긴 사람은 나야, 이 녀석아. 아름이 네가 아니라구.”
   모처럼 할아버지한테 이긴 기쁨을 마음껏 누려보겠다는 뜻인 것 같았다. 아름이는 할 수 없이 선풍기 앞에서 머리를 말리기 시작했다. 말없이 바둑판을 챙기고 있던 할아버지께서 물으셨다.
   “그래, 요새는 뭘 연구하는 중이지?”
   “여름 방학도 며칠 안 남았고 해서 매미가 도망가지 못하는 포충망을 만들 생각이에요, 할아버지.”
   “매미가 도망가지 못하는 포충망? 아니, 매미가 도망가는 포충망도 있냐?”
   “그럼요, 할아버지. 작년에 문방구에서 파는 포충망으로 매미랑 잠자리를 잡다가 여러 마리 놓쳤어요.”
   커다란 포충망으로 나뭇가지에 앉은 매미를 덮치는 일에는 성공을 하곤 했다. 그러나 매미는 나뭇가지와 포충망테 사이의 양쪽 틈으로 푸르르 날아가버리기 일쑤였다. 그뿐이 아니었다. 다행히 포충망 속으로 들어갔다 해도 손으로 잡아내려고 할 때 놓치는 수도 있었다.
   “그리고 또 있어요, 할아버지. 곤충 채집통을 들고 곤충들을 잡다보면 불편한 점이 참 많아요. 통은 하난데 잡히는 곤충은 매미, 잠자리, 여치, 베짱이 등 다양하거든요. 이것들을 같은 통 속에 넣어놓으면 서로 싸우고 다치고 그래요. 그래서 종류별로 따로따로 넣을 수 있는 곤충 채집통도 만들 생각이에요.”
   “과연 듣고 보니 그렇구나.”
   그때 할머니가 아이스크림 콘 세 개를 사들고 돌아오셨다. 아름이의 콩고물이 생긴 샘이었다.
    “옜다, 콩고물!”
    “고맙습니다, 할머니!”
    달콤하고 시원한 아이스크림 콘을 혓바닥으로 핥아먹던 아름이는 문득 생각난 듯이 할아버지께 여쭤보았다.
    “참, 할아버지도 어렸을 때에 발명을 하신 적이 있어요?”
    “발명? 물론 있었지. 그렇지만 대부분이 아주 사소한, 그러면서도 지극히 생활에 요긴한 것들이었지.”
   “예를 들면 어떤 건데요?”
   “예를 들면? 가만 있자… 할아버지가 발명한 물오리 잡는 올가미 얘기를 해줄까?”
   “좋아요, 할아버지! 그렇지만 그 전에 먼저 물오리에 대해 설명을 좀 해주세요.”
   “그럴까? 물오리는 야생 오리인데, 낮에는 주로 해안이나 연못, 논 등에서 놀다가 밤이면 나와서 풀씨, 곤충, 새우, 게 등을 잡아 먹는 철새란다. 소련의 시베리아와 캄차카 반도나 일본의 북해도 등에서 번식한단다. 가을에 우리나라에 날아와서 겨울을 지내는 고기맛이 아주 좋은 새거든. 그 물오리를 잡는 올가미를 만드는 데는 낚싯줄로 쓰는 나일론 줄을 사용한단다.”
   “고래심줄이라는 거요?”
   “그래! 그것과 ㅃㆍㄹ갛게 잘 익은 조그마한 고추 한 개면 된단다.”
   할아버지는 진지한 표정으로 설명하기 시작하셨다. 그런데 할머니는 아이스크림 콘을 잡수시면서 계속 웃음을 삼키는 눈치였다. 뭔가 알고 있지만 말을 하지 못하는 그런 표정이셨다. 어쨌든 아름이는 할아버지의 발명품에 대한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
   “고래심줄 한쪽 끝에 조그맣고 잘 익은 고추를 뾰족한 끝이 바깥으로 가게 해서 단단히 묶는거야. 그리고는 다른쪽 끝에 말뚝을 묶어서 물오리가 자주 날아오는 논이나 연못으로 나가는 거지. 이 물오리 사냥은 대개 겨울에 하기 때문에 논과 연못은 텅 비어 있어서 아주 안성마춤이야. 연못가나 논두렁에 고래심줄을 묶은 말뚝을 단단히 박아놓고 고추를 물 속에 던져두면 준비는 끝나는 셈이지. 그러니까 고래심줄은 갈수록 좋단다.”
