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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포도원의 벌레들
포도주의 나라 프랑스.
“피엘, 올해 포도 농사는 잘되어 갑니까?”
“말도 마십시오. 올 농사도 그 필록세라인지 뭔지 하는 황록색의 해충 때문에 몽땅 망쳤습니다.”
“그렇군요. 조상 대대로 지어온 포도 농사를 그 묘목 때문에 이렇게 망쳐야 하다니 살맛이 안납니다. 후유!”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은 포도원 앞에 서서 한숨을 짓는 농부의 이마에 주름살이 깊게 패어 있다.
“그런데 묘목 때문이라니⋯⋯ 해충 때문이 아니던가요?”
“물론 해충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해충이 바로 접목용 묘목에 붙어 미국에서 건너온 겁니다.”
“그랬군요. 그나저나 한두 해도 아니고 60년도 넘게 벌레들이 극성이라니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걱정입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포도주는 프랑스의 명산물 가운데 명산물로 맛도 좋고 품질이 우수하여 많은 외화를 벌어들이는 수출품이었다. 그래서 포도주를 만드는 포도는 프랑스의 주산물로 포도 농사야말로 매우 중요한 농업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1858년부터 약 60여 년에 걸쳐 프랑스의 포도 주산지에 필록세라라는 해충이 번져 포도 농사를 망치게 했다.
이 황록색의 작은 벌레 때문에 포도 수확이 말할 수 없이 많이 줄어들자 프랑스의 농가에서는 시름의 나날을 보냈고 정부에서도 골치를 앓았다.
이때 농부들의 고통을 마음 아파하는 사람이 있었다. 피에르 마리 알렉시스 미야르데라는 식물학 교수였다.
1876년에 프랑스 보르도대학의 교수가 된 미야르데는 포도원의 참상을 보다 못해 순수과학을 떠나 방제 연구를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던 것이다.
‘쯔쯔, 포도 농가들의 괴로움이 말할 수 없겠구나. 내가 책상 앞에만 앉아 있을 것이 아니라 해충으로부터 포도나무를 보호할 방법을 찾아야 하겠다. 정말 포도밭에 한파가 몰아닥쳤어!’
미야르데는 이 벌레에 대해 비교적 저항력이 강한 미국의 포도 묘목을 접붙일 때 바탕이 되는 나무로 사용하고 품질이 좋은 유럽 포도의 묘목을 접목하는 방법을 연구했다.
그의 연구는 성공적이었다.
‘성공이다. 필록세라 벌레들은 꼼짝 마라! 너희들을 전멸시키겠다. 야호’
노균병도 유행 따라
그런데 이번에는 필록세라와 거의 동시에 들어온 노균병이 크게 번지기 시작했다. 이것은 일종의 곰팡이에 의하여 생기는 포도나무 병이었다.
‘노균병의 유행이라! 거 참.’
1882년 10월의 어느 날, 미야르데는 보르도에서 가까운 포도원 안을 거닐고 있었다.
조그맣고 푸른 포도 열매가 송알송알 맺혀있는 포도나무는 언뜻 보기에 탐스러워 보였지만 그의 마음은 몹시 아팠다.
“쯧쯔, 어린 너희들이 무슨 잘못이 있다고 시들시들 몸살을 앓고 있니?”
그의 눈에 띄는 포도나무는 모두 노균병에 걸려 시들 거리고 있거나 시들기 직전에 있었다.
미야르데는 아픈 마음을 달래며 포도나무의 상태를 좀더 자세히 관찰하기 위해 포도원 안으로 깊숙이 걸어 들어갔다.
한참을 걷던 그는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다. 이상한 현상이 눈에 띄었던 것이다.
‘어? 이곳은 말짱하네!’
길가에 늘어선 고랑의 포도나무들은 이상하게도 싱싱하게 잘 자라 있었다.
도둑 방지 보르도액
“교수님, 웬일로 그렇게 뛰어오세요?”
포도원의 관리인이 미야르데를 향해 물었다.
“물어볼 것이 있어요. 저 길가의 고랑에, 무엇을 뿌려 놓았나요?”
