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박정희 대통령이 경부고속도로를 닦으려 할 때, 당시 야당은 이에 극렬히 반대하면서 그 이유 중의 하나로 "북한의 인민군이 남침하는 데 훨씬 쉬워진다."는 점을 내세웠다. 지금 생각하면 박 대통령의 판단이 그야말로 선견지명(先見之明)이었고, 반대로 야당의 주장은 반대를 위한 반대이자 무식함의 소치로밖에 볼 수가 없다.
하지만 야당의 그같은 주장에도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도로를 그저 '사람과 차가 움직이는 장소', 즉 운송과 이동의 수단으로 생각하지만, 도로의 역사에는 이러한 차원을 넘어서 서로 먹고 먹히는, 고도의 정치성이 숨어 있다.
똑바로 뻗은 도로는 지배와 피지배의 수단이었고, 한 번 걸음이 1m, 하루 이동 거리가 20km 남짓했던 인간이란 동물이 도시, 국가를 이루며 사회화 생활을 가능케 했던 기본 장치였던 것이다.
실제로 로마가 수백만의 인구에도 불구하고 5천4백만 명이 넘었던 서유럽 전체의 인구를 지배하며 고대 최대의 제국이 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도로 때문이었다.
그들은 새로운 영토를 얻을 때마다 직선으로 도로를 뚫어 병사들이 출동할 수 있는 시간을 최소화시킴으로써 그들이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을 확대했고, 아울러 로마 내부의 칙령, 상품, 신하의 이동이 순식간에 이루어지도록 함으로써 로마 전체를 로마답게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오래 전 우리나라를 비롯한 각 나라의 농촌ㆍ지방마다 똑바로 난 길이 없고 구불구불한 길만 있었던 것은 그들이 "똑바로 가면 훨씬 빠르다"라는 사실을 몰라서가 아니다. 농사를 지어 자급자족이 가능한 상태에서 그들에게 길이란 그들이 소규모의 공동체 생활을 영위하는데 최소한으로 필요한 정도면 충분했을 뿐이다. 똑바로 난 좋은 길은 외지인의 빈번한 출입만 초래하고, 그 결과 자신들의 공동체 질서가 흔들리고 궁극적으로 파괴되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도로는 앞서 언급했던 대로 로마시대 군마와 전차가 쉽게 이동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면서 그 건설기술도 눈부신 발전을 하게 되었다. 로마인들의 도로 건설 방법은 우선 흙을 1m 이상 깊게 파낸 뒤 맨 아래쪽에 지름 50cm 정도의 큰돌들을 깔고 그 위에는 지름 10cm 정도의 쪼갠 돌들을, 다시 그 위에는 3~5cm정도의 자갈을 깔았다. 그리고 제일 위쪽에는 평평하고 납작한 돌들을 보도 블록처럼 까는 방식이었다.
혹자는 그냥 흙 위에다 평평하고 납작한 돌들을 깔면 바퀴가 쉽게 굴러가는데 뭐 그리 대단하게 만드느냐고 말할지 모른다.하지만 이것은 흙의 물빠짐, 그리고 힘의 집중과 분산을 모두 고려한 고도의 과학적 지식이 뒷받침된 것이며, 이 원리는 오늘날 우리가 건설하는 아스팔트 도로 등 대부분의 도로에 아직도 사용되고 있다.
잘 알다시피 사람이 다니는 길은 대부분 흙으로 되어 있다. 사람이 걷기만 한다면 아무 문제가 없지만 바퀴를 가진 무거운 마차가 지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금방 바퀴 자국이 남고, 조금만 지나면 지나간 곳이 움푹 패어 못쓰게 된다. 흙 속에는 빈 공간들이 매우 많고, 또 흙의 입자 또한 매우 작아서 위에서 조그마한 하중만 가해져도 흙의 입자들은 밀도가 낮은 공간을 찾아 이동해 버리는 탓이다.
특히 비라도 내리면 빗물이 흙 속에 스며들고 빠져나가면서 흙의 입자들은 더욱 쉽게 이동할 수 있게 된다. 흙 위에 납작한 돌을 깔았다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돌이 위에서 누르는 힘을 돌 전체로 분산시키기는 하지만, 그 밑이 흙이거나 빈 공간일 경우 돌이 밑으로 꺼지는 문제가 발생한다.
로마의 방식은 위에 깐 돌이 밑에 깔려 있는 자갈에 힘을 고루 분산시킨다. 얼핏 힘을 받은 쪽의 자갈들이 옆으로 밀려갈 것 같지만, 자갈들은 도로 옆쪽의 또 다른 돌과 아래쪽의 깨진 돌에 끼여 있고 또 다져진 것이기에 문제가 없다.
설사 비가 온다 하더라도 문제가 없다. 흙일 경우 물은 밀도가 약한 쪽이나 빈 공간만을 찾아 흐르기에 지반을 약하게 하지만, 자갈과 돌 속에는 이미 빈 공간들이 있어 빗물이 이곳을 타고 그대로 밑으로 내려가기만 하면 되기에 별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로마의 이같은 도로 건설법은 로마가 멸망한 뒤 곧 자취를 감췄다. 효용성이 뛰어나기는 하지만 도로 건설에 너무나 많은 비용과 인력이 투입된다는 것이 1차적인 이유다. 하지만 로마제국처럼 수많은 노예를 바탕으로 저렴한 노동력을 확보하거나 이러한 사업을 추진할 만큼 중앙집권적이고 국가 재정이 풍부한 국가가 이후 등장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더 큰 이유였던 것이다.
중세 프랑스에서도 루이 7세는 자신의 아들이 탄 마차가 길에서 돼지를 피하려다 도로의 웅덩이에 걸려 전복되면서 아들이 크게 다치자, 도로 개선 대신 파리 시의 돼지를 추방하는 명령을 내렸을 정도였다.
그러나 이같은 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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