   얘기가 여기쯤 왔을 때 아름이는 이해가 안 되어서 고개를 갸우뚱했다. 할머니는 손으로 입을 가리면서 얼굴을 돌리고 웃음을 억지로 참았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헛기침을 한번 하시더니, 다시 엄숙한 표정으로 설명을 시작하셨다.
   “물오리들이 날아와서 놀다가 물 위에 동동 떠다니는 빨간 고추를 보게 되면 곽곽거리면서 몰려들지. 이게 뭘까? 빨간 모양이 맛있게 생겼는걸? 먹어볼까? 아냐, 조심해! 처음 보는 거잖아. 그렇지만 난 먹어보고 싶어. 이러다가 한 마리가 용기 있게 고추를 꿀꺽 삼키지. 그런데 뱃속에 들어간 고추는 고래심줄을 달고 있기 때문에 기분이 영 꺼림칙하고, 또 알큰한 느낌이 계속 뱃속을 자극한단 말씀야. 그러니까 ‘에이, 기분나빠!’ 하면서 배에 힘을 꾹 주면 고래심줄을 단 빨간 고추는 물오리의 항문으로 쑥 나와서 다시 물 위에 떠다니지.”
   아름이는 뭔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할아버지의 설명은 쉬지 않고 계속됐다.
   “‘어? 이게 뭐지? ㅃㆍㄹ간 모양이 맛있게 생겼는 걸?’ 이러면서 다른 물오리가 얼른 달려들어 고추를 꿀꺽 삼키지만, 먼젓번 물오리와 똑같은 느낌을 받으면서 배에 힘을 주게 된단다. 그러면 고추는 고래심줄을 단 채 항문으로 퐁 나오고, 다시 다른 물오리가 물 위에 떠다니는 고추를 삼키자마자 항문으로 내놓고, 또 다른 물오리가 고추를 꿀꺽 삼키고… ”
   할머니가 기어코 웃음을 터뜨리셨다. 아름이는 할머니를 쳐다보다가 다시 할아버지를 돌아봤다.
   “할아버지?”
   “더 들어봐라. 이렇게 몇 시간이 지나면 수십 마리의 물오리가 고래심줄에 꿰어진단다. 고래심줄 한쪽 끝은 단단한 말뚝에 묶여있고, 다른쪽 끝은 잘 익은 고추가 묶여 있으니까 물오리들이 빠져나갈 염려도 없지.
   아마 할아버지가 우리 아름이만한 나이 때였을 것이다. 그해 겨울에도 할아버지는 동네 연못에 이 물오리 올가미를 놓았단다. 그리고는 올가미를 걷으러 갔는데, 말뚝을 뽑는 순간 고래심줄에 꿰인 물오리들이 깜짝 놀라서 날아오르는 거야. 할아버지는 말뚝을 꽉 움켜쥐었지. 다 잡은 물오리를 놓칠 수야 없지 않겠니? 그런데 큰일이 난 거야.“
   “왜요, 할아버지?”
   “고래심줄에 꿰인 물오리가 어찌나 많은지, 그 놈들이 하늘로 날아오르는 바람에 말뚝을 잡고 있던 나까지 따라 올라갔찌 뭐냐? 그래도 할아버지는 말뚝을 놓치 않았단다. 그러자 물오리들은 할아버지를 달고 점점 높이 날아오르는 거야. 그때….”
   “에이, 할아버지! 이제 보니까 허풍선이 얘기잖아요?”
   ‘허풍선이’란 허풍만 떨고 다니는 사람을 이르는 말인데, 아름이가 그렇게 하고나니까 할머니는 이제 마음 놓고 웃어댔고, 시치미를 뚝 땐 체 이야기하시던 할아버지도 껄ㄲ?ㄹ 웃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아름이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걸 물오리 사냥뿐만 아니라 또 쓸 수 있는 곳이 있겠어요,”
   “그래? 그게 어딘데?”
   “고추 곁에 작은 봉들을 달아서 바닷물에 드리우면 고기들이 차례로 삼키고 고래심줄에 꿰이지 않을까요? 그렇게 되면 물오리들한테 끌려서 하늘을 나는 것처럼, 고기들한테 끌려서 잠수함처럼 바다 밑을 헤엄쳐 다닐 수 있을거예요.”
