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사기의 기원은 엄밀히 따져 볼 때 인쇄기나 등사기가 아니라 오히려 사진기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사진기는 1837년 프랑스의 다게르가 은판(銀板) 위에 물체의 모습을 고정시키는 사진술을 발명한 때부터 시작된다.
이후 은판 대신 필름과 인화지를 이용하는 방법이 개발되면서 사진기는 눈부신 발전을 가져왔고, 이 과정에서 1927년 사진기의 원리를 이용한 청사진 복사기(디아조 복사기)가 등장했다.
이 복사기는 오늘날 건축 설계도면 같은 데에서 아직도 볼 수 있듯이 감광물질이 발라져 있는 푸른색의 인화지를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었는데, 일반 종이의 사용이 불가능하다는 단점 때문에 이후 등장한 정전식(靜電式) 복사기에 차츰 밀리게 되었다.
오늘날의 복사기는 1930년대 말 미국 뉴욕의 특허사무실에서 직원으로 근무하던 체스터 칼슨이라는 천재적인 인물에 의해 개발되었다.
뛰어난 과학적 지식을 갖고 있었음에도 직업을 위해 일찍이 사회에 진출한 그는 하루 종일 특허 출원을 위해 신청된 각종 서류와 도면의 사본들을 여러 장 만들기 위해 먹지를 대고 일일이 쓰고 그리는 단순업무를 해야 했다.
결국 이같은 작업을 참을 수 없었던 그는 회사를 그만두고 복사기의 발명에 매달렸다. 좁은 독신자 아파트에서 각종 화학실험을 했는데, 마치 썩은 달걀 냄새 같은 유황 냄새 때문에 이웃의 집중적인 항의를 받았다.
가장 항의가 심했던 사람은 바로 옆방에 살던 젊은 여인이었는데, 그는 말 그대로 싸우면서 정(情)이 들어 그녀와 결혼하게 되었고, 부유했던 그녀 집안의 도움으로 교외에 연구실을 빌려 제대로 연구를 하는 행운을 갖기도 했다.
그리고 1938년 10월, 마침내 그는 정전기(靜電氣)를 이용한 복사기의 발명에 성공했다.
그가 만든 복사기의 원리는 검은 흑연 입자(오늘날의 토너)들이 정전기에 의해 쇠로 만든 원통(오늘날의 드럼)에 달라붙었다가 또다시 정전기에 의해 종이 쪽으로 달라붙는 원리를 핵심으로 하고 있다.
칼슨의 이러한 원리를 개선해 시장성이 있도록 만든 것은 할로이드 사였다.
당시 가족 경영 수준의 소기업이었던 할로이드 사는 칼슨의 이색적인 복사장치의 특허를 사용하기로 하고 엄청난 개발비를 부담하는 '도박'을 감행했다.
연구비는 부족했지만 불에 탄 검댕을 응용해 탄소 입자들을 만들어 내고 토끼털을 이용, 정전기 실험을 하는 등, 페품더미 속에서 부품 개발의 아이디어를 찾아낸 기능공들 덕택에 할로이드 사는 1950년 드디어 최초의 정전식 복사기인 '제록스' 1호기를 생산했다.
그러나 이 제품은 복사 공정이 자동이 아니어서 판매 대수는 보잘것 없었고, 59년 9월에 등장한 자동 고속 복사기 '제록스914'가 판매되면서 진정한 복사기의 혁명이 일어났다.
당시 복사기의 폭발적 인기로 이름을 아예 제록스 사로 바꾼 할로이드 사는 당당한 재벌기업으로 부상했고, 이를 최초로 개발한 칼슨은 억만장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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