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잔은 인류가 불을 사용한 이후 전기가 발명되기까지 가장 오랫 동안 사용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면 우리나라에서 등잔은 과연 언제부터 사용됐으며 그 형태는 어떠했고 세월이 흐르면서 어떻게 변했으며 또 가장 최근까지 사용된 등잔은 어떤 형태였는지 그 궁금증을 풀어볼 필요가 있다.
지금부터 몇 천년 전 신석기시대 사람들의 움집터(수혈식 주거)에서 볼 수 있는 중앙로(집의 가운데 설치한 화덕자리)는 취사와 난방은 물론이요, 어둠을 밝히는 조명수단으로도 이용됐다고 생각된다. 이와 같이 부차적인 용도에 국한되었던 조명수단이 사람의 지혜가 발달되고 어둠을 밝히고자 하는 절실한 필요에 의해 음식으로 먹던 짐승의 고깃덩이에서 떼어낸 기름을 그릇이나 돌에 담아 불을 밝히는 방법이 고안되었다고 보여진다. 이것이 점차 개량되어 기름에 심지를 넣어 사용하는 본격적인 등잔으로 발전했다. 우리나라는 석유와 같은 인화성이 강한 광물이 생산되지 않으므로 예로부터 동물의 지방이나 씨앗에서 짜낸 식용유로 불을 밝혔다. 동물의 지방과 식물성 기름들은 모두 인화성이 약하므로 종지에 담고 심지를 박아 불을 밝혀도 한번에 인화되거나 연소되지 않는다. 이와 같은 종지형 등잔은 조선시대 말 석유가 수입되고 뚜껑에 심지뽑이가 달린 호형(壺形) 등잔이 출현되기 이전까지 사용된 등잔의 기본형태이다.
백제 무녕왕릉의 등감(燈龕:등잔을 놓기 위해 오목하게 판 일종의 벽장)에 놓였던 등잔도 종지형이다. 이와 같은 등잔은 그다지 밝지가 않았으므로 신라 때의 등잔 중에는 3∼6개의 등잔종지를 파이프로 연결해 한 곳에 기름을 부으면 연결된 종지 모두가 일정한 유량(油量)이 유지되도록 만든 다등식(多燈式) 등잔도 있어 밝기를 조절했음을 알 수 있다.
1930, 40년대 일제 치하의 서울에서도 등유가 귀하고 전기공급이 원활치 못하여, 모처럼 고깃국을 끓인 날이면 등유로 사용하기 위해 국을 식혀서 위에 굳어진 기름 걷기를 했다.
등잔은 높이가 낮아 그대로 사용하기에 불편하며 또 외피가 없어 실외에서 사용하려면 바람에 불이 꺼지는 결점이 있다. 그러므로 등잔을 실내외에서 편리하게 사용하기 위해 일정한 높이로 또는 높이조절이 가능하도록 하거나 외피를 씌워 불이 꺼지는 일이 없도록 했다. 등잔을 일정한 높이에 얹어 사용하도록 한 등가(燈架), 등잔의 높이를 서너 단계로 조절하도록 만든 등경(燈 ), 외피를 씌워 들고 다니도록 만든 제등(提燈), 등잔을 벽에 걸도록 만든 괘등(掛燈), 들보나 서까래에 매어 달게 한 현등(懸燈), 실내 바닥에 놓는 좌등(坐燈) 등은 등잔을 실생활에 편리하게 이용하기 위해 창안한 발명품이다. 이밖에 식물성 기름도 귀한 산간지방의 화전민 가옥에는 관솔(송진이 많이 엉긴 소나무의 옹이 부분)을 이용해 불을 밝히는 코클과 두등불을 설치했다.
조선시대까지 사용돼온 등잔기름에는 식물성기름(참기름·콩기름·면실유·피마자기름)·어유(漁油; 물고기기름)·경유(鯨油;고래기름)·사슴기름·굳기름[牛脂; 쇠고기 국을 끓인 후 차게 식히면 국 표면에 굳어있는 노란 색의 기름덩이]을 사용했다. 한편 심지로는 솜[綿]·삼실[麻絲]·종이[韓紙]를 꼬아 사용했다.
석유 수입(1876년이 공식 수입연도지만 그 이전부터 사용된 것으로 보임) 이후 인화성이 강한 석유를 등유로 사용하면서 생겨난 형태가 심지뽑이를 설치한 뚜껑 달린 호형(항아리 형태)과 탕기형(湯器形; 약탕관 형태) 등잔이다. 호형 등잔은 소박하고 아름다워 일제 때 많은 일본인들이 일본에서 만든 등잔 3, 4개로 호형 등잔 하나를 바꿔갔다고 한다. 그 일본 등잔은 일본의 아리다요[有田窯]에서 만든 것으로 현재 우리나라에 상당수 남아 있어 많은 사람들이 그 등잔을 우리나라 것으로 잘못 알고 있다. 석유를 등유로 했어도 밝지 못했으므로 호형 등잔 중에는 심지뽑이를 2∼4개 설치해 밝기를 높인 것도 있으며, 밤눈이 밝아 야간에만 활동하는 부엉새를 장식해 등불이 밝기를 기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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