   “뭐라구? 에끼, 이 녀석!”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어깨를 들썩이면서 한참을 웃어댔다. 함께 웃어대던 아름이는 숙제를 하기 위해서 자기 방으로 갔다. 그리고는 잠시 발명일지를 펴놓고 매미가 날아가지 못하는 포충망에 대한 생각을 기록했다. 일단 잡힌 곤충은 절대로 놓치지 않은 포충망이 되어야 한자는 내용이었다.
   (잠깐, 허풍선이 물고기 사냥 얘기를 하다보니ㄲㆍ 작년 여름방학 때 애먹던 일이 또 한 가지 생각 나는 걸?)
   작년 여름방학 때는 엄마, 아빠와 함께 외갓집에 갔었다. 그때 외갓집 이웃 동네에 있는 바닷가에서 낚시를 하다가 여러 차례 낚시 바늘을 잃어버린 일이 있었다.
   바다 밑의 돌과 바위에 바늘이 걸려서 억지로 끌어당기다가 낚싯줄이 끊어진 것이었다.
   (바위에 걸리지 않는 낚시 바늘도 한번 연구해 볼까?)
   아름이는 이 생각까지도 발명일지에 기록한 다음, 숙제와 예습 복습을 하기 시작했다. 숙제를 마치고 복습을 할 때 시장에서 돌아온 엄마가 아름이를 불렀다.
   “아름아, 도시락 내놓아야지!”
   “아차, 내 정신 좀 봐.”
   아름이는 도시락 가방에서 도시락과 반친통을 꺼냈다. 그걸 들고 부엌으로 가던 아름이는 갑자기 머리를 스치는 어떤 생각 때문에 문득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얼른 반찬통을 열어봤다.
   “그래! 곤충 채집통도 이런 식으로 만들면 되겠다!”
   아름이는 얼른 도시락과 반찬통을 엄마한테 갖다드리고 돌아와서 발명일지를 폈다.
   쳇바퀴처럼 납작하고 둥근 원통에 도시락의 반찬통처럼 중심에서 부채살형으로 여섯 개의 칸막이를 한다. 그러니까 이 여섯 개의 부채꼴이 곤충들의 방이 되는 것이다. 원통의 바닥은 판자나 플라스틱으로 막고 위는 유리나 투명 플라스틱으로 막는다. 그리고 중심부에 축을 세워 칸막이와 바닥이 고정되게 하고, 이와는 별도로 원통과 위뚜껑이 고정되게 한다. 그러면 축을 중심으로 원통 속에서 칸막이가 빙글빙글 돌게 되는 것이다.
   그럼 곤충은 잡아서 어디로 넣는가? 원통에 여닫을 수 있는 작은 문을 달면 해결된다. 문을 열고 부채꼴 방에 잡은 곤충을 넣은 다음에 손가락으로 칸막이를 잡아 돌리면, 문 앞에는 다음의 빈 방이 오게 될 것이다.
   (됐어! 바닥과 뚜껑의 중심부에 구멍을 뚫고 축을 세운 다음에 칸막이와 바닥 사이, 그리고 뚜껑과 원통 사이에 강력 접착제를 발라 고정시키면 되는 거야.)
   그날 저녁이었다. 저녁을 먹은 다음에 식구들은 마루에 앉아서 수박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역시 막내 삼촌만 빼고 온 가족이 다 모였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던 끝에 할아버지가 낮에 있었떤 일을 말씀하시면서 껄껄껄 웃으셨다.
   “글세, 내가 허풍선이 물오리 잡는 얘기를 해줬더니 아름이가 고추 달린 고래심줄로 물고기도 잡을 수 있다는구나.”
   “어떻게요?”
   아빠가 아름이를 돌아보고 나서 물었다.
   “고추가 매달린 곁에 봉돌을 달아서 바닷물에 드리우면 물고기들이 물오리들처럼 차례차례 꿰이게 된다는 거야.”
   허풍선이 얘기를 다 알고 있던 식구들은 손뼉을 치면서 크게 웃었다. 그런데 아름이는 전혀 엉뚱하게도 여기서 멋진 힌트를 얻었다. 바로 ‘고추 곁에 봉돌을 단다’는 부분이었다.
   (그 얘기를 아까 내가 했으면서도 왜 이제야 생각이 떠오른다지?)
   아름이는 벌떡 일어나서 자기 방으로 달려갔다. 큰소리로 웃어대던 식구들은 아름이가 부끄러워서 도망가는 것으로만 알았다.