미야르데가 가르치는 손끝을 따라 시선을 집중하던 관리인이 대답했다.
“아, 그거요? 보르도액을 뿌려 놓았던 곳 말씀이군요.”
“보르도액? 아니 그걸 왜 거기에 뿌려 놓았지요?”
보르도액이란 황산구리와 석회를 섞어 만든 액체인데 짙은 녹색 물질이었다.
“길가에 다니는 사람들이 포도나무에 손을 대지 말라고 뿌려둔 것이지요.”
“독약처럼 보이는 짙은 녹색 때문이란 말이지요?”
“네, 역시 교수님은 잘 아시는군요.”
이야기를 듣는 미야르데의 가슴에 실낱같은 희망이 떠올랐다.
그는 대학의 연구실로 돌아가는 길에 곰곰이 생각했다.
‘혹시 그 보르도액에 노균병의 곰팡이 번식을 막는 어떤 힘이 작용하는 것은 아닐까?’
그의 얼굴은 점점 환해졌다.
미야르데는 연구실로 돌아오자마자 곧바로 연구에 착수했다. 그는 보르도액에 문제의 열쇠가 있다는 것을 직감하고 있었지만 연구의 결말을 쉽게 보지는 못했다.
‘이 보르도액에 뭔가 숨겨진 비밀이 있다. 대체 뭘까?’
3년도 넘게 그의 끈질긴 연구는 계속되었다.
드디어 미야르데는 보르도액이 노균병의 곰팡이 번식을 막는 이유를 알아냈다.
이유인즉, 보르도액 속에는 황산구리가 녹아 구리이온이 생겼는데 이 구리이온이 바로 노균병의 곰팡이 포자가 싹트는 것을 방해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보르도액을 바른 포도나무는 노균병이 돌아도 곰팡이가 증식하지 못해 계속 싱싱하게 잘 자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미야르데의 연구 시기와 때를 맞춰 얼마 동안 노균병의 유행은 한때 수그러졌다. 그러다가 1885년에 이르러 노균병이 다시 크게 유행하기 시작했다.
미야르데는 이 때에 자신의 연구결과에 대한 대규모의 실험을 계획했다.
“그동안 연구해온 것을 실험해 볼 때가 되었군.”
미야르데는 포도원을 둘로 나누어 한편에는 보르도액을 뿌렸고 다른 한편에는 뿌리지 않았다.
“자, 이제 포도가 자라는 것을 지켜보면 됩니다.”
얼마 후, 보르도액을 뿌리지 않은 곳의 포도나무가 모두 노균병에 걸려 시들 거리기 시작했다.
“미야르데 교수님, 보르도액을 뿌리지 않은 곳의 포도나무가 시들시들해요.”
관리인의 말에 미야르데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렇군요. 어디 이쪽을 살펴볼까요?”
미야르데는 보르도액을 뿌린 쪽의 포도원을 조심스럽게 살펴보았다. 다행히도 보르도액을 뿌린 쪽의 포도나무들은 거의 노균병에 걸리지 않고 건강하고 싱싱하게 잘 자라고 있었다.
“신기하군요. 보르도액을 뿌려 놓은 쪽의 포도나무는 모두 말짱해요.”
“흐음.”
미야르데는 만족한 웃음을 빙긋이 웃었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프랑스의 포도 재배농가들은 곧 보르도액을 쓰기 시작했다.
“이보게, 포도밭에 보르도액을 뿌려 놓으면 노균병에 걸리지 않는데요.”
“그래요? 확실해요?”
“글쎄 그렇다니까요. 보르도대학교 교수님이 연구해서 발표한 거라니까 틀림 없을 거에요.”
“그렇다면 나도 빨리 가서 우리 포도밭에 보르도액을 뿌려야겠군.”
그 덕분에 프랑스의 포도원은 노균병에 대한 피해가 크게 줄어들었다.
이 소문은 곧 유럽으로 번져 나갔다.
유럽을 통해 번져 나간 소문은 전 세계로 퍼져 보르도액을 노균병 방지약으로 쓰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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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연중의 발명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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