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페르니쿠스에 의해 촉발된 천문학 혁명은 케플러에 의해 더욱 발전되었다. 당대 최고의 천문학자였던 티코 브라헤의 조수로 일했던 케플러는 브라헤가 죽은 후 스승의 정밀한 관측 자료를 몽땅 물려받았다.
케 플러는 브라헤의 관측 자료를 분석하여 몇 개의 원운동만으로 행성의 운동을 설명하려고 노력했지만 아무리 애써 봐도 8분의 오차를 없앨 수가 없었다. 이 8분의 오차를 없애기 위해 케플러는 '천체는 원운동한다'는 그때까지의 믿음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원운동이 가장 완전하고 자연스러운 운동으로서 천상계의 천체는 원운동 이외의 다른 운동을 할 수 없다고 생각되고 있었다. 케플러는 이 신념을 포기하고 타원궤도를 새로이 도입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됨을 깨달았다.
행성은 이제 태양을 한 초점으로 하는 타원궤도를 도는 것으로 제시되었다(케플러의 제1법칙). 또한 행성이 타원 궤도를 도는 속도도 균일한 것이 아니라 태양에서 멀때는 천천히, 가까울 때에는 빨리 도는 것으로 설정하였다(케플러의 제2법칙). 그럼으로써 이제는 더 이상 주전원과 같은 복잡한 기하학적 모델을 사용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행성의 궤도는 부등속 타원 운동이라는 단순한 기하학적 모델로 설명이 가능해졌다.
그 러나 케플러의 업적은 새로운 문제를 제기하였다. 그것은 부등속 타원 운동에 대한 원인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었다. 케플러는 이 문제에 대해 태양에서 방출되는 자기적 힘을 그 원인으로 제시했지만, 이에 대한 완전한 해답을 얻기 위해서는 뉴턴의 등장을 기다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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