   “다 큰 녀석이 부끄러워하기는!”
   “그러게 말이다, 하하하!”
   그러나 막내 고모만은 아름이의 반ㅉㆍㄱ이던 눈빛을 보았다. 그래서 무언가 좋은 생각이 떠올라서 달려간 것이지, 수줍어서 그런 것은 아닐 거라고 믿었다. 잠시 후에 고모는 아름이 방으로 가보았다.
   아름이는 컴컴한 방안에서 책상 위의 스탠드만 켜놓은 채 무언가 열심히 그리고 있었다. 아름이는 가끔 천장의 형광등을 꺼버린 채 갓을 씌운 스탠드 불빛 아래서 연구를 하는 버릇이 있었다. 그러면 훨씬 정신 집중이 잘 된다는 것이었다.
   “뭐하는 거니?”
   아름이는 고모를 힐끗 돌아보더니 희끄무레한 어둠 속에서 빙그레 웃었다. 뭔지는 몰라도 일이 썩 잘 되는 모양이었다.
   “바위에 걸리지 않는 낚시를 연구하는 중이야. 좋은 생각이 금방 떠올랐거든.”
   발명일지에는 바닷속에 드리워진 낚시가 그려져 있었다. 자질한 돌과 바위 틈에 낚싯줄의 봉돌이 놓여 있고 봉골과 낚시 사이에 조그만 찌를 단 낚시가 바위 위에 떠있는 모습이었다.
   “고추 옆에 봉돌을 달아서 바닷물에 드리운다는 말을 듣는 순간 떠오른 아이디어야. 그걸 역으로 이용한 거지. 낚시는 봉돌 때문에 바닥에 가라앉잖아? 그러다보니까 낚시도 바닥에 가라앉아 있다가 바위 틈에 걸리게 되거든. 그렇지만 낚시 부근에 다시 작은 찌를 하나 달아주면 물 속에서도 낚시는 떠오를 것 아냐? 그러면 낚시는 바위에 걸리지 않아서 좋고, 고기들의 눈에 더 잘 보여서 좋고, 그러니까 일석이조지, 뭐.”
   ‘일석이조’란 돌멩이 하나로 새 두 마리를 잡는다는 게 원래 뜻인데, 한 가지 일로 두 가지 이득을 본다는 ‘일거양득’과 같은 의미다. 고모는 그런 아름이가 기특해서 아름이의 머리를 가슴에 꼬옥 끌어안아 주었다. 아름이는 이럴 때의 고모가 제일 좋았다. 고모의 가슴에 얼굴이 안길 때면 엄마와는 다른 향긋한 냄새가 났다.
   “작년 여름방학 때 바다낚시를 하다가 애먹은 일을 완전히 해결한 셈이구나? 정말 좋은 아이디어다, 아름아.”
   아름이는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한 데다 칭찬까지 들으니 구름이라도 탄 기분이었다. 이런 기분이라면 매미가 도망가지 못하는 포충망도 쉽게 해결될 것만 같았다. 그래서 그 이야기를 고모한테 했다.
   “좋은 아이디어 없을까, 고모?”
   고모는 물러서더니 아름이의 침대 위에 걸터앉았다. 그리고는 책상 위의 스탠드를 조용히 바라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밤이 되니까 바람이 조금씩 불기 시작하는 모양이었다. 모기장을 붙인 창문으로 간혹 시원한 바람이 한 움큼씩 밀려들어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아름이의 책상 위쪽만을 밝히고 있는 스탠드의 불빛은 좁게 터진 스탠드 갓의 윗부분으로도 흘러나가 천장을 비추고 있었다. 고모는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스탠드와 스탠드 갓, 그리고 불빛을 찬찬히 살피고 있었다. 그러더니 조용히 일어섰다.
   “내 생각엔 말야, 아름아.”
   “…… .”
   “저 스탠드 갓을 보고 있으니까 무언가 아이디어가 나올 것 같은 기분인데?”
   “스탠드의 갓?”
   “그래, 형광등을 켜지말고 앉아서 한번 생각해 봐라.”
   고모는 이 말만을 남기고 나가버렸다. 아름이는 의자에서 일어나 고모가 앉아 있던 침대로 가서 걸터앉았다. 스탠드와 스탠드 갓과 불빛이 흐르는 모습을 조용히 바라봤다.
   (매미가 도망가지 못하는 포충망과 전기 스탠드라?)
