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국내 첨단 산업에 대한 특허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는 디스플레이 부문에 대한 특허 분쟁이 많았지만, 올 초에는 반도체 부문에 대한 특허 분쟁 소식이 줄을 잇고 있다.
이같은 국제적 특허 분쟁은 특허 침해여부와 상관없이 분쟁 발생 자체만으로 기업에게 적지 않은 어려움을 준다. 소송비용은 물론, 인적ㆍ물적ㆍ정신적 손실이 적지 않다. 따라서 이같은 특허분쟁을 통해 쌓은 경험을 토대로 유사한 분쟁에서의 `힘의 낭비'를 줄이는 것도 분쟁에서의 승리 못지 않게 중요하다.
삼성전자는 캐나다 반도체 기업인 모사이드테크놀러지와 4년여간 지리한 특허분쟁 끝에 지난 19일 일정 부분의 특허료를 지불하는 형태로 소송을 마무리지었다.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4년간의 법정 공방 및 특허협상 과정에서 이같은 `차선의 선택'을 했다고 판단된다. 문제는 삼성의 이같은 결정에 따른 후폭풍이다. 모사이드는 삼성전자로부터 얻은 이같은 전과(戰果)를 기반으로 하이닉스에 즉시 특허료를 지불하라며 손을 내밀고 있다.
앞서 지난해에 삼성SDI와 일본 후지쯔간 PDP 기술과 관련한 특허 소송이 진행됐고, 삼성SDI는 같은 해 6월 후지쯔와 `형식적' 크로스라이선싱 모양을 갖춰 특허협상을 타결했다. 이어 그 후폭풍은 11월 마쓰시타가 LG전자를 PDP 특허 침해로 제소하는 형태로 나타나 올해까지 이어지고 있다.
김쌍수 LG전자 부회장은 올 초 미국에서 열린 가전쇼(CES)에서 이 분쟁이 원만하게 타결될 것이라는 견해를 밝혀 양사간 특허 분쟁도 상호 크로스 라이선싱 형태로 타결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같은 특허분쟁 과정을 지켜보면서 한가지 아쉬운 점은 국내 기업간 특허공조의 끈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삼성전자가 `비용'을 지불하며 체득한 모사이드에 대한 경험이 하이닉스에 전달되고, 삼성SDI가 후지쯔로부터 얻은 경험을 LG전자에 건네는 공조의 끈이 없다면 국내 기업들은 동일한 사안에 동일한 시행착오를 되풀이할 수 밖에 없고, 이에 따른 경쟁력 하락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지난해말 삼성전자와 소니가 포괄적인 크로스 라이선싱을 체결할 당시 소니의 나카무라 수석상무의 말이 문득 떠오른다. 그는 당시 기자회견에서 "삼성전자는 최근 수년동안 특허력이 급격히 향상되고 있다"며 "한국 업체들과 쓸데없는 특허분쟁을 하기 보다 공조를 통해 첨단기술 개발에 집중하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다"고 언급했다. 특허분쟁에 소요되는 힘의 누수를 줄이겠다는 전략적 판단이 읽혀진다.
외국 기업과 생존을 위해 특허를 공유하고 있는 마당에 국내 기업간 특허공유 및 공조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우물 안에서 작은 일로 싸우기 보다 힘을 합쳐 세계와 싸우는 한국기업들의 모습을 보고 싶은 것이 국민들의 바람이다.
이런 측면에서 지난해말 잇따라 특허CEO 포럼이나, LED 특허컨소시엄, 반도체ㆍ디스플레이 장비 특허컨소시엄이 구성된 것은 반길만한 일이다. 문제는 실행이다. 말뿐이 아니라 실질적 특허 공조를 통해 기업 경쟁력은 물론 국가 경쟁력을 높여야 하는 것이 올해 국내 기업들의 과제이다. 특허분쟁을 통해 체득한 경험을 국내 기업끼리 공유함으로써 특허분쟁으로 인한 힘의 낭비를 덜어내는 일이 바로 그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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