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강쇠전' 에 나오는 "방앗간집 딸 년, 저 하얀 피부 좀 보소." 라는 대목이나 슈베르트의 '아름다움 물레방앗간의 아가씨' 란 가곡의 제목에는 다 이유가 있다.
과거 비누가 없거나 귀했던 시절에는 쌀겨, 쌀드물, 콩가루, 밀가루 등이 대용품으로 사용되었고, 이렇다 보니 방앗간은 압도적으로 유리한 위치를 이용, 그네들의 몸과 얼굴을 더 깨끗이 손질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곡식의 가루 중에서도 비누 대용품으로 가장 인기가 있었던 것은 녹두 가루와 창포 가루였는데, 조선시대 궁중의 여인이나 양반집 규수들은 이 가루들을 '비루(飛陋)' 라고 부르며 '조두박'에 담아다 썼다.
한자로 비루는 "더러움을 날려보낸다." 는 뜻이었는데, "비루먹은 개" 라는 속담이 바로 여기서 연유되며,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비누' 또한 이 말이 변해서 생겨난 것이다.
영어로 비누를 뜻하는 솝(Soap)의 어원은 실제 비누가 탄생하게 된 계기를 더 잘 설명해 주고 있다.
고대 로마인들은 사포(sapo)라는 언덕에 올라가 제단을 만든 뒤 양을 태워서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풍습을 갖고 있었다. 어느 날 제사의 뒷청소를 맡은 한 사람이 타고 남은 재를 집으로 가져가 물통에 던져 놓았고, 이 물통에 걸레를 빨던 그의 아내는 때가 쏙 빠지는 것을 발견했다.
그 양동이에 던진 재 속에는 양이 타면서 녹아 흐른 기름이 배어 있었기 때문인데, 이후 로마인들은 이러한 기름재를 '사포'라고 불렀고, 이것이 오늘날 솝의 어원이 되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는 모든 문명의 기원을 백인 중심으로 놓으려는 유럽인들의 해석에 불과하고, 이미 기원전 3000년경에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인들이 기름과 재를 섞어서 비누를 만들어 사용했다." 는 기록이 발견되고 있다.
잘 알다시피 어떤 천연물질들을 인류가 화학적으로 결합시켜 탄생시키는 '화합물' 의 역사는 매우 일천(日淺)하다. 그것도 대부분은 우연과 실수에 의해 발견된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화합물의 대표격인 비누는 어떤 이유로 이렇게 오래전부터 만들어질 수 있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인류는 오래 전부터 고기를 먹어 왔고, 특히 고기를 불로 구워서 먹기 시작한 이후 '기름과 재' 가 서로 조우(遭遇)할 기회가 훨씬 많았기 대문이다.
기름과 잿물을 섞는 전통적인 비누 제조 방법은 8세기 들어 사보나 등 지중해 연안에서 올리브와 해초기름을 원료로 고급 비누를 생산하는 단계로까지 발전했으나 워낙 비싼 가격 때문에 사용층이 한정되었었다.
그리고 잿물을 이용하는 것이어서 비누가 검게 되는 단점이 있어 잿물 대신 천연 소다를 사용, 새하얀 비누를 만드는 방법이 개발되기도 했으나, 이 또한 천연 소다의 가격이 워낙 비싸 귀족들만 사용하는 정도였다.
이후 비누는 큰 기술적 진보 없이 그대로 이어지다 1790년 프랑스 귀족의 주치의였던 르블랑이 소금과 숯을 이용해 인공 소다(탄산나트륨)를 매우 싼 값으로 만들어 내는 발명을 하면서 비누는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20세기 들어서는 독일의 헨켈 사와 미국의 P&G사를 중심으로 대량 생산 체제가 갖춰졌고, 이후 터진 2차대전은 독일에서 합성세제의 탄생을 낳았다. 폭약의 한 종류인 니트로글리세린은 동물성 기름을 원료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독일의 히틀러는 원료 확보를 위해 동물 기름을 이용한 비누의 제조를 전면 금지시켰다.
이 조치는 독일 내 비누 가격의 급등을 가져왔고, 일부 과학자들은 이를 겨냥해 동물 기름 대신에 석유의 성분을 합성시킨 비누를 탄생시켰던 것이다.
아우슈비츠 포로수용소에서 독일군이 유대인의 시체를 태워 그 기름으로 비누를 만들었다는 끔찍한 사실은, 바로 이러한 '비누 품귀 사태' 때문에 실제 가능했던 것이다.
국내에서는 19세기 프랑스 신부 리델이 가져온 '샤봉' 이라는 비누가 최초다.리델 신부가 사보나 지방에서 가져온 비누라는 뜻에서 이렇게 불렀던 것인데, 이 말이 전해지면서 비누의 또 다른 말인 '사분'의 어원이 되기도 했다.
이후 일제를 통해 가성소다가 들어오면서 수공업 형태로 비누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가성소다는 수산화나트륨을 일컫는 말로서, '서양에서 만들어진 잿물'이란 뜻에서 당시 '양잿물'이라 부르기도 했다. 종종 TV의 사극이나 소설 같은 데에서 극약으로 사용된 잿물을 양잿물이라 부르는데, 이는 시기적으로 따져 볼 때 잘못된 표현인 것이다.
그러나 물자 부족으로 일반 서민들은 등겨 기름에다 잿물을 섞은 거칠고 검은 형태의 비누를 써야 했는데, 이를 석검(경상도 사투리로는 새끼미)이라 불렀다.
이후 50년 동산유지, 54년 애경유지 등이 세워져 오늘날까지 국내의 비누사업을 주도해 왔고, 66년부터는 알킬벤젠을 수입해 만든 가루비누인 럭키의 하이타이, 애경의 크린업이 등장, 세탁기의 보급 확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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