   그러나 아무리 바라보고 있어도 별다른 생각이 떠오르지를 않았다. 아주 가녀린 바람 한 줄기가 들어왔지만 속은 답답했다. 아름이는 벌떡 일어나서 창가로 갔다. 마당에 서 있는 나뭇가지의 이파리들이 서로 간질이듯 살랑거리고 있었다.
   (뭘까? 고모는 전기 스탠드에서 과연 무엇을 보았을까?)
   아름이는 모기장을 붙인 문까지 열어 젖혔다. 그렇게 하면 바람이 좀 더 시원하게 들어올 듯해서였다. 그러나 무더운 여름밤을 식혀주는 것은 어둠이었지 바람이 아니었다. 더 답답해진 아름이는 모기장을 친 문을 다시 닫았다.
   침대로 돌아와 걸터앉은 아름이는 다시 전기 스탠드를 바라보았다. 어느새 들어왔는지 모기만한 벌레 몇 마리와 조그마한 나방 한 마리가 맴돌고 있었다. 모기만한 벌레들은 계속 스탠드의 갓 주변을 맴돌기만 했는데, 나방은 갓의 아랫부분에 붙었다. 그러더니 조심조심 불빛이 환한 안으로 기어들어 갔다.
   잠시 후에는 모기만한 벌레들 몇 마리도 스탠드의 갓 안에서 날아다녔다. 그때였다. 안으로 들어갔던 나방이 갑자기 빛을 따라 갓의 윗부분으로 솟아나왔다. 마치 굴뚝으로 나오는 제가 나르듯했다.
   그 순간 아름이는 벌떡 일어섰다. 뭔가 머리를 번개처럼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밝은 곳을 따라간다…. 그래, 그걸 이용해보면 뭔가 될 것도 같은데?)
 아름이는 나방이와 모기만한 벌레들이 갓 속으로 다시 들어가기를 기다렸다가 스케치북으로 밑을 가려버렸다. 전기 불빛은 위로만 솟아 올랐다. 그러자 기다리기라고 했다는 듯이 모기만한 벌레들과 나방은 빛을 따라 위로 날아올랐다.
   (포충망 속에 스탠드의 갓과 같은 망을 하나 더 만들면 어떨까?)
   문득 이 생각을 하고나자 아름이는 공연히 가슴이 뛰었다. 아름이는 서둘러서 고모의 방으로 달려갔다. 잘 준비를 하던 고모는 아름이를 보고는 빙그레 웃었다.
   “생각 났니?”
   “생각은 났는데, 맞는지 어떤지 몰라서….”
   “어디 들어볼까?”
   아름이는 조금 전에 느낀 것을 들려주었다. 이야기를 다들은 고모는 허리를 숙여 아름이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 쥔 채 조용히 들여다봤다. 그리고는 웃음 띈 얼굴을 천천히 끄덕여보였다.
   “맞았어, 아름아. 그걸 이용해서 연구를 완성해 봐.”
   “고마워요, 고모!”
   아름이는 고모의 복스런 뺨에 뽀뽀를 해주고는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다시 책상 앞에 앉은 아름이는 발명일지에 포충망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햇빛이 잘 통하는 밝은 색의 커다란 포충망을 만든다. 그리고 그 안쪽에 스탠드의 갓처럼 꼭대기에 조그만 구멍이 뚫린 어두운 색의 포충망을 조금 작게 만들어 단다. 곤충을 덮치면 안에 있는 작은 포충망 때문에 곤충의 눈앞은 순간적으로 어두워진다. 그러면 곤충은 그 포충망의 꼭대기 구멍으로 들어오는 빛을 따라 날아오른다. 커다란 포충망 속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곤충은 나갈 곳이 없게 된다. 이때 여유 있게 작은 포충망의 꼭대기 구멍으로 손을 넣어 곤충을 잡아내면 된다.
   “됐다! 올 여름의 곤충채집과 낚시 문제는 완전히 해결된 셈이다.”
    오늘은 참으로 기분이 좋은 날이었다. 지금까지 하루 동안에 무려 세 가지의 문제를 해결한 날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포충망과 곤충 채집통과 낚시를 직접 만드는 일만 남았다.
   창문 밖의 하늘에서 반짝이는 별들도 아름이의 기쁜 마음을 알기라도 하듯 초롱초롱한 게 웃고 있는 것만 같았다.

   =출처 : 발명하는 어린이들(글수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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