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기술 분야에 대한 일본의 한국 견제가 심해지고 있다. 삼성SDI, LG전자, 대우일렉트로닉스에 대한 특허 분쟁에 이어, 도시바가 하이닉스(대용량 플래시 메모리)에 대해 특허권 침해를 이유로 판매금지 가처분과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일본 기업이 이처럼 한국 기업을 특허 침해로 물고 늘어지는 이유는 명약관화하다. 3년전만 해도 일본 기업들은 세계 플래시 메모리와 플라스마 디스플레이 패널(PDP) 시장에서 준독점적 지위를 향유했으나, 한국 전자업체들의 설비 증설과 신기술 개발로 인해 시장점유율이 하락함은 물론, 생존마저 위협받게 됐기 때문이다.
그 결과, 한국 정보통신(IT) 기업에 대해 벼랑 끝 선전포고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 기업으로서는 특허권 침해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한국 기업에 의한 시장 잠식을 막는 한편, 외국 바이어들에게 일본 IT기업의 혁신성(novelty) 우위를 암묵적으로 과시할 수 있는 이점을 갖게 된다. 설령 소송에서 지거나 극적 타협이 이뤄진다 하더라도 더 높은 로열티를 받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미래 기술제휴 협상에서도 유리한 고지를 점령할 수 있다.
이는 최근의 특허권 분쟁이 과거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는 데서 잘 나타난다. 먼저, 분쟁 분야가 디스플레이에 국한되지 않고 점차 반도체, 스토리지(storage·저장) 등 IT산업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분쟁 목적이 로열티 때문이 아니라, 한국 기업을 선제적으로 견제함으로써 글로벌 마켓에서 한국 기업의 팽창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의도가 강하다는 점이다. 실제로, 일본 전자업계에서는 한국 기업 견제에 대해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특허 분쟁이 하나같이 교차 라이선싱(cross-licensing) 계약 연장에 관한 협상 과정에 발생했다는 사실에 의해서도 입증된다. 더 우려할 점은 일본 정부가 법규를 근거로 기업이 소송을 제기하는 즉시 한국 IT 제품의 통관을 거부하고 있다는 점이다.
원인과 경과야 어찌됐든, 우리로서는 일본 기업의 특허 분쟁 공세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처해 있다. 디지털 정보 시대의 특허 분쟁은 산업화 시대의 노사 분규 이상으로 기업의 경쟁력과 명성을 약화시키는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다만, 일련의 특허 분쟁이 반드시 우리 기업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생각되지는 않는다. 우선, 우리 업계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외국 기업에 의한 특허 분쟁 소송 제기에 대비하고 분쟁 해결에 관한 정보와 노하우를 교환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다음으로, 업계는 세대를 건너뛴 기술 도약(leap-frogging)과 압도적 기술 경쟁 우위만이 특허권 침해를 막을 수 있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닫게 됐다는 점도 수확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학습효과에만 만족해서는 안 된다. 업계는 새로운 핵심 기술을 개발하고 보호하기 위해 배전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된다. 기술 보호에 관해서는 외국 기업들의 전략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샤프와 같은 일본 기업들은 수년 전부터 핵심 신기술은 일부러 특허를 내지 않고 감춰 두는 이른바 ‘블랙박스(black box)’ 전략을 실행해 왔다. 또, 많은 미국 기업들은 신기술을 개발한 다음 출원은 하되 고의적으로 특허 인정 요건을 만족시키지 않는 이른바 ‘수면하 특허(submarine patent)’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우리 기업들도 법규가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이같은 전략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과학기술부, 산자부, 특허청, 법제처 등 유관 기관들도 태스크포스를 구성, 우리 기업의 기술을 보호하면서도 특허제도의 대외적 공신력을 높일 수 있는 법규나 제도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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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허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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