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7 년 10월 4일에 소련이 쏘아 올린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는 미국에 커다란 충격을 안겨 주었다. 과학 기술의 우위를 믿고 있었던 미국으로서는 미사일 격차라는 참담한 현실을 수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같은 해 11월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대통령 직속으로 과학기술 특별 보좌관을 임명하고 기존의 과학 자문 위원회를 대통령 직속으로 격상시켰다. 또한, 1958년에는 연방 과학 기술 회의가 설립되어 산업계, 행정부, 대학의 핵심 인물들이 과학 기술 정책의 주요 이슈를 토론하게 되었다. 이러한 기구들은 소련과의 미사일 격차를 줄이고 더 나아가 소련을 추월하기 위한 항공 우주 기술의 개발을 크게 고무시켰다.
스푸트니 크의 충격은 미국이 과학 교육 체제를 정비하는 계기로도 활용되었다. 미국의 많은 언론들은 소련에 뒤진 주된 이유를 미국의 체계적이지 못한 과학 교육에서 찾았고 급기야 미국 의회는 1958년에 국가 방위 교육법을 통과시켰다. 이 법률을 통하여 미국 정부는 과학교육의 진흥을 위하여 10억 달러라는 거금을 지출하였다. 그 결과 고등 교육 기관에 입학한 학생의 수는 1957년에 300만 명 정도에 불과했던 것이 1968년에는 700만 명 정도로 급격히 증가하였다. 또한, 초등 교육 기관에서 고등 교육 기관에 이르는 전 교육 과정에서 과학 교과목의 중요성이 강조되었고 교과 과정을 개편하기 위한 노력이 잇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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